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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사] 자기 신뢰(랄프 왈도 에머슨)

아름다운 존재 2022. 6. 27. 23:16

당신 자신을 자기 이외의 곳에서 찾지 말라.

 

부러움은 무지에서 나온다. 모방은 자살행위다.

자신에게 주어진 경작지를 자기 자신의 노동으로 갈지 않으면, 단 한 알의 옥수수도 그에게 주어지지 않는다. 직접 뭔가를 해보아야만 비로소 자기 능력을 알게 된다.

인간이 자기 일에 온 정성을 다하고 최선의 노력을 기울일 때 비로소 위로를 느끼고 즐거움을 얻는다.

 

자기 자신을 믿어라.

신의 섭리가 당신을 위해 마련한 자리,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과의 어울림, 사건 사이의 상호 연결을 받아들여라.

 

눈치 보기를 일절 거부할 수 있는 사람. 주변 사람이나 사물을 일단 관찰했으면, 그 다음에는 눈치 보지 않고, 편견을 갖지 않고, 뇌물로 마음을 취할 수 없으며, 두려움 없는 솔직함으로 자기 의견을 말할 수 있는 사람. 이런 사람은 언제나 강적이 된다.

 

온전한 어른이 되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순응을 거부할 줄 알아야 한다.

당신의 솔직한 의견을 자기 자신에게 선언하라.

제가 순전히 내면의 힘으로 살아가려고 할진대, 그 오랜 전통이 아무리 신성한들 나와 무슨 상관이란 말입니까?”

자기 본성에서 나오는 법을 제외하고는 그 어떤 법도 자신에게 신성할 수 없다.

선과 악은 그저 이름일 뿐이고 이런 것 혹은 저런 것에 임의로 갖다 붙일 수도 있다.

유일하게 옳은 것은 내 기질에 따라 생활하는 것이다. 그 기질에 어긋나게 사는 것은 뭐든 잘못이었다. 올바른 사람은 갖은 반대 앞에서도 자신을 제외한 모든 것을 그저 이름뿐인 찰나적인 것으로 여긴다.

나는 올곧고 씩씩하게 나아가야 하고 모든 면에서 진실만 말해야 한다.

 

먼 데를 사랑한다면서 가까운 데 있는 악은 은폐하는 일은 그만두십시오.”

 

나의 천재가 나를 부를 때면 나는 아버지, 어머니, 아내, 형제까지도 모두 멀리한다.

 

나는 속죄하지 않고 단지 씩씩하게 살아가고 싶다.

내 인생은 자신을 위한 것이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화려하면서 불안정하기보다는 비록 낮은 신분이더라도 진실하고 평등하게 살아가는 것을 훨씬 더 선호한다.

나는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해야지, 남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해서는 안 된다.

세상에서 여론을 따라 살아가는 것은 쉬운 일이다. 그러나 위대한 사람은 그렇게 살지 않는다. 위인은 군중에 한가운데서 자신의 독립적인 고독을 지키면서도 아주 품위 있는 생활을 해나간다.

 

당신이 보기에 이미 죽어버린 관례들에는 절대 순응하지 말라. 그것이 당신의 잠재력을 흩어버리기 때문이다. 당신의 시간을 빼앗고 겉으로 드러나는 성품을 흐릿하게 만든다.

당신의 일을 하면 자신을 더욱 강하게 하는 셈이다.

우리는 이 순응이라는 게임이 눈먼 사람의 허세임을 꿰뚫어보아야 한다.

 

어리석은 일관성을 고집하지 마라.

당신은 왜 자꾸만 어깨너머 뒤쪽을 돌아다보는가? 왜 기억이라는 시체를 무겁게 끌고 다니는가? 당신이 이런저런 공공장소에서 했던 말들과 모순되지 않기 위해? 당신이 모순되는 말이나 행동을 했다고 치자. 그게 어떻다는 말인가?

순전히 과거를 기억하는 일에서조차 기억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

천 개의 눈을 가진 현재로 과거를 끌어내 재판을 받게 하고 언제나 새로운 날을 맞이하며 살아가는 것이 지혜의 법칙이다.

 

영감이 떠오르는 순간, 신이 구체적인 모습과 색깔을 가지고 당신을 찾아오면 기존에 고수했던 이론을 내버리고 그 하나님을 영접하라!

 

어리석은 일관성은 소인의 우둔한 고집이며 시시한 정치가, 철학자, 성직자 들이나 존중하는 것이다. 위대한 영혼은 일관성 따위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지금 이 순간 객관적인 언어로 당신 생각을 말하라. 그리고 내일이 되면 내일이 객관적으로 말해주는 것을 말하라. 그것이 오늘 말한 것과 완전히 모순된다 할지라도 전혀 신경 쓰지 마라.

남에게 오해받는 것이 뭐 그렇게 대수란 말인가?

누구도 자기 본성을 침해할 수는 없다.

 

진정한 행동은 스스로 설명한다.

가장 좋은 배라 할지라도 항해할 때는 백 개의 지그재그 항적이 생기지만, 충분히 떨어진 거리에서 보면 평균적인 직선 항로로 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홀로 행동하라. 당신이 홀로 행동해온 것이 지금 당신을 정당화할 것이다.

위대함은 미래에 호소한다. 내가 오늘 바른 일을 할 만큼 확고하며 남의 이목은 상관하지 않을 수 있다면, 전부터 옳은 일을 많이 해왔으므로 지금 나를 변호할 수 있다. 어떻게 행동하든 지금 바르게 행동하라. 겉모습을 무시한다면 언제나 옳은 일을 할 수 있다. 성품의 힘은 누적된다. 이전에 행한 모든 미덕은 긍정적으로 기여한다.

 

인간이 자기 본성에 따라 자기 신뢰를 실천하면서 살아가면 위대한 정신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이제 더 이상 고개 숙이지도 말고 사죄하지도 말자. 나는 이제 그의 비위를 맞추지 않는다. 오히려 그가 내 비위를 맞추길 바란다. 인간은 자신의 가치를 알고 사물을 그 발아래 제압해야만 한다.

 

직관은 변덕스러운 것이 아니라 운명적이다.

 

마음이 단순하여 신성한 지혜를 받아들인다면 모든 낡은 것은 사라져간다.

마음은 현재 생생하게 살아서 현재의 시간에 과거와 미래를 흡수한다. 모든 것은 그 마음과의 관계에 따라 신성해지고 이것이나 저것이나 마찬가지다.

 

역사는 나의 있음(being)과 되어감(becoming)을 격려하는 유쾌한 교훈담 혹은 우화가 되어야지 그 이상의 것이 되려 한다면 주제넘고 유해한 것이 아닐 수 없다. (역사의 사례를 따라할 필요는 없다.)

 

장미는 지금 이 순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존재한다.

장미는 오늘 하나님과 함께 존재한다.

장미에게는 시간이 없다. 단지 장미가 있을 뿐이다. 그것은 존재하는 매 순간 완벽하다. 장미의 자연(본성)은 충족되어 있고, 동시에 모든 순간마다 자연을 충족시킨다.

이에 비해 인간은 뒤로 미루거나 기억한다. 그는 현재에 살지 않는다.

뒤로 눈을 돌려 과거를 한탄하거나 그를 둘러싸고 있는 풍요로움을 의식하지 못한 채 발끝으로 서서 미래를 내다보려 한다. 장미처럼 시간을 초월하여 자연(본성)과 함께 현재에 살지 않는다면, 그는 결코 행복하거나 강인해질 수 없다.

 

격정을 초월한 영혼은 세상과 자신(영혼) 사이의 동일성과 영원한 인과관계를 보며, 진리와 정의가 스스로 존재하는 것을 지각하며, 모든 것이 잘 조화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스스로 평온함을 느낀다.

 

인간이 의식(생각)을 어느 수준까지 높이느냐에 따라 존재가 결정된다.

 

우리는 혼자서 가야 한다.

우리는 언제나 조용히 앉아 있도록 하자.

우리의 친구, 아내, 아버지, 아이가 벽난로 주위에 앉아 있고, 피를 나누었다고 해서 우리가 그들의 잘못을 떠안아야 하는가? 인류에게는 내 피가 흐르고, 나에게도 모든 사람의 피가 흐른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심술이나 어리석음을 따라 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당신의 고립은 기계적인 것이 되어서는 안 되고, 그보다는 정신적인 것, 즉 마음을 드높이는 것이 되어야 한다.

 

당신의 고적한 상태를 유지하라. 그들의 혼란 속으로 뛰어들지 말라.

사람들이 나를 괴롭히는 것은 내 미약한 호기심이 그렇게 하도록 허용했기 때문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는 누구도 내 곁에 가까이 다가올 수 없다.

우리는 사랑하는 것을 가질 수 있으나, 욕망은 그 사랑을 잃게 만든다.”

 

이 시대의 거짓 환대와 거짓 애정을 견제하라. 우리가 말을 섞는 이 속고 속이는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며 살아가는 삶을 즉시 중단하라.

관습을 그대로 따르진 않겠습니다.

나는 나 자신이 되어야 합니다. 더 이상 여러분을 위해 나 자신을 길들이려 하지 않겠습니다. 이것은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내 모습 그대로를 사랑할 수 있다면, 우리는 더욱 행복하겠지요.

나는 지금 이대로도 사랑받을 수 있도록 애쓰겠습니다.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것을 감추지 않겠습니다. 내 마음이 기뻐하는 대로 내 가슴이 시키는 대로 강력하게 나갈 것임을 해와 달 앞에서 맹세합니다.

위선적인 입발림이나 행동으로 당신과 나를 해치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의 체면을 위해 자유와 힘을 팔아넘길 수는 없다.

 

인간은 자신을 타인에게서 떼어낼 수 있고 또 그렇게 해야만 한다.

인간은 자기 신뢰를 실천함으로써 새로운 힘을 얻는다.

자기를 신뢰하여 행동하는 순간, 법률, , 우상숭배, 관습 따위는 창밖으로 버려진다.

 

*자기 신뢰의 네 가지 실천*

진정한 기도를 올려라.

전적으로 선하지 않은 것을 구하는 기도, 특정한 물건을 구하는 기도는 사악하다.

기도는 가장 높은 관점에서 인생의 피할 수 없는 사실들을 관조하는 일이다.

개인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올리는 기도는 저속한 도둑질이다.

인간이 하나님과 하나가 되면 구걸을 하지 않는다. 그는 기도가 곧바로 행동이 되는 것을 본다.

‘그 분의 감추어진 의미는 우리의 노력 속에 깃들어 있지. 우리의 용기가 곧 우리의 가장 좋은 신이지.’

불만은 자기 신뢰의 결핍에서 생겨난다. 그것은 의지의 빈약함이기도 하다.

자기 일을 열심히 하라. 그러면 악은 벌써 고쳐지기 시작한다.

운의 비밀은 우리 가까이에 있는 즐거움에 있다. 신과 인간은 스스로 돕는 자를 환영한다.

꾸준히 버티면서 묵묵히 자기 일을 해나가는 자에게 축복의 신들은 재빨리 도움의 손길을 뻗는다.

2. 어디를 가든 너 자신이 돼라.

영혼은 여행자가 아니다. 현명한 사람은 집에 머무른다. 어떤 필요와 의무 때문에 때때로 집 밖으로 나서거나 외국에 가더라도, 그는 여전히 집에 머물러 있다.

내가 어딜 가든 나의 거인은 함께 간다.

3. 독창적인 사람이 돼라.

당신 자신을 믿어라. 결코 모방하지 마라. 매 순간 자기 재주를 내보여라.

평생에 걸쳐 쌓아온 누적된 힘을 보여줘라. 빌려온 남의 재주는 일시적이고 그나마 절반도 채 당신 소유가 되지 못한다. 각자는 조물주가 자신에게 가르쳐준 것을 가장 잘 할 수 있다. 당사자가 그 재능을 직접 보여주기 전에는 아무도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고 또 알아낼 수도 없다.

당신에게 맡겨진 일을 성실히 해나가라.

소박하고 고상한 생활을 이어가면서, 심장이 시키는 대로 복종하라.

4. 운명의 본 모습을 파악하라.

뭔가 득 보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다. 새 기술을 획득한 사회는 오래된 본능을 잃어버린다.

우리는 세련미를 높임으로써 어떤 에너지를 잃어버린 것 아닐까?

각 시대의 예술품과 발명품은 그저 시대가 잠시 걸친 의상일 뿐 사람들에게 활력을 주지 못한다. 기계가 개선되었다 한들 그 피해로 이익은 상쇄된다.

위대한 천재는 본질적인 인간에게로 돌아온다.

(용기를 발휘하는 데 방해가 되는 것을 다 제거하고 오로지 용기 하나만으로 버틸 것)

 

사람의 성품은 반드시 필연에 따라 획득한 것이다. 그는 이런 식으로 살아 있는 자신을 얻는데, 이것은 통치자, 군중, 혁명, 화재, 폭풍우, 도산 등의 영향으로 사라지지 않는 자산이다. 그 성품은 주인공이 숨 쉬는 한 영구히 자신을 새롭게 한다.

그대의 운명 혹은 목숨이 그대를 뒤쫓고 있다. 따라서 그것을 쫓아가는 일을 그만두고 편안히 쉬도록 하라.”

인간이 외부의 지원을 모두 거절하고 혼자 설 때, 그는 강해져 번영을 누린다.

사람들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말라. 그리고 끝없는 변화 속에서, 자기 신뢰를 실천하는 당신은 굳건한 기둥이 되어 곧 당신을 둘러싼 모든 사람을 지탱하는 옹호자가 될 것이다.

(권력)은 자기 내부에서 생겨나는 것임을 아는 사람, 자기 밖이나 다른 곳에서 선을 찾는 자는 허약하다는 것을 아는 사람. 그래서 지체 없이 자기 생각으로 돌아가서 즉각 자신을 바로잡고 우뚝 서는 사람. 이런 사람은 자기의 사지를 마음대로 부리고 기적을 일으킨다. 두 발로 서는 사람이 물구나무로 서 있는 사람보다 더 강하다.

운명이라고 하는 것을 모두 활용하라.

당신의 굳센 의지를 내세우며 일하고 얻으라. 운명의 바퀴에 체인을 감고 멈춰 세워라.

앞으로 운명의 회전을 두려워하지 마라.

자신에게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은 자신밖에 없다. 근본 원리에서 이기지 못하면 그 어떤 것도 당신에게 평화를 가져다주지 못한다.

 

스스로 진화하여 인생을 살아나가는 실용적 방법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자연은 감상주의자가 아니다. 우리를 달래지도 않고 비위를 맞추지도 않는다.

우리는 세상이 냉혹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자연의 살벌함에 대하여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부정하지 않도록 하자. 섭리는 그 목적을 위해서는 거칠고 매정하고 예측 불가능한 길을 걸어간다.

운명도 그 주인을 모시고 있다. 한계도 한계를 지니고 있다. 운명은 위에서 보거나 아래에서 볼 때, 내부에서 보거나 외부에서 볼 때 각기 달라진다. 운명의 한 부분은 인간의 자유가 차지한다. 영혼 속에서는 선택과 행동이라는 충동이 영원히 솟구쳐 오른다. 지성은 운명을 무력화한다. 인간은 생각하는 한, 자유이다.

운명과 공모한다. 운명을 활용하는 사람은 객관적인 사실들에 아부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활용하고 명령한다.

운명을 올바르게 활용하려면 우리 행동을 자연의 고상함 쪽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자연은 그 자체의 힘이 작용하지 않는 한 거칠고 무적이다. 인간도 이렇게 되어야 한다. 그의 가슴에서 공허한 자만심을 제거하고, 자연과 같은 수준으로 매너와 행동을 보임으로써 자기 주권을 보여야 한다. 목적의식을 중력의 당김처럼 단단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 어떤 권력, 설득, 뇌물도 자기 목적을 포기하게 할 수 없다. 인간은 강, 참나무, 산 같은 존재에 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흐름, 그런 쑥쑥 뻗어감, 그런 우뚝함을 갖추어야 한다.

운명을 가장 잘 활용하는 길은 바로 운명적인 용기를 가르치는 데 있다.

의무를 수행하는 길에 등장하는 위험을 대적하라. 당신이 운명의 케루빔에 보호받고 있음을 알라. 운명 때문에 어떤 피해를 입었다는 생각이 든다면, 적어도 당신의 궁극적인 이익을 위해 그렇게 했다고 생각하라.

 

새것(생각에 의한 관념)이 옛것(물질과의 접촉으로 획득한 경험적 사실)을 능가하게 된다.

진리의 영원불멸을 보았으므로, 나 자신도 영원불멸이다. 그 패배하지 않은 상태를 보았으므로 나 자신도 패배하지 않는다.”

지성이 더할수록 당신 고유의 힘도 늘어난다.

설계(디자인)를 꿰뚫어보는 사람은 그것을 지배하고, 꼭 있어야 하는 것을 존재하게 한다. 우리는 앉은 채로 지배하고, 비록 잠들어 있더라도 우리 꿈은 실현된다. 우리 생각이 비록 한 시간밖에 익지 않았더라도 가장 오래된 필연성을 확인해준다. 필연은 생각에서 분리되거나, 의지로부터 분리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필연, 생각, 의지는 언제나 공존해왔다. 생각은 우리에게 그 주권과 신성함을 알려주며, 이런 주권과 신성함은 그 생각에서 분리되지 않는다. 생각은 네 것 혹은 내 것이 아니라, 모든 마음에 담긴 의지를 가리킨다. 그것은 모든 사람의 영혼 속으로 흘러든다. 영혼 자체가 사람을 구성하기 때문이다.

가장 깊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가장 성품이 강하다.

 

 

통찰(지각)과 감정(소망)을 융합해 의지를 만들라.

의지에 강력한 힘을 실으려면, 우주적 힘에서 가져와야 한다.

우리는 지성을 활용하여 그 혼란을 건전한 힘으로 바꾸어놓을 수 있다.

추위는 사람을 구분하지 않고 피를 식히고, 이슬방울처럼 얼게 한다.

그러나 스케이트 타는 방법을 배우면 빙판은 그에게 우아하고, 멋지고, 시적인 움직임을 제공한다. 추위는 당신의 사지와 두뇌에 자극을 주고 정신력을 활발하게 해 앞서 가게 만든다.

 

운명과 자유를 결합한 삶

사람은 자기 결정에 감사하면서 재주도 두렵게 여겨야 한다.

제약이 결국 힘이 된다면, 참사, 대립, 짓누르는 무게는 날개이며 수단이다.

생명은 그가 처한 환경 속에서 자발적으로 그리고 초자연적으로 작동한다.

뭔가 할 일이 있을 때, 세상은 그것을 해내는 방법을 안다.

 

세상의 비밀은 사람과 사건이 맺는 관계에 있다. 사람은 사건을 만들고 사건은 사람들 만든다.

영혼은 그 자신(영혼)에게 벌어질 사건을 그 안에 간직한다. 사건은 영혼이 생각하는 것이 구체화된 것일 뿐이고, 우리는 언제나 기도하는 것을 얻기 때문이다.

사건들은 그의 신체와 마음이 낳은 아이들이다.

삶의 즐거움은 그가 삶을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달린 것이지, 하는 일이나 사는 장소에 달려 있지 않다.

 

운명은 성품의 결과다. 사건들은 성품과 함께 확대되어 간다.

 

운명은 소원을 따르므로 자기 소원을 경계하라.

 

물질과 정신은 언제나 기울어졌다가 다시 균형을 잡는다. 인간이 허약한 동안에 땅은 그를 마음대로 다룬다. 그러나 인간은 자기 두뇌와 애정을 땅에다 심는다. 점점 인간은 땅을 다룰 수 있게 되고, 정원과 포도원을 아름답게 가꾸면서 자기 생각에서 나오는 생산성을 수확한다. 정신(생각)이 접근하면, 우주의 모든 단단한 것은 액체 상태가 된다. 단단한 것을 유동적으로 만드는 힘이 곧 정신력을 측정하는 기준이다. 만약 벽이 계속 단단한 상태라면 그것은 정신(생각)이 허약함을 보여준다. 은밀한 힘이 작용하면 그 벽은 새로운 형태가 되면서 정신의 수준이 어떠함을 표현한다. 온 세상은 생각의 그물망 위에 펼쳐져 있는 유동적 물질과 같다. 생각이 지으려는 곳의 기둥이나 점을 향해 물질은 흘러간다. 인간 종족은 자신을 지배하는 생각과 함께 땅에서 솟아났다. 그들은 다시 자신을 여러 그룹으로 나누어 이 형이상학적 추상을 위하여 맹렬히 싸울 준비가 되어 있다. 생각의 품질이 이집트인과 로마인을 구분하고, 오스트리아인과 미국인을 구분했다.

 

자신이 찾아다니는 것은 발견하고, 피해 달아나는 것은 우리에게서 사라진다.

우리가 젊은 시절에 바랐던 것은 노년이 되면 떼로 몰려온다.”

우리가 기도했던 것이 저주처럼 우리에게 주어진다.

이 때문에 우리는 아주 조심해야 한다. 결국, 우리가 소망했던 것을 갖는 게 확실하므로, 우리가 가장 귀한 것만 요구하도록 해야 한다.

 

이중의식: 인생의 신비를 푸는 열쇠

인간은 자신의 개인적 본성과 공적 본성이라는 두 가지 말을 번갈아 타야 한다..

심기일전하여 우주와의 관계를 재정립해야 한다.

아름다운 필연앞에 제단을 건설하자.

세상에 우연한 일은 없고, 우주의 법칙은 우리가 존재하는 모든 단계에서 지배하며, 그 법칙은 지성적인 것이 아니라 지성 그 자체인 것, 그리고 인격적이지도 몰인격적이지도 않은 그 법칙은 인간의 말을 경멸하며, 인간의 이해를 넘어선다. 그것은 사람을 녹여 자연에 생기를 불어넣으며, 마음이 순수한 자들에게 자신의 전능함을 활용하라고 요구한다.

 

모든 사람이 황홀감이나 신성한 빛을 느낄 수 있어야 하며, 우리의 매일 생활은 정신적 세계와의 소통으로 더욱 고상해져야 한다.

정신세계로 가는 길을 안내하고 그 세계와 밀접하게 소통하도록 이끄는 학문이나 과정을 열심히 구해야 한다.

여러분 각자는 모든 사악한 관습, 소심함, 한계 사항을 내던지고, 대신에 자유롭고 도움을 주는 사람, 개혁하는 사람, 남에게 혜택을 베푸는 사람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여러분이 만나게 될 많은 어려움을 그럴듯한 요령과 변명으로 모면함으로써, 이 세상을 그저 하인이나 스파이처럼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용감하고 정의로운 사람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탁월한 것을 향해 직선으로 내달리는 사람, 자신만 명예로운 사람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 자기를 따라오는 사람들에게도 그런 혜택을 주는 사람, 이런 사람이 되겠다는 소명의식을 갖길 바랍니다.

 

사랑을 실행하는 것, 친구를 돕는 것,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 지식을 넓히는 것, 국가에 봉사하는 것, 자기감정에 충실하는 것

성실한 학습자여야만 진정한 주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아주 비싼 값을 치르고 그것을 얻기보다는 아예 그것 없이 사는 게 더 좋습니다.

 

자기 스스로 돕는 것이 중요하다.

바라는 것이 별로 없고 자기 필요는 자기가 알아서 충족하게 하는 것처럼 우아한 일이 또 어디 있을까요? 그렇게 해서 사납게 움켜쥐려고 하지 않고 대신에 남에게 뭔가를 남겨준다면 그것이야말로 우아한 일이 아닐까요? 남에게서 거창하게 대접받는 것보다는 자기 필요를 스스로 해결하는 것이 더 우아합니다. 이것은 지속적인 우아함입니다.

오늘 공공의 이익을 위하여 내 힘을 기꺼이 소진해가면서 밥벌이를 했는가?”

우리는 날마다 바른 돌을 하나씩 놓아가면서 너무나 노골적인 잘못이 발견되면 기꺼이 시정하려는 노력을 계속해 나가야 합니다.

 

자기 마음속에 뿌리내리지 않은 모든 관행을 제거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사람은 개혁가가 되기 위하여 또 인간이 이미 만들어놓은 것을 다시 만들려고 태어난 것 아니겠습니까? 거짓말을 내다 버리는 사람, 진리와 선을 회복시키는 사람, 우리 마음속에 들어와 있는 저 위대한 자연을 모방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자연은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 속에서 잠자는 것이 아니라, 매시간 자신을 새롭게 수리하면서 우리에게 매일 아침 새 날을 제공하고, 그 신선한 맥동으로 우리에게 새로운 생명을 줍니다.

인간은 자신이 볼 때 진실하지 않은 것은 모두 내버려야 합니다. 원초적 생각, 자기 이성에 비추었을 때 온 세상이 지지하지 않는 관습이 있다면 아예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렇게 해서 불편함이나 소위 패망이 온다고 해도 그것은 죽어가는 향기가 가라앉으며 풍기는 냄새에 불과합니다. 삶의 성스럽고 신비한 공간에 일상적 행동을 다시 위치시키려 한다면, 그런 불편쯤은 참아야 합니다.

신앙과 희망

사랑은 모든 해악에 대한 치료제이며, 자연의 만병통치약입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불가능한 것이 즉시 가능해집니다.

 

최고급 목수나 엔지니어의 도구, 화학자들의 실험실, 대장장이의 용광로를 갖추었더라도 우리는 공기, , 숲을 갖춘 지구를 만들어내진 못합니다.

 

내가 사랑받는 사람이라고 느끼게 합시다. 세상이 내게 잘 대해주는 것이 고마워서 보상적 행동을 하도록 합시다.

사랑은 이 피곤하고 오래된 세상을 다른 눈으로 보게 할 것입니다.

사랑은 헛된 외교술이 갈 수 없는 곳까지 깊숙이 침투하여 아주 은밀한 방식으로 무력이 성취할 수 없는 것을 달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