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 여름의 빌라(백수린)
<시간의 궤적>
p.17-19
그 무렵, 나는 서울에 있을 때의 나를 종종 떠올렸다. 그저 외톨이가 되지 않기 위해서 몸을 사리던 나. 회식 자리에서 모두와 잘 지내기 위해 관심도 없는 가십을 주고받고 재미있지도 않은 농담에 크게 웃다가도 심야 버스를 타고 한강 다리를 건널 때면 마음을 박탈당한 사람처럼 공허해지던 나. 하지만 나는 파리에 왔고, 더이상 그렇게 살지 않을 작정이었다. 나는 서울에서 해보지 않은 모든 것을 경험해볼 생각이었고, 더이상은 후회로 인생을 허비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 내 눈에 언니는 주저함이 없고, 용감하고, 언제나 반짝이는 사람처럼 보였다. "나는 용감한 게 아니야. 단지 그런 척하는 거지. 척을 하다보면 그래지기도 하니까." 언니의 마음. 견고하지만 연약하고, 부드럽지만 단호하며. 누구에게도 속박되고 싶지 않지만 그런 자신을 이해해줄 누군가를 갈망하던 언니의 마음속 모순들은 빛과 어둠처럼 일렁이며 언니를 특별하게 만들었고, 나는 그것을 아는 사람이 나뿐이라고 생각했다. 안주를 지향하지만 탈주를 동경하고, 고독을 좋아하지만 타인과의 결합을 원하는 나의 모든 면을 언니가 알고 있듯이. 언니는 다른 주재원들과 달리 딸린 식구가 없었으므로 경제적으로 풍요로웠고 유학생들은 엄두도 내지 못한 고급 술집과 식당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언니와 밤새 술을 마신 후 걷던 밤의 거리들. 오랜 시간이 흐른 후. 우리의 밤을 기억하면 내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습기였다. 세 달 남짓한 여름밤을 제외하면 거의 언제나 곧이라도 빗방울을 떨어뜨릴 것만 같은 대기가 얇고 부드러운 껍질처럼 우리를 감쌌고, 나는 그 안에서 우리가 안전하다고 느꼈다. 골목들은 가로등의 따뜻한 불빛에 덮여 있었고, 도시의 오래된 건물들은 나에게 영원을 떠올리게 했다. 물론, 취해서 목적 없이 걷던 우리를 향해 니하오, 라거나 나 쟤랑 자고 싶어, 라고 외치던 남자들도 간혹 있었다. 우리가 대꾸하지 않으면 프랑스어를 못 알아듣는 줄 알고 굳이 형편없는 발음의 영어로 바꿔 I want to fuck her, 라고 소리지르던 술에 취한 남자들. 그런 남자들은 백인인 경우도 있었지만 유색인종일 때도 많았다. "언니는 무섭지 않아요?" 한번은 언니에게 물은 적이 있었다. 무서워." 그렇지만 언니는 잠시 후 이렇게도 말했다. "저들은 불행한 거야. 불행한 인간들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아름다운 밤을 포기할 수는 없잖아." 나는 그후로 더이상 그들이 두렵지 않았다. 새벽이 되면 파리는 희붐한 빛으로 가득 차올랐다. 나는 언니와 헤어져 집으로 돌아올 때마다, 나를 낯선 곳,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근사한 세계로 데려갈 무언가를 곧 만나게 될 것만 같은 예감에 가슴이 뛰었다.
p.36
지금도 나는 이해할 수 없다. 그 순간 대체 왜 언니에게 그런 말이 하고 싶어졌는지. 이해할 수는 없지만 나는 이다음 장면을 회상할 때면 언제나, 오래전 서로가 서로로 인해 충만했고 아직 우리에게 밤 산책 할 거리가 남아 있던 그 시절에 우리를 향해 외설스러운 말들을 지껄이던 인종차별주의자들이 떠오른다. 그리고 언니의 눈빛도. 행복에는 정해진 양이 있어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 서는 타인을 불행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처럼, 다급히 내가 "그건 나쁜 거 아닐까. 언니는 남의 가정을 망가뜨리고 싶어?" 라고 언니에게 말했을 때의 그 눈빛. 억지로 웃으려고 하지만 끝내 물에 녹아내리는 물감처럼 한없이 희미해지던.
<여름의 빌라>
p.50-51
일본문학 석사까지 마친 내가 학업을 포기하고 독일로 남편을 따라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당신은 무척 안타까워했습니다. "남편이 유학 가면 아내가 학업이나 일을 포기하는 것이 한국에서는 평범한 일이에요." 당신의 집에서 저녁식사를 마치고 응접실에 앉아 차를 마시며 내가 말했을 때 당신은 나의 눈을 똑바로 보며 말했습니다. "주아, 너에게는 평범하지 않은 삶을 살 자유가 있단다." 당신의 말이 내게 던졌던 파문. 고백하자면 나는 그후로 선택의 순간이 올 때마다 주문처럼 당신의 말을 떠올리곤 했어요. 남편의 유학생활을 끝내고 한국에 돌아와 늦게나마 일문학 박사과정을 수료한 것은 그 때문입니다.
p.64-65
"사람들에게는 각자의 자리가 있고, 각자의 역할이 있어. 거기에 만족하고 살면 그곳이 천국이야. 불만족하는 순간 증오가 생기고 폭력이 생기지. 증오와 폭력은 또다른 증오와 폭력을 낳고 말이야. 그게 우리가 지난 반년을 보내고 얻은 교훈이야. 그렇지, 베레나?"
<아직 집에는 가지 않을래요>
p.165
그는 틀림없이 욕망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목숨을 걸어봤겠지? 불현듯 그녀는 자신이 지금껏 누구에게도 떼쓰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일찍 철이 든 척했지만 그녀의 삶은 그저 거대한 체념에 불과했음을.
<흑설탕 캔디>
p.194
그녀가 갈망하던 것은 무엇이었나. 뭔가 특별한 것, 고양시켜주는 것, 그녀를 다른 세계로 데려다줄 그 무언가. 음악 교사와 교환하던 편지들. 악보 사이에 끼워 몰래 주고받던. 밤마다 그녀를 불면으로 이끌었던 것은 윤심덕과 김우진, 슈만과 클라라 같은 연인들의 이야기였다. 그녀는 앞으로 펼쳐질 인생에 놀라운 사건들이 가득할 거라는 사실을 의심치 않았고, 자신에겐 인생을 하나의 특별한 서사로 만들 의무가 있다고 믿었다.
p.201
하지만 어쩌겠는가? 우습게도 느닷없이 아무래도 좋다는 마음이 들었다. 예상치 못했던 일이 주는 즐거움. 계획이 어그러진 순간에만 찾아오는 특별한 기쁨. 다 잃은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으면 어느새 한여름의 유성처럼 떨어져내리던 행복의 찰나들. 그리고 할머니는 일어나서 브뤼니에 씨와 함께 탑 위에 각설탕 하나를 더 쌓았다. 하나를 더. 또 하나를 더. 그러다 탑이 무너져내릴 때까지. 각설탕들이 사방으로 흩어지고, 할머니와 브뤼니에 씨가 손뼉을 치며 웃음을 터뜨릴 때까지.
p.203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은 이런 것뿐이다. 그러니까, 할머니가 나에게 찾아왔던 지난밤 꿈에 대한 일. 꿈속에서, 할머니는 돌아가시기 전의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이 아니라 칠십대의 건강한 모습으로 아름다운 옷을 입은 채 희붐한 빛에 둘러싸여 서 있다. 그 세계에서 아마도 소녀인 나는 오랜만에 보는 할머니가 반가워 한달음에 달려가 품에 안긴다. 그런데 이건 무슨 향일까? 나는 할머니의 품에 안기는 순간 어디선가 풍겨오는 달콤한 향을 맡는다. 하지만 할머니의 모자 속이나 치마 속 어디서도 향의 진원지를 발견하지 못하고 나는 점점 초조해진다. " 할머니, 할머니, 나를 좀 봐." 다급하게 부르는 소리에 할머니가 나를 돌아보고, 나는 할머니가 주먹을 꼭 쥐고 있다는 걸 불현듯 알아챈다. "할머니, 손을 펴봐." 나는 할머니에게 떼를 쓴다. 몇 번이나, 몇 번이나. 내가 울기 시작하면 할머니는 무엇이든 내가 원하는 대로 해줄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확신에 차서. 하지만 꿈속에서 할머니는 부드럽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말한다. "안 돼." 그리고 할머니는 또 이렇게 덧붙이는 것이다. 조금은 고통스러운 것 같지만, 사실은 조금도 고통스러워 보이지 않는 얼굴로. 주먹을 더 꼭 쥔 채. "이건 내 것이란다."
<아주 잠깐 동안에>
p.233
하지만 그는 동시에, 그 누구에게도, 심지어 여주에게도, 사실은 그날 밤, 달빛이 아름답고 모든 것이 그저 좋았던 그 밤, 아주 잠깐 동안, 그러니까 세탁기를 들어올리고 쓰러져 있던 노인을 일으켜세우던 그 짧은 순간에, 그가 그 모든 상황을 귀찮다고 생각했다는 것을 말할 수 없었다. 말할 수 없었으므로 이제는 허리에 어느 정도 나잇살이 생기고, 눈가에도 부드러운 곡선의 주름이 생긴 여주가 여전히 귀엽고 사랑스러운 말투로 "집에까지 찾아오는 것이 이상해서 죄송하다고 하니까 오천원이라도 좋다더니, 또 죄송하다니까 천원이라도 좋다는 거야. 그래서 싫다고 했는데, 그렇게 보내고 나니까 마음이 너무 안 좋은 거 있지? 천원이 뭐라고 난 그랬을까?"라는 유의 말을 그가 옷을 갈아입는 방안까지 따라오며 전하는 그런 밤이면, 그는 그녀를 끌어안아주면서, 우리는 안고 있어도 왜 이렇게 고독한 것일까, 속으로 되뇔 뿐이었다. 그럴 때면 그는 언젠가 그도 여주도 죽어버릴 것이고, 그가 그토록 사랑스러워하는 아이들이 이 세상에 혼자 남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이 들면 어김없이 두려웠지만, 이제는 대체 무엇이 그 두려움을 멈추게 해줄지 알 수 없어 그는 여주를 안은 채 눈을 감았다. 그리고 눈을 감으면 그는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여주가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딸을 향해 "아빠는 오늘 착한 일을 하고 온 거니까"라고 말하던 그날 밤의 비좁은 골목에 다시 서 있었다. 이번에는 늦지 않게 노인에게 되돌아가기 위해서.
<나의 작은 세계에서 벗어나서> 해설, 황예인(문학평론가)
p.269-270
원한다면 누군가와 직접 연결되지 않고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을 것처럼 보이는 세상이다. 우리는 스스로를 만족시키고, 나에게 자신을 선보이는 것만으로도 분주하다. 나로 꽉 들어찬 이 세계에서 우리는 자기 완결적인 삶을 완성해낼 수 있다. 만약 지난 인간관계들을 돌아보며 실패라는 단어를 빈번하게 떠올리는 경우라면 자신만의 안전지대에서 벗어날 이유를 찾기란 더욱 어려운 일일 것이다. 어색한 탐색 과정,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갈등, 그리고 예감을 벗어나지 않는 조용한 결렬...... 물론 중간중간 설렘이나 희열 같은 반짝이는 감정들이 자리하겠지만 굳이 예정된 수순을 밟아가면서 실패를 반복하는 데 힘을 쓰고 싶겠는가. 하지만 그럼에 도 불구하고 타인과 연결되기를 바란다면? 백수린이라면 아마 나의 세계란 너무 작기 때문에 그러하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p.273
그런데 왜 타인과 연결되면서 작은 세계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나'는 결정적인 순간에 다시 그 비좁은 자리로 되돌아가버린 걸까? 안전지대에 머무르고 싶다는 유혹을 포기하고 타인을 대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걸까? 이별의 슬픔은 비단 한 사람을 잃어버리게 되는 데에만 있지 않을 것이다. 드넓었던 나의 세계가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순식간에 줄어들어버리는 데에서 오는 고통. 어쩌면 이다음에 놓인 이야기가 이 고통에 약간의 해답이 될지도 모르겠다.
p.274-275
하지만 의지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대체 어떻게 해야 비좁은 세계로 되돌아가는 걸 멈출 수 있을까?
p.276-278
오리엔탈리즘에 기반한 시선을 드러내는 것처럼 보였던 한스의 이야기는 그들 부부가 테러 사건의 피해자라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다른 맥락을 부여받는다. 지호가 "개소리"라고 몰아붙였던, "사람들에게는 각자의 자리가 있고, 각자의 역할이 있어. 거기에 만족하고 살면 그곳이 천국이야. 불만족하는 순간 증오가 생기고 폭력이 생기지. 증오와 폭력은 또다른 증오와 폭력을 낳고 말이야. 그게 우리가 지난 반년을 보내고 얻은 교훈이야"(64~65쪽)라는 한스의 말은 테러로 딸을 잃은 후 "인간이란 존재가 얼마나 쉽게 폭력 앞에서 소멸되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했다"(68쪽)는 베레나의 고백과 연결되면서 한 사람을 구성하는 다양한 층위를 짚어보게 만든다.
국적, 민족, 인종, 언어, 나이, 계급, 성별 그리고 각자의 사적인 체험들로 뒤엉킨 존재가 바로 나다. 때문에 우리는 어떤 층위를 거쳐 생각이 발생하는지 명확하게 알지 못한 채 대화를 나눈다. 아마 지호는 한스와 정치적 입장이 부딪치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한스는 어떻게 해도 납득할 수 없는 폭력 때문에 한순간 사랑하는 딸을 영원히 잃어버린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이야기하고 있었던 게 아닌가? 평범한 일상이 지속되어오던 장소에서 충격적인 상실을 겪은 이에게 그후 세계란 어떻게 보이겠는가?
주아는 편지를 쓰는 동안 베레나가 터뜨린 울음의 의미를 깊이 이해하게 되었을 것이다. 베레나가 직접 설명한 앙코르톰의 바온 사원에서 보인 눈물과 달리, 이 울음은 그전까지 주아에게 그저 하나의 장면으로만 남아 있었다. 주아는 이제 그 뜻을 헤아려볼 수 있 다. 베레나는 비좁은 세계를 유지하려는 안간힘 때문에 발생한 폭력이 친밀했던 관계를 망가뜨리는 모습을 지켜보며 아마 테러를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연약함을 알듯이, 상대 또한 연약한 존재라는 걸 상상하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폭력 말이다.
그리하여 '나'는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은 베레나에게 자신과 레오니 사이에 있었던 일을 들려준다. 비좁은 세계를 지키기 위해 사나워지지 않아도 되는 방법 말이다. 그걸 미처 몰랐던 지난여름 우리는 서로를 아프게 한 채 헤어졌지만, 이 장면 만큼은 기억하여 고통스러운 상실로 인한 상처가 치유될 수 있도록.
캄보디아 소년 앞에 섰던 레오니는 잠시 고민을 하더니 자신의 발로 레오니와 소년 사이에 그어진 선을 지우는 게 아니겠어요? 레오니는 돌멩이 끝으로 소년의 뒤쪽에 새로운 선을 다시 그었습니다. 그러고는 집에 새 친구가 왔으니 원숭이님이 더 좋아하겠지?" 하고 나에게 말을 했어요.(71쪽)
어린아이이기에 가능한 태도라고 간단히 넘겨버릴 수 있을까? 성인들의 사회는 한층 복잡해 쉽게 적용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믿고 싶은 우리에게 레오니의 입을 빌려 주아가 전한다. 작은 세계가 만드는 경계선 앞에서 수줍음과 두려움을 느끼는 마음을 짐작할 수만 있다면, 정당함을 주장하고 시비를 가리려는 모든 행위를 내려놓을 수 있다고. 그저 자신이 그러하듯 타인 역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존재라는 점만 기억한다면 세계는 더이상 좁아지지 않으리라고 말이다.
p.278-279
물론 이러한 메시지가 어떤 한계를 외면한 채 그저 진심만으로 이상적인 경지에 다다를 수 있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앞서 언급한 다양한 층위들, 자신과 타인을 가르는 그 경계선들이 진실한 마음 하나로 관계를 이끌어가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다. 또한 대부분의 폭력이 경계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을 때 발생한다는 것 역시. 그러므로 "부끄럽게도 나는 그 모든 것이 아름답다고 느꼈음을 고백합니다. 어쩔 수 없이 나는 그런 사람이니까요"(59쪽)라는 주아의 말에 담긴 뚜렷한 자기 인식은 우리에게 안도감을 준다. 작은 세계에 머무르지 않기 위해서는 차이에 대한 다정한 호기심 또한 필요한 법이니 말이다.
p.284-285
이처럼 줄곧 그녀는 이룰 수 없는 일에 매달리기보다 "단계에 걸맞은 역할을 수용하는 것이 성숙한 태도"(152쪽)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아무래도 '성숙함'을 자신의 인생을 가늠하는 기준으로 삼는다면, 그는 욕망의 추구가 아니라 조정의 방식을 선택하게 되지 않겠는가? 욕망이란 결코 충족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아는 이를 두고 현명하다 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사실에 기댄 채 아예 시작조차 하지 않는 이와, 충족의 실패 후 비로소 이 사실을 인정하는 이 중 어느 쪽이 정말 성숙하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견디는 일과 받아들이는 일, 즉 체념과 수용의 차이를 깨닫게 된 그녀는 이제야 그 시작의 발걸음을 내딛게 된 참이다.
p.286-287
쓰는 일이 누군가의 삶을 자칫 상투적인 틀에 가두어버리진 않을까 인물의 입을 빌려 고민하던 작가는 이후 인간을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빛뿐만 아니라 그림자 또한 필요하다는 사실을 이야기를 통해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제 그는 선량한 호기심으로 나와 타인을 가르는 경계선들을 세심하게 살핀다. 복잡한 갈등을 외면하지 않은 채로 공존의 공간을 모색하면서 말이다. 그러니까 그때 그 말은 인간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뜻이 아니었을까. 낙관이나 비관으로 섣불리 기울어지지 않고, 손쉬운 납득을 위해 인물을 납작하게 그리고 싶은 유혹을 떨치면서 계속 이야기를 써나가겠다는. 백수린의 이야기가 지금의 우리에게 필요한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작가의 말>
p.288-289
전 세계적으로 목도하고 있듯이 이해는 오해로, 사랑은 혐오로 너무 쉽게 상해버리고, 그런 생각을 하면 어둡고 차가운 방에 홀로 남겨진 듯 슬프고 또 무서워진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을 살기 위해 우리가 기댈 수 있는 것은 이해와 사랑 말고는 달리 아무것도 없다고 나는 여전히 믿고 있고, 이 소설들 역시 그런 믿음 속에서 썼을 것이다. 나에게는 성급한 판단을 유보한 채 마음 안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직시하고 찬찬히 기록하는 것이 사랑의 방식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