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 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박완서)
집 안에서 아이를 놀리려면 이것저것 만지면 안 된다고 치우고 주의 줘야 할 것도 많지만 단지 공터에 아이를 데려다 놓으면 전혀 그럴 필요가 없다. 장난감 없이 흙과 돌과 풀만 가지고도 아이는 지루한 줄 모르고 논다. 아이에게 집 안엔 없는 자유가 주어졌기 때문일 게다.
나는 집 밖에서까지 흙장난을 하는 주책을 부리진 않지만 흙장난에 몰두한 아이를 바라보는 게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다. 흙과 자유는 아이를 싱싱하고 생기 있게 한다.
집 안에서 장난감이나 그림책 가지고 놀때하곤 딴판의 빛나는 생기다. 아이는 곧 신발짝을 여기저기 벗어던지고 맨발로 놀지만 나는 구태여 신발을 신기려 들지 않는다. 아이의 흙 묻은 땅 위에 서 있는 토실토실한 두 다리가 마치 어린 나무처럼 보기 좋아서이다. 어린 나무가 열심히 땅의 정기를 빨아올리듯이 나의 손자도 땅의 굳셈과 정직함과 늠름함을 그 실한 다리로 빨아들이는 것 같아서이다.
흙장난을 아이는 얼마나 좋아하는지 장난감 없이도 심심한 줄을 모를뿐더러 배가 고픈 것도 모른다. 너무 오래 놀면 허기가 질 것 같아 억지로 달래 집으로 데리고 들어오면 아이의 꼴이 말이 아니다. 제 에미는 기겁을 해서 우선 옷을 벗기고 목욕탕으로 데리고 들어간다. 벗어 놓은 아이의 옷에선 흙이 우수수 한 바가지나 떨어진다. 씻고 나온 아이가 얼마나 생기 있어졌는지도, 그 생기가 흙에서 빨아들인 생기라는 것도 아마 저희 에미는 모르리라.
흙장난을 하고 난 아이는 먹기도 잘 먹는다.
무엇보다도 나에게 남겨진 자유가 소중하여 그 안에는 자식들도 들이고 싶지 않다. 내가 한사코 혼자 살고 싶어 하는 걸 보고 외롭지 않느냐고 묻는 이가 있다. 나는 순순히 외롭다고 대답한다. 그게 묻는 이가 기대하는 대답 같아서이다. 그러나 속으로는 ‘너는 안 외롭냐? 안 외로우면 바보’라는 맹랑한 대답을 하고 있으니, 이 오기를 어찌할 거나.
그러나 그동안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조금도 예기치 못한 일이었다. 내가 지금까지 해 온 여행은 과정을 무시한 목적지 위주의 여행이었다. 그게 얼마나 바보 여행이었던가를 알 것 같았다.
할머니는 기도 같은 건 하실 줄 몰랐지만 “그저 땅이 화수분이란다”라는 소리를 잘 하셨고, 그럴 때마다 경건한 얼굴이 되곤 하셨다.
순전히 얹혀 가는 꼴이었다. 그래, 이왕 얹혀 가는 거 동행에게 부담이나 안 되게 먼지처럼 얹혀 가자. 먼지처럼 가볍고 부드럽게, 먼지처럼 자유롭게. 그렇게 생각하니 전혀 새로운 여행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의 정치체제나 문화, 국민소득 등을 우리와 비교하지 않고 나름대로 사는 양상으로 그냥 바라볼 수는 없는 것일까. 될 수 있으면 자신이 한국인이라는 것까지도 잊어버리고 다만 여행자가 될 수 있다면, 그리하여 외국이나 외국인 앞에서 마음을 도사려 먹지 않고 그저 부드러운 시선으로 남의 좋은 것이나 나쁜 것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즐길 수 있다면 그거야말로 새로운 경험이 될 터였다.
무엇보다도 그쪽 조선족들의 꾸미지 않고도 저절로 큰 마음씨와, 남북 두 개로 갈라진 조국을 편견 없이 직시하고, 그른 건 그르다, 옳은 건 옳다, 거침없이 말하면서 양쪽을 함께 얼싸안으려는 열린 태도는 흉내내봄 직한 것이었다.
이렇게 무겁고 착잡해지려는 마음을, 피곤하게 굴 거 없이 부드럽게, 먼지처럼 부드럽게라고 스스로 다독거렸다.
내 오늘에 이르러 처음으로 인생이란 본시 아무런 의탁함이 없이 다만 하늘을 이고 땅을 밟은 채 떠돌아다니는 존재임을 알았다.-정약용
나 역시 선전하는 우리 선수에게 격려의 박수도 보내고 싶고 금메달도 좋아하지만 오랜 버릇인 초저녁부터의 숙면과 새벽의 각성과 그때부터 날 밝기까지의 완벽한 고독 또한 사랑하는 걸 어쩌랴. 이런 나의 건강의 리듬을 깨면서까지 열중하기엔 나는 너무 나이를 많이 먹었나 보다.
도시의 쓰레기로 들이 피폐하고 산이 의연한 기상과 정기를 잃으면 장차 어떻게 일용할 양식을 얻을 수 있으며 어떻게 늠름한 건아인들을 키울 수 있겠는가. 들을 기름지게, 산을 청정하게, 나무들을 정정하게, 시냇물에선 물고기가 놀게, 숲에선 새들과 풀벌레가 노래 부르게 우리 국토의 건강을 지켜 주는 일이야말로 화끈할 것 없지만 정말 해야 할 나라 사랑이란 생각이 절절해지는 여행이었다.
자신과 가족의 목숨이 달린 밥줄은 과연 중요하다. 신성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중역은 사장이, 과장은 부장이, 계장은 과장이, 청소부는 청소 감독이 먹여 살리는 건 아니지 않은가. 청소부는 그가 맡은 바 청소하는 일이 그를 먹여 살린다고 생각하면 각자 좀 더 떳떳할 수도 있지 않을까. 청소부가 청소를 특별히 게을리하고 있지 않는 한 감독한테 비굴하게 아부할 필요도 없을 테고 더군다나 회장님이 지나간다고 해서 혼비백산, 벌벌 떨 필요도 없겠다. 비록 각자 맡은 바 일의 중요성의 경중에 따라 직급의 높고 낮음은 있을망정 일을 한 대가로 먹고사는 입장은 서로 동등하다.
우리가 모두 굶주리고 헐벗었을 때 꿈꾼 보다 나은 세상은 일만 하면 배부르고 등 뜨스울 수 있는 세상이었다. 이제 우린 열심히 일만 하면 배부르고 등 뜨스울 수 있는 정도는 보장이 된 세상이 됐다고 믿으면서도 보다 나은 세상에 대한 갈망은 오히려 헐벗고 굶주렸을 때보다 더하면 더하다.
우상을 섬기지 말아야 하는 건 기독교 정신일 뿐 아니라 민주주의의 정신이고 보다 나은 세상에 대한 갈망이란 바로, 참으로 그리고 골고루 민주적인 사고와 생활 방법에 대한 갈망이 아닐까. 이제 겉모양이 드높고 내부 장치가 으리으리한 고층 건물만 가지고 근대화를 뽐낼 게 아니라 그 속에 근대적인 정신을 담을 때도 되지 않았나 싶다.
폭력이 용기와 다르듯이 편견은 신념과 다르다. 신념은 마음을 열고 얼마든지 남의 옳은 생각을 받아들임으로써 자신을 살찌우려 들지만 편견은 남의 옳은 생각을 두려워하는 닫힌 마음이다. 결국 폭력이나 편견이나 똑같이 허세일 뿐 진정한 힘은 아니다. 그러니까 정말 두려운 건 목청 높은 편견이 아니라, 그 목청에 대세를 맡겨 버리는 양식 있는 사람들의 소극적인 태도인지도 모르겠다.
우린 예로부터 말 같지 않은 말이나 사람 답지 않은 사람과는 대항해서 시비를 가리느니보다는 슬쩍 피하는 걸 점잖은 사람이 지킬 미덕으로 여겨 왔다. 여북해야 “똥이 무서워서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지” 하는 속담까지 있겠는가.
그러나 나는 우리 조상들의 생활의 지혜가 담겨 있는 속담 중에서 이 속담만은 쓸만한 것이 못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똥을 피하는 건 더러워서일 뿐 무서워서가 아니라는 말은 자신에 대한 변명은 될지 몰라도 여럿이 더불어 사는 이 세상에 대해선 매우 무책임한 발언이다. 너도나도 똥을 피하기만 하면 이 세상은 똥통이 되어 버릴 것이 아닌가. 똥은 피할 게 아니라 먼저 본 사람이 치우는 게 수다.
인간답게 사는 길도 나만 인간답게 살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면 쉬울 수도 있지만, 그런 생각 자체가 이미 인간답지 못하다. 이웃이 까닭 없이 인간다움을 침해받는 사회에서 나만은 오래오래 인간다움을 지키고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야말로 인간 이하의 어리석음이다.
꼴찌 주자의 위대성
나는 그런 표정을 생전 처음 보는 것처럼 느꼈다. 여직껏 그렇게 정직하게 고통스러운 얼굴을, 그렇게 정직하게 고독한 얼굴을 본 적이 없다. 가슴이 뭉클하더니 심하게 두근거렸다. 그는 20등, 30등을 초월해서 위대해 보였다. 지금 모든 환호와 영광은 우승자에게 있고 그는 환호 없이 달릴 수 있기에 위대해 보였다. 나는 그를 위해 뭔가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내가 좀 전에 그의 20등, 30등을 우습고 불쌍하다고 생각했던 것처럼 그도 자기의 20등, 30등을 우습고 불쌍하다고 생각하면서 옛다 모르겠다 하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리면 어쩌나, 그래서 내가 그걸 보게 되면 어쩌나 싶어서였다.
어떡하든 그가 그의 20등, 30등을 우습고 불쌍하다고 느끼지 말아야지 느끼기만 하면 그는 당장 주저앉게 돼 있었다. 그는 지금 그가 괴롭고 고독하지만 위대하다는 걸 알아야 했다.
나는 용감하게 인도에서 차도로 뛰어내리며 그를 향해 열렬한 박수를 보내며 환성을 질렀다.
나는 그가 주저앉는 걸 보면 안 되었다. 나는 그가 주저앉는 걸 봄으로써 내가 주저앉고 말 듯한 어떤 미신적인 연대감마저 느끼며 실로 열렬하고도 우렁찬 환영을 했다.
내 고독한 환호에 딴 사람들도 합세를 해주었다. 푸른 마라토너 뒤에도 또 그 뒤에도 주자는 잇따랐다. 꼴찌 주자까지를 그렇게 열렬하게 성원하고 나니 손바닥이 붉게 부풀어 올라 있었다.
그러나 뜻밖의 장소에서 환호하고픈 오랜 갈망을 마음껏 풀 수 있었던 내 몸은 날 듯이 가벼웠다.
그전까지만 해도 나는 마라톤이란 매력 없는 우직한 스포츠라고밖에 생각 안 했었다. 그러나 앞으론 그것을 좀 더 좋아하게 될 것 같다. 그것은 조금도 속임수가 용납 안 되는 정직한 운동이기 때문에.
또 끝까지 달려서 골인한 꼴찌 주자도 좋아하게 될 것 같다. 그 무서운 고통과 고독을 이긴 의지력 때문에.
나는 아직 그 무서운 고통과 고독의 참뜻을 알고 있지 못하다.
왜 그들이 그들의 체력으로 할 수 있는 하고많은 일들 중에서 그 일을 택했을까 의아스럽기까지 하다.
그러나 그날 내가 20등, 30등에서 꼴찌 주자에게까지 보낸 열심스러운 박수갈채는 몇 년 전 박신자 선수한테 보낸 환호만큼이나 신나는 것이었고, 더 깊이 감동스러운 것이었고, 더 육친애적인 것이었고, 전혀 새로운 희열을 동반한 것이었다.
그렇다고 나라는 위인이 특별히 공중도덕을 우습게 안다든가 사소한 범법 행위쯤 남의 눈만 없다면 예사로 해치울 배짱이 있느냐 하면 그렇지도 못할뿐더러 오히려 신경질적이리만치 그 방면에 까다로워 어딜 가나 그런 것을 지키랴, 안 지키는 사람 때문에 속을 썩이랴, 적잖이 신경을 곤두세우고 피곤하게 사는 편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나 자신의 도덕적인 결백성의 문제지 외부로부터의 규제는 아니었다. 도리어 요새 하도 많이 법이 생겨 일상사에 사소한 문제까지 꼼꼼하게 규제를 하려 들자, 가뜩이나 소심한 나는 잔뜩 주눅이 들어 있다가 그 반작용으로 길에서 방뇨하는 여인에게 그토록 찬탄을 보내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사람의 마음속엔 이런 용수철 같은 게 있는 법이다. 이 용수철이 엉뚱한 방향으로 튀어 오르지 않게 법의 규제에도 묘미가 있어야지 미련해서는 안 되겠다.
그중에도 미니스커트나 장발족 단속은 좀 어떨까 싶다. 젊은이들의 옷이나 머리란 어차피 길어졌다 짧아졌다 하게 마련이 아닐까? 나이 사십에 꽤 많은 유행의 변천을 봐왔지만 그중에도 미니스커트는 유쾌한 유행이었는데.
B부인처럼 이렇게 값싼 생활용품이나마 애정을 가지고 사귀기 시작해서 아름답게 길을 들이며 사는 여자에겐 약간 따분하지만 특이한, 마치 흘러간 옛 노랫가락 같은 복고적인 아름다움이 있다. 우리의 전래되는 민속 공예품이 아름다운 게 본래부터 그렇게 아름답게 만들어진 게 아니라 B부인처럼 마음씨 고운 여인의 알뜰한 손길에 의해 그렇게 아름답게 길들여졌음이 아닐까.
이와는 대조적으로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이 대단해서 새로운 것을 의욕적으로 추구하는 여자들도 그들 나름으로 아름답다. 새로운 것을 찾는 정도가 자기가 처한 분수에서 크게 동떨어지지만 않으면 말이다.
이런 여자가 어찌 아름답지 않으랴. 어떤 의미로든 여자가 아름답다는 건 좋은 일이다. 주위를 밝히는 빛이요 축복이다. 다행히, 참으로 다행히, 여자는 누구나 한두 군데는 아름답다. 만일 어디 한 군데도 아름답지 않은 여자가 있다면 그는 사랑받지 못하거나, 사랑할 줄 모르는 여자일 것이다.
아내들이 스스로의 한눈팔기의 영역을 한 번 크게 확대시켜 보라고 권하고 싶다. 너무 남편과 아내와의 관계, 자식과 어머니와의 관계에만 스스로를 구속하지 말고, 너무 근시안적으로 남편과 자식만을 응시하지 말고, 폭넓은 인간관계로 시야를 넓히고, 거기 한눈을 팔란 말이다. 자기가 배운 것을 통해 자기가 속한 사회와 관계를 맺고 참여할 틈서리를 찾으란 말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결코 가정이라든가 남편과 아내와의 관계, 자식과 엄마와의 관계를 파괴하는 일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여러 사람이 얽히고설킨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가 커다란 그물이라면, 그물의 가장 작은 한 코는 부부를 중심 한 가족 단위가 될 테고, 작은 한 코 한 코가 온전치 않은 온전한 큰 그물이 어디 있겠는가. 건전한 사회 참여는 건전한 가정에서부터 비롯될 것이다.
이런 폭넓은 인간관계에의 개안이나 사회 참여에의 의욕은 필연적으로, 자기 반성과 사장된 자기 능력의 개발을 가져오게 될 것이다. 이런 여성이 허구한 날 남편의 하잘 것 없는 배 안의 버릇인 한눈팔기에만 신경을 곤두세우고 사는 여성보다 매력이 있을 건 뻔한 이치다. 하찮은 것에 신경을 쓰는 것은 서로 못할 노릇이요, 피차 참을 수 없는 구속이다. 애정이란 미명 아래 가정을 답답한 감옥으로 만들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남편에게 적당히 무관심할 줄도, 적당히 관대할 줄도 알고, 풍부하게 화제를 리드할 줄도 알고, 새로운 지식으로 남편을 자극할 줄도 알고, 때로는 사회 참여를 통해 아내나 엄마 외의 딴 모습으로 변신하여 남편을 깜짝 놀래줄 줄도 아는 아내를 가진 남자라면 차츰 한눈팔기에 흥미를 잃을 것이다.
한눈팔기란 외면적인 것, 말초적인 것에의 호기심에서 시작되는데 이런 말초적인 호기심이란 내면적인 매력에 눈뜨고 나면 곧 시시해지고 말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보수적인 대영제국에서도 사상 초유의 여수상이 나왔다. 우리나라 여성들은 언제까지나 우리 부모가 투자한 막대한 교육비를 영원히 사장한 채 배우지 못한 우리의 할머니나 할머니의 할머니가 했던 그대로 남편의 한눈팔기에 바가지나 긁고 허송세월을 할 것인가.
남편의 한눈팔기는 한눈팔기에 앙앙대는 아내가 있음으로 있는 것이다. 어리석은 아내는 남편을 그렇게밖에 길들이지 못한 것이다. 그까짓 거 내버려두자. 여자 다리에 한눈을 팔건, 개뼈다귀 만병통치약에 한눈을 팔건 내버려 두고 여자도 자기의 일을 갖고 좀 더 바빠져야겠다. 자기의 시간을 좀 더 값진 일로 채울 줄 알아야겠다.
남들도 그러는 것 같으니까, 텔레비전 같은 데서 한다 하는 명사 어른들도 그러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으니까...... 그저 그 정도다. 무책임한 이야기다. 우리는 섣불리 ‘이해심 많은’ ‘친구 같은’ 부모가 되기 위해 정작 부모로서의 책임, 권위까지를 포기해 버린 거나 아닌지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믿는다. 그들이 그들의 예지로 그들을 억누르고 있는 허깨비의 정체를 규명하고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으리라는 것을, 그들은 능히 그럴 수 있을 것이다.
그들에겐 우리가 못하는 것을 능히 할 수 있는 저력이 있다. 팝송을 들으며 온몸을 들까불면서도 어려운 시험 공부를 거뜬히 해낼 만큼 한가닥 맑은 정신만은 또렷이 간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의 옷차림은 꺼벙하고 때로는 야해서 한마디로 격식을 도외시한 것이고 하는 짓은 경망하고 당돌해서 한마디로 버르장머리가 없다. 그것이 그들의 겉모양이다.
그러나 그들의 그런 모습은 우리 기성 세대의 고질병ㅡ필사적인 외화 치레, 냉수 먹고 이 쑤시는 허식, 뒷구멍으로 호박씨 까는 같잖은 점잖음ㅡ에 대한 일종의 도전인지도 모르지 않나.
그래 도전을 하려거든 철저히 해라. 속 빈 강정인 기성 세대에게 너희들의 알찬 내실로 맞서거라.
팝송을 들으면서라도 좋으니 지독하게 공부하고 밤새워 명작을 읽고 진지하게 고민하거라.
그리고 답답한 일이 있거든 답답해하거라. 답답한 것과 맞서거라. 답답한 것을 답답한 줄 모르는 바보야말로 구제할 길 없는 바보가 아니겠는가.
결코 머리가 짧은 청년이 더 성실해 보이고 머리가 긴 청년이 불량 퇴폐적으로 보이지 않더란 얘기다. 그들은 공동의 관심사와 공동의 화제를 가진 명랑 솔직한 한패거리였다. 결국 나는 머리털이 길고 짧다는 외모가 결코 그 머리털의 주인공의 의식 구조를 결정짓는 것은 아닐 거란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젊은이들이 욕구 불만이란 어차피 어디를 통해서고 터지거나 뻗치게 마련인 것을, 위를 누르면 옆구리로, 옆구리를 막으면 등창이 돼서라도, 그러니까 막는 것보다 어떻게 자연스럽게 흐르게 하나에 신경을 쓰는 게 더 현명할 것이다.
그럼 어떻게 사는 게 행복하게 사는 걸까. 나는 어려운 것은 잘 몰라도 사는 행복 중에서 필요하고 갖고 싶은 물건을 벼르고 별러서 장만하는 재미, 또 그렇게 해서 장만한 것에 대해 갖는 애착 등도 꼭 맛볼 만한 중요한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부모가 자식에게 너무 아쉬운 것 없이 다 갖춰 주는 것은 자식에게서 중요한 행복 중의 하나를 빼앗는 결과가 될지도 모른다.
없는 것 없이 다 갖춰 놓은 곳에 몸만 들어가 생활한다, 그게 무슨 재미란 말인가. 생활에 맥이 풀리면 권태로울 것은 당연하고 자연히 딴 곳에서 재미나 자극을 구할밖에 없을 것이다.
부모가 자식에게 줘야 할 것 중에서 중요한 것은 어떤 결과가 아니라 그 과정이 아닐까. 완성되고 구비된 물건이나 행복이 아니라 그것을 획득하기 위한 과정 말이다.
어린아이가 어느 만큼만 자라면 벌써 현명한 부모는 완제품의 장난감을 주지 않고 마음대로 구성하고 파괴하고 다시 재구성할 수 있는 장난감을 준다. 그래서 아이로 하여금 만들어 가는 과정을 즐기도록 해준다. 그런데 왜 장성한 자식들에게 완전히 구비된 환경, 완제품의 행복을 주지 못해 하는 것일까.
그것을 스스로가 얻기 위한 과정을 거치면서 어려움도 알고 재미도 알도록 도와주지 않고 덮어놓고 과정을 건너뛰도록 도와주려는 것은 중대한 잘못이다. 그것은 거의 사는 의미를 빼앗는 거나 마찬가지다.
꼬마 여학생이 까르르 웃으며 가정교사를 조롱하더란다.
“그럼 결국 똑같네요. 선생님도 잘살고 싶은 건 마찬가지 아녜요. 그럴 바엔 부자한테 시집가서 단박 잘살지 뭣 하러 거지한테 시집가서 고생하다가 잘살아요? 난 단박 잘살 테야요.”
너무 기가 막혀 말문이 막혔다고 한다. 어릴 적부터 벌써 고된 과정을 깡충 건너뛰어 단박 잘살 궁리부터 한다.
오늘날의 모든 문제가 바로 이 건너뛰기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잘 익은 열매를 자식들 코앞에 갖다 들이대는 부모 사랑에서 열매를 가꾸는 과정의 수고와 기쁨을 자식들에게 주는 부모 사랑으로 바뀔 때가 와야겠다.
시골에서 나서 자란 사람은 아무리 후에 도회물에 씻기고 닳아도 그 본질 중에 자연의 이치를 닮은 용기와 겸허함과 정직함이 있어 우선 사람이 믿음직스럽다.
힘이 있으되 소위 깡다구라고 하는 도회인의 힘처럼 겉으로 나타나는 허구의 용기가 아니라 뿌리가 땅에 내린 듬직한 힘이다.
도시 아이들이 교실에 괘도를 걸어 놓고 괭이밥이 어떻고 쇠비름이 어떻고 배추꽃과 무꽃은 어떻게 다르고 골백번 배워 봤댔자 말짱 헛거다.
시험 문제로서의 가치밖에 없는 그것들의 개념을 배울 뿐 그것들의 본질에 대한 이해도 사랑도 있을 리 없다. 그런 것들을 잘 배워 시험을 잘 친 아이일수록 허얏고 속이 옹졸하기가 일쑤다. 그러나 시골에서 그것들과 더불어 사귀고 친해지고 사랑하며 자란다는 건 대자연의 오묘한 이치에 대한 깨달음의 시작이 될 테고, 대자연을 위대한 교사로 받들어 모신 폭이 되니 얼마나 큰 축복일까.
그래서 시골 출신들은 겉으론 우직한 듯 하면서도 속이 넓고 인간성이 크다. 그의 인간성 속엔 누구나를 맞아들일 고향 같은 걸 갖고 있다. 서울 출신들에겐 좀체 없는 크고 옳은 일을 할 바탕 같은 게 잡혀 있다.
이제 도시는 좁은 뒷골목까지 말끔히 포장돼 어디서 넘어지거나 굴러도 먼지는 묻을지 몰라도 흙은 안 묻는다.
온종일 싸다녀도 신발에 진흙 한 덩이쯤 묻혀 오는 일도 없게 되었다. 큰 건물 앞이나 광장 같은 데 잘 다듬어진 화단이 없는 건 아니지만 빛깔이 강렬한 서양 화초가 기하학적인 무늬로 무리져 피어 있는 걸 보면 흙에서 난 자연물 같지 않고 꼭 조화로 된 장식물 같다. 더군다나 그것들은 거기서 씨 뿌려서 싹튼 게 아니고 어느 날 정원사가 다 핀 꽃을 온실에서 별안간 옮겨다 색 맞추어 심은 것이다.
그러니 그것을 바라보는 아이들이 백화점 쇼윈도를 바라보는 것 이상의 감동을 하리라고 기대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이렇게 아이들을 자연에 대한 감동을 맛볼 기회 없이 키운다는 게 문득문득 두려워진다.
자연을 모르고 흙으로부터 단절된 채 자란다는 건 부모 없이 자라는 것과는 또 다른 의미로 아이들을 고아로 만드는 일일 것 같다. 우리를 낳은 근원에 대한 사랑과 외경과 순종을 전혀 모르면서 자라야 되니 말이다.
당장에 잇속에 밝게 노는 일보다는 나중까지도 후회 안 할 일이 정말 잘한 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도 남을 도왔다는 기억은 돈 주고도 절대로 살 수 없는 민족적 긍지가 아닌가.
망망대해에서 조난을 당해서 그대로 놔두면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을 우선 구해 놓고 보는 것이 옳은 일이고 사람으로서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나라와 나라 사이에도 행동의 기준을 옳고 자연스러운 데 두기보다는 무엇이 더 이로운가에 두는 게 당연한 일로 되었고 그런 행동이 보다 세련된 행동으로 보이니 끔찍한 일이다.
내 남편을 낳아 길러주었고, 내 자식을 같이 사랑하고, 같이 병상을 보살피고, 같이 재롱에 웃던 분의 쓸쓸한 노년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그저 한 가닥 연민뿐이니 그것 또한 서글프다.
평범하게 키우고 있다. 공개해서 남에게 도움이 될 만한 애 기르기의 비결 같은 것도 전연 아는 바 없다. 그저 따뜻이 먹이고 입히고, 밤늦도록 과중한 숙제와 씨름하고 있는 것을 보면, 숙제를 좀 덜 해 가고 대신 선생님께 매를 맞는 게 어떻겠느냐고 심히 비교육적이고 주책없는 권고를 하기도 한다.
아이들의 책가방은 무겁다. 그러나 단순한 책가방의 무게만으로 한창 나이의 아이들의 어깨가 그렇게 축 처진 것일까? 부모들의 지나친 사랑, 지나친 극성이 책가방의 몇 배의 무게로 아이들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는 거나 아닐지.
“내가 너한테 어떤 정성을 들였다구. 아마 들인 돈만도 네 몸무게의 몇 배는 될 거다. 그런데 학교를 떨어져 엄마의 평생 소원을 저버려?”
“내가 너를 어떻게 키운 자식인데 장가들자마자 네 계집만 알아. 이 불효막심한 놈아.”
이런 큰소리를 안 쳐도 억울하지 않을 만큼, 꼭 그만큼만 아이들을 위하고 사랑하리라는 게 내가 지키고자 하는 절도다. 부모의 보살핌이나 사랑이 결코 무게로 그들에게 느껴지지 않기를, 집이, 부모의 슬하가, 세상에서 가장 편하고 마음 놓이는 곳이기를 바랄 뿐이다.
아이들은 예쁘다. 특히 내 애들은. 아이들에게 과도한 욕심을 안 내고 바라볼수록 예쁘다.
제일 예쁜 건 아이들다운 애다. 그다음은 공부 잘하는 애지만 약은 애는 싫다. 차라리 우직하길 바란다.
활발한 건 좋지만 되바라진 애 또한 싫다.
특히 교육은 따로 못 시켰지만 애들이 자라면서 자연히 음악, 미술, 문학 같은 걸 이해하고 거기 깊은 애정을 가져 주었으면 한다.
커서 만일 부자가 되더라도 자기가 속한 사회의 일반적인 수준에 자기 생활을 조화시킬 양식을 가진 사람이 되기를. 부자가 못 되더라도 검소한 생활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되 인색하지는 않기를. 아는 것이 많되 아는 것이 코 끝에 걸려 있지 않고 내부에 안정되어 있기를. 무던하기를. 멋쟁이이기를.
대강 이런 것들이 내가 내 아이들에게 바라는 사람 됨됨이다. 그렇지만 이런 까다로운 주문을 아이들에게 말로 한 일은 전연 없고 앞으로도 할 것 같지 않다.
다만 깊이 사랑하는 모자 모녀끼리의 눈치로, 어느 날 내가 문득 길에서 어느 여인이 안고 가는 들국화 비슷한 홑겹의 가련한 보랏빛 국화를 속으로 몹시 탐내다가 집으로 돌아와 본즉 바로 내 딸이 엄마를 드리고파 샀다면서 똑같은 꽃을 내 방에 꽂아 놓고 나를 기다려 주었듯이 그런 신비한 소망의 닮음, 소망의 냄새 맡기로 내 애들이 그렇게 자라 주기를 바랄 뿐이다.
서재에서 당당히 글을 쓰는 나는 정말 꼴불견일 것 같다. 요바닥에 엎드려 코 고는 소리를 들으며 뭔가 쓰는 일은 분수에 맞는 옷처럼 나에게 편하다.
양말 깁기나 뜨개질만큼도 실용성이 없는 일, 누구를 위해 공헌하는 일도 아닌 일, 그러면서도 꼭 이 일에만은 내 전신을 던지고 싶은 일, 철저하게 이기적인 나만의 일인 소설 쓰기를 나는 꼭 한밤중 남편의 코 고는 소리를 들으며 하고 싶다.
규칙적인 코 고는 소리가 있고, 알맞은 촉광의 전기스탠드가 있고, 그리고 쓰고 싶은 이야기가 술술 풀리기라도 할라치면 여왕님이 팔자를 바꾸쟤도 안 바꿀 것같이 행복해진다.
오래 행복하고 싶다. 오래 너무 수다스럽지 않은, 너무 과묵하지 않은 이야기꾼이고 싶다.
사람의 생각이 투명하게 밖으로 내비치지 않는다는 건,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 얼마나 큰 축복일까.
나는 내 마지막 몇 달을 철없고 앳된 시절의 감동과 사랑으로 장식하고 싶다. 아름다운 것에 이해관계 없는 순수한 찬탄을 보내고 싶다. 그렇다고 아름다운 것을 찾아 여기저기 허둥대며 돌아다니지는 않을 것이다. 한꺼번에 많은 아름다운 것을 봐 두려고 생각하면 그건 이미 탐욕이다. 탐욕은 추하다.
내 둘레에서 소리 없이 일어나는 계절의 변화, 내 창이 허락해 주는 한 조각의 하늘, 한 폭의 저녁놀, 먼 산빛, 이런 것들을 순수한 기쁨으로 바라보며 영혼 깊숙이 새겨 두고 싶다. 그리고 남편을 사랑하고 싶다. 가족들의 생활비를 벌어오는 사람으로서도 아니고, 아이들의 아버지로서도 아니고, 그냥 남자로서 사랑하고 싶다. 태초의 남녀 같은 사랑을 나누고 싶다.
이런 찬란한 시간이 과연 내 생애에서 허락될까. 허락된다면 그때는 언제쯤일까. 10년 후쯤이 될까, 20년 후쯤이 될까, 몇 년 후라도 좋으니 그때가 가을이었으면 싶다. 가을과 함께 곱게 쇠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