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필사] 소비단식 일기(서박하)

아름다운 존재 2023. 11. 28. 17:32

중요한 건 부모님이 나를 어떻게 키웠느냐와 상관없이 나 자신을 받아들이고 뚜벅뚜벅 걸어나가는 것이다. 다른 이들을 탓하며 사는 건 옳지 않다. 문제 해결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나는 이미 성인이 된 지 십수 년이 지났으며, 부모님의 보살핌을 받으며 살아온 시간보다 내가 혼자 결정하며 살아온 날이 더 길다. 지금의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부모님은 순간순간 최선을 다해 나를 키웠고, 그분들의 실수는 이제 잘 기억나지 않는다. 어린 시절 내게 새겨진 무늬는 빛바랜 지 오래다. 스스로 나만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 최선이다.

 

얼마 전부터 우연히 비누 하나로만 씻기 시작했다. 몸에 알레르기 반응이 일어나서 시도해본 것인데, 의외로 충분했다. 그러자 '내가 사용하는 물건들은 정말 꼭 필요해서 산 것일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비누 하나만 사용하기로 했을 뿐인데, 덕분에 샴푸, 린스, 컨디셔너, 헤어팩, 폼클렌징, 스크럽, 바디클렌저, 풋클렌저 등이 모두 쓸모없어졌다. 나는 언제부터 누구의 영향을 받아, 어떤 방법으로 인해 이 많은 것들이 필요하다고 느끼게 된 것일까? 과연 지금껏 내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이 온전한 '내 생각'이었을까? 이렇게 보니 주변의 모든 물건들이 생경하게 느껴졌다.

 

# 반소비주의

반소비주의는 소비를 줄이려는 움직임이다. 여러 갈래가 있지만, 현재 우리 사회의 소비 형태에 대한 의문을 공통적으로 제기한다. 반소비주의는 현재의 소비 형태가 생태계에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주고 있고, 부유한 국가의 소비가 저개발국과 그 사회의 빈곤 문제에 기여한다고 본다. 특히 과소비가 많은 문제를 야기하고 있으며 '소비자'라는 말에 부정적이다. 반소비주의자들은 특히 광고 등의 마케팅을 열렬히 반대하며, 박싱데이(크리스마스 다음 날을 뜻한다. 미국, 유럽 등은 박싱데이에 특별할인 행사를 많이 한다)를 '아무것도 사지 않는 날'로 정하는 운동을 만들고 전파하기도 한다. 이들은 소비가 사회와 환경에 미칠 영향을 고려할 것을 권장한다.

<일자리의 미래>의 작가 엘렌 러펠 셸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이미 1,600여 명의 사람들이 전체 인구의 90퍼센트보다 더 많은 부를 거머쥐고 있다고 한다. 거대한 자본주의와 소비사회의 파도가 밀려오면 멋진 서퍼들은 그곳을 즐기며 높은 곳으로 올라가지만 그렇지 못한, 서핑보드가 없는 사람들은 물속으로 가라앉는다. 빈부 격차가 극단으로 치닫는 세상이다. 그 파도에 휩쓸리지 않고 우리 각자가 자신만의 소비 문법을 써내려갈 수 있으면 좋겠다.

 

내게는 구체적인 목표보다 커다란 원칙을 반복해서 생각하는 것이 효과적이었다. '꼭 필요한 곳이 아니면 쓰지 않는다'라는 기본 원칙.

 

옷을 사지 않으려면 옷이 많아야 하는 게 아니라 '적당히' 있어야 했다. 오히려 가진 옷을 정리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래야 내게 필요한 옷이 보이고 관리가 된다.

 

얼마 전, 청바지를 만드는 데는 엄청난 환경적인 대가가 뒤따른다는 기사를 보았다. 꼭 필요한 물건만 사는 것이 환경에 도움이 된다고 믿는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기로 마음을 정리한다. 소비단식을 마칠 때까지 옷은 되도록 사지 않기, 그리고 필요하지 않은 옷은 나누기.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이다.

 

너무 많은 선택지는 오히려 선택을 어렵게 한다.

 

내일 당장 없다고 죽는 건 없다.

 

# 카페 가는 횟수와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

도서관을 적극 활용했다. 집 근처에 작고 아담한 도서관이 있다. 열람실에서는 노트북을 사용할 수 있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준 뒤, 나는 집에서 내린 커피를 텀블러에 담아 도서관으로 향했다. 좋아하는 책이 가득한 공간이다. 가져온 커피를 다 마시면 챙겨 온 인스턴트 커피도 한 잔 타서 마셨다. 카페에 가지 않고도 충분히 꽉 찬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결국 소비는 내 마음을 채우기 위한 것이었다. 책과 오롯이 보내는 고요한 시간, 그리고 글 쓰는 시간이 내 마음을 채우니 다른 것들이 필요하지 않았다.

 

# 소비단식이 쓰레기를 줄인다

앱 중독에서 벗어나고 있다. 집 앞에 산더미같이 쌓였던 택배 박스들도 사라졌다. 택배를 뜯는 일은 10퍼센트 정도의 기쁨과 90퍼센트 정도의 허무함을 가져온다. 잔뜩 쌓인 박스들을 보면 더욱 그렇다. 박스가 없다는 것, 아이스팩이나 스티로폼이 없다는 것만으로도 정신 건강이 좋아지는 것 같았다.

직접 장을 보다 보면 자연스럽게 장바구니를 들게 된다. 동네 슈퍼에서는 비닐 포장이 되지 않은 채소와 과일을 살 수 있다. 동네 정육점은 가져간 용기에 고기를 담아 준다. '이러다 나도 제로웨이스트(생활 속에서 쓰레기를 최소화하는 사회운동) 실천하는 거 아니야?' 하고 혼자 김칫국을 마시기도 한다. 그래도 확실한 건 조금이나마 비닐 사용이 줄었고, 스티로폼도 거의 나오지 않는다는 것. 소비단식이 불러온 기분 좋은 변화다. 앞으로도 더 지구와 나 모두에게 좋은 건강한 경험을 하고 싶다.

 

현재 가진 것에 만족하고 감사하기. 기본적이지만 정말 어려운 일이다. 마음이 충만하다면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카드를 긁는 일은 없을 것이다. 지금 냉장고에 있는 식재료에 감사하고 나의 찬장에 고마워하는 삶.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걸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냉장고뿐 아니라 옷장이나 책장도, 그러니까 어떤 상황이든 마찬가지다. 어떤 인생의 원리는 너무도 단순해서 깨닫고 실천하기 어렵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가 계속되면 마음에 병이 찾아온다.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 지금 여기를 인지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심리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지금 여기here and now'는 독일의 정신과 의사인 프리츠 펄스가 창시한 게슈탈트 심리치료의 가장 중요한 개념 중 하나다. 우리는 우리가 진짜 무엇을 원하는지, 그 욕구에 어떻게 대응할지 모를 때가 많다. 자신의 욕구를 파악하기 어려운 내적, 외적 상황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외부 자극에 사회적으로 혹은 관습적으로 대응하다 보면 결국에는 자신의 욕구를 파악하고 행동하기가 어려워진다. 그래서 지금 여기, 즉 현재에 집중하며 다시 한번 마음을 들여다보는 연습이 필요하다.

 

꿈이 있는 것, 이루고 싶은 미래가 있는 것은 좋다. 그러나 '매일 살아내는 삶의 합이 내 인생'이라는 말처럼, 내가 살아내는 현재와 순간들이 결국 나의 미래가 되는 것이다. 나는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능력을 원했고, 그 능력이 있어야만 이룰 수 있는 꿈을 꿨다. 따라가면 멀어지는 무지개처럼, 희미해지는 꿈을 좇으며 절망했다. 내가 가진 것에 집중하지 못했다.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것, 가진 것, 느끼는 것 모두 무시한 채 달려왔다.

이제야 나는 현실을 직시한다. 아마존에서 물건을 팔아 월 몇백만 원을 버는 꿈이 아니라, 카드값을 줄이고 소비습관을 바꿔야 한다. 쓰다 만 립밤을 모아 사용한다. 나의 통장 잔고와 대출을 늘 염두에 둔다. 읽다 만 책들을 정리하고 듣지 않은 강의를 다시 켜서 듣는다.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는다. 두렵고 떨리지만 내게 주어진 현재를 밝은 빛 속에서 바라본다. 부끄럽다고 여긴 내 모습을 바로 본다.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기 위해서.

 

우리가 먹고 마시고 입는 모든 것들이 결코 아름다운 과정을 거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아는 일은 무척 중요하다.

 

윤리적 소비란, 생산부터 유통까지 그 모든 과정이 나의 소비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윤리적으로 판단하여 소비하는 것을 가리킨다.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어린 나를 대면하는 일이기도 하다. 아이의 모습에서 나를 보고 나의 아픔을 본다. 아이가 울 때 안아주며 어린 시절 혼자 울던 나를 함께 안아준다. 우리 부모님은 하굣길에 비가 와도 결코 데리러 온 적이 없었다. 친구들의 우산을 쓰고 가거나 다 맞고 집으로 가는 게 일상이었다. 그때마다 다짐했다. 나는 아이를 키우면 비 오는 날 꼭 데리러 가야지. 함께 집에 돌아와 따뜻한 코코아를 같이 마셔야지.

물론 부모님은 나를 사랑으로 키워주셨다. 부족함 없이 키우려 노력했고 최선을 다하셨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빈자리는 늘 있기 마련이며, 그 자리는 스스로 채워야 하는 것이다. 부모님에 대한 원망으로 그 시절을 그대로 남겨두는 것이 아니라 다 자란 내가 어린 나를 안아주면 되는 것이다.

 

잘했다고 나에게 이야기한다. 늘 죄책감에 시달리며 '나는 정말 최악이야'라는 생각을 달고 살다가 병을 얻었기에 앞으로는 스스로에게 좀 더 너그러워지기로 했다. 살다가 좀 부족한 면이 발견되면 또 그때 가서 최선을 다해 극복하면 된다.

 

한국 배추, 무, 파, 상추를 케냐 집 마당에서 키워볼까 생각하기도 했지만, 현지에서 나는 채소와 과일을 먹으며 생활하자고 마음을 바꿔먹었다. 최대한 그곳의 자연환경에 맞춰 자연스럽게 사는 것이 스트레스를 가장 덜 받는 방법일 것 같아서다. 가질 수 없는 것들을 가지려면 정말 힘이 많이 든다. 이곳은 망고와 파인애플, 바나나가 놀랍도록 맛있고 저렴하다. 한국에서 한 개에 만 원 정도 하는 애플망고가 하나에 500원이다. 맛도 훨씬 좋다. 자연스러운 식생활이 최고의 만족을 준다는 걸 새삼 느낀다. 한국과 똑같이 먹고 지내기 위해 너무 애쓰지 않기. 최대한 자연스럽게 모든 것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서울에서의 나는 늘 부족한 인간이었다. 학위도 보잘것없고 1년간 놀고 있는 모습도 한심하다고 느꼈다. 모두가 달리는 그곳에서 간신히 한 걸음씩 걷는 나는 달팽이 같았다. 인스타그램 피드 속의 화려한 이야기들을 애써 외면하면서도, 싸게 나온 명품은 없는지 당근마켓을 기웃거리기도 했다. 있어 보이기 위해, 잘사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애썼다. 그 애씀이 독이 되었다.

미쉐린 레스토랑에 가지 못해서, 남들처럼 크고 넓은 아파트에 살지 않아서, SNS에 그럴듯한 모습을 올리지 못해서 불안하고 불편한 나는 이곳에 없다. 아무도 나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냥 있는 모습 그대로 살아갈 수 있는 이곳에서 나는 오히려 더 편안하고 자유롭다. 매일 같은 걸 입는다. 아침에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돌아오는 길에 작은 카페에 들어가 마시는 커피 한잔에도 행복을 느낀다. 아이를 돌보고, 일하고, 저녁이면 가족들과 저녁을 먹고 책을 읽다 잠이 드는 단조로운 생활이 나를 치유한다. 만날 친구도, 가야 할 핫플레이스도 없고 그저 하루하루가 무탈한 것만으로도 감사한 이곳에서의 삶이 내 마음을 채운다. 나와 너무도 다른 사람들이 사는 이곳에서, 어쩌면 나는 온전한 나를 만난 것일지도 모른다.

 

소비를 줄이려면 소비보다 더 마음을 채우는 무언가가 있어야 하고, 어느 정도 환경도 강제되어야 하는 것 같다. 언젠가 한 재테크 관련 글을 읽었는데, 글쓴이는 돈을 모으는 동안 친구도 만나지 않고 늘 집밥만 챙겨 먹으며 지냈다고 한다. 그때는 너무 극단적인 것이 아닌가 생각했는데, 다이어트하는 사람도 친구 만나는 것을 줄이고 도시락을 싸며 몸을 관리하지 않나. 소비단식을 할 때도 자신을 제어하는 환경을 만드는 일이 필요하다.

나이로비에서 지내는 우리 모습이 편안하고 좋다. 화장기 없는 얼굴, 늘 같은 청바지에 티셔츠. 질끈 묶은 머리도 좋다. 검게 그을린 우리의 얼굴과 편한 운동화가 좋다.

하지만 인천공항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우리의 모습은 너무도 이질적이다. 때로 사람들은 우리의 겉모습을 보고 안부를 걱정한다. "머리가 이게 뭐니, 얼굴이 너무 상했구나. 애기 옷이라도 하나 사주렴." 어떤 분들은 우리가 딱해 보이는지 돈을 쥐여주시기도 한다. 우리는 한국에 들어가면 반강제적으로 미용실에서 머리를 한다. 괜히 거울을 보고 좋은 옷과 가방을 찾는다. 나이로비와 한국에서의 우리는 이렇게나 다르다.

 

내 삶에서 내가 내 모습 그대로 만날 수 있는 사람들에 더 시간을 내야 한다.

 

감사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그날 감사한 일 세 개를 적었다. 거창하지 않아도 좋았다. 매일 쓰지는 못해도 일주일에 두세 번 정도는 꼭 썼다.

소비단식을 하며 내가 얼마나 많은 것을 가지고 있는지 깨닫는 것은 무척 중요하다. 자족을 위해서는 감사가 있어야 한다. 사실 감사일기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해서 식상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중요한 원리일수록 단순하고 널리 알려진 경우가 많다. 운동하고 좋은 음식을 먹으면 건강해지고, 매일 공부하고 책을 읽으면 지식이 쌓이듯이 말이다.

처음 감사일기를 적을 때는 물질적인 것들을 많이 썼다. 무엇을 사서 좋았고, 뭐가 생겨서 좋았다는 등의 내용이었다. 하지만 계속 쓰다 보니 점차 물질이 아닌 것에서 의미를 찾게 되었다. 오늘은 비가 와서 감사했고, 아이가 나에게 사랑한다고 이야기해서 감사했고, 읽은 책의 어떤 문장이 감동적이어서 감사했다. 물질 외의 것에 감사하는 비중이 늘어나니, 내 삶이 이미 많은 것들로 차 있다는 사실이 가까이 느껴졌다.

이 감사의 마음을 잊어버리면 서서히 소비가 늘어나고 공허해진다. 그리고 결국 돌이키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실수를 하게 된다. 내가 그랬다. (이 실수들에 대해서는 뒤에서 고백하려 한다.) 그렇기에, 소비단식을 도전하려는 사람에게는 감사일기를 꾸준히 써보기를 권하고 싶다. 펜을 꺼내 들고 적어보자. 오늘 나의 삶에서 무엇이 가장 감사한지, 소비단식을 시작하기 전에 내가 얼마나 많은 것을 가지고 있는지를 점검하는 것이다. 자신이 얼마나 많은 것들을 가졌는지 알게 되면 새삼 놀랄 것이다.

 

집을 돌아보며 내가 어떤 물건을 가지고 있는지 노트에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다 적을 수도 없을 정도로, 나는 이미 많은 것을 가지고 있었다.

 

#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면

감사gratitude하는 마음과 감사일기gratitude journal에 대해 조사해봤다. 이 둘의 긍정적 효과를 다룬 연구들이 존재했다. 내용을 살펴보면, 감사를 하면 스트레스를 풀 방법이 늘고 자존감도 올라간다고 한다. 감사를 하면 긍정적인 생각들을 많이 하게 되는데, 그러면 자연히 삶의 좋은 부분에 집중하게 되므로 자존감이 높아지고 스트레스가 생겼을 때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사회적인 방법이나 도움을 더 잘 요청한다는 것이다.

또한 감사하는 마음은 자신과 주변을 비교하며 생긴 질투나 후회 등의 부정적인 감정을 줄여준다고 한다. 감사는 타인의 선함에 집중하는 행동이다. 다른 사람들이 내게 어떤 좋은 영향을 미쳤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따라서 이러한 질투의 감정들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감사는 '유물론적 갈망'을 줄여준다고 한다. 감사와 유물론(물질주의)은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한다. 감사는 개인과 그 관계 등이 나아지는 것에 성공의 초점을 맞추지만, 유물론은 물질적인 것에 기초해서 본다. 유물론적 갈망이 높은 사람은 삶에 대한 만족이 떨어지고, 자존감이 낮고, 높은 우울증 증세를 보일 수 있다고 한다. 그에 반해 감사는 유물론적으로 삶을 평가하는 행위(돈을 많이 벌고 물건을 많이 소유하는 것이 삶의 질을 결정한다는 등의 생각)를 줄여준다. 감사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은 자신의 소유를 나누는 것을 즐기고, 삶의 성공이 물질을 얼마나 가지고 있느냐에 달려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 나는 세 가지 노력을 했다. 첫 번째는 앞에서 소개한 감사일기 쓰기다. 기록을 남기니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인식하고 긍정할 수 있었다. 두 번째는 내 주변 환경을 강제하는 것이다. SNS 줄이기, 나를 작아지게 만드는 친구들과의 만남 줄이기 등이다. 내 자존감이 낮아질 상황을 만들지 않았다. 세 번째는 "그럼 뭐 어때" 하고 생각하기다.

<에고라는 적>(라이언 홀리데이 저)에 따르면 결국 현재의 상황에 불만을 가지고 마음을 무엇으로 채우거나 가리려고 하는 것은 모두 내 자아ego가 강하게 살아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예전에는 이렇게 생각했다. '아, 이렇게 입고 가서 없어 보이면 어쩌지? 좋은 식당에서 비싼 밥을 사지 않으면 쪼잔하다고 생각할 거야.' 그런데 이 책을 읽고 이 모든 생각이 '나'로부터 비롯된다는 것을 알았다. 나를 괴롭히던 내 정체성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외치기 시작했다.

"그럼 뭐 어때!"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무슨 상관인가? 그들이 나를 알아준다 한들, 또 알아주지 않더라도 나는 나다. 나는 변하지 않는다. 오늘도 옷을 고르는데 내 안에서 질문이 들려왔다. "촌스러운 사람으로 보이면 어쩌지?" 나는 대답한다. "그럼 뭐 어때!" 깨끗하게 세탁한 바지와 티셔츠를 꺼내 입었다.

 

내가 가진 것들로 나를 표현하지 않아도, 지금 내 모습 그대로 받아들여질 것이라고 믿는다.

 

단순히 여행을 다니는 것과 삶을 지탱하는 모든 것들을 어깨에 짊어지고 다니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일이다. 수저조차 무겁게 느껴진다. 앞으로는 이 모든 무게를 짊어진다는 생각으로 물건을 사겠다고 마음먹었다. 모두가 그럴 필요는 없다. 각자의 삶에 맞는 방식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짊어진다'는 기준을 가지면 적어도 비슷한 물건을 또 사지 않을 것이다.

 

작은 밥솥, 그릇 몇 개, 냄비 하나, 좋아하는 책 몇 권, 티셔츠와 바지 몇 벌, 잠옷과 속옷. 이 정도면 충분했을 짐이 수백 배 늘어나 있던 것은 다 내가 직접 들고 다니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가 감당할 만큼의 물건만 지닌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꼭 필요한 의약품 등을 제외하면, 없어서 안 될 것은 없다. '있으면 좋은 것'이 아닌 '없으면 안 되는 것'을 결정해야 한다. 나는 이미 없으면 안 되는 것은 충분히 가지고 있다.

 

'없으면 안 되는 것'들만 지니고 살아가자.

 

소비단식과 다이어트는 정말 닮았다. 건강을 위해 관리하며 노력하면 적정한 체중과 튼튼한 몸은 저절로 따라오기 마련인데, 몸무게 줄이기에만 집착하면 극단적인 방법을 사용하게 되고 결국 요요가 온다. 내가 소비단식을 시작한 것도 처음엔 단순히 빚, 카드값을 갚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요요를 경험하고는 '건강한 소비습관 갖기'로 목표를 정해 내가 소비하는 것들에 대해 고민하고 줄였다. 그런데 갑작스러운 코인과 주식, 그리고 단기간에 큰돈을 벌려고 했던 욕심이 나를 원래보다 더 안 좋게 만들어버렸다.

 

내가 삶을 살아가는 데 비용을 적게 쓰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행동의 범위가 점점 더 넓어진다.

 

나에게 경제적 자유란 뭘까? 나는 돈에 구애받지 않고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다.

 

나는 이렇게 생활에 필요한 비용을 줄여서 가볍게 살아가는 것이 경제적 자유라고 생각한다.

 

사고 싶은 걸 다 살 수 있을 만큼 돈을 갖는 게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을 만큼 돈을 갖는 것.

내가 생각하는 진정한 경제적 자유다.

 

<돈의 심리학>의 작가 모건 하우절은 저축과 절약이 얼마나 중요한지 강조하며, 부를 쌓는 일은 사실 투자 수익률보다는 저축과 관계가 깊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저축은 생활에서 소비를 줄일 때 가장 쉽게 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아주 단순히 생각하면 부는 벌어들이고 난 후 남은 것을 축적해 생기기 때문에, 저축률이 높지 않으면 부를 쌓기는 어렵다는 것. 꼭 필요하지 않은 소비 등 삶을 차지하는 온갖 것들의 부피는 줄이고, 저축을 늘리는 것이 재정적 자유를 향한 가장 쉽고 빠른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적금 수익률은 연 2퍼센트다. 물가 상승률을 고려하면 사실 마이너스 금리에 가깝다. 아주 귀여운 이율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이 귀여운 수익률이 나의 미래를 지켜줄 것이라는 사실을 이제는 안다. (내 주식 수익률은 마이너스 15퍼센트였다.)

'돈 모으는 재미'를 조금씩 느끼고 있다. 책이나 카페에서 사람들이 돈 모으는 재미를 아무리 이야기해도, 전에는 '티끌 모아 티끌' 같아서 와닿지 않았다. 나는 일확천금을 꿈꿨고, 언젠가 어마어마한 연봉을 받게 될 거라 믿었으니까. 그러나 그런 기회는 찾아오지 않았고 빚의 굴레에 빠졌다. 이제 나는 티끌의 힘을 믿는다. 티끌 같은 카드값이 모여서 눈덩이처럼 쌓였듯이, 나의 작은 월급들이 저축으로 쌓여 경제적인 자유를 주리라.

 

1년짜리 적금을 시작했다. 주식도 하고 코인도 했지만, 돌고 돌아 결국 답은 월급과 적금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결국 내가 세운 많은 원칙 중 '포기하지 않는 것', 그것이 소비단식에 있어서 가장 중요했다.

 

이제는 더이상 돈이 통장을 스치고 지나가지 않는다. 대신 예금액의 앞자리가 바뀌고 저축이 넉넉하게 쌓이기 시작했다. 저축은 나에게 자유다. 언젠가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그것을 향해 과감하게 방향을 틀 수 있는 힘을 주고, 우리 가족의 삶에 예상치 못한 변화가 찾아올 때면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줄 것이다.

 

월급날 읽고 싶던 책을 한 권 사서 보는 정도의 사치를 부리고 있을 뿐이다.

 

단순한 삶이 나를 치유했다.

 

내 마음이 건강해져서 소비가 준 것인지, 아니면 소비가 줄어 내 마음이 나아진 것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서로 좋은 영향을 주고받은 것은 확실하다.

 

카드값을 0원으로 유지하기 위해선 반드시 예산에 기초한 삶을 살아야 한다. 예산 내에서 돈을 사용하는 것, 즉 내 삶에 또 하나의 경계를 만들어두는 일이 필요하다.

 

예산이 있는 삶은 생활을 조심스럽게 만든다. 예전의 내가 봤다면 '소심해! 구차하다!'라고 말할 정도다. 장을 보러 가기 전에는 꼭 리스트를 적고 대략적인 비용을 계산해둔다. 예산이 10만 원이면 그 예산을 지키자고 계속 생각한다. 못 보던 물건이나 신기한 것이 있어도 이것저것 쓸어 담고픈 마음은 누르고 심호흡한다. 그런 뒤 리스트에 있는 물건만 담는다. 아이와 함께 외출을 할 때는 항상 주스와 간식을 들고 나간다. 옷장과 냉장고 안도 늘 정리한다.

일주일 동안 부지런히 집밥을 해 먹으면 장 본 것이 모두 사라지면서 냉장고가 빈다. 계란도 당근도 양파도 하나 없이 비워진 식료품 바구니를 보면 "이번 일주일도 잘 살았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주말 아침에는 다 같이 카페에 가서 가성비 좋은 브런치 메뉴를 시켜 나눠 먹은 뒤, 장을 봐서 돌아온다. 외식 두 번 할 것을 한 번으로 줄여 고급 한식당이나 일식당에 가기도 하고, 생일에는 비상금을 사용해 근사한 레스토랑에 가기도 한다. 아이는 장난감보다 박스를 잘라 물감을 칠하며 노는 것을 더 좋아하고, 내가 만들어주는 감자튀김을 밖에서 먹는 음식보다 더 좋아한다. 예산 안에서 사는 조심스러운 생활 속에도 행복한 순간들이 곳곳에 있다.

 

짐을 싸며 울던 그 시간을 기억한다면 짐을 늘리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 결국 필요를 만들어내는 것은 나다. 어떻게 하면 필요를 만들어내지 않을 수 있을까?

 

SNS를 끊는다

내가 생각하는 가장 쉽고도 어려운 방법은 미디어에 노출되는 시간을 줄이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광고와 미디어에 노출되어 있다. 광고는 소비를 촉진하기 위해 온갖 전문가들이 모여 빚은 작품인 만큼, 우리의 마음이 동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너무도 자연스럽게 없던 필요마저 생긴다.

저녁마다 눈을 씻어줘야겠다는 생각이 생전 처음 든 것도, 비누 하나만으로도 머리부터 발끝까지 잘 씻으면서도 샴푸나 클렌징 제품을 자꾸 들었다 놨다 하는 것도 모두 광고와 미디어의 힘이다. 그 유혹을 이겨낼 힘이 없다면 아예 과감히 끊는 것도 방법이다.

나는 인스타그램을 지웠다. 뭔가 궁금할 때 잠시 설치해서 보는데, 이때 친구들 근황도 빠르게 훑고 얼른 지운다. 그 짧은 몇 분 사이에도 자극을 받는다. 고급 호텔에 간 소식을 올린 친구, 멋진 집 사진을 올린 친구의 게시글을 보면 부럽고 내 삶이 초라해 보이기도 한다. (소비단식을 하기 전에는 밤에 그렇게 한참 SNS를 하다가 쇼핑앱을 열곤 했다.) 지금은 짧게 보고 고개를 저은 다음, 곧바로 다른 일을 시작한다. 여기서 고개를 저었다는 것은, 실제로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는 것이다. 좀 웃기지만 정말 효과가 좋다. 어떤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으면 고개를 흔들어보자.

 

쇼핑앱 여는 습관을 버린다

습관적으로 쇼핑앱을 열지 않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했다. 나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소비를 했던지라 스트레스 관리를 위해 병원도 열심히 다니고 쇼핑앱이 열고 싶어질 때면 책이나 글을 읽으며 불안이나 긴장을 해소하려고 노력했다. 소비단식을 유지하는 지금도 의식적으로 쇼핑앱을 멀리한다.

 

온라인 쇼핑몰 장바구니에 물건을 담아두지 않는다

소비단식 초반에는 사고 싶은 물건이 있으면 장바구니에 담아두곤 했는데 이제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식료품 등은 필요한 것들을 메모한 뒤에 오프라인에서 장을 보기 때문에 그럴 필요가 없다. 사실 장바구니에 담게 되는 물건 대부분은 있으면 좋은 것이지, 꼭 필요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어떤 일이 실제로 일어나려면 거쳐야 하는 단계가 필요한데, 온라인 쇼핑몰에서 장바구니에 담아 사는 것은 실제로 구입하러 가는 것보다 품이 적게 든다. 이렇게 쉽고 편리해서인지 장바구니에 담아둘 때에 과소비하는 비율이 높다고 느꼈다. 한번 이렇게 느끼고 나니, 아무리 가지고 싶은 물건이 있어도 장바구니에 담지 않게 된다. 며칠이 지나면 그 물건에 대한 필요가 사그라들거나 잊히고, 결국 사지 않아도 괜찮아진다.

 

정리정돈을 한다

소비단식을 유지할 때 또 한 가지 중요한 습관은 정리정돈이다. 앞에서 옷을 정리하며 알게 됐는데 정리가 중요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필요한 물건을 쉽게 찾고 2. 얼마나 남았는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내게 필요한 물건들이 어디에 얼마나 있는지 알면 생활의 스트레스가 준다. 나는 소질이 없다고까지 느낄 정도로 정리정돈에 능숙하지 못하지만, 그래도 정리를 시작한 뒤로는 줄무늬 티셔츠를 못 찾아서 그와 비슷하게 생긴 일곱 번째 옷을 사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작은 성취 만들기

소소하지만 확실하게

마음이 허전할 때, 내 삶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질 때 뭔가를 사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돌아보면 오랜 시간 공부를 할 때 가장 힘들었던 점도 장기간 성취가 없는 상태를 견디는 것이었다. 육아를 하면서도 마찬가지였다. 마감일도, 뚜렷한 성과도 보이지 않는 일들을 계속하다 보니 결국 마음이 지쳤다. 빈 마음을 소비로 채우려 했다. 소비는 내가 이룰 수 있는 가장 쉬운 성취였다.

소비가 아닌 다른 크고 작은 성취들이 마음을 채울 때 뭔가를 사고픈 마음도 자연히 줄어들었다. 소비단식을 유지하기 위해, 앞으로도 소소하지만 확실한 성취를 만들어가려고 한다.

 

성취 리스트를 만든다

매일 성취할 수 있는 작은 미션들을 적은 리스트를 만들었다. 정말 단순하다. 영양제 먹기, 하루 10분 이상 걷기, 샐러드 먹기, 감사일기 쓰기, 책 한 페이지 읽기 등으로 크게 에너지가 들지 않는 일들이다. 노트에 목록을 적고, 미션을 이룰 때마다 완료 표시를 했다. 그 순간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다. 이렇게 조금씩 읽은 책이 1년에 어느새 열두 권이 되었다. 영양제도 놓치지 않고 잘 챙겨 먹었다. 걷는다는 목표는 아이를 등원시키며 채웠고, 감사일기는 일주일에 적어도 두세 번 정도는 쓸 수 있었다.

매일의 좌절이 쌓여서 깊은 마음의 병이 된다. 반대로 매일의 작은 성취들은 모여 마음을 채우고 튼튼하게 한다. 소비단식 중 넘어지고 실패도 겪었지만 이 작은 성취들 덕분에 포기하지 않고 완주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기록한다

소비단식 일기를 브런치에 발행하는 것도 나에게는 소중한 성취였다. 글이 쌓여가는 느낌이 좋았다. 작가가 되는 길에 한 걸음 다가간 기분이 들었다. 혼자 출간 계획도 상상하며 작은 즐거움을 느끼기도 했다.

사소하더라도 좋은 일, 뿌듯한 일들은 늘 나만의 작은 성취로 기록했다. 일주일치 장을 꼼꼼히 봐서 기간 내에 다 먹었을 때도, 손수 약과를 만든 순간도 기록했다. 아이가 알파벳을 모두 다 익혔을 때, 스스로 화장실을 다닐 수 있게 된 순간도 기록하고 표시했다. 읽은 책들을 기록했고 일기 쓴 날들도 적어두었다. 소비단식에 도전한다면 일상을 지탱하는 성취들을 기록으로 남겨두길 추천한다. 기록처럼 눈에 보이는 결과들이 있을 때, 소비단식을 유지하기 더 쉽다.

 

다이어트를 할 때 요요가 오는 원인 중 하나는 '다시 또 빼면 되지'라는 생각이다. 다이어트가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잊고 원래대로 돌아가려는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소비 유혹이 강렬한 장소는 가급적 피하려고 한다.

 

문제는 타인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있다. 내가 왜 그렇게 타인의 시선에 신경을 쓰는지 잘 들여다보고 그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다만 유달리 만날 때 신경이 쓰이는 사람들이 있다. 소비단식 기간에는 그런 이들과의 만남을 가급적 자제했다. 나의 소비단식에서 중요했던 키워드를 뽑아보면 이렇다.

타인의 시선, 온전한 나, 용기, 포기하지 않음

이 키워드들을 합치면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운 온전한 나' 그리고 '소비단식을 지속하고 포기하지 않을 용기'가 된다.

나의 소비단식은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기 위한 노력'이라 표현해도 과언이 아니다. 있어 보이고 싶은 이상과 욕망이 카드값 500만 원을 만들었다. 그런 나를 직면하고 인정하고 나서야 빚, 카드값, 나쁜 소비습관에 대한 실마리도 풀리기 시작했다.

좋은 소비습관들이 몸에 더 자리잡도록 앞으로도 나를 제대로 바라보고 나아갈 것이다. 그리고 늘 그랬듯,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 시작할 것이다. 소비단식이 더이상 필요하지 않을 그날, 내가 어떤 글을 쓰게 될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벅차오른다. 자유롭고 온전한 나를 만날 미래를 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