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 단정한 반복이 나를 살릴 거야(봉현)
그토록 지루하고 지겹던 시간이 나를 성장시켰다. 글쓰기와 그림 그리기는 여전히 어렵고, 혼자서 1인분의 살림을 꾸려나가기도 만만치 않다. 청소는 귀찮고, 돈벌이는 막막하며, 때로 외롭고 불안하다. 나를 제대로 먹이고 씻기고 재워야 하는, 즉 잘 살아야 한다는 모든 책임을 이따금 놓아버리고 싶었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내가 나를 지켜내는 방법은 단순했다. 할 수 있는 일을 계속하는 것. 비록 오늘 하루가 별 볼 일 없었더라도, 돌이켜보면 삶은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왔던 것 같다. 생의 의미가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누구를 사랑하는지. 그 대답은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에 깃들어 있었다. 보송한 수건 한 장, 시원하게 들이키는 물 한 컵, 한 걸음 내딛는 산책, 한낮의 따사로운 햇볕, 마음을 밝히는 문장 한 줄 그리고 바로 지금의 나.
삶은 여전히 두렵지만 앞으로 이어질 뻔한 날들도 계속해서 살아보고 싶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이 하루를 생의 전부처럼.
계획적이지만 즉흥적으로, 체계적이지만 유연하게, 성실하지만 자유롭게
모든 것을 알 필요도, 모두와 잘 지낼 필요도, 내 모든 것을 다 내보일 필요도 없다.
모든 걸 이해할 필요도, 억지로 받아들일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자 마음이 편해졌다. 걱정과 달리 감당할 수 없는 큰 문제는 일어나지 않고, 기대와 달리 엄청난 행운은 찾아오지 않는다.
하지만 당장 이루지 못했다고 목표를 내버릴 필요는 없다.
요령껏 살고 마음껏 사랑하기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살아라" 같은 크고 무서운 말보다는 "할 수 있는 만큼만 하자" 같은 작고 귀여운 말과 함께 매일 실천하는 힘이 더 크다.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아니고 성취감도 예전 같지 않은데, 이 일을 계속하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바로 시간이다. 그 안에 하루하루를 연결하는 가늘고 긴 감각이 있다. 결과보다 과정에서 얻는 확실한 기쁨, 가치 있는 것을 만들고자 하는 긴장감, 제대로 살고 있다는 생동감이 촘촘하게 이어져 있다. 아침에 눈을 떠서 할 일이 있다는 건 내 시간의 쓸모를 느낄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모든 체력과 정신력을 끌어모아 시간에 채워 넣는다. 돈 대신 시간을 택한 나는 일정을 요령껏 조절해 여행을 길게 다녀오고 하루 일과를 마음대로 바꾼다. 그 대신 내가 누릴 수 있는 자유의 양만큼 해야 할 일을 엄격하게 해낸다. 돈이나 성취에 대한 크나큰 욕심을 내려놓고, 작은 즐거움에 마음을 쓴다.
나를 절대 배신하지 않는 것들, 예를 들어 카페 안에 흐르는 멋진 노래를 발견하는 것, 마음에 쏙 드는 물건을 사서 잘 쓰는 것, 내게 어울리는 옷을 입는 것, 공부해서 소소한 시험에 합격하는 것, 새로운 언어와 기술을 배우는 것,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읽고 메모하는 것, 자전거를 타고 골목을 돌다가 분홍색 노을을 마주하는 것, 종일 머리를 쥐어짜며 쓴 글을 귀가하는 길에 독자의 마음으로 다시 읽는 것. 그리고 그 시간들을 계속 기록하는 것. 아, 생각만 해도 기분 좋아지는 일들이다.
모로코를 여행할 때 매일 밤 은하수를 올려다보면서 전자책에 담아간 <우주형제>라는 만화책을 봤다. 꼭 달에 가자며 밤하늘의 별을 보고 약속했던 형제가 우주비행사가 되는 이야기다. 강연장에서 눈을 반짝이며 맨 앞자리에 앉아 있는 형제를 향해 현직 우주 비행사가 말한다. 우주 비행사라는 꿈이 아주 크고 거대한 문으로 보여서 대부분 사람들은 절대 열 수 없을 거라 지레 짐작하고 포기한다고. 하지만 크고 거대한 문이라는 것은 사실 존재하지 않으며 우리는 눈앞의 작은 문만 열면 된다. 그 문을 열면 또 다른 문을 열고...... 그렇게 작은 문을 계속 열다 보면 어느새 당신은 우주 한가운데 있을지도 모른다고. 형제는 체력 테스트, 팀워크 테스트, 무중력 훈련과 예상치 못한 고난을 맞닥뜨린 끝에 결국 우주에 간다. 작은 문과 작은 문이 더해져 꿈이라는 큰 문을 활짝 연 것이다.
모두가 문을 열면서 산다. 모양과 무게도, 여는 방식이나 속도도 제각기 다르다. 각자 이루고 싶고 잘하고 싶은 것들이 있다. 간절할수록 어렵고 막막하다. 하지만 결과는 생각하지 않는 편이 낫다. 내가 쓴 책이 출간하자마자 100만 부가 팔리는 베스트셀러가 되기를 꿈꾸지만, 지금은 그저 한 시간 더 글을 쓸 뿐이다. 한 권의 책이 결코 끝이 아니기에 다음을 위한 글을 쓴다. 아무것도 아닌 순간도 어떤 의미로든 남으리라 믿는다. 의미 없던 단어가 시간을 따라 차곡차곡 쌓이다 보면 언젠가 새로운 가치를 지닌 무언가가 되는 것을 이미 겪지 않았던가.
앞에 있는 문이 꿈쩍하지 않더라도 혹여 문을 잘못여는 허튼 짓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두려워도 내가 할 수 있는 건 문을 열기 위해 노력하는 일뿐이다. 아직도 열어야 할 문이 많지만 당장은 바로 앞의 문을 열기로 한다. 힘에 겨우면 잠시 쉬기도 하면서, 계속, 계속 연다. 비행사의 꿈을 이룬 형제처럼 언젠가는 나의 우주에 가 닿기를 염원하면서.
안정된 감각으로 '오래 일하기'
쉬는 것도 나 자신을 돌보는 것임을 인지한다. 오래 오래 일하며 살고 싶다. 그 무엇보다 나 자신을 위해.
적당한 긴장감과 무료함, 무난한 리듬 속에서 일정한 속도로 달리는 기분을 만끽했다.
'잘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사고 나지 않는 것. 가르쳐주는 대로 천천히 하는 것. 지켜야 하는 것을 지키는 것. 무리하지 않고 조심하는 것'
인생의 성장에 정해진 때란 없다. 자전거가 익숙해졌듯이 시간이 지나면 운전도 일상이 되어 무덤덤해지는 날이 오겠지. 그 사이에 여러 행복과 경험들이 겹겹이 내 안에 쌓이겠지. 그러고 나면 또 다른 도전과 함께 새롭게 배우고 몇 번이나 실패하고 여러 번 좌절할 것이다. 예전처럼, 지금처럼, 새로운 삶의 자극과 성장을 꿈꾼다. 아, 죽을 때까지 인생은 계속 성장기일 것 같다.
시간과 에너지를 잘 분배해야 한다. 해야 할 일은 정해져 있는데 에너지야말로 한정되어 있으니까. 엉뚱한 일에 써버리면 정작 해야 할 일을 못 하니까. 거실 청소를 하면 화장실 청소는 다음으로 미룬다. 하루 만에 해치우는 대청소 같은 건 애초에 불가능하다. 예상치 못한 일이 생길 수 있으니 여분의 에너지를 조금 남겨둔다. 하루에 쓸 수 있는 에너지 용량이 동일하다면 좋을 텐데, 안타깝게도 매일 다르다. 잠을 못 잔 날에는 배터리 40퍼센트, 영양제가 효과 있는 날에는 배터리 80퍼센트, 생리 중일 때에는 배터리 2퍼센트. 100퍼센트인 날은 없다.
무엇보다 내 몸과 마음을 괴롭히지 않는 한도 내에서 한다. 일하는 도중에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을 예상해 쉬는 시간까지 붙여 넣는 것까지가 내 일정이다.
할 수 없는 것은 놔두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는다. 그리고 해나간다. 절대 안 된다는 것을 재확인하게 될지라도 고개를 빳빳이 들고 허리를 펴고 한 걸음씩 걷는다.
실패하지 않고 해낼 수 없다면, 차라리 실패도 계획의 일부라고 합리화하면 어떨까. 계획에 실패를 넣으면 좌절하지 않는다. 계획된 실패였으니까, 성공하기 위해 실패했다고 생각하면 정말 괜찮아진다.
밤마다 책상 앞에 앉아 오늘의 성취를 기록하고 실패에 밑줄을 그어보자. 그리고 내일의 계획을 적어보자. 계획은 자주 지워지고 다른 단어로 교체되겠지만, 할 수 있는 일로 채워본다. 그건 내일의 나에게 오늘의 내가 전하는 인사. 오늘의 나는 실패했지만 내일의 나에게 성공을 부탁하면서 일기장을 덮는다.
힘들어도 하나씩 하면 못 할 일은 없다. 'I can do it'이라는 뻔하고 단순한 문장의 위대함. 말 그대로 나는 뭐든 다 할 수 있다. 틈틈이 친구들이 집에 들러 커다란 쓰레기를 같이 옮겨주거나 힘내라며 오렌지주스와 단것을 주고 갔다. 손이 닿지 않는 높은 위치에 못을 박을 때에는 올라선 의자를 단단히 잡아주고, 혼자 했으면 짜증이 났을 조립 실수도 함께하니 깔깔 웃어 넘길 수 있었다. 그야말로 'We can do it'이다.
"우리가 100년을 산다면 우리 의지대로 사는 기간은 딱 10년이야. 그래도 10분의 1쯤은 내 마음대로 살아봐야 하지 않을까?"
가슴이 덜컹했다. 생각해보면 10년 아니 그보다 더 오랜 시간 동안 내 마음대로 살고 있었다. 능력의 한계와 경제적 여유와는 별개로 좋아하는 공간에서 좋아하는 것들에 둘러싸여 원하는 일을 해왔던 것이다.
지난 열흘간 누구의 간섭도 없이 오직 내 결정만으로 버리고 채운 것들처럼, 주변 친구들의 변화에 불안해하지 않고 나는 나대로 잘 살고 싶다. 그리고 인생을 비우고 채우는 이 모든 과정이 친구의 전화 한 통에 있었음을 깨닫고 무릎을 탁 쳤다.
새로운 공간에서 할 수 있는 새로운 일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때마침 선선한 바람이 집을 관통하며 불어온다. 계절이 변하고 있다.
하루의 시작이 완벽하지 않아서 오늘 하루를 포기하고 싶을 때, 정해진 규칙과 루틴을 지켜야 한다는 강박에 매달릴 때,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끝내지 못하는 스스로를 습관적으로 책망할 때가 있다. 그럴 때에는 대충이라도 해보는 것이 어떨까. 설거지가 하기 싫으면 물로 대충 헹궈 싱크대 위에 쌓아두고, 침구를 교체할 힘이 없으면 룸 스프레이를 대충 뿌리고 자기. 원두를 갈아 커피를 내려 마시기 귀찮으면 여행용 드립백을 꺼내 대충 마시기. 일하기 싫으면 메일함의 급한 연락만 먼저 해결해놓기.
완벽할 필요는 없다고 스스로 되뇌면서 백 마디 투정과 수많은 핑계도 대보자. 그렇게 대충 하다 보면 어느새 하나씩 채워져 완벽에 가까운 때가 올 것이고, 그럼 또 아무렇지 않게 끝까지 해내고 있는 나를 발견할 것이다. 무기력하고 모든 게 귀찮아지는 때가 다시 오더라도 상관없다. 스스로에게 물어보면 된다.
"지금 할 수 있는 게 뭘까? 그거부터 해볼까? 안 되겠으면 안 해도 되고, 못 하겠으면 못 해도 돼. 할 수 있을 때 하면 되니까 그때 하자. 별거 아닌 것부터 해보자. 대충, 해보자."
그림을 평생 그려온 나도 한동안 그리지 않으면 손이 굳는다. 매일 단련하지 않으면 안 되는 운동선수와 다를 바 없다. 그림은 머리보다 손에 익은 감각이 90퍼센트다.
성취가 소리 없이 쌓였다.
"그래, 어디까지 힘들 수 있는지 보자. 무너질 대로 무너져 보자. 금이 가고 부서지는 것들은 이 기회에 다 갖다 버릴 거야. 다 떨어져 나가면 속살이 드러나겠지."
그동안 힘겹게 쌓아온 경험은 분명 내 안에 남아 있을 거라고 믿는다. 과거의 내가 견디고 지켜온 시간은 허무하게 무너질 만큼 어설프지 않다. 내 안에 잘 여문 속살이 하얗게 빛날 테다. 천천히 바닥을 기어 벽을 짚고 일어난다. 무너지는 건 한순간의 절벽이지만 올라오는 건 더디고 느린 계단이다. 어제 또 굴러떨어졌지만 오늘 한 걸음 올라선다. 그 경험만으로 충분하다. 시인 엘렌 코트는 말했다. 일어나야 할 모든 일은 일어날 것이며, 어떻게든 우리는 그것들을 겪어야 할 것이라고. 그러니까 물 위에 가만히 눕듯, 흘러가듯 살라고.
그렇게 나는 완벽주의자가 아닌, 경험주의자로 살아갈 것이다.
"지금 당장 고민을 해결할 필요는 없어. 바닥을 보고 걸어도 괜찮아. 시간이 지나면 다시 고개를 들고 이처럼 푸른 풍경과 따스한 빛을 느끼는 날이 올 거야. 계절은 다시 돌아오고, 나도 계속 걸을 테니까."
요즘 나는 삶의 만족도가 높다. 특별한 일이 있는 건 아니다. 오히려 이번 달 일이 없어서 다음 달 수입은 0원으로 예상되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하다. 커피를 두 잔씩 마시기도 하고, 2+1 따위 신경 쓰지 않고 주스를 사고, 똑같은 티셔츠를 두 장씩 사고, 몇 년째 고민만 했던 조명도 구입했다.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사 먹는다. 가고 싶은 곳이 있으면 가본다. 무리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망설이지 않는다. 좋아하는 공간에 앉아 시간을 보내고 취향에 둘러싸여 있다 보면 마음에 드는 글도 쓸 수 있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기분이 좋아지고, 예쁜 물건을 보면 기분이 더 좋아진다.
아침에 느지막이 일어나 집안일을 하고 밥을 차려 먹고 외출 준비를 한다. 약속도 없고 만날 사람도 없지만 나를 깨끗이 단장한다. 반듯하게 다림질한 티셔츠와 편한 바지를 입는다. 새로 산 청색 모자와 아끼는 분홍색 컨버스화는 어떤 옷에도 잘 어울린다. 노트북과 다이어리, 텀블러와 책 한두 권, 가볍게 걸칠 재킷, 핸드크림과 립밤 등을 꼼꼼히 챙긴 백팩을 메고 집을 나선다.
계절과 날씨에 따라 유튜브 알고리즘이 추천해주는 플레이리스트를 들으며 걷다 보면 익숙한 거리도 여행지처럼 느껴진다. 카페에서 글을 쓰다가 배가 고프면 밥을 먹고, 공원 산책로를 따라 집으로 돌아간다. 집에 오면 가방을 내려놓고 잠시 책상에 앉아 '오늘의 나'를 그린다. 씻고 피부를 정돈한 뒤 침대에 누워 책을 읽다가 잠을 청한다.
별다른 일 없이 똑같은 매일, 단정한 반복, 나쁜 일 없는 하루, 혼자만의 평화, 소소하고 잦은 기쁨. 내일을 기대하며 잠들고, 아침을 맞이하며 기대를 채운다. 그 기대들은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한도 안에 있다. 내 손 안에 쥐어진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것들. 그 이상은 기대하지 않는다.
한때 누군가의 기대 앞에서 망설인 적이 있었다. 잘해낼 수 있을지 두려웠다. 기대한 만큼 실망하는 마음을 아니까.
이제는 내 능력과 체력의 한계를 누구보다 잘 알기에 적당히 몸을 추스른다. 엄청 잘하지 않아도 괜찮다. 할 수 있는 만큼만 해서, 가능한 만큼만 행복하면 된다. 그래서 요즘의 나는 적당히 행복하다. 완벽한 행복이 아니라서 더 좋다.
온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일하고 새벽에 자주 뒤척이는 사람은 먹는 것, 마시는 것, 자는 것 어느 하나 신경 쓰지 않으면 어떻게든 티가 난다. 먹고살기 어려워도 그 사이사이마다 소소한 즐거움과 가뿐한 기분을 챙기며 좋은 방향으로 나를 이끈다.
건강한 음식을 먹고, 예쁜 것을 보고, 아름다운 색을 사진으로 남긴다. 높이 기지개를 켜며 일어나 레몬 차 한 컵을 크게 마시고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일한다. 냉동실에서 아이스크림을 꺼내 먹으며 소파에 누워 쉰다. 선풍기 바람을 쐬면서 영화를 한 편 보고 하루를 마무리한다.
보통의 여름날이 달고 시고 노란 맛과 함께 지나가고 있다. 이 평범한 날들과 여름 입맛이, 나는 제법 시원하고 좋다. 그러니까 더위랑 외로움 먹지 말자. 대신 잘 자고 잘 챙겨 먹자.
어떤 나여도 괜찮은 것 같다.
식사와 수면을 신경 쓸 것.
사람을 적게 만나고, 생각을 적게 할 것.
세상의 시간에 맞춰 생활할 것.
매일 걷고, 햇볕을 쬐며, 바람을 마주할 것.
운동할 것.
읽고 쓰고 그릴 것.
잘 살려는 노력을 부끄러워하지 말 것.
기록해둔 것처럼 살려고 노력한다. 사람들도 자신이 얼마나 노력하고 실패하고 도전하며 사는지 당당히 자랑하며 살았으면 좋겠다.
매일 글을 쓰고 있지만, 정작 하고 싶은 이야기들은 쓰지 못했다. 못다 한 이야기들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사라진 것이 아니라 숨어 있을 것 같다. 꿈처럼 강렬하고 특별했던 나의 경험들이 사라질 리 없다. 고고학자가 화석을 발굴하듯 이야기의 형태를 다듬으며 살살 꺼내야 한다. 손을 움직여본다. 오늘은 일기를 1,258자나 썼다.
누구나 각자의 방식으로, 다양한 조건 아래에서 치열하게 노력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1만 시간의 법칙을 "조급해하지 말고 꾸준히 합시다" 정도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노력하는 태도 자체를 지켜내며 지난 노력이 헛된 발버둥이었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야 계속할 수 있다. 1만 시간이라는 수치를 채우려 하기보다는,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만큼 현실에 발을 딛고 손을 움직이는 것이 진정한 노력 아닐까. 내가 이루려고 했던 근본적인 이유, 처음 시작했던 순수함, 나를 지탱해주는 사람들의 응원과 스스로에 대한 믿음, 그런 것들이 진짜 법칙이다.
우리의 삶은 1만 시간으로 끝나지 않는다. 1만 시간을 노력하기 위해서는 1만 시간의 게으름과 1만 시간의 좌절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현재의 삶에 '노력한 1만 시간'만큼 '노력하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시간들 또한 분명 의미 있을 거라 믿는다.
딸, 삶이 힘들지. 하루하루 숙제처럼 살지 말고 축제처럼 살아보렴. 그럼 행복할 거야.
엄마의 말처럼 수많은 숙제를 하나하나 해결해가는 과정 그 자체를 축제처럼 느끼기로 했다. 희망보다는 절망이, 기대보다는 포기가 편한 시대를 살아가지만 힘을 내본다.
삶은 결코 힘들기만 한 것이 아니라고. 서로의 존재를 기억하고 좋아하는 사람들을 떠올리며 사랑을 나누자고.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한자리에 모여 어깨동무를 하고 춤추고 노래하는, 땀과 눈물과 웃음이 가득한 진짜 축제를 누리는 날이 올 거라고 믿는다.
오늘도 어김없이 바쁠 예정이다. 할 일을 잠시 미루고 숨을 천천히 고른다. BTS의 노래 <Permission to Dance>를 틀고 방구석에서 혼자 이상한 춤을 마구 춘다. 숙제는 잊고 축제를 즐기는 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은 흘러 나는 조금씩 나아졌다. 그리고 11월의 밤, 거울에 비친 얼굴을 보며 읊조렸다.
"건강해 보여, 행복해 보여. 예쁘고 멋지구나. 좋아보인다. 다행이야. 생일 축하해. 정말로."
살아갈 힘이 생겼다. 사소한 순간에도 행복해하며 진심으로 웃고 잘 자고 잘 먹게 되었다. 흘러가는 계절을 만끽하며 바닥이 아닌 하늘을 자주 올려다 보게 되었다. 혼자서도 무엇이든 할 수 있게 되었다.
무엇이 나를 일어서게 했을까. 어떤 계기나 타인의 도움은 없었다. 나를 다시 괜찮은 사람으로 만든 건 나였다. 외로워도 글을 쓰고, 힘들어도 그림을 그렸다.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었다. 차근차근 집을 돌보고 건강을 챙기며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아름다운 풍경을 자주 보며 별것 아닌 순간들을 꾸준히 기록했다. 다이어리에 묻은 우울의 얼룩들은 단단한 의지가 담긴 단어들로 바뀌어 있었다. 절망 대신 희망을, 고독 대신 자립을, 과거 대신 현재를, 그리고 다음에 올 단어는 노력과 성장이 되기를 빌었다. 가깝고도 먼 미래를 계획하자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런 그림을 그려봐야지.'
'이런 글을 써야지.'
'내년에 이걸 배우고, 내후년엔 저걸 시도해야지.'
'멀리 여행을 가고 또 새롭게 도전해야지.'
이제껏 보낸 생일 중 가장 특별한 날이었다. '이런 사치를 부리기 위해 열심히 돈 벌어야지. 돈은 허튼 데 쓰지 말고 좋은 시간을 사는 데 써야지. 가끔 나에게 상을 줘야지' 같은 결심을 하며 잘 살고 싶다는 마음을 나에게 선물했다. 여전히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지만 한없이 절망하던 지난날의 나에게 꼭 말해주고 싶다.
"인생은 몰라서 두려운 게 아니라, 모르기에 멋지고 설레는 걸지도 몰라."
어떤 시간을 살지, 어떤 사람을 사랑할지, 앞으로 뭘 경험하고 무슨 일을 할지 모른다.
결코 지울 수 없는 엉망진창인 과거를 그대로 두고, 그 위에 꽤 괜찮은 과거를 만들어 덧대어 보기로 했다. 현재는 언제나 과거가 되고, 미래는 늘 현재의 모습을 하고 찾아온다.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은 과거도 미래도 아닌 현재뿐이다.
만약 내 의지로 죽음을 결정할 수 있는 날이 온다면 생이 지겹도록 끔찍해서가 아니라 이미 완벽하게 행복해서, 충분히 멋진 삶을 살았다고 웃을 수 있는 때이기를 바란다. '세상은 아름답고,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했다. 태어나서 다행이었다'라고 느낄 수 있기를. '내가 태어난 날은 삶을 선물받은 날이다, 어떤 것보다 가치있는 선물이었다'라고 말할 수 있기를.
다가올 1년을 또 잘 살아내서, 내년에도 나에게 축하 인사를 전하고 싶다.
"Happy Birthday, to me."
끝은 언제나 시작이다. 시작은 매번 어려웠지만 묵묵히 할 일을 하면 어떻게든 살아졌다. 무슨 일이 있어도 어떻게든 살아가리라는 것을 이젠 의심하지 않는다. 이전에도, 그 이전에도 그래왔으니까.
"사람 일 정말 모른다"라는 말은 내게 희망의 문장이다. 대처할 수 없는 일이 닥쳤을 때 "거봐, 사람 일은 모르는 거라고 했잖아" 하고 호탕하게 깔깔 웃어넘기고 싶다. 그러다 인생 별거 없다며 권태가 찾아오기도 하고, 그런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또 다른 풍파가 찾아올 것이다. 환희나 감흥이 더는 느껴지지 않는다고 절망할 때쯤 알지 못했던 감정과 해본 적 없는 새로운 경험이 덜컥 달려들곤 했으니까. 그래서 삶은 살아보지 않으면 모르는 거라고 하는 걸까. 더 이상 세상을 탓하지도, 사람을 미워하지도, 시간을 의심하지도 않기로 했다.
이유 없는 슬픔을 이겨내려 애쓰지 않고, 그 무엇도 당연하게 여기지 않으면서, 모든 걸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두기로 했다고 읊조렸다. 아직 삶은 지겹도록 길게 남아 있다.
내게 맞는 기본이 무엇인지 아는 일은 생활에 안정감을 선사한다. 취향이라기보다 나의 정체성에 더 가까운 것들.
내가 어떤 것을 좋아하고 내게 무엇이 어울리는지 안다는 것은 나라는 사람을 알아가는 과정과 같다. 나는 검은색과 흰색 티셔츠의 단순함을 좋아하고, 사용감이 익숙한 물건에서 안정감을 느낀다. 비싼 물건일 필요도 없다. 유행하는 것이 아니어도 된다. 내가 좋다면.
예순 살이 넘어도 몰랐던 취향을 알게 되고 좋아하는 것이 새로 생기는구나. 너무 멋진 일이다.
나는 겨우 서른 중반. 웬만한 일에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할 때면 나이 들어 취향이 굳어져버린 탓이라 생각했다. 이제는 알 만큼 알고 다 경험한 사람처럼, 인생 다 산 것처럼. 처음 아이스크림을 맛본 아이의 표정같던 엄마의 얼굴이 머릿속에 계속 맴돈다. 나도 그렇게 아이처럼 늙어가야지. 새로운 경험을 하고, 모르던 나를 알아가면서. 우리 엄마처럼. 배우 이하늬처럼.
아파서 그랬던 거였구나. 내 잘못이 아니었구나. 끙끙 앓으면서 이런 것도 이겨내지 못하는 건 내가 나약한 탓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아픈 게 당연했다. 힘들면 힘들어해야 하는데 그러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아무리 애를 써도 어쩔 수 없는 일이 있기 마련이다. 누구의 탓도 잘못도 아니었다.
개운한 개분으로 몸을 일으켜 청소기를 돌리고, 빨래를 개고, 설거지한 그릇들을 정리하고, 식물에 물을 줬다. 일주일 전에 돌돌 말려 있던 새 줄기가 크고 연한 초록색 잎으로 활짝 펼쳐져 있었다. 샤워를 하고 햇볕에 바싹 마른 깨끗한 티셔츠를 꺼내 입었다. 공원을 산책하며 하늘을 보고 바람을 쐬며 걸었다. 그리고 글을 썼다. 스스로를 몰아붙이지 말자고. 언제나 잘하지 않아도 된다고, 늘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고.
"롤 모델이 왜 필요해. 나는 나같이 살면 돼. 나이가 들수록 삶의 지혜가 생기고 실수가 잦아들지만, 여전히 처음 살아보는 오늘이니 완벽하지 않아도 돼, 그럴 수 있어."-윤여정
스물이든 예순이든 우리는 모두 처음이다. 나이는 시간의 합일 뿐, 수많은 현재가 더해지면서 그려진 인생의 궤적은 길이보다 어떤 모양인지가 더 중요하다.
어른다운 어른이 되고 싶다. 언젠가 나처럼 삶을 감당하기 힘든 누군가가 "당신이라도 단호하게 말해줄래요?"라고 요청했을 때 자신 있게 말 한마디를 내놓을 수 있는 어른이 되면 좋겠다. 그러면서 가끔은 무너지고 울며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다. 처음 경험하는 나이에 낯설어하는 시간이 수없이 이어질 테니까. 우연이든 운명이든 당신과 내가 서로에게 어른이 되어주기도 어린아이가 되어주기도 하면서 눈을 마주칠 수 있다면, 세상의 어느 누구도 혼자가 아닐 것 같다.
삶에 다음이란 건 없다. 할 수 있을 때, 손에 쥘 수 있을 때 놓치지 말아야 한다.
몸의 수분이 마를 만큼 실컷 울었다면 그 시간을 보내주자. 충분히 아프고 힘겨웠으니 이제는 일어날 차례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냥 그 시절의 인연이었고, 우리는 분명 최선을 다했다는 것을. 누구 한쪽의 잘못도 아니고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음을.
"후회하지 말자, 좋았다면 멋진 것이고 나빴다면 경험인 것이다"라는 문장을 곱씹어본다. 인간관계는 유난히 좋은 것과 나쁜 것이 같이 온다. 행복과 불행이 공존하는 진심 어린 사랑을 했다. 함께하는 찰나가 얼마나 특별한지 깨달았다. 이별과 아픔을 통해 내가 얼마나 미숙했는지 뼈저리게 반성했다.
모든 게 혼란스러웠던 어린 날은 끝났다. 이제는 부족함을 인정하고 포기하는 법을 안다. 물론 한계를 모르고 가까워지는 관계도 여전히 희망한다. 그렇기에 더더욱 변하고 성장하겠다고 다짐한다. "변하지 않는 건 없어"라는 말은 절망의 문장이 아니다. 나빴던 것 또한 좋아질 수 있음을 뜻하는 희망의 문장이다.
우리는 언제나 변화 속에서 살기에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라고 단언할 수 없다. 당연한 건 없다. 당신이 내 곁에 있는 것이 절대 당연하지 않은 것처럼. 소중한 것을 소홀히 했던 과거의 나를 다그치며 소중한 사람들을 하나하나 손가락으로 세어 본다.
변해야 하고 변할 수밖에 없다면 그 변화의 방향을 내 의지로 선택하려 한다. 자기 혐오와 합리화로 똘똘 뭉친 자신을 되짚어 보게 하는 건 결국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제멋대로인 내 곁을 지켜주는 사람들과 더 이상 이별하지 않고 살아가고 싶기에 더 좋은, 더 따뜻한, 더 나은 사람이 될 거다. 이 시절의 이 인연을 다음 시절까지 계속 가져가고 싶다. 그게 우리의 의지가 담긴 진정한 시절인연이라고 믿으면서.
영화 <포레스트 검프>를 볼 때마다 나는 포레스트가 되고 싶어진다. 그는 단순하다. 눈치가 없고 생각이 짧아 보일 수도 있지만, 그 단순함은 언제나 순수한 진심이기도 하다. 달리고 싶으면 달리고, 약속했기에 약속을 지키고, 사랑을 느끼기에 사랑을 한다. 마음이 시키는 대로 행동하고, 삶이 흘러가는 대로 자연스럽게 세상의 흐름에 몸을 맡긴다.
포레스트는 명예, 성공, 돈이 아닌 우정, 사랑, 행복에 더 집중한다. 인생에서 마주하는 어떤 순간도 쉽게 지나치지 않는 동시에 순리에 맞게 과거로 흘려보낸다. 그렇게 마주친 수많은 우연은 마치 운명처럼 이상하리만치 놀라운 결과를 가져왔다. 나는 나에게도 찾아올 놀라운 삶을 상상하며 영화 대사를 자주 곱씹었다.
운명은 스스로 만들어가는 거란다. 신이 네게 주신 것을 가지고 최선을 다할 뿐이지.
우리의 삶도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인생이 달라질 수 있어.
살다 보면 사소한 것부터 큰 것까지 수많은 선택을 하게 된다. 말과 행동, 만남과 헤어짐은 선택에 따라 나비효과처럼 전체 삶에 영향을 끼쳤다. 그렇게 수십 번씩 흔들리는 시간 속 수많은 고민과 선택에 어떤 힘이 작용했을지 잘 모르지만 결국 내 삶은 나에게 달려 있었다. 그래서 운명이란 건 굳이 알 필요가 없다.
인생은 초콜릿 상자 같은 거란다. 무엇을 집을지는 아무도 몰라.
손해 보지 않으려고, 실패하지 않으려고, 후회하지 않으려고 망설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선택의 폭은 좁아졌다. 포레스트는 대체 어떻게 눈앞의 삶에만 집중할 수 있었을까. 달리고, 여행하는 그의 순간순간에 포레스트를 사랑하는 엄마의 말이 늘 단단하게 새겨져 있었기 때문일까.
백사장에 새하얀 빛이 비치고, 얕고 느린 물결이 흘러 들어와 해안선이 바뀌는 것처럼, 사소하고 작은 일들이 쌓여 나도 모르게 큰 변화를 만든다.
가벼이 내뱉은 말 한마디, 쉽게 사고 버린 물건들, 자고 일어나는 시간, 산책하며 모은 발걸음 수, 집에 드는 햇살 농도 같은 것들도 마찬가지다.
나의 낡은 감정 지갑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여닫으며, 가끔 익숙하고 가끔 낯선 감정들과 함께 인생을 계속 탐험하기로 했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 우리는 매일 달라진다.
무엇을 하고, 무엇을 먹고, 무엇을 입어야 할까. 어떤 하루, 어떤 해, 어떤 일생을 보내야 할까.
몇 달에 걸친 그림 강연을 끝냈다. 올해는 내 인생 최고로 바쁜 해였다. 사람들에게 그림 그리는 대단한 노하우를 알려주기보다 지난 이야기를 들려주며 그림의 즐거움과 의미를 나누려고 했다. 여행하듯 살아가자는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 비행기를 탔다. 여행지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은 시간을 보낸다. 소박한 식사를 하고, 따뜻한 차 한잔을 내린다. 작은 책상과 등을 기대앉을 의자만 있다면 충분하다. 노트와 펜을 꺼내서 일기를 쓰고 그림을 그린다. 머물 수 있는 곳이 있다면, 어디서든 자유로울 수 있다면, 나는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다.
"파란만장해도 괜찮으니, 삶이란 살아볼 만한 것이구나."
자주 그리고 많이 웃을 것,
현명한 이에게 존경받고 아이들에게서 사랑받는 것,
정직한 비평가의 찬사를 듣고 친구의 배반을 참아내는 것,
아름다움을 식별할 줄 알며 다른 사람에게서 최선의 것을 발견하는 것,
건강한 아이를 낳든 한 뙈기의 정원을 가꾸든 사회환경을 개선하든 자기가 태어나기 전보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놓고 떠나는 것,
이 땅에 잠시 머물다 감으로써 단 한 사람의 인생이라도 행복해지는 것,
그것이 진정한 성공이다.
-랠프 월도 에머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