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 때가 되면 너의 정원에 꽃이 필 거야(윤수빈)
우리는 행복한 정원사가 되기 위해 자연을 닮을 필요가 있습니다. 자연은 눈치 보지 않습니다. 묵묵히 자신의 세포에 생명을 불어넣을 뿐입니다. 꽃들은 서로의 피어남을 질투하지 않습니다. 여름에 피는 능소화가 봄에 피는 개나리를 부러워하지 않는 것처럼요. 봄에 피는 꽃이라고 해서 차가운 겨울 동안 죽어있는 것이 아닙니다. 얼음처럼 언 땅 아래에서 버티며, 봄이 오길 기다렸습니다. 그렇게 겨울은 지나가고 결국 자기만의 때는 옵니다.
지금의 나는 감정에 집착하지 않는다. 마음이 맞는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오게 되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멀어지게 되어 있으니까. 영원한 감정 또한 없다는 걸 겸허히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긍정에 일말의 경계심을 심어놓을 필요가 있다. 주변에서 좋다고 여겨지는 것들이 나에게 익숙하지 않거나 구미가 당기지 않는다면, 과감하게 "NO!"를 외칠 줄 알아야 한다. 솔깃할 만한 제안이 들어왔지만 즐거움을 느끼는 내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면, 나를 의심하는 순간이 아니라 나를 이해하는 순간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사람들은 종종 나의 진짜 모습과 이상적인 모습을 헷갈리곤 한다. 내가 바라는 나의 모습은 보통 타인에게 투영되는 경우가 많다. '저 사람이 사는 모습이 마음에 들어서', '이렇게 살면 편할 것 같아서'와 같은 이유로는 오래가지 못한다.
우리는 때로 억지로 끼워 맞춘 '긍정'에 만족하는 경우가 있다. 나의 온전한 모습을 뒤로한 채 남들과 다르지 않았음에 안정감을 느끼는 잘못된 심리이다. 긍정에 애쓰지 않아도 괜찮다. 나와 맞지 않는 것들에 고통스러워하는 것이 더욱 나를 괴롭게 하는 일이다. 때로는, 아니 대부분은 부정을 외치는 것이 나를 지키는 일이 되기도 한다.
남들에게 눈곱만큼 잘 보이려고 내 주관을 죽이지 말자. 내가 하는 말과 행동을 보는 건 타인뿐만이 아니다.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는 나 자신이 있다.
자신의 생각을 우선순위에서 미루다 보면, 어느새 익숙해지는 비극이 시작된다. 가고 싶으면 가고 안 먹고 싶으면 안 먹자. 남들은 내가 주관을 버리고 배려했다는 사실을 모를 때가 많다. 대부분 타인에게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나쁜 게 아니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인간상일 뿐이다. 그럴 바에야, 내 마음이 원하는 것들에 더욱 귀 기울이는 것이 효율적이다. 배려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나의 사소한 마음을 먼저 챙겨야 한다는 것이다.
감히 한국 사람들에게 고한다. 예민함을 표출해도 괜찮다. 아니, 해야 한다. 불쾌감을 만드는 말과 행동에 웃어넘길수록, 나를 지킬 수 있는 범위가 줄어든다. 예민함을 표출해야 하는 순간에는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한다.
호구보다 상여자(표현을 순화했다)가 살기 편하다고 하지 않는가. 누군가 우리를 공격한다면, 내 안에 숨어있는 상여자, 상남자를 잠시 소환하자.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상대에게 깽판을 치라는 말이 아니다. 단지 웃어넘기지 않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면 된다.
운동은 땀을 배출하고, 글쓰기는 문장을 배출한다. 어쨌든 무언가 쏟아내는 행위임은 분명한 공통점이다. 이 행위에는 시간의 투자가 선행되어야 한다. 때로 운동에는 돈을 들여야 하기도 한다. 그 시간들이 모여 견고한 나를 만든다. 일시적인 투자는 성장하기 어렵다. 속도를 늦추더라도 장기적인 시간을 들여야 문장과 근육이 단단해질 수 있다. 두 가지 모두 자신의 의지에서 마련해야 하는 시간이기 때문에 무언가 확실한 동기가 있다면 좋다. '이번 달 내로 몇 kg 감량하기' 호근 '일주일에 글 2개 쓰기'와 같은 작은 목표를 세우는 것은 꾸준한 시간을 투자하는 동기가 된다.
문장과 몸의 근육을 키워야 한다. 근육이 있어야 더 멀리 나아갈 수 있는 힘이 생긴다. 꾸준한 글쓰기와 운동은 배신하지 않는다. 두 행위의 공통점은 '가성비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남들보다 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 방법은 타고난 작가이거나 타고난 근육량을 보유한 것이 아니라면 없다.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즐겨하는 말이 있다. "세상을 살아보니 내 뜻대로 되는 게 운동밖에 없더라." 글도 마찬가지다.
이 권태기를 이겨내는 방법은 그냥 하는 것뿐이다. 권태기가 왔음을 인정하고, 서서히 다시 페이스를 찾아가는 게 유일한 탈출 방법이다.
같은 일을 하더라도 어떠한 방식으로 진행하느냐에 따라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다. 선생님이 환자에게 주는 것은 비단 처방전뿐만이 아니다. 선생님만의 방식으로 사람에 대한 애정, 다정함, 그리고 위로를 전해주었다. 가끔은 일면식이 없는 사람들에게 '맛있는 커피'를 나누어주기도 한다.
나도 선생님처럼 다소 이상하지만 다정한 사람이 되고 싶다. 선생님만큼 유머러스한 사람이 아니기에 웃음을 전하진 못하더라도, 따듯한 말과 미소는 전할 수 있지 않을까. 다채로운 방법으로, 때론 귀엽기도 했으면 좋겠다. 직업이 명함이 아닌 수단으로써 백번 발휘되기 위해 끊임없이 베풀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는 어른이 되고 싶다.
'부럽다'는 부정적 단어에 가깝다. 내가 갖지 못하는 것을 누군가 가졌을 때 자연스레 느껴지는 시기와 질투 어린 기분에서 흘러나오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음을 잘 들여다보면, 이 감정은 한 인물 그 자체를 향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보고 싶은 모습만을 부러워하는 것이다. 사람은 원래 제멋대로 보고 생각한다. 다르게 말하면, 우리는 부러움을 선택한다.
"우리보다 더 대단한 사람들이 있잖아"
나는 이 말에서 즐거움과 성장 에너지를 얻는다. 나는 나보다 대단한 성과를 내고 명예를 얻은 사람들을 보면 즐겁다. 내가 갈 길을 먼저 보여준 고마운 사람들이므로, 그들에게서 배울 점을 찾으려고 한다.
이 친구의 삶에서 행복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밥을 먹어도, 길을 걸어도 남들보다 자주, 그리고 크게 기뻐하는 사람. 앞자리에서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그런 유진에게 물었다. "늘 행복해 보여서 보는 내가 기분이 좋아진다니까. 혼자 있을 때 심심하지는 않아?" 유진의 대답은 의외였다. "언니, 나는 혼자 있으면 나를 웃겨줘."
혼자인 시간은 오롯이 나에게 시선이 향해 있어야 하는구나. 집으로 돌아와, 사소한 것들에 대해 스스로를 칭찬해주기 시작했다.
삶에 행복이 스며드는 데 특별한 방법이 필요한 건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만들어주고, 좋아하는 말을 들려주는 것. 굳이 말로 웃겨주지 않더라도, 모든 시간 속에서 가능하다. 누군가를 웃게 하는 일은 상대방을 애정하는 마음에서 나온다. 그러니 나를 가장 먼저 웃게 하는 사람도 내가 될 수 있다.
흔들림 없는 단단한 삶을 만들어가고 싶다면, 싫은 소리를 잘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또한 인간이라면 누구나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욕망이 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좋은 말만 하는 사람은 결코 좋은 사람이 될 수도, 나만의 삶을 지킬 수도 없다.
기분이란 건, 곧 감정의 기후를 의미한다. 날씨처럼 나의 의지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다행인 건, 이를 지혜롭게 관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안 좋은 날의 기준은 내가 만든 것뿐이다. 기분을 선택할 수는 없지만, 다르게 대할 수는 있다는 말이다. 기분에 복종하는 삶은 거두어야 한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사소한 긍정들을 모아가는 것이다. 사소하고 귀여운 행복들을 나에게 선물하자.
"어른이 도니다는 건 내 마음대로 사람을 세상을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을 무기력감 없이 받아들이는 과정이라는 거예요. 어쩌면 그것이 진짜 사랑이죠."
만약 무거운 고민으로 인해 불안을 앓고 있다면, 먼저 경험한 사람들을 찾아가는 용기가 필요하다. 혼자 모든 짐을 끌어안으려 애쓰지 말자. 그건 세상을 다 아는 척하는 사람들이 저지르는 일종이 자만일지도 모른다. 주변에서 만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문을 두드리고, 실제 만날 수 없는 사람이라면 그들의 책이나 영상을 통해 만나도 좋다.
처음 만나는 세상에서 처음 겪는 일에 강할 수 없는 건 당연한 일이다. 이를 인정하고 고민을 가볍게 만들어줄 사람들을 찾고 의지하는 게 중요하다.
"삶의 균형은 끊임없이 찾아가야 하는 것 같아요. 답이 없죠. 어딘가로 떠난다고 삶의 균형이 맞춰지는 건 아니더라고요. 지금의 삶 속에서 잘 놀고, 잘 먹고, 때론 치열하게 일하려고 해요. 가끔 도망치기는 하지만요."
지금 이 순간에도 한 인물을 자라게 하는 모든 환경은 어쩌면 완벽히 의도한 것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인생이란 모름지기 예상치 못한 일들의 총합이 아닌가. 그러니,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을 눅진한 자양분으로 소화해버리자.
때로는 원망을 감사로 퉁치는 깡도 필요한 법이다. 비범함은 결핍에서 피어난다고도 하지 않던가. 사람은 부족하고 결핍될수록 더 간절하게 채워지길 원하는 법이다. 그 간절함이 우리를 움직이게 하고, 변화하게 하고, 성장하게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행복은 어릴 적 보물찾기를 하는 마음으로, 하나씩 부지런히 모아야 한다.
내가 지쳤을 때 일어날 수 있는 힘이 되어주었던 건 고등어구이를 먹기 위해 고속버스를 탄 일이었다. 작고 사소한 일이라도 오로지 나를 위한 일이 나를 일으켜주는 힘이 되어 줄 수 있다. 그렇게, 소소하지만 나를 위한 다정한 마음을 쌓는 게,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모든 사람은 하나의 우주다. 자신이 만들어낸 게도 바깥으로 벗어나는 용기가 우주의 크기를 평가한다. 중심이 흔들리는 순간을 다르게 대하면 우주를 확장하는 거대한 빅뱅이 될 수도 있다.
우주를 다 안다고 자만하지 말자. 그저 자신이 만들어가는 세상을 자유로이 유영하면 그만이다.
그는 투박한 물감 병에 손수 이름을 지었다. 작품의 이름보다 정성을 쏟았던 건 빛깔의 이름이었다.
어쩌면 유효 기간이 너무도 짧은 인간을 대신해 오래도록 남겨진 그림들의 본질은 물감인 것이다. 처음부터 작품에 멋들어진 이름을 붙이는 것보다, 물감에 이름을 붙여보자. 지금 당장 하고 있는 행동 하나하나에 '의미'를 더하는 것이다. 앞면과 뒷면이 다른 캔버스라고 해서 가치가 떨어지는 건 아니다. 오히려 수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유일한 작품이 된다. 그러니 그럴싸한 미래의 이정표가 아닌, 현재 가진 것들의 빛깔에 애정 어린 이름을 지어주자. 그렇게 나만의 물감으로 여러 그림을 찬찬히 그려 나가다 보면 진하게 자리하는 작품이 탄생하게 될 것이다.
지금 우리는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을까.
밭을 가꾸는 일은 사랑이 없으면 지속하기 힘듭니다.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하는 대상을 구체적으로 만든다고 합니다. 내가 무엇을 사랑할 것인지, 사랑하고 있는지 알고 있나요? 누가 그러더군요. 사랑은 집중하는 것을 반복하는 것이라고요. 한밤의 폭죽놀이처럼 화려하고 순간적인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지루하지만 나도 모르게 움직이는 것들을 반복하다보면 그 안에서 깊이 있는 행복을 만날 수 있답니다. 그러니 우리, 오늘의 정원도 각자의 속도에 맞게 가꾸어가길 바랍니다. 혹여 정성스레 흙을 다지고 씨앗을 많이 심었는 데에도 싹이 피지 않는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음 씨앗이 더 튼튼하게 자랄 수 있는 천연 거름이 되니까요. 버려지는 것은 없습니다. 처음이다 보니 그 작물을 성장하게 하는 요령이 없었을 뿐이죠. 과거에 붙잡혀 애써 만든 비옥한 땅을 척박하게 방치하지 마세요. 또 너무 먼 미래의 울창한 정원만을 상상하느라, 오늘만큼의 즐거움을 놓치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모두 각자의 때를 품고 있다. 하지만 꽃이 피지 않는 순간도 마땅히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