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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사] 취향의 기쁨(권예슬)

아름다운 존재 2023. 1. 15. 08:49

다양한 콘텐츠들을 많이 접함으로써, 새로운 것들을 많이 경험해봄으로써, 또 그만큼 아주 많이 쉼으로써 우리는 좋은 재료들을 비축해두어야 한다. 그래야만 좋은 음식을 만들 수 있다. 당연한 이야기 같아 보여도 꽤 많은 사람들이 이 당연한 걸 놓치고 살아간다. 나 또한 그랬으니까.

늘 좋은 결과를 만들고 싶은 나는, 좋은 재료들을 비축해두기 위해 자주 쉬어주는 삶을 살기로 했다. 햇볕도 적당히 쬐어주고 신선한 물과 양분도 듬뿍 공급해주면서, 내 안의 재료들이 말라비틀어지지 않도록. 그래야 맛있는 음식을 지치지 않고 오래도록 만들 수 있을 테니까. 신선한 재료도 내 안에서 나오고 요리를 하는 것도 결국 나 자신일 테니까 말이다.

 

돌아보니, 이런 경지에 이르게 된 데는 스스로를 재촉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다. 초반에 숱한 실패를 하면서도 크게 짜증을 낸 적이 없다. 면이 덜 익었다면 다음에는 시간을 제대로 맞춰보자는 다짐을, 간은 맞는데 감칠맛이 부족하다면 감칠맛을 더하는 재료를 찾아보자는 마음으로 여유롭게 생각하며 조금씩 개선점을 찾아 나갔다.

파스트 하나에 이렇게 진지할 일인가 싶겠지만 좋아하는 일을 오래 하고 싶다면 잘하는 것보다 '오래'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래 하기로 마음먹었다면 나와의 합을 꾸준히, 천천히 맞춰 나가보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시간들이 켜켜이 쌓이다 보면 좋아하던 일이 어느새 잘하는 일로 느껴지는 충만한 순간이 찾아올지도 모른다. 그저 흥미에 불과했던 파스타가 내게 아주 값진 특기가 된 것처럼 말이다.

 

정희재 작가의 책 '다시 소중한 것들이 말을 건다' 속 문장처럼 "완벽한 필기, 완벽한 삶, 완벽한 자신이라는 것은 허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몸소 깨달았다.

문장에 잘못 찍힌 글자가 있어도 문장의 맥락을 이해하는 데에는 큰 지장이 없다. 때로는 잠깐의 덜컹거림이 글을 더 집중해서 읽게 만드는 요소가 될지도 모른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살면서 많은 실수를 하지만 그렇다고 인생이 쉽게 망가지지는 않는다. 딛고 나아가면 오히려 더 빛날 수 있다.

그러니 조금은 더 나에게 너그러운 사람이 되어야지. 그래야 멈추지 않고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있을테니까. 어리숙한 단어와 문장들을 쌓고 또 쌓다 보면 언젠가는 마음에 쏙 드는 나만의 문장을 완성시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마음으로, 조금 틀려도 괜찮아.

 

내게 없는 것에 집중하기보다 나의 생각에,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방향에 더 집중해보면 어떨까. 세상에 초라한 취향은 없다. 내가 가진 취향을 초라하게 바라보는 '나' 자신만 있을 뿐이다.

 

미뤄두기만 했던 작은 꿈들이 있다면, 누구라도 지금 시작해보면 좋겠다. 머릿속으로 하는 것과 실제로 해 보는 것은 경험해보지 않으면 모를 정도로 확연한 차이가 있기에. 게다가 그 성취와 만족감은 무엇으로도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라, 꼭 경험해봤으면 한다.

말만 하는, 생각만 하는 사람이 아닌 실제로 행동으로 옮기는 '하는 사람'으로 오래도록 남고 싶다. 더 나아가 '아직도 하고 있는 사람'으로. 그렇게 나만의 길을 꾸준히 걸어가다 어느 순간 뒤돌아봤을 때 스스로를 가만히 쓰다듬어주며 '나 정말 대단하네!'라고 말할 수 있는 먼 훗날의 나를 떠올리며, 오늘도 시작해 보련다.

 

아빠는 행복하다는 말을 자주 하신다. 밥을 맛있게 먹은 후에나 커피를 따뜻하게 내려 마실 때, 언니와 내가 고향을 다녀간 후에도 "너네가 다녀가서 너무 행복했다."는 말을 서슴없이 해주신다. 사소한 것에도 행복을 느끼고 자주 표현하는 아빠와 낙천적인 엄마 덕분에 나는 마음이 부자인 사람으로 자랐다. 내게 주어진 작은 행복들을 알알이 만끽하고 간직하는 법을 배웠다.

허용된 행복은 분명 존재한다는 것을 잊지 않으려고 한다. 예기치 못한 일들은 언제나 느닷없이 찾아올 텐데, 그럴 때마다 무기력하게 내 행복을 빼앗기고 싶지 않다. 허용된 울타리 안에서 스스로 행복을 만들어 나가는 사람이 되겠다. 소중한 내 행복은 일상 속에서도 언제든 만들어 나갈 수 있는 거니까.

마음이 가난해지지 않게 오늘도 건강한 씨앗을 일상에 심는다. 튼튼한 뿌리를 내려 어떤 풍파에도 쉬이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되기를. 행복을 나누는 속이 단단한 사람이 꼭 되기를. 엄마가 해주신 말은 성인이 된 지금에게도 큰 힘이 된다 그래, 마음이 부자라서 괜찮아.

 

좋아하는 내 모습이 점점 더 많아지는 삶을 살고 싶다. 지금 이 인생을 다시 한번 완전히 똑같이 살아도 좋다는 마음으로 살라고 했던 니체의 말처럼 다시 태어나도 동일한 삶을 사는 나 자신이 미워 보이지 않게, 지금 내 삶을 잘 일구어 나가고 싶은 마음이다.

책 읽는 내 모습이 좋아서 꾸준히 책을 가까이했더니 이제는 글 쓰는 내 모습이 좋아진다. 카페에 앉아 글감을 고민하고 문장을 나열하고 단어를 고르는 내 모습이 정말 좋다. 이렇게 좋아지기 시작한 모습들은 웬만하면 쉽게 질리지 않았으니, 나는 나와 잘 지내는 방법을 어느 정도 체득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새로운 자극에서 발견하게 되는 또 다른 취향. 그런 날의 기록은 더욱 다채로워진다. 끊임없이 발견해 나갈 삶의 여정이 기대되는 순간이다.

결국 발견을 위해 기록하는 삶인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모든 순간들을 충분히 느끼기 위해. 그 순간들이 얼마나 내게 의미가 있었는지 오래 두고 들여다보기 위해. 참신한 글감을 발견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나는 오늘도 내 일상을 기록으로 남긴다. 글감과 취향은 인위적으로 만드는 것보다 소소한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발견해 나가는 것이 더욱 진심에 가깝다고 믿기에.

 

별거 아닌 단어들을 좋아하고 반복되는 일상의 한 장면에 책갈피를 꽂아두고 불편한 음식 대신 편안한 음식을 취향 따라 즐기는 일. 기쁨이 되는 소소한 순간들을 기록으로 쌓아 보니 꽤나 괜찮은 취향을 가진 사람 같다.

취향을 찾아가는 지도가 있다면 그 지도의 끝에는 진짜 '나'가 기다리고 있는 것 아닐까? 우리 모두 진정한 '나'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머나먼 여정을 떠나온 것일지도. 그러니 매일 설레는 마음으로 나만의 취향 찾기를 멈추지 않았으면 좋겠다. 모든 여행이 그렇듯 목적지에 도착해야만 여행으로써 의미가 있는 건 아니니까. 때론 길도 헤매고 생각지 못한 경험도 하면서 차곡차곡 나만의 취향 여행기를 완성해 보는 거다. 완성이라는 표현을 썼지만 아마 완벽한 완성은 쉽지 않을 듯하다. 하지만 그게 바로 우리를 멈추지 않고 떠나게 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