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 관계의 안목(신기율)
자신을 불행하게 만드는 도움은 베풀지 말아야 한다. 모든 공감은 나에게 공감하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나 자신의 불행과 아픔에 공감하며 나를 함부로 방치하지 않는 것이 타인을 돕는 것보다 먼저여야 한다.
친구의 기쁨을 내 일처럼 기뻐한다는 것은 친구라면 가져야 할 당연한 마음이 아니라 비교 본능을 극복하는 놀라운 일이다.
울고 싶을 때 울고, 웃고 싶을 때 웃으며 두려울 때 두렵다고 말할 수 있는 것, 때로는 아이처럼, 때로는 예술가처럼 내 마음을 풍성하게 드러낼 수 있을 때 행복해질 수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그리고 이제는 어리숙했던 과거의 나를 그만 용서해주고 싶다. 어쩔 수 없었던 그때의 상황을, 그때의 행동을, 모자랐지만 최선을 다했던 나를 꼭 안아주며 말해주고 싶다.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 네 잘못이 아니었어....'
우리는 각자 자신만의 방식으로 삶의 안정을 찾는다.
부적절한 감정은 언젠가는 말이 되고 행동이 되어 의외의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다.
마음의 맷집을 키운다는 건 모욕적인 상대의 말을 무시할 수 있는 마음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필요한 말은 받아들이고 필요하지 않은 말은 흘릴 수 있는 유연함을 길러야 한다.
'내 마음을 의심한다는 것'은 내가 느끼는 불쾌한 감정에 대해 자기검열의 시간을 갖는 것이다.
카를 구스타프 융 <분석심리학 논고>에는 이런 글이 쓰여 있다.
"로마인은 노예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노예들의 심리가 이탈리아에 흘러넘쳤고 로마인은 심적인 노예가 돼버렸다. 로마인은 언제나 노예들이 풍기는 분위기 속에 있었기에 무의식적으로 그들의 정신세계에 젖어 들었다."
상대에게 의문을 품는다는 것은 저 사람이 왜 저렇게 무례한 사람이 됐는지, 내가 모르는 어떤 사연이 있는지 궁금하게 생각하는 것을 말한다.
의심과 의문을 통해 내 마음을 이해하고 상대를 공감하려 노력하는 태도가 바로 유연함이고 유연함이 곧 마음의 맷집이다.
마음이 유연하게 된다는 것은 비유하면 물 같은 액체 상태가 되는 것을 말한다. 마음이 액체가 되면 마음속에서 딱딱하게 굳어진 부정의 감정 역시 부드러운 물처럼 변하게 된다.
마음을 액체로 만들려면 연금술사의 주문처럼 마음의 변화를 끌어낼 수 있는 자신만의 키워드가 필요하다. 내가 주로 사용하는 키워드는 '부질없다'이다. 부질없는 무상함으로 분노를 의미 없게 만드는 것이다. 무상은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고 모든 존재는 변한다는 뜻이다. 지금 내 마음도 상대의 모습도 얼마 지나지 않아 변하고 사라질 것이다.
언젠가 나를 모욕하는 상대에게 분노를 느꼈을 때 그의 등 뒤로 끝없이 펼쳐진 파란 하늘을 보며 다툼이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었던 적이 있다. 그가 나를 모욕해도 변하는 것은 없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나는 저 사람의 말에 동요해야 하는가? 상대의 말과 표정에 집중되었던 마음이 상대를 벗어나니, 거대한 바위에 눌린 것처럼 답답하고 아팠던 마음이 고요한 호수에 떠 있는 것처럼 평온해졌다. 평온해진 마음은 상대가 무슨 말을 해도 나는 변함없이 괜찮은 사람이라는 믿음을 흔들리지 않게 해주었다.
그 뒤로 나는 누군가가 나를 모욕해 화나게 하는 일이 생기면, 부질없다는 무상함을 새기며 내 마음을 잔잔한 호수처럼 만든다. 사람마다 마음을 유연하게 만드는 액체의 키워드는 다를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솔로몬이 아버지 다윗왕에게 헌사한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말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모든 일은 신에 의해 미리 쓰여 있다는 뜻의 '마크툽(maktub)'이 그 키워드가 될 수 있다. 그 키워드를 찾아내 마음을 변화시킬 수 있을 때 우리는 우박처럼 쏟아지는 거친 말의 홍수 속에서도 쓰러지지 않고 버틸 수 있는 마음의 맷집을 갖게 될 것이다.
내 잘못된 행동이 원인이 되어 이런 인연을 불러왔다는 마음으로 자신을 성찰해야 한다.
"가는 곳마다 비단길을 밟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모든 길을 비단으로 덮을 수 없으니 내가 비단신을 신으면 된다."
생각과 말과 행위로 죄를 많이 지었으며
자주 의무를 소홀히 하였나이다.
제 탓이요, 제 탓이요, 저의 큰 탓이옵니다.
아무리 좋은 관계라 해도 망가지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생각 없이 던진 말 한마디, 찡그린 표정 하나가 발단되어 순식간에 최악의 관계로 변할 수도 있다.
관계는 자주 그 모습을 바꾼다.
소중하고 귀할수록, 중요하고 가치 있는 사람일수록 함부로 상대를 대하지 않아야 한다.
있는 그대로 상대를 이해하고 공감해주는 것이 가장 행복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평범한 진리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상대에게서 해답을 찾으려 하지 말고 내 체질 안에서 상대를 포용할 수 있는 해결점을 찾아야 한다.
의식적으로 시야를 넓히는 노력을 해야 한다. 상대가 하는 일을 내 일처럼 여기면서도 나와는 다른 그를 적당히 놓아줄 수 있는 정서적 거리를 두도록 애써야 한다. 거리가 있어야 시야도 생긴다. 그는 나의 기쁨이지만 내가 될 수는 없다.
적당한 정서적 거리를 두는 연습을 꾸준히 해야 한다. "나는 그가 아니다", "그는 내가 아니다"를 관계의 키워드로 삼고 매일 같이 반복해서 마음에 새겨야 한다. 서로가 침범하지 않는 개인의 영역을 만들고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상대를 생각하지 않는 나만의 시간을 가지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순간적으로 강하게 일어나는 감정에 매몰되지 않고 내 감정이 상대에게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 생각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도 중요하다.
동전의 양면처럼 상대의 부족한 점이 있기에 내가 만족하고 있는 좋은 점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 것이다. 화가 나거나, 싫은 감정이 들 때마다 필사적으로 우리의 관계에는 확실한 양면성이 있음을 상기해야 한다.
관계에서 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내가 골라야 할 음식의 메뉴판처럼 다가온다. 어떤 감정을 발산하기 전, 마음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감정의 선택지 앞에 서게 된다.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같은 상황 앞에서 화를 낼 수도 있고, 담담할 수도 있고, 두려워할 수도 있다. 다만 너무 순식간에 결정되는 일이라 내가 선택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할 뿐이다.
양면성을 떠올리라는 건 이때 내가 관계를 파국으로 몰고 가지 않을 긍정의 감정을 선택하라는 말이다. 서로 행복했을 때 갈구했던 그의 장점들, 그가 보고 싶을 때 느꼈던 감정들을 망설이지 말고 선택하라는 것이다.
마음에도 알레르기가 있다.
많은 사람을 차별 없이 만나기 위해 나를 보호하는 작은 기준은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