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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사] 행복의 발견 365(세라 본 브래넉)

아름다운 존재 2024. 12. 12. 13:58

당신이 삶을 사랑할 수 있게 하는 열쇠는 무엇을 진정으로 사랑하는지 파악하는 것이다.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은 “세상이 좋아하라고 하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아는 것이 당신의 영혼을 살아 숨 쉬게 하는 길이다”라고 우리를 일깨운다.
 
“‘찾는다’고요?” 그녀가 짐짓 놀란 척하며 나를 놀렸다. “세라, 다른 사람의 이야기는 ‘빌릴’ 수만 있어요. 당신이 진짜 자신의 삶을 살기 시작한 후에요. 당신 자신이 주인공이 돼야 해요. 대부분의 사람은 목적의식 없이 온갖 사건으로 뒤엉킨 복잡한 삶을 살아요. 당신은 하루하루를 빈 페이지로 봐야 해요. 당신은 하루를 재미있는 일화, 엄청난 전환점, 대담한 선택, 열정으로 가득 채울 수 있어요. 세상은 이야기꾼을 흠모하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않거나 자신의 이야기대로 살지 않는 사람을 안타까워해요.”
 
우리의 정수가 드러나도록 곰곰이 생각할 시간, 반성할 시간, 창조적인 선택을 할 시간, 고치를 뚫고 나올 시간, 수치심을 없앨 시간, 마음의 거미줄을 걷어낼 시간이 필요하다.
 
균형을 찾는 방법 중 하나는 해야 하는 모든 일을 꼭 오늘 끝낼 필요는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앤 윌슨 섀프가 다음과 같이 조언한다. “내버려두면 우리 삶의 많은 일과 문제가 저절로 해결될 것이다. 당장 해내야 하지만 불가능한 일이 내일이나 다음 주에는 아주 다르게 보일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어떤 일이 시급하다고 밀어붙일 때... 내 최선의 반응은 그저 속도를 줄이는 것이라는 것을 자주 느꼈다.”
혹은 선종의 선문답은 이렇게 우리를 일깨운다. “조용히 앉아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봄이 오고 풀이 저절로 자란다.”
 
우리는 날마다 선택을 한다. 다른 사람의 요구에 부정적으로 반응할 수도 있다. 아니면 풍요롭게 살기로 선택하고 부정적인 반응을 의미 있는 반응으로 바꿀 수도 있다. 마음가짐이 가장 중요하다. 내가 내 삶과 일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면, 아무도 나를 대신해서 그 의미를 부여해주지 않는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거실 청소의 가치를 스스로 인정하지 않으면 아무도 그 가치를 인정해주지 않는다. 그리고 가정을 돌보는 일이야말로 가장 성스럽다. 집안일이 성스럽지 않다면 대체 성스러움의 의미가 무엇이란 말인가?
그래서 나는 청소를 할 때 기분을 북돋고 내 선택을 축하하려고 바흐의 협주곡을 듣는다. 나에게 갓 끓인 차를 대접하려고 주전자를 불에 올려놓는다. 창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산들거리는 봄바람을 들이마신다.
에밀리 디킨슨은 이메일이나 문자를 받지 않았다. 전화가 뭔지, 퍼스널 컴퓨터나 텔레비전이 뭔지 몰랐다. 그녀는 친구, 우정, 음식, 가정, 자연, 아이디어, 문학, 음악, 예술처럼 정말로 중요한 모든 면에서 부자였고, 삶이 너무 놀라워서 다른 것에 신경 쓸 시간이 거의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
우리가 이런 경이로운 선물을 감사하게 받아들인다면 행복의 상속인이 될 수 있고 꿈에서도 생각지 못할 정도로 부유해질 수 있다.
이제 거실이 아주 깔끔해 보인다. 모자와 코트, 배낭과 서류가방, 오늘 쓰고 버릴 물건들을 애정 어린 마음으로 다시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다. 이 물건들은 디킨슨이 우리에게 알려준 일상의 통찰로 둘러싸여 있다. “영원은 지금의 순간들로 구성되어 있다.”
 
“기도와 집안일은 늘 함께한다. 항상 그랬다. 우리는 일과가 곧 삶의 방식임을 안다. 우리는 집을 청소하고 정리하는 동시에 우리를 청소하고 정리한다. ... 우리가 가장 단순한 일을 대하는 자세는 우리가 삶을 대하는 자세를 여실히 드러낸다.” 가정의 영성을 다루는 작가 거닐라 노리스가 현대식 기도서 <집에 머물기Being Home>에서 한 말이다.
 
설사 돈이 많아도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집을 단순한 거주지가 아니라 가정으로 바꾸려면 사랑과 시간이 꼭 필요하다.
 
우리가 자신의 진정한 스타일을 펼치면서 나아간다면 오래 걸리고 늦게 이루어진다고 해도 괜찮다.
하지만 때로 우리는 두렵고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고 느낀다. 따라서 당신이 꽃이 피는 과정을 생각할 때 고려할 점이 있다. 당신은 자신의 꿈이 아닌 다른 사람들의 꿈을 좇는 것을 그만둘 준비가 되었는가? 당신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가? 당신의 발목을 잡고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 바로 당신 자신은 아닌가? 살아간다는 것은 그저 관중석에 앉아서 소극적으로 지켜보는 스포츠가 아니다. 당신의 앞에 놓인 새롭고 다채로운 영역으로 뛰어들 준비가 되었는가?
 
그날 하루는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힘들어질 수도 즐거워질 수도 있었다. 상황을 바꿀 길이 전혀 없었고 그저 받아들이는 것이 최선이었다. “항상 선택하기 나름이야.” 나 자신에게 일깨웠다. 삶이 내게 던진 상황을 좋아할 필요는 없지만 받아들일 수는 있다. 결국 성공은 처음에 세운 계획을 얼마나 잘 실행하느냐가 아니라 대안을 가지고 얼마나 순조롭게 난관을 극복하느냐로 판가름 난다. 이는 대부분의 사람에게 100퍼센트 적용된다.
나는 대안을 생각했다. 소박한 즐거움, 고대할 수 있는 즐거운 일로 하루를 구원하는 것이다. 대안 쪽으로 기어를 변경하려면 처음에는 태도를 조정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러나 자동차 운전이 그렇듯이 연습하면 점차 무의식적으로 변경할 수 있게 된다.
먼저 나는 마음을 진정하려고 찻잔을 들고 정원으로 나갔다. 잡초를 몇 개 뽑고 꽃을 꺾었다. 꽃을 꽃병에 꽂은 후에 요리책을 뒤적였다. 저녁에 새로운 요리를 할까, 아니면 위안을 주는 음식을 만들까? 마침 주방 조리대에 내놓은 복숭아가 제대로 익어서 디저트로 먹을 복숭아 덤플링을 만들기 딱 좋을 듯했다. 저녁을 먹고 나서 인터넷에서 옛날 영화를 한 편 보면 어떨까? 그리고 일을 보러 나가기 전에 남은 1시간을 최대한 활용하기로 했다. 현재의 행복한 한 시간을, 행복했던 과거의 두 시간이나 오늘 오지 않을 행복한 세 시간보다 멋지게 보내자고 작정했다.
바라던 것과 다른 하루가 내 앞에 펼쳐졌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내 의지로 그 하루를 구원할 수 있었다.
 
아무것도 바라지 말라. 삶이 주는 뜻밖의 선물에 놀라면서 검소하게 살라.
-앨리스 워커(퓰리처상을 수상한 미국의 소설가이자 시인)
 
꿈을 열정적으로 추구하면 영혼이 높이 날아오른다. 반면에 꿈의 성취를 저울질하는 기대는 영혼을 바닥에 꽁꽁 묶어 놓는다. 그렇다고 해서 그저 기대를 낮추라는 말이 아니다. 진정으로 즐겁고 모험적으로 살고 싶다면 기대를 아예 버려야 한다.
기대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 꿈을 꾸는 사람으로 살아야 한다. 그런 삶은 독립된 삶을 살아가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기대에 부응하려는 노력의 속박에서 벗어나면 더욱 직접적으로 행복을 추구할 수 있다.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꿈을 꿔야 신이 개입해서 연계와 완료와 성취와 축하를 통해 당신을 놀라게 한다. 꿈을 꾸자. 실천하자. 당신의 꿈을 실현하자.
나는 평생 자청해서 마음의 고통을 겪었지만 이제는 꿈을 꾸고 실행하고 초연하라는 윌리엄 제임스의 조언처럼 꿈과 기대의 균형을 잘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결정을 내리고 실행할 단계가 되면 결과에 대한 모든 책임과 걱정을 깨끗이 잊어야 한다.” 제임스 박사가 내게 말한다. 나는 아주 열정적으로 일하고 성공이 전적으로 내게 달린 것처럼 행동한다. 그러나 최선을 다하고 나면 최대한 잊어버리려 노력하며 내 작업이 세상 사람에게 받을 평가를 기대하지 않는다. 나는 뜻밖의 기쁨에 놀라는 쪽을 의식적으로 선택했다. 당신도 그런 선택을 할 수 있다.
오프라 윈프리는 그녀를 위해 신이 준비해둔 꿈이 자기 스스로 꾼 꿈보다 훨씬 컸다고 말했다. 나는 우리가 꾸는 꿈은 신이 우리를 위해 마련해놓은 꿈의 근처에도 못 간다고 생각한다. 또한 특정한 결과가 아니라 진정한 표현에 감정을 쏟아야만 신이 우리에게 주려는 꿈을 찾을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피셔는 은행 잔액과 상관없이 잘 사는 법을 알고 있었다. 상황이 아무리 어려워도 아등바등 살지 않았다. 원래 빈곤은 지갑보다 영혼에 먼저 오는 법이다.
사실 피셔의 소박하지만 풍요로운 삶을 생각해보면 가난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그녀가 행복하게 살 수 있었던 이유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삶을 받아들였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여행을 자주 다녔고 프랑스와 이탈리아에 살았으며 훌륭한 책을 많이 썼다. 열정적으로 사랑했으며, 많은 친구와 추종자들과 어울렸고, 매일 좋은 음식을 먹고 마시는 즐거움을 음미했다. 진정한 자아를 활기차게 표출했다.
그녀는 자신을 본받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불쾌한 놀라움이 갈수록 증가하는 세상에서 가장 유쾌하게 살 수 있도록” 욕구를 뽑아내고 신성한 굶주림만 남겨두라고 조언한다.
그러기 위해서 그녀는 어떻게 했을까? 그녀는 늑대가 찾아와도 겁을 내며 도망가지 않았고 집을 날려버릴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굴복하지도 않았다. 그녀는 운명의 우여곡절이 주기적으로 찾아온다는 사실을 알았다. 좋은 와인, 싱싱한 토마토, 따뜻한 빵, 치즈, 최고급 버터처럼 오늘 가진 좋은 것에 집중하면 굶주림이 충족된다. 아름다운 석양, 화기애애한 대화, 사랑하는 사람, 음악, 심호흡, 감사의 한숨이 우리가 기억하는 순간을 만든다.
사치한다고 해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행복한 삶은 빼앗지 않는다. 행복한 삶은 기쁨을 준다. 피셔가 이렇게 조언한다. “당신이 가진 자원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말해주는 타고난 감각에 의지해서 늑대가 열쇠 구멍에 대고 코를 킁킁대지 못하게 막아야 한다. 그러면 상황이 아무리 안 좋아도 우아하고 현명하게 살 수 있다.”
 
여행의 목적지가 있으면 좋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여행의 과정이다.
-어설라 K. 르귄(미국의 공상과학소설 작가)
 
더 중요한 점은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보다 여행의 정신이 훨씬 중요하다는 것이다. 진정한 행복을 깨달으려면 목적지를 향해 내딛는 걸음마다 만족감을 느끼려고 노력해야 한다. 결국에 여정이 어떻게 펼쳐질지 아무도 모르는 법이다. 여정은 실제의 삶이다.
 
우리는 삶의 혼란과 혼돈과 불협화음을 극복하는 한편, 자신의 음표를 연주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한편에 자리 잡은 가족, 친구, 애인, 일에 대한 헌신과 다른 한편에 자리 잡은 깊은 내면의 열정 사이에서 섬세한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높은 옥타브와 낮은 옥타브를 넘나들며 움직여야 한다. 내 경험에 따르면 조화의 부드러운 선율을 들을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은 홀로 조용히 있는 것이다.
 
“홀로 있기란 혼자서 잘 지내는 것이다.” 앨리스 콜러가 <고독의 정거장The Stations of Solitude>에서 설명한다. “집에서 편안하게 당신이 선택한 것에 몰두하고, 다른 사람들의 부재가 아닌 자기 존재의 충만함을 자각하는 것이다.”
 
혼자 있는 시간이 내면의 조화를 경험하는 데 아주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기만 하면 재충전할 방법을 찾을 수 있다. 틸리 올슨은 소설 <수수께끼를 내주세요>에서 혼자 있는 시간을 무엇과도 바꾸지 않을 한 여성의 이야기를 소개했다. 그 여성은 다시는 다른 사람의 리듬에 맞춰서 움직이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대부분의 여성이 다른 사람의 리듬에 맞춰서 움직인다. 그러나 혼자 있고 싶은 욕구를 존중하고 소중히 여기면 상상력을 키우고 영혼을 돌보는 방법을 배울 기회가 생긴다.
서서히 그러나 단호하게 시작하자. 아주 잠깐일지라도 홀로 있는 시간이 쌓인다면 평온한 일생을 되찾을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자. 인내심을 갖자. 너무 급하게, 너무 많은 것을 바라지 말자.
 
눈에 보이는 삶에 대해 관심을 가져라. 사람, 사물, 문학, 음악에 흥미를 느껴라. 세상은 대단히 풍요로우며, 다채로운 보물과 아름다운 영혼과 흥미로운 사람으로 약동하고 있다. 너 자신을 잊어라.
-헨리 밀러(미국 작가)
 
오늘은 그저 한가한 시간을 보내자. 꾸물거리고 빈둥거리면서 과거에 즐거움을 느낀 공상의 내용을 곰곰이 생각하자. “나는 일을 자수 혹은 요리와 마찬가지로 생각한다. 내가 지금 쓰고 있는 이 원고를 놀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보면 나는 평생 놀이를 하며 사는 셈이다. 바느질이나 자수, 꽃 가꾸기나 글쓰기, 식료품 사기 등 모두가 놀이다.” 작가 다이앤 존슨이 말한다. 그녀의 소설에는 주로 파리로 간 후 새로운 삶을 찾은 여성이 주인공으로 나온다.
진정한 자아를 찾으려고 노력하면서 평범한 일과를 놀이처럼 하면 삶에 조화로운 리듬이 울려 퍼질 것이다.
 
“내면의 활력, 생명력, 에너지, 활기가 당신의 몸을 통해서 행동으로 표현된다. 당신에게만 존재하는 것이므로 유일무이한 표현이다. 다른 몸을 통해 존재하지 못하기 때문에 당신이 표현을 막으면 그저 사라져버린다.” 현대 무용가 마사 그레이엄이 조언한다.
 
내 삶은 아주 멋졌다! 조금만 더 일찍 깨달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프랑스 작가)
 
신의 뜻을 매일 탐구하라.
-카를 융(스위스의 정신과 의사이자 정신분석가)
 
“참된 삶, 즉 본모습에 충실한 삶이란 재능에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재능에 충실하지 않으면 본모습으로 살 수 없다.”
 
“네 느낌을 따라라. 네 느낌을 믿어라.”
 
우리는 의심의 구덩이에 빠져 있을 때조차 자신의 힘보다 위대한 힘이 있다고 믿고 싶어 한다. 그런 힘은 실제로 존재한다. 진정한 자아가 그런 힘을 지녔다. <스타워즈>에서 오비원 케노비는 제자인 루크 스카이워커에게 말한다. “그 힘은 모든 생명체가 만들어내는 에너지 장이란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고 우리에게 스며들어 은하계를 하나로 결합하지.” 그 힘은 당신의 꿈과 열망을 재능과 결합해서 재능이 밖으로 표출되게 한다. “네 느낌을 따라라. 네 느낌을 믿어라.” 제다이의 기사 오비원이 우리에게 충고한다. 우리는 그 힘 안에서 살아가고 움직이고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 힘은 사랑이다.
사랑은 당신의 무조건적인 행복과 조화, 온전함만을 바라고 희망한다. 당신의 재능을 발견하고 인정하고 감사하고 자기 것으로 만들고 존중하는 데 전념하자. 
그러면 그 힘이 당신과 함께할 것이다.
 
당신이 재능을 베풀어야 하는 만큼 세상에 당신의 재능이 필요하다. 메이 사턴은 “내면에 쌓인 채로 발휘되지 못한 재능은 무거운 짐이 된다. 심하면 독이 되기도 한다. 삶의 흐름이 역행하는 것과 다름없다”라고 말한다.
당신 홀로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도움의 손길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다면 재능의 흐름이 멈출 일은 없을 것이다.
 
많은 여성이 실패나 성공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고 넘을 수 없어 보이는 장벽을 무의식적으로 세운다. 창조적인 충동을 무시하거나 거부함으로써 자신을 보호하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진정한 자아를 산 채로 매장하는 셈이다.
다른 사람의 의견과 비판(자신의 내부 검열도 포함)의 부스러기를 제거하는 방법을 서서히 배워야 한다. 그리고 인색하고 옹졸한 신이 작품에 대해 안 좋게 해석하는 것을 무시하고 줄리아 캐머런이 말한 대로 위대한 창조주가 안내하는 ‘질서정연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방법도 배워야 한다. 그러면 내면의 예술가와 만나게 될 뿐만 아니라 자신의 예술을 개인적인 형태의 예배로 여기게 될 것이다.
줄리아 캐머런은 이렇게 우리를 안심시킨다. “창조가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것을 인정한 다음에야, 위대한 창조자가 당신이 하는 프로젝트에 필요한 도움을 줄 것이라는 두 번째 생각을 받아들일 수 있다. 이 협력자의 도움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순간 삶의 곳곳에서 유용한 도움이 보일 것이다. 방심하지 말고 살펴보자. 당신 내면의 창조적인 목소리를 확장시키는 높은 주파수가 있다.”
영혼은 하루 종일 끊임없이 당신에게 속삭인다. 직감을 느끼거나, 친구의 제안에 귀를 쫑긋 세우거나,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싶은 충동을 즉흥적으로 따르는 때가 있을 것이다. 마음으로 듣는 연습을 하자. 오늘은 영혼의 위성의 궤도를 조정하자. 진정한 예술가의 길을 걸으면서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더 높은 주파수에 파장을 맞추자.
 
굳이 그림, 조각, 뜨개질, 노래, 춤, 연기가 아니라도 상관없다. 전념하기만 한다면 케이크 굽기도 발레의 안무처럼 예술이 될 수 있다. 피곤하고 배고파서 짜증을 내는 아이를 인내심을 가지고 달래는 것도 예술이 될 수 있다. 연락 없이 갑자기 손님이 찾아올 때 집에 있는 재료로 요리해서 촛불과 와인과 웃음과 생기 넘치는 대화로 멋지게 대접하는 것도 예술이다. 친구가 위기를 잘 넘기도록 돕거나, 나이 많은 부모에게 위안을 주거나, 10대 소녀의 파티 계획을 짜는 것도 예술이다. 마음을 열고 내면의 창조성을 기꺼이 발휘하면 오늘 당신이 하려는 모든 일이 예술로 전환될 수 있다. 여성은 일상의 예술가다. 세상은 일상의 예술을 인정하지 않거나 칭찬하지 않으므로, 우리 스스로 자기 예술을 인정하고 칭찬해야 한다. 우리는 신성한 진실의 관리자다. 이 지혜를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전달해야 한다.
나는 예술가로 살아오면서 창조는 노동, 기술, 숭고라는 세 차원으로 나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성 프란치스코는 손으로만 일하는 여성은 노동자이고, 손과 머리로 일하는 여성은 장인이고, 손과 머리와 마음으로 일하는 여성은 예술가라고 말하며 창조적 과정을 설명한다.
노동은 일 자체에만 목표를 두는 것이다. 기술은 작업을 하는 방법에 초점을 둔다. 마음과 몸과 정신을 쏟고 있는가? 여유롭게 천천히 하는가, 아니면 서두르는가? 지금 하는 일에 집중하는가, 아니면 해결해야 할 수십 가지 일을 생각하고 있는가?
케이크 굽기를 예술의 경지로 올리자. 밀가루, 달걀, 버터, 설탕, 소금을 그릇에 한꺼번에 쏟아붓고 거칠게 휘저인 반죽 덩어리를 오븐에 처박아두고 나서는 최고로 맛있는 케이크가 나오리라고 기대하는가?
아니면 밀가루를 세 번 체에 치고 달걀을 잘 풀고 버터와 설탕을 크림 상태로 만든 다음에 재료를 조금씩 조심스럽게 합하는가? 반죽을 15분 동안 잘 섞어주는가? 오븐을 예열하고 팬에 버터와 밀가루를 발라두는가? 멋진 결과를 기대하는 것은 물론이고 반죽을 하는 내내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창조 과정을 즐기는가? 그렇다면 요리에 사랑이 담기는 것이다. 사랑은 기술을 예술로 격상하는 정신의 에너지다.
우리는 진정한 삶이라는 예술 작품을 창조하도록 운명 지어졌다. 이 예술 작품을 완성하는 데는 평생이 걸린다. 하지만 매일 새로운 임무를 시작하기 전에 내면을 들여다보는 데 필요한 시간은 단 5분이면 된다. 이 5분 동안 당신이 일상의 예술가라는 사실을 깨닫고, 자신의 재능에 감사하며, 사랑과 창조적 에너지와 재능을 당신의 관심을 기다리는 사람이나 아이디어나 작업에 쏟으면 된다.
큰 소리로 말해보자. “나는 재능이 뛰어난 일상의 예술가다. 내 작품은 내게 축복이며 내 것이다.”
 
당신의 열정이 무엇이든 간에 그 열정을 계속 추구하자. 성공을 쫓거나 다른 사람과 비교하느라고 시간을 낭비하지 말자. 모든 꽃은 각각 다른 속도로 핀다. 결국 사람들은 당신이 일을 아주 잘하게 된 것을 볼 것이다. 그리고 당신이 정말로 훌륭하다면 성공이 당신을 좇아올 것이다.
-수지 카셈(미국의 시인이자 철학자)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무엇을 할지 아는 것 다음으로 여성에게 가장 중요한 재능은 밀짚으로 황금을 만드는 것이다. 연금술 재능에 따라서 결핍에 시달리는 삶과 소박한 풍요로움의 삶이 판가름 난다. 다행히 이는 모든 사람이 가지고 태어나는 재능이다. 그러나 다른 재능과 마찬가지로 연금술이라는 재능도 끌어내서 소중히 아끼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존중하고 키워야 한다.
 
정신의 눈을 뜨고 내면에 있는 무한한 보물창고를 바라보면 사방에 무한한 부가 넘쳐난다. 멋지고 즐겁고 풍요롭게 살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꺼낼 수 있는 금광이 당신의 내면에 있다.
-조지프 머피(미국의 작가이자 성직자)
 
“무엇인가를 원하는 것이 숙녀답지 않다고 생각하는가? 정신 차리자!” 캐머런 터틀이 촉구한다. “무엇인가를 원하거나 열망하거나 갈구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자. 그리고 당신이 원하는 것을 추구하기를 두려워하지 말자. 당신이 자신을 만족시킬 수 없다면 어떻게 다른 사람이 당신을 만족시키겠는가?”
 
당신이 난처한 상황에 부닥칠 때의 두려움, 점잖은 무시, 혼란의 덤불을 한 번에 헤쳐나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닫자. 하지만 더 이상 두려움에 발목 잡혀 살고 싶지 않다는 마음을 자각하는 것만으로도 정신적으로 크게 도약할 수 있다. 당신이 악당에게 쫓겨 덤불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집을 찾기 위해 스스로 숲길을 선택하는 순간마다 주인공이 된다. 전설적인 인물이 당신의 마음속에 있고, 마음은 전설적인 인물이 승부수를 두는 연습을 하기에 최고의 장소다. 당신이 이끌어가는 이야기가 아니라면 당신의 삶이 아니다. 당신이 자기 삶의 주인이 돼야 다른 것도 가질 수 있다.
 
길게 보면 창조성을 발휘하지 못하는 날도 창조 주기의 일부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마음의 평정을 유지할 수 있다. 창조적이지 않은 날도 삶이다. 모든 예술가는 이 사실을 알고 있다. 진정성을 예술로 발현하면 당신에게도 그런 날이 올 것이다. 창조적이지 않은 날은 음과 양이 조화를 이루는 과정의 일부다.
“어떻게 해야 하죠?”
“아무것도 안 해도 돼요.”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냥 기다리자. 창조성의 정체기를 최대한 의연하게 받아들이고 창조성 혹은 의식의 엄청난 변화를 맞을 준비를 하자.
창조성의 불모지가 됐다면 쉬어야 한다. 내가 아는 한 가장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사람인 도나 쿠퍼는 내가 뜻대로 진행되지 않는 작업 때문에 괴로워하면 “이도 신의 뜻이야”라고 충고한다.
우리가 일상의 예술가로 살아가면서 지키기 가장 힘든 점은 때때로 애쓰기를 멈추는 것이다. 지금 창조성이 고갈됐다는 느낌이 들어도 절망하지 말자. 기분을 북돋고 힘을 아끼자. 당신은 진정성의 비약적인 성장을 준비하고 있다.
자연 현상인 가뭄은 나타날 때와 마찬가지로 갑자기 신비롭게 사라진다. 이 또한 신의 뜻이다.
 
책은 호흡만큼이나 필수적이다. 내 경험에 따르면 같은 책을 세 번째 읽으면 단어 하나하나가 그날을 구원하는 소생의 말이 된다.
 
당신의 책장에 어떤 책이 많이 꽂혀 있는가? 알기는 하는가? 시원한 가을에 기분전환거리로 삼기에 좋은 활동이 있다. 종종 삶을 변화시킬 영감을 얻고 싶은데 어디에서 시작해야 할지 전혀 감을 잡지 못할 때가 있다. 이럴 때 책장을 살펴보는 것으로 활동을 시작하자. 수전 힐의 설명을 들어보자. “나는 평생 독서를 하면서 무엇을 축적했는지 탐구하고, 집 안 이곳저곳에 있는 많은 책을 조사하기 위해 내 책들을 거두어 들이고 싶었다. 이 책들은 1년이 넘는 동안 나를 집중시키고, 가르치고, 즐겁게 하고, 놀라게 하고, 향상시키고, 이끌고, 풍요롭게 만들기에 충분한 양이다. 모든 책이 먼지를 털고 펼쳐서 읽는 대접을 받을 자격이 있다. 책장에 있는 책은 무생물이지만 일종의 번데기이기도 하다.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킬 가능성이 가득한 무생물이다. 나는 그날 집에서 어슬렁거리며 숨어 있는 책 한 권을 찾는 동안 이곳에 얼마나 많은 생명이 보괜돼 있는지 깨달았다.”
 
신을 당신의 개인 상담사로 삼자. 신비주의자인 시인 칼릴 지브란은 “당신은 일할 때 대지의 가장 소중한 꿈의 일부를, 태어날 때 이미 당신에게 주어진 부분을 이행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당신이 진심으로 일을 대하면 대지의 가장 소중한 꿈에서 당신이 맡은 부분을 이행하게 된다.
 
가족을 돌보고 하던 일을 하는 동시에 꿈을 이루려고 노력한다면 당신에게 맞는 속도를 정해야 한다. 당신은 당신의 꿈을 누구보다 잘 안다. 늘 꿈을 간직하고 살아야 하지만 때로는 돌아갈 줄도 알아야 한다.
일을 통해 진정한 성취를 이루는 과정은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 마라톤이다. 장거리 경주 선수는 일단 짧은 거리로 수없이 연습한 뒤에 체력과 실력이 나아지면 점차 뛰는 거리와 속도를 늘린다. 부름을 듣고 응답하려면 멀리 보고 시간을 넉넉하게 잡아야 한다. 직접 나서지 않으면 누구도 당신에게 시간을 주지 않는다. 현재 자녀가 있거나 하루 종일 근무하는 직장에 다닌다면, 꿈을 달성하기 위한 5개년 계획을 세워야 한다. 당장 책을 내거나 1인극을 제작하거나 연구 보조금을 따내거나 회사를 열려고 하지 말고 장기 계획을 짜야 한다. 나는 3년 동안 수없이 퇴짜를 맞은 뒤에야 전국에 배포되는 신문에 칼럼을 게재할 수 있었다. 거절당한 수는 세다가 잊어버렸다. 핵심은 꿈을 얼마나 빨리 실현하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꾸준히 추구하느냐다.
앤 타일러는 에세이집 <작품과 작가>에서 가정을 돌보면서 창작을 하는 것이 대단히 어렵다고 털어놓는다. 글쓰기는 앤 타일러에게 삶의 기본 틀이며, 나에게도 마찬가지다. 이는 글쓰기뿐만 아니라 당신이 열정을 지닌 모든 일에 적용된다. 3월의 어느 날, 앤 타일러가 아래층 복도에 페인트칠을 하던 중에 등장인물의 이미지가 퍼뜩 머릿속에 떠올랐다. 당장 책상에 앉아서 등장인물에 대한 아이디어를 종이에 적으면 그것을 중심으로 소설을 구상할 수 있을 터였다. 그러나 3월이었고 다음날 아이들의 봄방학이 시작될 참이었으므로 기다렸다고 한다. 그녀는 7월이 돼서야 드디어 작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아이들을 키우는 동시에 꿈을 좇으면 일상생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창조 과정이 지연되는 때가 있다. 그러나 엄청난 이점도 있다. “아이들이 있어서 내가 더욱 풍성하고 깊어지는 것 같다. 아이들 때문에 잠시 집필이 지연됐지만 글을 쓰기 시작하자 이야기가 저절로 술술 풀렸다.” 앤 타일러가 고백한다.
 
세상이 당신을 여왕처럼 추켜세운다고 해도 당신에게 성취감을 줄 수는 없다. 그것은 당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당신이 자신을 인정해야 성취감이 생긴다. 창조적인 프로젝트를 완료하거나 개인적으로 혹은 직장에서 나름대로 성과를 올리면 시원한 샴페인을 준비해 자신을 위해 축배를 들자. 세상이 인정해줄 때까지 기다리면 안 된다. “나는 끊임없이 강박적으로 일할 운명이다. 어떤 목표를 달성해도 만족스럽지 않다. 성공은 또다시 새로운 목표를 낳을 뿐이다. 황금 사과를 게걸스럽게 먹고 나면 씨가 뿌려진다. 끝없는 반복이다.” 벳 데이비스가 회고록 <외로운 인생The Lonely Life>에서 고백한다.
 
진정한 성공은 즐거운 취미를 즐길 시간, 늘 미루기만 하는 애정 표현을 가족에게 할 시간, 집을 돌볼 시간, 정원을 가꿀 시간, 영혼을 돌볼 시간을 마음껏 낼 수 있는 여유다. 진정한 성공은 당신 혹은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봐서 내년에나”라는 말을 할 필요가 없는 상태다. 진정한 성공은 오늘이 세상에서 주어진 마지막 날이라고 해도 후회 없이 떠날 수 있는 삶이다. 진정한 성공은 일할 때 정신이 분산되지 않고 집중과 평온함을 느낄 수 있는 상태다. 진정한 성공은 직면한 상황이 어떻든 최선을 다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그 최선이 자신의 최대 역량이고 늘 최대 역량만 발휘하면 된다는 점을 진심으로 아는 것이다.
진정한 성공은 신성한 계획에 따라 미래가 펼쳐지도록 자기 한계를 인정하고, 과거와 화해하고, 열정을 즐기는 것이다. 진정한 성공은 재능을 발견하고 이끌어내고 세상에 드러내 황폐한 영혼을 치유하는 것이다. 진정한 성공은 다른 사람의 삶을 바꾸는 것이다. 미소나 웃음이나 관심이나 다정한 말이나 도움을 통해서 하루에 한 사람의 삶을 바꾸어 놓을 수만 있다면 당신이 축복받은 사람이라고 믿는 것이다.
진정한 성공은 은행에 쌓아둔 돈이 아니라 만족감과 마음의 평화로 평가된다. 당신이 하는 일에서 당연한 자부심을 느끼고 스스로 그런 자부심을 느낄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진정한 성공은 축적이 아니라 나눔이다. 당신은 필요한 것을 이미 다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진정한 성공은 자신의 현재 모습에 만족하고, 현재의 위치에 감사하며, 자신의 성취를 축하하고,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존중하는 것이다. 진정한 성공은 살아 있는 것 자체가 행복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진정한 성공은 꿈을 꾸준히 추구하는 것이다. 진정한 성공은 꿈을 실현하기까지 아무리 오랜 시간이 걸려도 그 과정의 하루하루가 헛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진정한 성공은 당신과 다른 사람이 하는 노동의 가치를 인정하는 것이다. 진정한 성공은 모든 일에 애정을 쏟아 노동을 기술로, 기술을 예술로 승화하는 것이다.
진정한 성공은 바로 이 순간 당신의 삶이 소박하지만 풍요롭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진정한 성공은 당신과 가족에게 내려진 축복이 아주 많아 다른 사람과 나눌 수 있음을 감사하는 것이다.
진정한 성공은 매일 감사하는 마음으로 사는 것이다.
 
조금씩 나아가는 발걸음+작은 선택=큰 변화. 우리의 갈망은 우리의 축복이다. 우리는 창조적인 자극을 존중하고 고맙게 여길 것이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이 새로운 세상을 향해 천천히 움직일 것이다. 우리는 용감하고 진실할 것이다. 지금부터 우리 임무는 삶을 다시 시작하는 것임을 인정하고 나면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당신에게는 내가 있고, 나에게는 당신이 있다. 그리고 우리 둘 다 진정한 자아의 다정한 지지와 안내와 지원을 받는다. 우리에게는 감사하는 마음이 있다. 하늘에 감사한다.
 
완벽해질 수 있다는 헛된 믿음을 계속 키우는 소셜미디어나 뉴스 기사, 텔레비전, 영화를 보지 말라고 내가 아무리 훈계를 늘어놔도 당신은 내 말을 듣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대신에 다음에 잡지 표지에 실린 아름다운 여성이나, 인스타그램 피드에 올라온 갖고 싶은 방이나, 전문 요리사가 일주일 동안 준비했을 요리가 시선을 사로잡거든 “저건 진짜가 아니지. 진짜가 아니야. 진짜가 아니라고. 가짜에 홀려 비참해지지 말자”라고 낮은 목소리로 읊조리자. 그런 여성이나 방이나 요리는 우리 현실을 인위적으로 바꾸는 대가로 많은 보수를 받는 전문가들이 공들여서 만들어낸 환영이다.
예전에 친한 친구가 내게 아주 귀한 충고를 했다. 친구는 내가 집착하는 사소한 차이보다 온전한 정신이 훨씬 중요하다고 말했다. 사소한 차이는 완벽의 정수다. 사소한 차이가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그러나 사소한 차이에 집착하면서 살면 큰 그림을 보고 즐길 시간이 없어진다. 이제 나는 완벽주의를 극복했으며 사소한 차이를 신의 몫으로 남겨두려고 노력한다.
오늘 나는 그 친구에게 들은 귀한 충고를 당신에게 하려 한다. 온전한 정신이 사소한 차이보다 훨씬 중요하다.
작은 모래시계를 사서 주방이나 책상처럼 눈에 잘 띄는 곳에 놓자. 하루에 한 번씩 뒤집어놓자. 빠르게 떨어지는 모래를 지켜보자. 그것이 당신 삶의 매 순간이다. 그런 순간순간을 놓치지 말고 살자. 그런 순간으로 앞길을 닦자. 하루하루가 당신의 선택에 달려 있다.
하나님이 천지창조를 마무리하고 난 뒤 만물을 보면서 “완벽하구나”가 아니라 “심히 좋구나”라고 말한 이유를 곰곰이 생각하자.
 
우리 선택은 의식적일 수도 있고 무의식적일 수도 있다. 의식적인 선택은 창조적이고 진정성을 반영한다. 무의식적인 선택은 파괴적이고 자기에게 해를 끼친다. 무의식적인 선택 때문에 우리는 다른 사람의 삶을 살게 된다. “가장 흔한 절망은... 자기 자신이 되기로 선택하지 않거나 그렇게 될 의지가 없는 것이다. 가장 깊은 절망은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되는 선택을 하는 것이다.” 19세기 덴마크 철학자 쇠렌 키르케고르가 우리에게 경고한다. 그래서 항상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 않아야 하는 사람에게 상처를 준다. 그 사람은 우리 자신이다.
 
대체로 불평은 입밖에 내뱉을 가치조차 없다. 말은 대단히 강력한 힘이 있어서 하루의 질을 바꿀 수 있다. 불평을 덜 늘어놓을수록 우리 기분이나 주변 사람의 기분이 좋아진다. 사실 불평은 모든 사람의 기분을 망쳐버린다. 불평을 하지 않는 첫 단계는 그저 어깨를 으쓱하며 떨쳐버리는 것이다.
 
마거릿의 가족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죽음을 피할 수 있던 것은 이주하기 전에 마거릿이 중요하게 생각한 세속의 물건과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어차피 마차에 싣고 산맥을 가로지르기가 너무 무겁고 거추장스러워서 이동하는 중에 모두 버려야 했다. 마거릿과 그녀가 사랑하는 가족을 구한 것은 그녀의 재치와 믿음과 용기였다.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가 사망했을 때 많은 기사가 그녀의 스타일과 강점, 우아함과 아름다움을 다뤘다. 재클린이야말로 자신의 빛을 따라가며 살던 보기 드문 여성이었다. 그녀는 사실상 세상에서 원하는 모든 물건을 가질 수 있었지만 가장 소중히 여긴 것은 사생활이었다.
그렇지만 이보다 더 내 심금을 울린 것은 그녀의 아들이 회상한 내용이었다. 그녀의 아들은 어머니에게 가장 의미가 있던 것은 “애정이 담긴 대화, 가정과 가족의 유대감, 모험 정신”이었다고 말했다. 이 놀라운 여성은 열정적으로 살았다.
오늘 나는 진정한 모험이 끝나 이 세상을 뜰 때 당신이나 내가 사랑을 지녔던 존재로 기억되기를 기원한다.
 
중요한 것은 진정한 삶이라는 종착역이 아니라 진정한 자신으로 살려고 매 순간 노력하는 것이다. 종착역에 도착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다시 시작점으로 돌아왔을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나는 탈출이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에 빠질 때면 진정성을 찾는 길이 나선형이라는 점을 다시 깨닫는다. 이럴 때면 ‘여기에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라고 자문한다. 그러다 보면 문제의 원인이 내가 소박한 풍요로움의 은총을 그동안 활용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음이 확실히 드러난다. 예를 들자면 며칠 동안 너무 바빠서 감사일기를 쓸 겨를이 없었다. 다른 사람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해서 내가 하던 일이 자꾸 중단됐다. 집이 너무 어수선해 물건을 찾을 수 없어서 짜증이 난다.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려면 혼자 있는 시간과 명상이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자꾸 잊어버려서 기진맥진해 있다. 나는 이런 과정을 여러 번 경험했다. 이제 나는 일과가 조화롭지 못하면 과정에 완전히 몰두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안다.
그래서 나는 다시 시작한다. 출발점으로 돌아간다. 소극적인 기도가 아니라 적극적인 기도로 감사를 표하고, 소박함과 질서를 일상에 의식적으로 되살리고, 살아 있는 순간을 존중한다. 소박한 풍요로움에 대해 알거나 글을 쓰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소박한 풍요로움의 아름다움과 기쁨을 깨달으면서 살아야 한다. 내 빛을 따라 살기 시작하면 다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내 힘으로 외부 상황을 바꿀 수야 없지만 소박한 풍요로움에 의지하면 외부 상황에 대한 내 반응이 바뀐다.
“현재 우리가 원하는 삶은 이미 선택해서 창조한 삶이 아니다. 그것은 지금 선택해서 창조하고 있는 삶이다.” 시인 웬들 베리가 우리를 일깨운다.
 
당신은 당신이 믿는 것보다 강하다. 당신은 당신이 아는 것보다 훨씬 더 위대한 힘을 가지고 있다.
-안티오페가 다이애나에게(2017년작 영화 <원더우먼>에서)
 
마법을 일으키려면 보이지 않는 힘을 모아 모양을 빚어야 하고, 높은 곳으로 치솟아야 하며, 감춰진 현실에 존재하는 미지의 꿈을 탐험해야 한다.
-스타호크(미국의 작가, 교사, 에코페미니즘 운동가)
 
대부분의 여성이 자신의 엄청난 힘을 영원히 자각하지 못한다. 자신의 신성함을 보지 못한다. 고대 성스러운 마법사의 후손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당신 자신과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진정한 생활방식을 창출하는 것이야말로 마법이 아닐까? 당신은 창조성과 재능을 발휘해 보이지 않는 힘을 보이는 모양으로 빚고, 열정을 통해서 정신세계에만 존재하던 것을 현실 세계에 드러내고 있지 않은가? 이런 활동을 무의식적으로 할 수 있다면, 자신의 힘을 완전히 깨달은 상태에서는 얼마나 더 많은 것을 이룰 수 있을까?
마법사의 후손인 우리는 많은 힘을 선물로 받았다. 이는 사랑의 힘이다. 오늘 거실에 촛불을 켜놓고 앉거나 마당에 나가 보름달 아래에 앉아서 당신의 힘을 현명하게 사용하겠다고 맹세하자. 당신은 살아가면서 상상도 못 할 만큼 많은 삶에 손을 댄다. 당신의 마법 주문으로 치유될 수 있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다. 이제 근원을 향해 직진하자. 당신의 혈통과 당신에게 주어진 진정한 선물을 감사한 마음으로 인정하자.
프랜시스 호지슨 버넷이 말한다. “나는 만물에 마법이 존재한다고 확신한다. 그저 우리가 그 존재를 아직 알아채지 못한 까닭에 마법을 손에 넣지도, 우리에게 이롭게 쓰지도 못하는 것뿐이다.”
이제 우리는 마법을 알아차렸다.
 
모어는 영혼의 깊은 영역에 다가서려면 자신의 삶에서 예술가이자 신학자가 되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영혼이 환영받는다고 느끼게 하려면 일상생활의 사소한 점에서 관심을 기울이면 된다. “주변에 있는 것들을 신경 쓰고 가정, 일과뿐 아니라 늘 입는 옷조차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영혼을 돌보는 방법이다.” 토머스 무어가 <영혼의 돌봄>에서 말한다.
오늘은 영혼이 당신의 내면에 더욱 즐겁게 머무르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 묻자. ‘지금 필요한 것이 뭐야? 어떻게 하면 평화롭고 만족스러우며 즐거울 수 있을까?’라고 영혼에게 자주 묻자. 영혼은 그저 당신이 삶의 속도를 늦추거나, 산책하거나, 아이들을 꼭 껴안거나, 고양이를 쓰다듬기를 원할 것이다. 혹은 농산물 직거래장터에 가거나, 언니에게 전화하거나, 친구에게 재미있는 사진 파일을 보내거나, 느긋하게 낮잠을 자기를 원할 것이다. 중국음식을 시켜 먹거나, 재미있는 영화를 보거나, 실컷 우는 것일 수도 있다. 옛날식 작은 식당을 찾아서 루트비어 플로트를 마시는 것일 수도 있다. 일찍 잠자리에 들거나, 꿈을 꾸거나, 공상하거나, 상상하거나, 기도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것이 무엇이든 영혼이 말할 것이다. 그러니 물어보자.
루이자 메이 올컷은 이렇게 우리를 일깨운다. “‘머물다’는 친구 사이에서 아주 멋진 단어다.” 사랑하는 영혼이여, 머물러라. 머물러라. 지금 당장 말하자. 자주 말하자. 나와 같이 살며 내 사랑이 되어다오.
머물러다오.
 
우리는 매일 매시간 우리가 정신의 전원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그 전기 스위치를 켜달라고 요청해야 한다. 그리고 영광을 감당할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한 번에 하나씩 재능을 발휘하고 창조적인 도전을 하면 점차 준비를 갖추게 된다. 성취할 때마다 스스로 인식하고 축하하면 자신감이 늘어나고 자기 능력을 믿게 된다. 게다가 혼자 힘으로 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권능과 영광의 돌봄을 받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느님의 나라는 무엇일까?
영적 구도자는 무엇보다도 천국을 먼저 찾으라고 배운다. 천국을 찾으면 진정한 삶이 펼쳐질까? 나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진정한 길을 찾아서 그 길을 따르면 돈, 직장, 결혼생활 등의 모든 조각이 퍼즐에서 제자리를 잡게 된다.
풍요롭고 심오하며 의미 있게 살고 싶다면 “당신의 지극한 행복을 따르라”라는 조지프 캠벨의 조언을 기억하자. “당신의 지극한 행복을 따르면 천국의 문이 열릴 것이다. 당신의 지극한 행복을 따르면 태초에 당신만을 위해 창조된 길을 걷게 될 것이다.”
지극한 행복과 진정한 삶이 하나가 될 수 있을까? 황홀경에 빠지게 하고 기쁨을 불러오고 높이 날아오르게 하고 굶주림을 채우고 갈망을 만족시키고 열정에 불을 붙이고 다른 사람에게 손을 내밀게 하고 마음의 평화를 주는 것, 다시 말해서 지극한 행복도 천국일까?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리라.
오프라가 책 <언제나 길은 있다>에서 말한다. “삶은 고정돼 있지 않다. 모든 결정이나 좌절이나 승리는 진실의 씨앗을 확인할 수 있게 해주는 기회다. 당신을 경이로운 인간으로 만들어주는 진실의 씨앗 말이다. 자신이 어디서 에너지를 얻는지 주의를 기울여보면 자신에게 예정된 삶의 방향으로 움직이게 된다. 우주가 당신을 위해 상상도 못한 크고 넓고 깊은 꿈을 마련해놓았음을 믿어라.”
 
나는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내 목표를 향해 앞으로 움직이게 해줄 외부의 힘을 기다렸다. 나는 아이작 뉴턴의 법칙에 담긴 진실을 잊고 있었다. 정지한 물체는 영원히 정지한 채로 있으려 한다.
움직임이 아무리 작아도 계속 움직이면 목적지에 도달하게 된다. 
 
“실패하지 않고 살기란 불가능하다. 실패하지 않으려고 너무 조심스럽게 살아간다면 실패한 것이 없어도 삶 자체가 실패다.” J. K. 롤링이 말한다.
이것이 실패의 너그러운 선물이다. 삶에서 최악의 상황은 실패가 아니라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이다.
 
나는 날마다 빅토리아 시대 후기부터 1950년대까지 여성과 관련된 잡지를 모아놓은 내 보물상자를 들여다봤다. 날마다 그 상자에서 금을 캐냈기 때문에 상자를 광맥이라고 일컬었다. 글을 쓸 때 먼저 인용문을 찾아 첫머리에 넣은 다음에 그 부분이 나를 어디로 이끄는지 살펴본다. 그날 나는 개척자의 길에 들어섰다.
 
감사할 것이 아주 많다. 웃을 이유가 대단히 많다. 서로 나눌 것이 엄청나게 많다. 워낙 풍성한 계절이므로 더 이상 갖고 싶은 것이 없다. 필요한 것을 전부 다 가졌다.
오, 사랑하는 신이시여, 우리에게 아주 많이 베푸시어 풍요로움이 넘칩니다. 바라옵건대 부디 하나만 더 주소서. 감사하는 마음을 선물하소서. 당신이 준 것을 영원히 잊지 않게 하소서.
 
가장 중요한 선물인 건강, 애정이 넘치고 힘을 주는 결혼생활, 건강한 아이들, 창작의 성취감, 내면의 평화는 돈으로 살 수는 없다. 
 
가진 것이 전혀 없어도 건강만 있으면 부유한 사람임을 깨닫자. 마음과 정신이 건강하고 활동력과 창조적인 에너지만 있으면 말 그대로 세상이 당신의 발밑에 있다. 건강하면 다 가진 셈이다.
하지만 건강은 단순히 병에 걸리지 않은 상태가 아니다. 건강은 활기, 정력, 많은 에너지, 마음의 평정, 명료한 정신, 지구력이다. 이런 선물은 기도로 요청해야 하며 신용카드로 구입할 수 없다.
비타민을 먹자. 건강에 대해 신에게 감사하고 더욱 건강하게 해달라고 요청하자. 내가 당신의 의식에 심어주고 싶은 딱 한 가지 교훈은 요청하라는 것이다. 요청하면 받을 것이다. 요청했는데 받지 못한다 해도 적어도 시도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구체적으로 요청하자.
 
영적인 존재는 실생활에서 우리를 미치게 만드는 것들의 대부분이 사소한 문제임을, 대참사가 아니라 짜증과 불편임을 안다.
영적인 존재는 딸아이를 병원에 데리고 갔다 와서 일하면 된다는 것을 안다. 영적인 존재는 마감일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음을 안다. 마감일은 세상의 시간인 크로노스다. 신은 무한한 시간인 카이로스만 알고 있을 뿐이다. 내가 잊지 않고 은총을 요청하면 마감일을 지킬 수 있을 것이다. 영적인 존재는 오늘 사소하지 않은 유일한 한 가지는 아픈 아이를 돌보고 위로하는 것임을 알고 있을 뿐이다.
영적인 존재가 오늘 아침에 명상을 했다면 딸이 아프다는 것도 알아차렸을 것이다.
 
당신이 누릴 자격이 있는 생일 의식을 열어줄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당신뿐이다. 당신은 진정한 탐닉과 알찬 순간과 즐거운 소박함과 사색과 종결과 아름다움과 축하가 어우러지는 생일 의식을 누릴 자격이 있다. 당신을 사랑하는 많은 사람이 축하해주겠지만, 누구도 당신의 생일을 당신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축하할 수는 없다.
그 이유는 아무도 당신이 살아온 한 해에 대해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아무도 당신과 하루하루를 함께 헤쳐나가지 않았다. 하지만 당신은 그 나날을 직접 거쳤다. 당신은 자신이 묵묵히 견딘 고통을 안다. 당신은 절박한 기도를 안다. 위기에서 살아남은 후 당신의 영혼이 느낀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는 고마움을 안다. 게다가 당신의 삶에서 한 해 한 해가 다르다. 당신의 서른두 번째 생일, 마흔여덟 번째 생일, 쉰아홉 번째 생일, 예순네 번째 생일, 예순아홉 번째 생일은 시작부터 그 전 해와 다를 것이다.
배우자, 동거인, 애인, 아이, 친구, 동료가 최근에 당신의 삶에 일어난 일을 알 수는 있겠지만 그런 일이 당신에게 얼마나 깊은 영향을 끼쳤는지는 하늘과 당신의 영혼만 안다. 어쩌면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거나 친구와의 관계가 소원해졌을 수 있다. 어쩌면 자녀가 독립해서 집에서 나갔거나 소중한 직업이 없어졌을 수 있다. 어쩌면 당신이나 사랑하는 사람이 얼마 전 병원에서 받은 진단의 충격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해서 밤낮으로 불안하고 두려울 수 있다. 어쩌면 재정적인 위기가 끝나지 않아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할 수도 있다. 당신이 겪은 상실에 의한 충격, 당신이 자신을 발견할 새로운 기회의 땅을 먼저 알아차려야 그것을 받아들이고 가로지르고 탐험할 수 있다.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활기 넘치는 가족파티가 아니라 혼자서 몇 시간 혹은 며칠 동안 변화와 이행의 신성함을 기억하고 존중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생일은 새로운 시작일 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종결의 순간이다. 우리가 진정성을 찾으려면 이런 종결이 대단히 중요하다.
모든 생일은 중요한 이정표다. 모든 나이가 사랑, 모험, 생존, 극복, 희망, 기쁨에 관한 365일의 교훈을 가져다준다. “우리는 세월이 지나면서 늙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더 새로워진다.” 에밀리 디킨슨이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있는 생일을 맞은 소녀에게 말한다. 날마다 더 새로워진다니 확실히 축하하고 감사할 가치가 있다. 우리는 아주 멋진 생일을 누릴 자격이 분명히 있다.
 
기분 나쁜 경험을 겪지 않고 진짜가 되는 한 가지 방법은 서서히 진정한 자신의 모습으로 성장하는 것이다. 당신이 선반에 놓인 다른 장난감과 다른 점을 깨닫고 받아들이고 감사하면 진짜가 되는 과정이 시작된다. 내면의 지혜를 믿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기준을 바탕으로 창의적인 선택을 하면 그 과정이 진행된다. 일상의 소소한 순간을 사랑할 줄 알게 되면 과정이 완전한 현실이 된다. 검은색 단추로 된 두 눈은 광택을 잃겠지만 이제 영혼을 들여다보게 된 두 창으로 아름다움만 보인다. 당신을 알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물론 모든 사람에게 진짜가 된다. 진정한 당신이 되는 것이다.
 
5년간 매일 이 책을 쓰는 동안 곰곰이 생각해볼 거리가 있었고 대체로 꼭지 제목이나 인용문도 금방 떠올랐지만 페이지는 늘 공백이었다. 대체로 한참 글을 쓴 후에야 무엇에 대해 쓰고 있는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발견한 것은 멋진 인생을 누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 깨달음이 내면 깊이 울려 퍼졌고 나는 진심으로 감사했다. 물론 하지 말았어야 한다고 후회하는 일이나 스스로 초래한 위기도 많았다. 그러나 이제 나는 모든 경험이 다정한 스승임을 안다.
당신이 깊이 생각한 내용을 글로 써보기 바란다. 천천히 시작하자. 일주일이나 한 달에 하나씩만 쓰자. 일상에서 신성함을 찾으면 발견하게 될 것이다.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영감을 일으키는 중요한 보물이다. 정기적으로 글을 쓰면 당신이 기억하고 감사하는 수많은 것에 놀라게 될 것이다. 영국의 시인인 세실 데이루이스는 “우리는 이해받으려고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려고 쓴다”라고 솔직히 인정했다. 진정한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명상한 것들에 관해 쓰기 시작하면 당신이 멋진 인생을 살고 있음을 기억하고 알아채고 이해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헤롯 대왕처럼 탐욕스럽게 물건으로 삶을 채운다면, 스스로를 아주 하찮게 여겨 매 순간 끊임없이 움직인다면 동방박사처럼 오랫동안 천천히 사막을 가로지를 시간이 있을까? 혹은 양치기처럼 별을 바라볼 시간이 있을까? 혹은 마리아처럼 예수의 탄생을 곰곰이 생각할 시간이 있을까? 누구나 여행할 사막이 있다. 발견할 별이 있다. 탄생시킬 존재가 내면에 있다.
 
크리스마스 정신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어쩌면 크리스마스의 정신은 신성한 신비로움으로 남게 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크리스마스 정신은 아무리 아름다워도 물건은 그저 물건에 불과하며, 항상 바삐 움직이지 않고 때로 가만히 있어도 된다는 우리 영혼의 지식일 것이다. 어쩌면 크리스마스 정신은 사막으로 길고 느린 여행을 떠날 시간을 내고, 자신의 별을 발견할 시간을 내고, 본모습인 진정한 자아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존중해야 함을 다정하게 상기시키는 가르침일 것이다. 우리 삶은 신의 선물이다. 그리고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방식은 신에게 주는 선물이다.
 
드라마를 찍는 악순환을 멈추고 삶의 흐름과 신의 선량함을 믿는 실험을 해보자.
내 방법을 이야기하자면 매일 아침에 하루치의 은총을 내려달라고 하고, 위기에서 벗어나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불신을 멈추고 믿음의 도약을 하자. 오늘부터 감사일기에 오늘 감사하는 일은 물론이고 내일 이루어지기를 갈망하는 모든 소망과 기도도 적어보자. 먼저 표현해야 은총이 내려온다.
“어떤 상황이든지 간에 삶을 받아들이고 열심히 살자. 삶을 피하거나 욕하지 말자. 그리 나쁜 상황은 아니다. 갑부의 눈에는 아무리 돈이 많은 사람이라도 가난해 보인다. 상습적으로 흠잡는 사람은 천국에서도 흠을 찾아낸다. 가난하든 부자든 있는 그대로 삶을 사랑하자. 아무리 가난한 집이라도 즐겁고 신나고 멋진 순간이 있을 것이다. 태양은 빈민구호소이든 대저택이든 가리지 않고 똑같이 비춘다. 초봄이 되면 집 앞의 눈이 녹기 마련이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용기를 북돋아 준다.
 
평생 기도한 말이 ‘감사합니다’일 뿐이라도 그것이면 충분하다.
-마이스터 에크하르트(13세기 독일의 신비주의자)
 
마이스터 에크하르트는 “하나님은 당신보다 1,000배 더 준비를 하신다. 그러니 항상 하나님의 선물을 받을 준비를 하라. 항상 새로운 선물을 받을 준비를 하라”라고 충고한다.
 
나는 내가 읽은 모든 것의 일부다.
-존 키런(미국의 작가이자 편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