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 스토너(존 윌리엄스)
하지만 윌리엄 스토너 앞에 놓인 장래는 밝고 확실하고 변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장래를 수많은 사건과 변화와 가능성의 흐름이라기보다 탐험가인 자신의 발길을 기다리는 땅으로 보았다. 그에게 장래는 곧 웅장한 대학 도서관이었다. 언젠가 도서관에 새로운 건물들이 증축될 수도 있고, 새로운 책들이 들어올 수도 있고, 낡은 책들이 치워질 수도 있겠지만, 도서관의 진정한 본질은 근본적으로 불변이었다. 그는 몸을 바치기로 했지만 아직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이곳에서 자신의 장래를 보았다. 장래에 자신이 변화를 겪을 것이라는 생각은 들었으나, 장래 그 자체가 변화의 대상이라기보다는 변화의 도구라고 보았다.
그는 평범한 1학년생들에게 문법과 작문 기초만 가르치게 되어 있었지만, 그것이 아주 중요한 일 같아서 열정적으로 고대하고 있었다. 그는 가을학기가 시작되기 전 일주일 동안 강의계획을 짜면서,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이 보게 마련인 가능성들을 보았다. 우선 문법의 논리성이 느껴졌고, 그것이 스스로 퍼져나가 언어 전반에 스며들어서 인간의 생각을 지탱하게 된 과정을 알 것 같았다. 그는 학생들을 위해 고안한 간단한 작문 연습에서 아름다운 산문의 싹을 보았으며, 자신이 느낀 것들로 학생들에게 활기와 의욕을 불어넣게 될 때를 고대했다.
자네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사람이 되기로 선택했는지, 자신이 하는 일의 의미가 무엇인지 잊으면 안 되네. 인류가 겪은 전쟁과 패배와 승리 중에는 군대와 상관없는 것도 있어. 그런 것들은 기록으로도 남아 있지 않지. 앞으로 어떻게 할지 결정할 때 이 점을 명심하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말을 통해 알게 되는 직관적인 깨달음 같은 것
그는 수업준비를 하거나 과제를 채점하거나 논문을 읽는 시간을 제외하면, 항상 연구를 하고 글을 썼다.
그렇게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살다 보면 그런 일도 있는 법이죠. 세월이 흐르면 다 잘 풀릴 겁니다.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니에요.
사랑이란 무언가 되어가는 행위, 순간순간 하루하루 의지와 지성과 마음으로 창조되고 수정되는 상태였다.
죄책감이라는 편안한 사치품을 자신에게 허락할 수는 없었다.
스토너는 그 어느 때보다 열심히 일했다. 나이가 많아서 이상해 보이는 학생들은 열렬하고 진지했으며, 시시한 것들을 경멸했다. 유행이나 관습에 무지한 그들이 공부를 대하는 태도는 스토너가 예전에 꿈꾸던 학생의 모습 그대로였다. 공부를 특정한 목적을 이루기 위한 구체적인 수단이 아니라 인생 그 자체로 생각하는 모습.
스토너는 지금 이 시절이 지나고 나면 결코 이렇게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는 때가 오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녹초가 될 때까지 즐겁게 온몸을 바쳐 일하면서 이 시절이 결코 끝나지 않기를 바랐다. 과거나 미래는 거의 생각하지 않았다. 실망이나 기쁨도 마참가지였다. 그는 자신이 끌어낼 수 있는 모든 에너지를 지금 이 순간에 쏟으면서, 이제는 학자로서 자신이 해온 일을 통해 알려지기를 바랐다.
그는 자신이 실패에 대해 생각했던 것을 어렴풋이 떠올렸다. 그런 것이 무슨 문제가 된다고. 이제는 그런 생각이 하잘것없이 보였다. 그의 인생과 비교하면 가치 없는 생각이었다.
독한 삶이든, 화려한 삶이든, 스토너처럼 인내하는 수수한 삶이든 마지막에 남는 질문은 똑같다는 것. 그는 죽음을 앞둔 병상에서 같은 질문을 몇 번이나 되뇐다. "넌 무엇을 기대했나?"
나는 그가 진짜 영웅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소설을 읽은 많은 사람들이 스토너의 삶을 슬프고 불행한 것으로 봅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의 삶은 아주 훌륭한 것이었습니다. 그가 대부분의 사람들보다 나은 삶을 살았던 것은 분명합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그 일에 어느 정도 애정을 갖고 있었고, 그 일에 의미가 있다는 생각도 했으니까요.
삶이 우리에게 제공하는 '기대'와 '실망'의 총합은 결국 0이다.
눈물이 나도록 기쁜 날들과 웃음이 나도록 슬픈 날들을 통과하면서 우리는 모두 저 속절없는 0을 향해 나아갈 것이다. 스토너처럼, 삶이라는 서술어의 보편 주어 같은 이 사람 윌리엄 스토너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