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 작가의 루틴: 소설 쓰는 하루(김중혁, 박솔뫼, 범유진, 조예은, 조해진, 천선란, 최진영)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어요. 각자 다른 방식으로 살고 있죠. 누가 옳고 그른 건 없어요. 누구의 루틴이 내게도 통할 거라는 생각은 빨리 버리는 게 좋아요. 그냥 각자 자신의 방식대로 사는 거죠.
사람들은 당신한테 쥐뿔만큼도 관심이 없어요. 관심도 없는 주제에 쓸데없는 생각 좀 그만해라, 왜 그렇게 살고 있냐, 운동 좀 해라, 살 좀 빼야 하지 않겠냐, 제발 목표를 갖고 살아라...... 그런 소리를 하는 겁니다. 당신이 왜 운동을 할 수 없는지, 어릴 때의 트라우마가 뭐였는지, 남들은 괜찮다는데 나만 이상하게 예민한 상태가 되는 이유가 뭔지, 갑자기 세상이 무서워질 때 얼마나 삶이 끔찍한지, 쥐뿔도 모르면서 그런 소리를 하는 겁니다. 그냥 내키는 대로 사세요. 좋아하는 걸 더 좋아하고, 하기 싫은 걸 하지 않으면서 살아 보세요. 하루하루의 루틴은 와장창 깨지겠지만, 먼 훗날 당신 인생 전체의 그래프를 그렸을 때는, 거기에 분명 어떤 규칙이 보일 겁니다. 그게 당신이에요.
목적이 무엇이든, 루틴을 짜고자 정한 이유가 자신의 주체적인 판단에 의한 것인지 되돌아볼 일이다. 그것이 과연 건강한 루틴인지를. 일상을 '깎아 내는' 것이 아닌, 일상을 '다듬는' 루틴이기를 바라는 이유도 그것이다. 일상을 깎아 내다 보면 결국 자기 자신도 깎여 나간다.
내 루틴은 아마 루틴이라는 말이 의미 없을 정도로 들쑥날쑥하겠지만 그게 바로 동력이자 매력이 될 것이다. 매일 다른 모습으로 일렁이던 파도와 같이.
말이란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지만 어떤 말은 마음을 만들기도 한다.
삶에는 파고와 리듬이 있고 질량보존의 법칙이 작용한다고 나는 믿는다. 행복한 순간에도 고통스러운 시간은 미래로부터 다가오게 마련이고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고통은 예상하지 못한 행운이나 인연으로 희석된다.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이 있고 마이너스된 분량만큼 플러스된 무언가가 인생을 살찌우기도 한다. 완벽한 상실과 영원한 충만은 없다.
나는 매일 닦아 내야 한다. 나는 내가 치워야 한다.
정적인 내 방과 달리 바깥의 모든 것은 움직이고 있다. 소리 내고 이동하고 변한다. 나타나고 사라진다. 매일 저녁 산책하면서 나는 그것을 보고 듣는다. 세상의 움직임을 느낀다.
책상 앞에 앉아서 일을 할 때는 글을 제대로 쓰거나 쓰지 못하는 상태에만 집중하게 된다. 시야는 좁아지고 생각은 편협해져서, 내가 글을 제대로 쓰지 못하면 마치 큰일이 날 것만 같다. 산책을 하면서 깨닫는다. 방에서 내가 느낀 위기감이나 조급증이 얼마나 터무니없고 우스운 감정이었는지. 세상은 나의 일에 관심이 없다. 내가 글을 쓰지 못한다고 큰일이 날 리가 없다. 내가 글을 쓰지 못하면, 내가 글을 쓰지 못할 뿐이다. 그리고 다시 글을 쓸 수 있다면, 그것은 우선 나에게 다행한 일이다. 글을 쓰는 동안 품었던 착각과 과대망상을 오려 내는 것. 부풀어 오른 부담감의 바람을 빼고 글쓰기를 원래의 자리에 내려놓는 것. 글 쓰는 나와 일상의 나를 분리하는 것. 저녁 산책을 할 때 내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다.
강아지처럼 나는 매일 산책 시간을 기다린다. 걷다 보면 마음이 가벼워진다. 화가 날 때 팔다리를 크게 움직여 성큼성큼 걸으면 그만큼 감정이 줄어드는 것도 같다. 우울할 때 음악을 들으며 느릿느릿 걸으면 그만큼 감정이 옅어지는 것도 같다. 게다가 걷기는 허리 건강에 좋다. 하루 몫의 글을 쓴 뒤 운동화를 신고 밖으로 나서는 그 순간을 나는 매우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