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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사] 나이 서른에 책 3,000권을 읽어봤더니(이상민)

아름다운 존재 2023. 12. 14. 16:46

책을 읽을 때는 언제나 본질을 중시하면서 볼 필요가 있다. 구체적인 문장으로 나타난 표현보다는 그 문장 안에서 삶의 본질을 꿰뚫는 메시지를 얻어내야 한다.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내 삶의 행복은 무엇일까?", "우리 사회는 어떻게 바뀌어야 하고,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반복되는 역사 속에서 나는 어떤 운명을 만들어갈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내야 한다. 그것이 책의 역할이고, 책을 읽은 독자가 해야 할 일이다.

 

진짜 독서는 나의 현실을 뛰어넘어 사람을 살리는 것이고, 시대를 변화시키는 것이며, 나아가 사람을 키우는 것이어야 한다. 물론 이것은 나를 희생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나도 잘 살아야 한다. 그러나 나에게만 국한되어서는 안된다. 모두를 보고 가야 한다.

 

알베르 카뮈는 <시지프의 신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인간은 한계 상황에서의 항복이 아니라 한계 상황에서의 지속을, 삶의 순수한 불꽃 이외의 모든 것에 대한 무관심을, 주어진 모든 것을 필사적으로 불태우며 최대한으로 성실하게 살려는 노력을 행하며 살아야 한다."

 

책은 그 의미를 변형해서 받아들여야 한다. 저자가 한 말도 나의 상황에 맞게 다르게 받아들여야 한다. 왜냐하면 저자가 의도한 뜻이 비록 A라고 하더라도, 나에게 도움이 되는 것으로 재창조하여 B로 받아들이는 것이 훨씬 더 유익하기 때문이다. 텍스트의 사전적 의미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 공부를 하듯 책을 보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중요한 건 내 삶이다. 내 삶을 중심에 놓고 책을 받아들여야 한다. 나의 삶을 바꾸는 독서, 나아가 세상을 바꾸는 독서를 해야지 형식에 집착하면 안 된다. 인생과 세상을 위한 유연함이 독서에는 반드시 필요하다.

 

독서는 한마디로 인생의 내공을 쌓는 기본적인 수단이다. 독서를 통해 인간은 그야말로 자신의 삶을 제대로 살아갈 수 있는 힘과 능력을 갖추게 된다. 즉 독서는 성장을 위한 디딤돌이다.

 

몰입 독서를 한 다음에는 반드시 쉬어야 한다. 헬스클럽에서 근육 운동을 할 때 운동을 일정기간 한 이후에는 쉬어야 하듯, 독서도 그렇다. 쉴 때 이런저런 책과 관련된 다양한 생각을 많이 하고, 우리 사회와 내 인생을 살피고, 사람들을 관찰하면서 생각을 채워나가야 한다. 그러면서 얻게 된 내용들을 현실과 인생에 적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예를 들어 저자의 생각들을 정리해보기도 하고, 저자의 주장에 질문을 던져보기도 한다. 나라면 어떻게 대응했을까를 생각해보기도 하고, 책에서 말하고 있는 상황에서 내가 살고 있다고 상상해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야마자키 도요코가 쓴 소설 <불모지대>를 보면 상상하기 힘든 가혹한 상황들이 나오는데, 그런 것들을 보면서 오늘 내가 겪고 있는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위안을 받을 수 있다. 또 인간의 초인적인 능력들을 보면서 내 능력이 도대체 어디까지인지 시험해보자는 생각도 할 수 있다.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해보면 삶에 도움이 된다. 생각을 많이 한다는 것은 그런 상황에 대한 시뮬레이션을 해보는 것으로, 이런 연습을 통해 남들보다 훨씬 더 깊이 있는 생각으로 깊은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왜 대학교수들이 전문가로 통하는가? 그들은 한 분야를 깊이 있게 파고들어감으로써 전문가가 되었고, 그 전문기술을 바탕으로 다른 부분까지 통하게 되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을까? 하나의 분야에 정통하게 되면 자신의 관점과 철학이 생기고, 그렇게 되면 다른 부분도 자신의 관점과 철학으로 일관성 있게 이야기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책도 똑같다. 10권, 100권을 읽더라도 생각을 많이 해서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자신의 관점을 갖게 되어 나름의 철학을 형성하게 되면 강해진다. 그렇기 때문에 지나치게 독서의 권수에 신경 쓰거나 집착해서는 안 된다. 자신의 현실을 충분히 존중하면서 책을 읽으면 된다. 현실을 살아가는 것은 '살아있는 삶'이라는 제목의 책을 읽어나가는 것과 같다.

 

'그냥' 읽으면 된다. 일단 읽어야 한다. 그렇게 우선은 읽으면서 실패를 반복하며 자기 스타일에 맞는 독서 방법을 찾아야 한다.

 

입시를 준비하면서 공부 잘하는 법 등을 보았을 것이다. 그것들이 전부 다 도움이 되었는가? 일단 내가 해보고 나한테 맞는 방법대로 하면 된다. 사실 다른 사람에게 물어볼 필요가 없는 것으로,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는 참고만 하면 된다. 그리고 그 방법을 실험해보고 자신에게 맞으면 적용을 하고, 그렇지 않으면 버리면 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의 방법이지, 다른 사람의 방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무엇을 잘하게 되는 방법도 마찬가지이다. 그 사람의 종합적인 스타일과 내 스타일이 다르고, 그 사람의 성향과 나의 성향은 다르다. 즉 구체적인 상황과 여건이 다르기 때문에 그대로 따라 하면 안 된다. 공부에 있어서도 중학교 영어부터 시작해야 되면 중학교 영어부터 하면 된다. 친구가 성문 종합영어를 공부한다고 해서 무조건 따라 하면 안 되는 것이다. 나만의 스타일로, 나에게 맞는 방법으로 해야 한다.

진짜 나만의 스타일을 찾는 데에는 무엇보다 나 자신이 직접 시행착오를 겪는 것이 좋다. 그래서 실패와 실수 속에서 깨달음을 얻고 스스로 변화하는 것이다. 어떤 것을 배우는 것에 있어서 시행착오는 결코 시행착오가 아니다. 누구나 겪어야만 하는 통과의례이기 때문이다.

인생을 편하게만, 혹은 요령만 부려서 살려고 하면 안 된다. 진짜 내 것으로 녹여내기 위해서는 용기를 내어 힘든 것을 각오하고 나가야 한다. 독서도마찬가지이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열심히 읽겠다는 '각오'와 무작정 읽겠다는 '실천'이다. 하루에 10시간씩 읽겠다면 읽는 것이고, 한 달에 한 권을 읽겠다면 무슨 일이 있어도 읽는 것이다. 거기에서부터 시작해 독서를 위한 기초체력을 갈고 닦으면 자신만의 방법이 자연스럽게 나타나게 된다. 책을 읽다 보면 어떤 방법이 좋은지 생각이 떠오르고, 이를 직접 실행해서 습관으로 굳어지면 자신의 것이 된다.

 

책을 어느 정도 읽은 사람은 열심히 살면 된다. 계속 생각하면서 자신의 길을, 사회의 길을 생각하면 된다. 인생의 변화와 사회의 개혁은 끊임없는 고민과 실행으로 자신의 인생을 변화시킬 때 비로소 이룰 수 있는 힘을 갖추게 된다. 그래서 언제나 성찰하는 삶을 살고, 늘 새로운 시도를 해야 하며, 인생을 장기적인 승부라고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지금은 초라한 위치에 있더라도 결코 포기하지 말고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그렇게 10년, 20년 이상 노력해야 한다.

 

하나의 관점을 가지고 한 주제를 심층적으로 파헤치는 법도 배웠다. 책을 읽어나가는 동안 그 기술들을 계속 만들어나갔는데, 내 생각을 통해 책 내용을 내 것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6개월 치 인터넷 신문을 3~4일 동안에 보면서 책에서 읽은 내용을 사회에 적용해보는 연습도 했다. 그러면서 과거와 오늘을 연결시키는 연습도 했다.

이것은 책 자체가 가진 목적인 이 세상을 이해하고, 세상을 바꾸겠다는 의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래서 내 인생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았다. 이 세상을 바꿀 정도가 되면 내 인생은 어떻게든 알아서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맹목적으로, 무식하게, 믿음을 가지고 진군할 수 있었다.

 

인생이란 무엇인가?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사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위해서 산다고 해도 결국은 자기만족이 우선이다. 자기만족이 뒷받침되지 않는 삶은 오래갈 수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그 일이 좋고 의도가 훌륭하더라도, 또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자신이 즐겁지 않으면 안 된다. 평양감사도 본인이 좋아야 하는 것이지, 싫으면 안 되는 것이다. 독서도 똑같은 것이다.

 

극진 가라데 창시자 최배달은 "가장 강한 운동은 없다. 그것이 어떤 운동이든 집 가까운 곳에 있는 도장에 가서 운동을 하라"고 말했다. 이 말은 어떤 운동이라도 매일매일 꾸준히 한다면 결국은 최고에 이를 수 있다는 의미이다. 강한 운동 종목이 아니라 얼마나 열심히 하느냐로 최고가 결정되듯이, 독서도 그러하다. 독서에만 길이 있는 것이 아니고 삶을 열심히 살아가는 것도 또 다른 형태의 운동 종목이다.

또 강조하지만 독서는 권수보다는 한 권이라도 제대로 읽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니 책을 읽기 싫으면 안 읽어도 되고, 독서 권수가 적다고 초조해할 필요도 전혀 없다. 그저 열심히 읽고, 열심히 살아가면 모두 정상에 이를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독서는 좋아하는 사람만 하는 것이 근본적으로 옳다고 본다. 독서보다 더 존중되어야 할 것은 자신의 인생과 행복이다. 다만 독서를 하지 않을 때에는 삶을 열심히 살아야 한다. 그리고 돈을 떠나서 타인과 사회에 대한 생각을 하며 살아야 한다. 또 돈이 없더라도 자존감을 잃지 말고 살아야 한다. 그리고 언제나 마음의 여유를 지니고 편안하게 살아야 한다. 그러면 독서를 하지 않아도 결국에는 정상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독서의 근본정신이다.

 

글쓰기는 독서와는 다른 문제이다. 책을 쓰려면 일단 글을 써보아야 한다. 일단 쓰면서 자신만의 스타일을 정립하고, 다양한 글쓰기 실험을 해보아야 한다. 그런 연습을 통해 자신의 글이 나온다.

 

나 역시 처음에 책을 쓰려고 할 때 글이 잘 써지지 않았다. 그러나 어떻게든 써야 한다는 생각에 그냥 억지로 써내려갔다. 좋든 안 좋든 간에 그냥 썼다. 계속 쓰다 보니 글이 좋아지면서 실력이 향상되었다. 글을 잘 쓰려면 다른 방법은 없다. 일단 써보아야 한다. 그리고 한 권의 책 분량의 글을 단기간에 끝내야 한다. 이때 단기간이란 한 달 정도를 말한다. 글만 쓴다면 한 달은 책 한 권을 쓰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하루에 10포인트로 A4 용지 4장씩을 한 달 동안 쓰게 되면 책 한 권이 된다. 그래서 우선 한 달 동안 책 한 권 분량의 글을 완결해보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면 자기만의 스타일을 찾게 되고, 다양한 시도의 글쓰기를 하면서 진화해갈 수 있다.

나 역시도 다양한 글쓰기 실험을 하고 있고, 새로운 변화를 계속해서 시도할 생각이다. 실험은 필연적으로 실패도 낳지만, 그런 실험이 없다면 좋은 방법들을 찾아낼 길이 요원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엎어지더라도 실험을 할 생각이다.

 

독서는 그냥 하면 된다. 독서를 통해 마음이 편안하고 생각이 달라지면 된다. 내가 행복하다면 그것이 바로 성공적인 독서이다.

 

진짜 내 인생, 내가 행복할 수 있는 삶을 사는 것이 바로 잘사는 것이다.

 

남이 어떻게 보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독서를 통해 내 생각과 마음이 어떻게 달라졌고, 그것으로 내 삶을 어떻게 이끌어가고, 사회의 긍정적인 변화에 어떤 기여를 했는가가 핵심이다.

 

독서를 할 때 남의 눈이나 돈은 생각하지 않는 것이 좋다. 책을 읽으면 천재가 된다는 말도 믿지 않았으면 한다. 책을 읽는다고 해서 나의 본질이 바뀌지는 않기 때문이다. 내가 국회의원이나 설사 대통령이 되더라도 나의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 다만 나의 위치와 나를 인식하는 다른 사람의 생각이 바뀔 뿐이다. 나는 여전히 그대로 나이다. 그러니 자신과의 대화를 통해 삶을 잘살고, 행복하게 살면 된다.

 

독서는 나의 본질과의 대화를 통해 나의 길을 찾아가는 것이며, 그런 과정을 통해 내가 행복하게 살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진짜 독서가로 살아야 한다. 진짜 독서가는 자기 마음의 행복을 위해 독서를 한다. 그러면서 진정한 행복과 희열로, 사회 변화로 까지 나아간다. 돈이 많거나 힘이 있어야 성공한다거나 또 그런 조건이 되어야만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은 낡은 생각이다. 진정한 독서의 힘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을 믿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그런 뒤 그 결과는 하늘에 맡기고 자신과의 약속을 끝까지 실천하는 삶에서 나온다.

 

자신의 마음을 편하게 하기 위해 다르게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생각만 바뀌면 밑바닥에서도 편안할 수 있고, 생각이 바뀌지 않으면 모든 걸 갖고도 삶이 고통스러울 수 있다. 고로 '같은 상황에서 다르게 생각할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한다. 그리고 힘든 상황 속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고 최선을 다해 나아가는 정신과 태도가 중요하다.

 

진정으로 삶이 자신의 것이 될 때 의미가 있는 것이지, 돈이나 남의 눈에 좌우되어서는 안 된다.

인생이란 그렇게 허비할 만큼 긴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물론 돈이 없으면 조금 불편하지만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또 남이 무시하더라도 그것은 잠시뿐이다. 진짜 인생은 자신과 평생 동행하는 것이다. 돈은 먹고 살 만큼 벌면 충분한 것이다. 그 이상은 필요가 없다. 독서가는 그것을 아는 사람이다.

 

명문대를 가고 전문직에 종사하면 세상이 달라질 것으로 생각하지만 막상 그곳에 입학하거나 그 일을 해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어딘가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그 지점이 특별하거나 다를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만, 결국 사람 사는 곳은 모두 같다는 평범한 진리에 다다르게 된다. 즉 본질은 같은데, 생각과 행동이 조금 다른 것뿐이다. 대통령도 하루 3끼를 먹고, 화장실에 가며, 잠을 자고, 책을 본다. 일하는 시간도 우리와 같고, 우리와 같은 고민을 한다. 우리와 다르지 않은 것이다. 모든 것은 생각보다 평범하며, 사실 대단한 것은 없다. 오히려 경험해보지 못한 막연한 상상이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나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이 그렇다고 생각한다.

책도 마찬가지이다. 읽기 전에는 책이 정말 대단해 보인다. 독서에 대한 기대감도 있다. 나는 1년에 100권씩 독서하는 사람은 특별하다고 생각했다. 어떤 대단한 지혜가 있고, 그에게는 신출귀몰한 일종의 제갈공명 같은 지혜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전혀 다른 생각으로, 전혀 다른 삶을 살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일종의 경외감을 갖고 책을 대했다. 그리고 책에 미쳤다. 폭발적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고, 끝내는 나이 서른이 되기 전에 3,000권의 책을 읽었다.

그 후 내가 깨달은 것은 생각했던 것보다는 특별한 것이 없으며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라는 것, 생각했던 것보다는 거창한 배움이 없다는 것이다. 내 안에 있는 본질을 다시 만날 뿐이었다. 마치 숨을 쉬고 밥을 먹는 것 그리고 사람과 악수를 하는 것처럼 흔하고 일반적인 것이다. 물론 쇠고기를 먹거나 예쁜 여자 친구를 사귀는 것처럼 기대감과 그 과정에서 즐거움은 있다. 그러나 그렇게 특별하지는 않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하룻밤에 1,000만 원이 넘는 호텔방에서 자는 경험도 같을 것이다. 처음 자기 전에는 기대감이 들고, 자면서 즐겁지만, 시간이 지나보면 별 것 아니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아늑했어도 텐트에서 자는 것과는 큰 차이는 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나는 그런 점에서 독서 초보자는 독서에 대한 부담이나 힘을 빼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즉 독서를 하려면 책에 대한 부담감을 떨쳐버려야 한다. 그것이 첫째다. 너무 기대하면 실망한다. 환상을 가져서도 안 된다. 또 부담감이 있으면 진도를 못 나간다. 편안하게 생각하고 이 세상에 그 무엇도 대단한 것이 없다는 생각으로 읽으면 된다. 빌 게이츠도, 대통령도, 1,000억 원이 넘는 자산을 가진 자산가도 모두 똑같다.

 

독서를 통해 자기 자신을 뛰어넘어야 한다. 온 세상을 바라보고, 세상의 모든 사람을 도와주기 위해 독서를 해야 한다.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고, 사회를 살기 좋은 세상으로 만드는 것에 있다. 왜 그럴까? 그렇게 해서 사회 전체가 좋아지고 사람들이 행복해지면 궁극적으로 나 자신도 행복해지기 때문이다. 그것이 독서의 진정한 '뜻'이다. 나의 성공만을 추구하는 것은 꿈이지만,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꿈을 이뤄주는 것, 그것이 바로 뜻이다. 뜻은 꿈보다 진일보한 개념이다. 뜻을 추구하면 자신의 문제는 당연히 해결된다.

큰 사람은 당연히 보답을 받게 되어 있다. 따라서 독서를 하려는 사람은 사회를 생각해야 한다. 작은 것에 매몰되면 안 된다. 개인적인 문제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지만 그것에만 빠져들면 안 된다. 거시적인 고민, 큰 생각을 해야 한다. 그래야 의욕이 생기고, 크게 이루며, 궁극적으로 모든 것을 이루게 된다. 자기 자신에게만 빠진 독서, 천재가 되기 위한 독서, 부자가 되기 위한 독서는 진짜 독서가 아니다. 이것은 자기 기만이며 가짜 독서이다.

 

책을 1,000권씩 읽었다는 것, 혹은 어쩌면 책을 읽었다는 것이 하나도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것보다는 1,000권을 읽을 정도로 열심히 살았다는, 그런 뜨거움을 간직하고 살았다는 열정과 삶에 대한 태도 그 자체가 더 중요할 수도 있다. 결국 삶을 바꾸는 키포인트는 삶에 대한 태도와 열정 그리고 자신에 대한 믿음이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가 믿을 것은 이것밖에는 없다. 자신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내가 의지하는 모든 것이 사라질 수 있다.

완벽하게 안전한 것은 없다는 것, 그래서 늘 불안한 것이 삶의 본질이다. 결국은 자신의 신념 그 자체를 믿고 사는 것이 유일한 대안이다. 그래서 독서를 많이 했다는 것은 그러한 지식을 알고 있는 것보다도 그런 태도로 뜨겁게 살았고, 그런 심장을 지금도 여전히 가지고 있다는 순수한 사실 그 자체가 더 중요할 수 있다. 이것이 우리가 믿을 전부이다.

 

책을 보면 삶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어려움 속에서 그것을 견디는 힘'과 '힘든 상황 속에서도 그것을 인정하고 헤쳐나갈 수 있는 힘'을 간직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힘든 상황이 닥치더라도 초조해하지 않을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책을 많이 읽어도 당연히 초조해진다. 하지만 결국 길을 발견해낸다. 인생의 대안은 '많이 가지는 것이 아니라 적게 가져도 마음이 편안할 수 있는 것'이다. 즉 적게 가지더라도 만족하고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

적게 가져도 힘든 일을 하면서 상황을 이겨나가면 언젠가 좋은 날이 오지 않을까? 그러면서 힘든 상황에 처하더라도 실망하지 않고 일관되게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면서 달려나가면 결국 늦더라도 꿈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자신을 믿고 노력하며, 희망을 품고 전진해야 한다. 희망과 자기 믿음이 인생에서 매우 중요하다. 미래는 오늘의 연장선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 노력에 달려 있다.

 

다독가는 일희일비하지 않는 힘을 길러야 한다. 모든 것을 돈으로만, 물질로만, 세상의 조건으로만 보는 일반의 세태를 훌쩍 뛰어넘어야 한다. 그래서 넓은 마음으로 이 세상을 감싸 안고, 어떤 상황 앞에서도 주눅이 들거나 당황하지 않아야 한다. 그런 큰 마음과 큰 힘으로 세상을 위해 뛰어들어야 한다. 그럴 때 천하를 구할 수 있고, 그렇게 천하를 구하는 사람이 될 때 자신의 인생 또한 길이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다독가는 자기를 믿고 마음의 흔들림 없이 걸어가야 한다. 자기 자신에게 자신이 있는 사람은 큰일을 벌이며, 승리하는 도전은 자기 자신에 대한 정확한 이해에서 나온다. 그런 이해를 할 때 그 선택은 합리적이고, 타당하다. 그러므로 명확하고 정확해야 하며 때로는 배포가 필요하다. 일을 해내려면 결국 무조건 앞으로 치고 나가며 결과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다독가는 자신이 완전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 점만 인정한다면 다양한 수단으로 자신의 단점을 극복하고 발전할 수 있다. 평생 배운다는 마음자세로 나아간다면 더 크게 발전하고, 독서가 인생의 변화는 물론 사회의 변화까지 이끌게 될 것이다.

 

우리는 책을 통해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나의 길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 부자가 될 수 있는 힌트는 무엇인지, 나의 중심을 어떻게 잡을 것인지, 어떤 도전을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질문을 던져야 한다. 그리고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을 끊임없이 반복해야 한다. 나는 과연 누구이고, 무엇을 해야 하며, 무엇을 통해 사회를 이끌어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해나가야 한다. 그렇게 길을 찾아 승부를 해야 한다. 끊임없이 변신해야 한다. 사회가 변하듯, 안정이 허락되지 않듯, 지속적으로 변화해야 한다. 그래서 나의 길을 정하고,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야 한다.

 

어떤 일을 하든지 기회는 온다. 지금만 보면 안 된다. 10년, 20년 후에는 상황이 크게 변해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안정을 위해 자신의 인생을 바치는 건 어리석은 것이다. 자기가 좋아하지도 않는 일을 하면서 사는 건 불행한 일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안정이 중요하고 크게 보일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안정마저도 변한다. 그러므로 한 달에 얼마를 더 준다는 이유로 인생을 파는 것은 길게 보면 후회하는 선택이 될 수 있다. 삶의 과정에서도 그렇고, 결과적으로 돈에 있어서도 몇십 배, 몇백 배의 차이를 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고,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의 힘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크기 때문이다.

 

나는 앞으로 우리 시대의 대안도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인생 그 자체이다. 우리의 부모님들은 왜 잘살고자 노력했는가? 경제적으로 잘살아야만 행복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비만과 과잉의 시대가 되었다. 남아도는 시대가 되어 절대 궁핍은 사라지고, 무엇을 하든 살 수 있다. 아마도 앞으로는 자신의 진정한 삶과 행복을 찾아서 떠나는 사람들이 증가할 것이다. 그래서 여유를 찾고, 행복을 찾을 것이다.

그래서 앞으로는 현명한 사람들이 그 점을 깨닫고, 자신만의 삶을 찾아 떠날 것이다. 적게 벌어도 행복한 삶을 찾아 나설 것이다. 인생의 행복은 경쟁에서 이기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을 때 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우리 시대는 느림과 평안함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대가 될 것이다. 사람들도 그런 것을 많이 찾을 것이다. 그러므로 자기를 잘 알고, 자신에게 맞는 선택을 해야 한다. 모든 인생의 해법은 나에게서 찾아야 한다. 무엇보다도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이 질문을 통해 나의 본질을 발견해야 한다. 내가 진짜로 무엇을 잘할 수 있고, 무엇을 좋아하며,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를 발견해야 한다. 그래서 나의 진정한 강점에서 출발해 세상의 요구를 만족시켜야 한다.

 

나에게서 출발해 세상의 지지를 받고 그렇게 우뚝 섬으로써, 행복과 성공 모두를 가질 수 있는 삶으로 나아가야 한다. 지금까지의 삶의 방식은 '선성공 후행복'이었지만, 내가 말하는 방식은 '선행복 후성공'이다. 내가 누구인지 제대로 알고, 나의 삶을 강하게 추구해 세상에 뚜렷하게 흔적을 남기면, 세상은 그에 걸맞은 반응을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삶이 앞으로의 대안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독서를 통해 처음 내 삶과 사회의 변화를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은 우리 사회의 근본적인 문제에 주목하고 있다. 1명이 성공하고 99명이 실패하는 사회가 아니라, 100명 모두가 손잡고 웃을 수 있는 사회를 원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어쩔 수 없이 다 이기적인 존재라고 하면서 우리 사회의 문제를 외면하는 것은 비겁한 짓이다. 잔머리를 굴리면서 자기 밥그릇만 채우는 것이 옳은 것은 아니다. 이제는 혼자만 성공하는 '꿈'을 추구할 것이 아니라 모두를 살리는 '뜻'을 추구해야 할 때가 되었다.

 

독서가의 진정한 역할은 우리 사회의 올바름을 고민하는 것이다. 자기 배만 불리기 위해 고심하는 것은 자기의 밑구멍을 닦는 것밖에는 안 된다. 그것은 작은 것이다. 진정한 독서가는 큰 것을 담아내야 한다. 사회의 변화와 발전을 생각하고, 진정한 사회의 통합을 도모해야 한다. 그래서 큰 그릇에 많은 술을 담아내는, 진정한 독서의 힘을 보여주어야 한다.

독서가는 평소에 우리 사회가 가야 할 방향과 진정으로 옳은 가치, 철학에 대해 생각과 고민을 많이 해야 한다. 우리 사회에 일종의 철학적 구심점을 제공해 그것을 중심으로 사회를 이끌도록 해야 한다. 철학적 중심이 있고, 생각이 있고, 의식이 깨어 있는 사회가 되도록 이끌어야 한다.

지금 우리 사회는 오직 '즉석 돈벌이'만 중시하고 있다. 그동안 우리는 6·25 전쟁을 고치면서 무조건 잘살아보자는 구호로 살아왔으며, 그 시기에는 그럴 만한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미래 세대를 위한 준비를 해야 할 때이다. 그런 점에서 현재의 기업들이 미래를 위한 정신문화에 투자를 해야 한다. 철학을 만들고, 생각하는 국민을 만들어 우리나라를 변화시키고 국풍과 국격을 높여야 한다. 따라서 기업가들이 가능한 범위에서 이런 정신적인 문화에 투자를 하는 데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현재 독서가나 전업 작가는 오직 자신의 힘으로 이 모든 것을 해나가고 있는데, 한국의 재벌들이 과거 이탈리아의 메디치 가문처럼 예술에 투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진정한 철학과 문화가 꽃피고, 이 속에서 진정한 사회의 대안이 도출된다. 이것은 낭비가 아니라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할 수 있다. 도 독서를 통해 철인정치를 가능하게 하고, 철학이 있는 사회, 더불어 생각하고 의식이 깨어 있는 사회로 탈바꿈시킬 수 있다.

 

진정한 삶에 대한 고민 없이 지금 당장 돈벌이에만 매몰되는 삶은 과연 옳을까? 물론 먹지 못하면 내일은 없다. 하지만 우리가 단지 먹기 위해서 사는 건 아니다. 진정으로 옳은 삶, 장기적인 안목과 목표, 진정한 경쟁력과 근본적인 본질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또 그런 생각에 동참하는 독자들 역시 줄어든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국가의 미래가 어두워지는 일이다.

이런 식으로 가면 '자기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늘어나 미디어나 광고를 비판할 줄 모르고, 다른 사람이 하는 대로 따라서 살게 된다. 또 대세에 편승하게 되고, 진짜를 분간하는 힘을 잃게 된다. 사기꾼들의 말에 자신을 잃고, 미디어에 의해 조정당하는 삶을 살게 된다. 이미 많은 사람이 이런 상황에 놓여 있고, 미디어의 부정적인 면을 비판하는 사람들도 줄어들었다. 이렇게 모두가 돈벌이로만 몰려가면 미래에는 돈 외에 남지 않을 것이다. 진정한 삶은 없으며, 약자의 삶은 철저하게 외면당하는 것이다.

국가가 잘못되면 비판할 수 있는 사람, 장기적인 국가의 미래와 올바른 인생에 대해 시간을 두고 치열하게 고민하는 사람이 없는 사회는 미래가 없다. 그렇게 감시와 비판, 견제 기능, 진정한 인생에 대한 철학적 고뇌가 없는 사회는 옳은 사회인가? 모두가 힘 있는 사람과 돈 있는 사람에게 고개 숙이고 복종하는 사회가 옳은 사회인가? 그래서 노동법을 준수하지 않고 야근 수당을 주지 않아도 모두가 따르고, 오너 일가 대신 부정부패를 저지르는 사람이 잘사는 사회에 대해 그대로 함구하는 것이 옳은가? 명문대를 나와서 부정부패를 저질러 잘 사는, 그런 삶으로 가는 것이 옳다는 것인가? 모두의 가능성과 대안을 생각하지 않고, 진짜 지혜로운 삶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고민하지 않는 삶이 건강한가? 대부분의 사람이 돈으로 인생을 도식화하고, 이 대열에서 자신이 탈락했다고 생각하는 사회가 정상인가? 1%만 웃고 99퍼센트는 우는 대열에 모든 사람이 뛰어드는 것이 정상적인 사회인가? 정신적인 것은 무시하고 말초적인 쾌락에 모든 것을 바치는 사회는 건강한가? 이것은 분명 정상이 아니다.

물론 한국인은 지금까지 먹고 사는 현실에 매몰된 삶을 살 수밖에 없었고, 또 그렇게 살아왔다. 6·25 이후 폐허가 된 상황 속에서 있는 힘을 다해 달려온 한국 경제였다. 돈을 벌 수 있는 패러다임은 모두 존중되어야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때 책을 더 많이 읽었고, 20대의 토론도 활발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 힘을 잃어버렸다. 불황이 계속되기 때문이라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더 근본적인 고민을 해야 한다. 삶이 힘들다고 해서 누가 보아도 아닌 현실도 뛰어가는 것은 미친 짓이다. 진정한 대안을 찾아야 한다. 또 남과의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 아닌, 진짜 자신의 자유를 찾아야 한다. 삶은 자유를 위해 사는 것이다.

 

국가는 앞으로 독서를 통해 각 개개인들을 프로페셔널로 만들어야 한다. 실컷 공부했지만 기업에서는 써먹지도 못하고 또 잊어버리고 마는 국어·영어·수학에 모든 것을 걸 것이 아니라, 진짜 공부인 독서에 힘을 쏟아야 한다. 그럴 때 한 개인의 삶은 물론 사회의 수준까지 큰 폭으로 달라질 것이다.

 

힘들 때 질문해볼 사람이 없다면 책을 보아야 한다. 배울 점이 있는 책을 집중적으로 보고 내공을 키워야 한다. 특히 30대이거나 40대 초반이라면 한창 달려야 할 때이기 때문에 내공을 더 많이 쌓아야 하며, 이를 위해 더욱 부지런히 독서하고 공부해야 한다. 키워나가면 현실이 달라지고, 발전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삶이 달라지면 사회를 바꿀 수 있는 기회도 반드시 오게 될 것이다.

독서는 결코 자기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독서는 모두를 위한 것이다. 자기 자신만의 성공을 말한다면 수준이 낮은 것이며, 그것이 독서의 궁극적인 목표가 아니라는 이야기를 분명하게 하고 싶다. 책은 결국 모두를 살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많은 책을 보면서 드는 생각 중 하나는 내가 매우 작은 존재라는 것이다. 결국 나는 우주 속에 작은 먼지일 뿐이며, 아무리 발버둥을 쳐봐도 우주 저 멀리서 바라보면 작은 점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작고 초라한 자기를 대면하게 되고, 아무리 공부해도 오히려 모르는 것 투성이임을 알게 된다. 그러면서 인간은 자연스럽게 자기 한계를 경험하고, 점점 더 겸손해진다.

결국 인간은 아무리 공부를 하더라도 한계에 직면할 수밖에 없는 존재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가 겸손한 자세로, 주어진 시간 안에서 최대한 바르게 살아가야 한다. 때로 부조리한 현실이 우리에게 큰 고통을 알려주지만, 이 또한 현실이 알려주는 가르침이라는 것을 깨닫고 살아가는 자세를 견지한다면 보다 올바른 인생을 영위할 수 있을 것이다.

 

책을 많이 읽으면서 느낀 것은 결국은 자기만족이었다. '내가 좋아하고 행복해질 수 있는 무언가를 하는 것', '그 경험과 그 느낌이 전부'다. 자기가 좋아하고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을 진실로 깊이 추구하면, 그것으로 자신의 길이 열리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 자체가 바로 결과인 것이다. 결과적으로 따라 오는 돈이나 명예, 권력 등은 부차적인 것이고, 그 과정 자체가 본질인 것이다.

이 세상에서 크게 성공한 사람들이나 큰 종교인들, 한 분야의 대가들은 대부분은 자기만족을 위해서 살았지, 결코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았다. 그냥 자기가 좋아서 한 것에 미쳐서 산 것이 곧 그들의 삶이 되었고, 그들은 그렇게 재미있게 한평생 잘 놀다가 간 것이다. 물론 그들도 인간이니만큼 결과가 중요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믿었을 것이다. 그들이 그렇게 과정을 즐기면 적어도 굶진 않고, 그렇게 버티다 보면 결국은 길이 열릴 것이라고 믿었다. 그들은 결국은 자기가 살고 싶은 대로 살았고, 진정한 자기다움을 이루어냈으며, 그것으로 궁극의 차별화를 이루어낸 것이다. 이것은 삶과 성공에 있어 매우 중요한 진실이다.

대개의 사람들은 결과를 보고 하기 싫어도 억지로 참는 삶을 산다. 결과를 위해 과정을 버리고 자기를 억지로 맞추는 삶이다. 여기에는 자기만족도, 자기다움도, 궁극의 차별화도 있을 수 없다. 한국이라는 국가 차원에서 이 문제는 고민을 해봐야 할 주제이다. 참는 삶에는 행복이 없지 않겠는가?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막연한 '노력 성공론' 역시 위험할 수 있다. 노력은 필요하지만 노력에 대한 맹신은 금물이다. 그렇지만 도전정신은 매우 중요하다. 나는 늘 도전을 강조해왔고, 나 역시도 그런 삶을 살려고 노력 중이다. 그러나 지나친 기대감을 가지면 크게 실망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노력해도 안 될 가능성은 분명히 있다. 어느 정도 자족을 하면서 사는 삶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어느 정도 마음을 비우되 노력에 비례한 결과에 집착하지 않는 자세가 필요하다. 자족은 소중한 가치이다.

 

우리는 노력이 성과에 비례하지 않을 수도 있고, 오히려 노력보다 더 많은 성과를 가져갈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성과란 공정하지 않고 정직하지 않다. 성과를 결정하는 것이 내 노력이 아니라 철저한 사회, 문화, 배경, 우연, 운 등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외부적인 요인의 뒷받침이 없으며 노력은 아예 빛을 발휘할 수 없을 수도 있다. 노력은 이런 조건들의 뒷받침 이후에 빛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죽도록 일하고도 가난할 수 있고, 놀면서도 큰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완전 밑바닥에 가서야 욕심을 버리는 것이 인간이다. 그리고 다 놓아버리니, 도리어 길이 열린 것이다. 어쩌면 인생은 이 욕심과 집착이라는 손을 얼마나 빨리 뗄 수 있느냐로 승부가 나는 것일 수도 있다. 욕심과 집착이라는 것을 버리고 마음을 비우고 살아가면 운명에 업혀가고, 그렇지 않으면 운명에 질질 끌려갈 수 있는 것이다. 이 욕심을 버리는 단계는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단계이지만, 이 경지에 이르면 절대평화의 삶을 살 수 있다. 부처가 이 삶을 살았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는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행복하고 자유롭게 살기 위해서이다. 행복, 그중에서도 자유는 우리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이상향이다. 우리는 헛된 욕심을 버려야 행복과 자유에 도달할 수 있다.

 

어쩌면 우리가 살고 싶은 삶은 생각보다 돈이 많이 없어도 얼마든지 가능하고, 그저 어느 정도의 용기를 갖고 실천만 한다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반드시 무언가를 가져야 가능한 것이 결코 아니다. 심지어 해외여행도, 외국에 사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냥 가서 살면 된다. 영어? 가서 배우면 된다. 어려움은 있겠지만 생각한 것보다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막연한 두려움을 갖는 것보다 심한 방해요소는 없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10살짜리 어린아이도 그 나라의 말을 잘 구사하는데, 내가 잘 못할 리가 없지 않겠는가!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것이다.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아야 하고, 그것에는 결코 어떤 다른 수단이 필요한 게 아니라는 것이다. 그냥 지금 살고 싶은 대로 살면 되는 것이다.

 

올바름을 견지한다는 건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반칙이 더 빨리 간다는 게 뻔히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 멀리 가기 위해서는 바르게 가야 한다. 이는 나와 사회 모두를 위한 일이다. 경제적으로 잘 사는 것만이 좋은 가치가 되어선 곤란한 것이다.

 

세상은 분명 돈으로 움직이지만 큰일을 하려면 때로는 돈을 멀리할 필요도 있다. 돈만 좇으면 일에만 몰두하게 되어 여유가 없어지는 동시에, 당장 돈이 되는 일에만 급급해져서 결국 큰 위기에 처하게 될 수 있다. 지금 당장 돈벌이가 되는 일만 하면 철학이 빈곤해질 수밖에 없다. 삶의 정신을 잃으면, 사는 집과 입고 있는 옷은 화려해도 그것은 화려한 빈껍데기에 불과해 위기가 오면 금방 무너질 수 있다.

요즘 직장인들에게 성공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어보면, 대기업 직원일수록 '부자'라고 답한다고 한다. 이것은 철학의 빈곤과 부재를 의미한다. 어떻게 돈 많은 것이 성공일 수 있는가? 어떻게 그것만이 유일한 이데올로기가 될 수 있는가? 결코 아닐뿐더러, 아니어야 한다. 사회나 한 개인이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순간, 모두가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을 하며 경쟁적이고 메마르게 살 수밖에 없다. 이렇게 살면 자기가 삶을 이끌어가는 것이 아니라, 돈이 삶을 이끌어가게 된다. 돈이 오직 모든 판단의 기준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이러면 돈을 벌고 나서도 언제든지 허무해질 수 있고, 돈을 벌기도 전에 지쳐버릴 수도 있으며,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게 된다. 이 점은 여러 면에서 경계해야 한다.

큰일을 하는 것도, 지금 당장의 계산을 떠나야 할 수 있다. 10년, 20년 정도 뒤를 보고 가야만 큰일을 할 수 있는 것이지, 2~3년 뒤의 성과만 보아선 안 된다. 이것은 배우자를 선택할 때에도 적용된다. 지금 당장 돈을 얼마나 잘 벌고 안정적인가 보다는 그 사람의 비전과 가능성을 보아야 한다. 그래서 10년, 20년 후에는 어떻게 될 사람인지를 보아야 한다. 지금 당장의 돈이나 안정성은 언제든지 사라질 수 있는 것이고, 가능성은 점점 더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공자는 지금 당장의 돈벌이를 보고 철학을 논하지 않았다. 멀리 보는 힘이 없으면 결코 큰일을 이룰 수가 없다. 이 점은 여러 면에서 생각을 해보아야 할 대단히 중요한 주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