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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사] 무탈한 하루에 안도하게 됐어(라비니야)

아름다운 존재 2024. 3. 17. 15:40

회사에서 정은실 과장은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었다. 책에 대해 말할 기회가 있을 때 비로소 입을 여는 사람, 그 외에는 조용히 제 몫을 해내는 사람. 그런데 어째서인지 성은은 그녀의 미련스러울 만큼 묵묵한 태도가 좋았다.

 

형원은 은실에 대해 연줄 없는 무능력한 사람이라 평했지만, 성은의 생각은 달랐다. 은실은 기대거나 의지할 곳 없이도 혼자 살아갈 수 있는 자생력이 있는 존재로 보였다. 더 높은 담을 넘어야 한다는 열망이나 욕심이 없으며 자신의 속도와 모양에 맞춰 살아가는 태도가 어째서인지 성은의 마음에 안정감을 주었다.

 

좋은 책을 만나는 건 작지만 확실한 행운이기도 하고, 귀한 우연이기도 해요.”

 

기대했던 결과를 얻지 못하더라도 새로운 경로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 시기마다 볼 수 있는 시야의 격차가 있는 게 아닐까.

 

앞질러 실망하지 말아요. 설령 기대한 결과를 얻지 못했다고 해도 완전한 실패는 아니에요. 그냥 그 사실을 알고 있으면 돼요.”

 

누굴 미워하는 것도 기운을 쏟는 일이야. 구태여 그런 감정을 키울 필요는 없지. 네 마음을 우선에 두고 먼저 지켜.”

 

다른 누군가 때문에, 채에 무 갈 듯 마음까지 갉아먹어선 안 돼. 그게 설령 부모더라도 네 감정과 마음을 좀 먹는다면 거리를 두는 게 옳아. 먼저 네가 살고 봐야 주변도 보이고 누군가에게 위로도 해줄 수 있는 법이거든. 네 마음이 지옥이면 누구의 지옥도 와닿지 않아.”

 

미련하게 일만 하지 말고. 쉬는 날도 있어야 해.”

 

뜻하지 않은 기회나 행운 대신 매일 예측 가능한 형태로 꾸려갈 수 있는 원만한 삶의 틀을 유지하는 것. 누가 보더라도 평균 선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지 않은 일상이 조용히 이어지는 나날을 바라는 마음.

 

좋아하는 것에 몰입하면 불분명한 불안 대신 구체적인 꿈을 그릴 수 있게 돼요. 그렇게 내 삶에 들인 일을 사랑하면 동반되는 불안정함은 기꺼이 감수할 수 있게 되는 것 같아요.”

 

은주는 열악한 환경에서도 생기를 잃지 않는 성은의 씩씩함이 내심 부러웠다. “좋은 음악은 보이는 풍경을 바꾸는 힘이 있어요. 삭막한 사무실을 근사하게 만들고, 춥고 어두운 골목의 공포도 부드러운 낭만으로 바꿔주거든요.”라는 성은의 말처럼 나의 주변과 내면도 바뀔 수 있을까, 하고 은주는 생각했다.

 

처음에는 실망도 컸지만, 지금은 괜찮아요. 꼭 이번이 아니더라도 다른 새로운 기회가 있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그전처럼 괴롭진 않더라고요. 새로운 여정으로 가기 위한 과정이겠죠, 다음으로 향하기 위한.”

 

귀한 것들은 적절한 시기에 우연히 오는 경우가 많아요.

 

비가 오는 게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아. 그렇지 않았으면 여기 오지 못했을지도 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