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 마흔의 서재(장석주)
아직 이루지 못한 것이 남아 있다는 것, 아직 삶에 채워 넣어야 할 것이 존재한다는 건 스트레스가 아니라 축복이다. 정리해고를 당했다고 절망할 필요도 없고, 아직 성공하지 못했다고 해서 우울해할 이유도 없다. 성공하는 인생은 좋은 직업이나 돈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 세상에는 부자도 많지만, 가난해도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도 많다. 중요한 건 살아야 할 이유와 보람이다. 자신이 살아야 할 이유와 보람을 찾는 일에 노력하는 사람은 늙지 않는다. 늙을 시간이 없다.
-가와기타 요시노리, <마흔 살의 철학>-
꿈이 있다면, 마흔은 결코 늦은 나이가 아니다. 파울볼이라고 실망하지 마라. 실망해서 확신 없이 휘두른 배트는 허공을 가르고 당신은 삼진으로 아웃된다. 아웃되었다고 경기가 끝나는 것이 아니다. 불행과 불운이 당신의 인생을 휩쓸고 갔다 할지라도 낙담하지 마라. 아직도 살아갈 날들은 많고, 인생의 기회들은 여전히 남아 있다. 항상 최선을 다하라. 한번 삼진 아웃되었다고 해서 야구는 끝나지 않는다. 야구는 계속되니, 다음 타석을 기다리면 되는 것이다.
"사람들이 나이보다 더 빨리 늙고 삶의 생기를 잃어가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짊어진 짐이 너무 무겁기 때문이다."(<인생의 절반쯤 왔을 때 깨닫게 되는 것들>) 자, 어떻게 할 것인가? 과감하게 인생의 짐들을 정리해야 한다. 불필요한 짐들은 덜어내고 단호하게 줄여야 한다.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일이든 재물이든 너무 많이 짊어지면 목적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지쳐버리게 마련이다. 반대로 너무 적게 들고 가면 목적지까지 가는 동안 외톨이가 되거나 위험에 제대로 대처할 수 없으며 고생을 해야 한다."(<인생의 절반쯤 왔을 때 깨닫게 되는 것들>) 무엇이 더 중요하고 무엇이 덜 중요한지 결정해야 한다.
그것 없이는 도무지 살 수 없는 것들. 그게 남겨야 할 짐들이다. 짐을 가볍게 하라. 당신의 인생에 꼭 필요한 것들만 남기고 나머지는 과감하게 버려라. "짐을 가볍게 한다는 것은 제 손으로 삶을 정돈한다는 것, 외적 혼란으로부터 탈출한다는 것, 삶의 주된 목적과 무관한 많은 소유물을 포기하는 것"(<인생의 절반쯤 왔을 때 깨닫게 되는 것들>)이다.
벤저민 프랭클린이 성공하는 인생을 위해 제안하는 13가지의 규범을 소개한다. 프랭클린은 이것을 '도덕적 완전함에 이르기 위한 담대하고 험난한 계획'이라고 했다.
*절제: 배부르도록 먹지 마라. 취하도록 마시지 마라.
*침묵: 자신이나 타인에게 유익한 말만 하라. 쓸데없는 대화를 피하라.
*규율: 모든 물건은 제자리에 두어라. 모든 일은 제때에 하라.
*결단: 해야 할 일은 실천할 것을 결심하고 결심한 일은 반드시 실행하라.
*검약: 자신이나 남에게 이로운 일에만 돈을 써라. 쓸데없이 낭비하지 마라.
*근면: 시간을 낭비하지 마라. 언제나 유익한 일을 하라. 불필요한 행동을 삼가라.
*성실: 타인을 속여 상처를 주지 마라. 결백하고 공정하게 생각하라. 말할 때도 그렇게 하라.
*정의: 타인을 모욕하거나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음으로써 타인의 이익을 해치지 마라.
*중용: 극단을 피하고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경우에도 화를 자제하라.
*청결: 신체, 의복, 주택을 불결하게 하지 마라.
*평온: 사소한 일이나 피할 수 없는 사고에 흥분하지 마라.
*순결: 성관계는 건강과 자손을 위해서만 하라. 그로 인해 심신이 둔해지거나 약해지지 않도록 하고 자신이나 타인의 평화 혹은 명성에 해가 되지 않도록 하라.
*겸양: 예수와 소크라테스를 본받으라.
-벤저민 프랭클린(윌리엄 파워스, <속도에서 깊이로>에서 재인용)-
자기가 속한 곳에서place,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하며love, 삶의 목적을 위해purpose, 자기 일을 하는 것work.
-리처드 J. 라이더, 데이비드 A. 샤피로, <인생의 절반쯤 왔을 때 깨닫게 되는 것들>-
공부하고 책 읽는 것을 복이라 말하고, 남을 도울 힘이 있는 것을 복이라 한다. 학문하여 저술이 있는 것을 복이라 하고, 시비 소리가 귀에 들리는 일이 없는 것을 복이라 하며, 아는 것이 많고 바르면서도 진실한 친구가 있는 것을 복이라 한다.
-장조·주석수, <내가 사랑하는 삶>-
지켜지지 않은 것, 수정해야 하는 것에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과감하게 인생의 초안을 수정할 용기를 가져야 한다.
마음 안에 새 꿈을 써 붙여야 한다.
고독은 개인화 과정에서 누구나 불가피하게 겪는 경험이라는 걸 받아들이자. 사람은 고독 속에서 자기를 깊이 돌아보고 마음의 평화를 얻는다. 고독은 불완전한 것이며 부적응의 결과이지만, 그것은 완전과 적응으로 가는 도약대라는 걸 이해해야 한다.
인간이 세상에 적응하는 것이 역설적이게도 환경에 완벽하게 순응하지 못한 것, 심리적인 평정 상태에 있지 못한 것의 결과라는 사실이다. 완전함이라는 황홀경의 감각은 순간적일 수밖에 없는데, 그런 상태는 우리 인간의 특징인 '부적응을 통한 적응'과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우둔한 행복은 창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상상력이라는 갈망이나 전체를 향한 소망과 추구는 뭔가 빠져있다는 깨달음, 불완전함의 인식에서 비롯된다.
-앤서니 스토, <고독의 위로>-
우둔한 행복보다는 고독이라는 부적응의 고통이 사람을 더 성장하게 만든다는 것! 이것이 고독을 오래 탐구한 정신과 의사의 통찰이다. 고독에 의연하게 대처한다는 것은 혼자 있는 법을 배우는 것이고 곧 어른이 된다는 것을 뜻한다. 고독을 피하지 마라. 고독은 우리 생의 불가피한 한 부분이며 일생의 의무와 같은 것. "고독을 회피하는 것은 나 자신을 회피하는 것"(<고독의 심리학>). 차라리 고독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즐기는 태도를 배우라. 고독을 즐기고 그것을 긍정적 에너지로 바꾸려면 먼저 있는 그대로의 고독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자신의 삶에 책임을 질 것, 타인에게 의존하지 말 것, 자신을 위해 시간을 낼 것, 철저하게 자기 자신이 될 것 등이 필요하다.
고독은 질병이 아니다. 고독은 진정한 나를 발견할 수 있는 계기적 시간을 선물로 마련한다. 그러니 정서적으로 성숙한 사람이 되어 고독을 끌어안으라. 고독을 자발적으로 선택하는 순간, 우리는 고독 안에서 "자기 정체성을 더욱 확고하게 만들며 삶을 풍요롭게 하는" 길을 찾고, 그 결과로 "충만함과 조화, 행복"(<고독의 심리학>)을 손에 쥘 수가 있다.
창의성이란 아무 때나 번뜩이지는 않는다. 그것의 전제 조건은 공부의 양이다. 양적 조건의 충족 다음에야 질적 전환이 일어난다. 다시 말해 사고의 번뜩임, 즉 창의적인 생각들은 충분한 학습량이 전제되어야만 비로소 일어난다는 것이다. 창의적인 시를 쓰는 시인들은 끊임없이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어야만 한다. 그렇게 "충분한 학습량이 있어야 번뜩임이 일어난다."(<창조성의 비밀>)
융통성, 판단력, 비전이 탁월한 학습 주도형 인간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첫 번째, 지식의 수준을 높여야 합니다. 베이스캠프가 낮으면 산 정상에 도달하는 게 더 힘들죠. 집요한 학습으로 지식의 총량이 많아지면, 즉 판단력의 기준 바탕이 높아지면 삶의 예측은 더 정확해집니다.
두 번째, 질문을 품어서 성장시켜야 합니다. 질문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니죠. 예부터 선사들이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도를 깨치기 위해서는 의심 덩어리가 커야 하고, 강렬한 내적 에너지가 있어야 한다." 의심 덩어리를 함부로 노출한다든지 간단히 해결했을 때는 공부, 학습의 동력을 잃어버립니다. 그런 질문은 만들기도 어려우며 한번 얻은 질문은 적어도 5년, 10년 이상 내적으로 질문의 강도를 높여서 학습의 추진력으로 삼아야 합니다. 질문의 힘으로 대상을 보기 시작하면 결국 그 질문이 스스로 답을 찾죠.
세 번째, 학문에 미쳐야 합니다. 어느 수준에 도달할 때까지는 미친 듯이 몰아붙여야 하는 겁니다. 보통은 5년, 좀 어려운 분야는 10년 단위로 계획하여 스스로 각 분야를 조망할 만큼 학습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술이 되었든 철학이 되었든 자연과학이 되었든 어떤 분야를 5년, 10년씩 완결하여 50년 공부할 것 같으면 적어도 다섯 가지 이상의 다른 분야를 섭렵할 수 있습니다.
네 번째가 중요합니다. 학습의 균형을 잡아야 합니다. 자연과학 대 인문과학의 비율을 7대 3 정도로 만들어야 합니다. 자연과학은 수학을 바탕으로 하는 학문입니다. 수학이라는 것은 숫자를 헤아리는 데서 출발하죠. 우리는 수 개념을 본능적으로 파악합니다. 뇌의 진화 덕분이죠. 자연과학은 40대가 되기 전에 공부해야 합니다. 나이가 들어서는 시작할 수 없습니다. 철학이나 문학같은 분야는 나이가 들어서도 등단하는 사람들이 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미분, 적분, 일반상대성이론을 6, 70 먹은 노인이 취미로 공부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을 겁니다.
다섯 번째, 목표량이 중요합니다. 임계치를 넘어서면 양은 질로 바뀝니다. 그 임계치를 책으로 치면 3천 권 정도 될 것입니다. 자연과학 대 인문과학, 7대 3으로 해서요. 50대가 될 때까지 3천 권 정도 집요하게 읽다보면 정보가 서로 링크되면서 정보들 사이에 변화가 일어납니다. 양이 질로 바뀌는 거죠. 그리고 좋은 정보와 좋은 책을 구별할 수 있을 때부터 학습에 가속이 붙습니다.
-박문호, <뇌, 생각의 출현>-
내 주변에는 술을 무척 좋아하면서 만년 또한 행복하게 보냈던 분들이 많다. 나 역시 술자리의 유쾌함을 잘 안다. 그러나 나의 경우에는 저녁 술자리에서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보다 나만의 시간을 만들어 내가 흥미를 느끼고 관심 있는 분야에 빠져드는 것이 더 즐겁다. 오늘 마시는 한 잔 술은 순간의 즐거움으로 그치지만, 오늘 저녁의 개인적인 투자는 훗날 지적 자극이 넘쳐나는 여생의 밑거름이 된다. 준비하는 기간이 늘어날수록 기쁨의 크기가 커지므로 하루라도 빨리 시작하는 것이 좋다. 매일 조금이라도 좋으니 관심 분야에 대한 공부를 지속하기 바란다. 이런 작은 노력에서 여생의 꽃이 활짝 피어난다. 이 세상에 투자 없이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다. 지적 활동으로 충만한 여생을 누리고자 한다면 그만큼 준비가 필요하다.
-와타나베 쇼이치, <지적으로 나이 드는 법>-
왜 '지적 생활'인가? 삶이 즐겁고 영혼이 풍성해지기 때문이다. 연예인 사생활 이야기로 채워진 텔레비전 프로그램이나 들여다보고 남의 험담이나 하면서 사는 게 행복할까? 그건 영혼이 얇고 천박한 삶이다. 그 삶은 욕망에 매인 삶이고, 정신적 삶이 결락되어 있다. 정신적인 것이 빠질 때 영혼이 메말라 생활은 삭막해질 수밖에 없다. 정신적 삶을 즐기려면 물질적 필요를 넘어서서 지적 욕구를 채우려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 어떻게? "지적 생활은 책을 사들이는 삶이다"라는 간명한 언술 속에 그 대답이 들어 있다.
지적 생활의 바탕은 지적인 욕구이고, 그것에 의해 만들어지는 지력이다. 꾸준히 책을 읽으면 뇌가 '지적 모드'로 바뀌게 되어 있다. 끊임없이 책을 읽어야만 사유의 자극을 받을 수 있으며, 새로운 지적 경지에 가 닿을 수 있다. 더 이상 책을 읽지 않는다면, 그 지점에서 사유의 세계는 성장을 멈추고 만다. 서재는 "최적의 지적 공가"이다. 그러므로 꼭 정독해야만 할 책이라면 도서관이나 남에게서 빌려 읽지 말고 반드시 사라. 책들을 한 권 한 권 사모아 자신만의 서재를 만들어라.
책을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 책은 곧 나를 말해주는 것이다. 즉, 나만의 고전을 만드는 것은 곧 나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 나만의 고전이 없다면 다양한 분야의 책을 아무리 많이 읽는다고 해도 진정한 독서가라고 할 수 없다. 2~3년 전에 재미있게 읽었던 책들을 다시 한 번 읽어보자. 그리고 그중에서 여전히 재미있다고 생각되는 몇 권을 골라보자. 그렇게 선택한 책을 반복해서 읽어보자. 그러다보면 어느새 진정한 독서가로 추앙받게 될 것이며, 곁에는 나만의 귀한 고전이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와타나베 쇼이치, <지적 생활의 발견>-
무엇보다도 나는 즐겁기 때문에 책을 읽는다. 나는 읽어야 할 새로운 책 앞에서 흥분되어 가슴이 뛴다. 책 읽기는 나날이 내 안에서 이루어지는 '혁명'이기 때문이다.
D.H. 로렌스의 <제대로 된 혁명>이란 시를 보자. "혁명을 하려면 웃고 즐기며 하라 / 소름끼치도록 심각하게는 하지 마라 / 너무 진지하게도 하지 마라 / 그저 재미로 하라." 날마다 웃고 즐기며 책 읽기에 빠져든다. 책 읽기에서 미처 예기치 못한 재미와 즐거움을 찾아낸다. 책 읽기는 내게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청정무구한 취향이며 지고한 쾌락이다.
읽지 않은 책들은 그 끝을 알 수 없는 대양으로 출렁인다. 특히 고전들을 젊은 시절에 읽지 않은 게 뼈아프도록 후회가 된다. 왜 그토록 시간이 많은 젊은 날들에 체계적인 계획을 세워 고전들을 읽지 못하였는가! 오늘의 내 한계는 그때의 독서 결핍에서 비롯한다. 십오륙 년 전부터 내 시간을 묶고 있던 생업에서 풀려나온 뒤로 내 책 읽기는 전에 없는 활력으로 풍요로워졌다. 다행이다. 더구나 인생의 후반기로 넘어와 책 읽기에 더 몰입할 수 있는 처지에 놓인 나 자신이 스스로 생각하기에 기특하다. 특히 지난 십 년 동안에는 책에 몰입해서 수천 권의 책들을 읽고 여러 권의 책들을 썼다.
많은 경우 사람들이 길을 잃는 것은 실수 때문이다. 모든 실수가 우연히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그 실수 뒤에는 무의식의 전달자가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때때로 길을 잃는 것을 두려워 마라. 오히려 길을 잃은 뒤 자신이 처한 불확실성을 참아내는 법, 의심에서 만족을 만들어내는 법, 역경을 견디고 이겨내는 법을 배우는 게 중요하다. 혹시 잃어버린 길 위에서 예기치 않게 새로운 길을 만날지도 모른다. 그것은 길 잃기가 주는 선물이고 보상이다. 그럴 때 인생은 훨씬 더 생기차고 의미로 가득 차게 될 것이다.
우리는 지도 없이 낯선 곳에 서 있다. 이런 불확실성을 참아내는 것이 길 잃기의 핵심이다. '여기' 있는 것 그리고 '여기'라고 하는 이 장소에 대해 걱정하지 않는 것, 머릿속 지도에 대한 의심을 억지로 억누르지 말고 이 의심과 함께 사는 것, 아니면 한 걸음 더 나아가 의심에서 만족을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카트린 파시히, 알렉스 숄츠,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 여행의 기술>-
처음부터 길이 거기에 있었던 것은 아니다. 짐승이 다니고 사람이 다닌 뒤에야 길이 생겨난다. 아무도 가지 않으면 길은 생기지 않는다. 반면에 움직이는 것들이 움직이는 한 길은 어디에든 계속 생겨난다. 어쨌든 혼란은 극복될 것이고, 우리가 원하는 길을 찾게 될 것이다.
하늘이 내게 중대한 임무를 내려주시기 전에 먼저 반드시 내 마음과 뜻을 괴롭게 하고, 내 뼈와 근육을 힘들게 하며, 내 몸과 살을 주리게 하고, 내 몸을 궁핍하게 하여 하고자 하는 일을 어렵고 힘들게 만들어서 내 마음과 본성을 단련시켜 내가 하지 못했던 역량들을 더욱 증진시켜준다.
-<<맹자>>, <고자하>-
먹고 마시는 것은 사람살이의 근본이다. 그래서 철학자는 "먹는 인간은 가장 정확한 뜻에서 인간에 속한다"라고 했을 것이다. 음식을 취하는 것은 생명을 유지하는 기본 바탕이고 이것을 구하는 노동은 숭고하다.
먹고 마시는 일에는 절도가 따라야 한다. 음식을 지나치게 탐하는 행위는 천박하다. 공자는 <논어>에서 "군자는 음식을 배부르게 먹으려 하면 안 되고, 거처를 편안하게 하려고 하면 안 되며, 일을 민첩하게 하면서도 말은 신중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먹고 마시는 일에서 넘치도록 향락을 추구하는 태도는 도리가 아니다. 갖가지 음식들을 두루 탐하려 하지 말고 소박하게 먹고 깊이 있게 즐겨야 한다. 옛사람들은 음식이 양생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지만 과도하게 맛을 따지고 집착하는 것은 화를 가져온다고 믿었다. 제자백가 중의 한 사람인 묵자 역시 먹고 마시는 일에서 검소하고 소박한 태도를 가질 것을 권유했다.
살아 있음을 기뻐하라
설레는 것을 갈망하라
삶을 받아들이고 껴안고 화해하라
책이 쌓여 남은 인생의 길이 된다
즐거운 여정을 위해
매일 아침 서재 앞에 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