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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사] 고전이 답했다 마땅히 살아야 할 삶에 대하여(고명환)

아름다운 존재 2025. 1. 3. 11:17

지금 생각하고 있는 나를 계속 의심해야 한다. 나는 진정 스스로 생각하는가? 내 삶의 기준은 어디에서 왔나? 부모님이, 선생님이, 사회가 원하는 대로 살고 있는 건 아닌가?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나 자신의 판단하에 내가 원하는 곳에서 즐겁게 돈을 벌고 있는가?

개념 속에 산다는 건 남들에게 끌려다니며 사는 것이다. 자유롭지 않다. 당신이 다니는 직장, 당신이 하는 일, 당신이 버는 돈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진짜 ‘나’를 위한 것인가? 진짜 나는 어떤 직관을 가지고 있는가? 계속 질문하라.

 

당신의 2 곱하기 2는 얼마인가? 계속 질문하라. 고전을 통해 죽어 있는 당신의 직관을 살려라. 독서를 통해 대우주의 연결고리를 깨닫는 순간 인간은 모든 걸 할 수 있는 존재가 된다.

 

인간에게 진정한 안정은 움직임이다.

 

내 삶은 내가 사는 것이지 남이 살아주는 게 아니기 때문에 남의 눈치 볼 필요 없이 직관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가면 된다는 사실을 죽음 앞에서 깨달았다.

 

나는 돈을 아무리 많이 벌어도 휴양지에서 좋은 음식을 먹고 쉬고 즐기며 생을 마감하지는 않겠다. 죽는 날까지 메밀국수를 반죽하고, 글을 쓰고, 강의하고, 사색하겠다. 죽음 앞에 가보니 어영부영 녹슬어버리는 삶이 가장 후회되는 삶이었다.

하루를 살아도 나로 살아야 한다. 나로 산다는 것은, 자기 의지대로 눈을 부릅뜨고 끝까지 목표를 향해 한 발짝 내딛는 삶이다.

 

AI는 AI대로 이용하고, 우리는 더욱 깊은 사유를 통해 인간이 나아갈 길을 스스로 개척해야 한다.

 

고통을 싹둑 잘라내고 행복만 누리는 삶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의 인생은 고통과 행복이 꼬여서 만들어진 새끼줄 같은 것이다. 여러 가지 감정들이 서로 악착같이 꼬여서 튼튼한 줄을 만들어낸다. 우리는 이 줄을 잡고 원하는 곳으로 올라간다. 행복만 가지고 살겠다는 사람은 한 줄의 실에 매달려 사는 사람이다. 그런 줄은 튼튼하지 못하다. 여차하면 끊어져 추락하고 만다.

삶을 결핍과 고통으로 튼튼하게 엮어야 한다. 그런 사람은 아무리 높은 곳에 올라가도 추락하지 않는다.

 

부족함을 자랑으로 여겨라.

 

결핍의 고마움을 알아야 한다.

 

현재 조금 모자란 상태에 있다면 그 순간을 사랑하고 감사하라. 그리고 채우려고 노력하라. 늘 조금 모자란 상태를 유지하라. 몸도 조금 춥게 하라. 긴장의 끈을 놓지 마라. 그리고 이 긴장감을 사랑하라. 지금 당장 거울 속 자신의 눈빛을 보라. 당신은 갈망하고 있는가? 최악의 상태는 부족한데 갈망하지 않는 것, 부족한데 그 자리에 머무는 것이다. 머물지 말고 흘러야 한다.

 

우주의 기본 원칙은 ‘변화’다. 우주는 이 시각에도 계속 팽창하며 변하고 있다. 우리는 우주다. 우주는 팽창해야 한다. 늘 자신이 부족하다고 여겨라. 그리고 채우려고 노력하라. 풍족하게 채웠다면 나눠주라.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서 나눠야 한다.

 

버림받기 전에 비워야 한다. 부족한 상태를 찾아 떠나야 한다.

 

한없이 망설여지고, 고통이 밀려오지만 결국 앞으로 나아가는 삶을 선택하는 것

 

인간을 비약적으로 날아오르게 만드는 고통

 

오로지 도전하고, 실패하면 다시 도전하고 또 도전해서 비상하는 사람

 

내가 만들 수 있는 가치는 무엇인가?

 

칼 융이 말했다. “진리에 이르는 길은 의도를 갖지 않은 사람에게만 열려 있다”고.

 

“그래, 나도 남을 위해 한번 일해보자. 지구를 위해 가치를 만들어보자”

 

인간은 자신의 시간을 지배할 때 미치도록 행복해진다. 시간을 지배하는 방법은 몰입이다.

 

당신은 천재로 태어났다. 당신은 실존하는 본체다. 그림자가 아니다. 당신이 잘못 산 게 아니다. 몰라서 그랬다. 지금부터 찾아가면 된다. 해답을 가진 건 오직 책뿐이다.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스스로 길을 찾아 날아가야 한다. 누군가의 그림자로서 뒤에 숨지 말고 태양의 빛을 정면으로 흠뻑 받아라. 책이 날개가 되어주리라. 박제가 되어 굳어버린 당신의 날개에 뜨거운 피를 돌게 할 것이다. 당신은 천재다.

 

헛된 것을 걷어 낸, 개념에 갇히지 않은, 거짓과 의도가 없는 순수한 물처럼 내 안에서 자연스럽게 솟아나는 힘으로 알을 깨고 세상으로 박차고 나와 진짜 나로 살아야 한다.

 

삶은 결국 진짜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태초에 순수하게 태어난 나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 커피숍 사장님은 돈을 버는 게 아니라 하루를 충실하고 행복하게 사는 중이었다. 자기 일을 사랑했고, 자신이 만든 커피에 자부심을 품었으며, 손님들과 함께하는 시간 자체를 즐거워했다.

 

무조건 돈을 많이 번다고 좋은 게 아니다. 자기 그릇에 맞는 만큼 벌면서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그 일을 통해 남을 위할 수 있는 시간을 살 수 있는 삶, 그게 행복한 삶이다.

 

자기 능력 안에서 얼마든지 위대하게 살 수 있다.

 

인생의 해답은 역시 고통 속에 있다. 모든 문제는 고통을 피하려 들기 때문에 생긴다. 고통, 시련, 역경이라는 말의 어감을 무서워하지 마라. 우리를 행복으로 데려다줄 비밀의 열쇠다.

나는 고통, 시련, 역경을 행운, 우연, 로또 당첨이라는 말보다 사랑한다. 고통을 피하지 말고 정면으로 껴안자. 작정하고 부딪치자. 조금만 견뎌보라. 어디서도 느낄 수 없었던 맛있는 쾌락을 느끼리라.

달리자. 세상을 향해 달리자. 고통의 운동화를 신고 세상을 향해 정면으로 달려 나가자. 고통을 품고 세상을 정복하라. 그 후에 오는 쾌감이 진짜 쾌락이다.

 

모든 존재는 자신 외 다른 존재에게 이롭기 위해 창조됐다.

 

당신이 뭔가를 할 때 고통스럽지 않다면 의심하고 점검하라.

 

우리는 방법을 몰라서 못 쓰는 것이 아니라 꾸준하게 쓰지 않아서 못 쓰는 것이다.

 

뜨거운 크루아상과 카페오레를 앞에 두고 지난밤 일을 웃으며 이야기하겠지. 네리와 나는 생명이라는 아침 선물을 받게 될 것이다. (중략) 이처럼 나에게 있어 삶의 기쁨이란 그 향기롭고 뜨거운 음료의 첫 한 모금 속에, 우유와 커피 그리고 밀이 뒤범벅된 혼합물 속에 압축되어 있다. <인간의 대지>

 

‘뭐가 그렇게 무서워서 다른 사람 눈치 보고 남들이 하라는 대로 살았을까?’

 

‘세상에 끌려다니지 않고 살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

 

결심하지 않고 그냥 시작하는 것

 

결정은 인생을 재밌게 만드는 행위다. 영화의 결말을 뻔히 알고 있으면 그 영화가 얼마나 재미없는가. 내 인생을 더 재밌게 만들기 위해 더 많이 결정하고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일단 결정을 내려놓고 어떤 일이 벌어지나 지켜보는 게 너무 재밌다. 그리고 고통이 고통이 아니고 불행이 불행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나니 결정하고 실행하는 데 아무런 두려움이 없다.

 

치열하게 고민하고 실행하고 반복해서, 내가 태어난 이유, 나만의 삶, 나만의 스타일을 찾아야 한다. 앞으로 펼쳐질 시대에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대체 불가한 나만의 스타일이다.

 

빅토르 위고가 쓴 대하소설 <레 미제라블>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사람이 멍하니 있다고 해서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눈에 보이는 일과 눈에 보이지 않는 일이 있다.”

멍하니 생각하는 사람은 눈에 보이지 않는 일을 하고 있는 중이며, 인간에게는 분주하게 움직이는 일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일이 훨씬 중요하다는 말이다.

 

인간은 눈에 보이는 일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일인 ‘생각’을 제대로 할 수 있으면 눈에 보이는 일은 얼마든지 정복할 수 있다.

 

주변 사람은 신경 쓰지 마라. 내 삶이다. 내가 살아가는 시간이다.

 

간단하고 조촐한 음식이라도 자기 의지와 정성이 들어간 음식을 먹어야 한다. 우리가 집밥을 좋아하고 집밥을 먹으면 실제로 건강해지는 이유는 그 음식에 만든 이의 사랑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누구에게 기대지 말고 스스로 요리해서 먹어라.

 

요리는 당신의 인생을 가장 풍요롭게 해주는 기술이다.

 

돈만 모으지 말고 건강을 함께 모아야 한다. 그게 제대로 된 부자다. 기껏 모은 돈이 병원비로 빠져나가게 해서는 안 된다.

해답은 요리하기다. 글쓰기와 요리하기! 두 가지 기술을 가지고 있으면 은퇴 후에도 얼마든지 풍요롭게 살 수 있다. 무엇보다 세상이 두렵지 않다. 섬에 고립될지라도 얼마든지 제대로 요리해 먹으며 살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고, 잘 먹고 건강하면 120세까지 글쓰기로 얼마든지 돈을 벌 수 있다는 믿음이 자란다. 이렇게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없애야 스트레스가 없다.

 

정답을 찾자는 게 아니다. 정답은 없다. 다만 스스로 질문을 던지는 순간 성장한다. 머리로만 질문을 던지는 것보다 글로 써서 던지는 질문이 뇌를 더 자극한다. 생각이 풍성해진다.

질문을 종이에 써놓고 생각하라. 당신이 해결하고 싶은 문제를 종이에 써서 벽에 붙여 놓고 고민하자. 머리로 굴릴 때보다 훨씬 빠르게 좋은 답을 얻으리라.

 

앙드레 지드의 <지상의 양식>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사물은 어느 것이나 제 필요에서 태어나는 것이므로, 말하자면 외부로 나타난 하나의 필요에 불과하다.”

모든 존재는 필요에 의해 생겨났다. 나 역시 이 우주에, 이 지구에 필요해서 만들어졌다. 그렇다면 나는 과연 그 필요에 맞게 살고 있는가?

 

남을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자연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지구와 온 우주를 위해서 할 수 있는 게 뭔가? 이런 방향으로 생각을 보내야 쓸모 있는 좋은 아이디어에 도달할 수 있다. 그런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겨야 지구에 도움이 되고 자신도 떳떳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하다는 것이 이 말이다. 느리게 가더라도 정확한 방향으로 가야 한다. 지금 당장 쓸모 있는 일을 하지 않아도 괜찮다. 누구에게나 때가 있다. 우주가 당신을 원하는 때. 그 순간을 알아차리기 위해 모든 감각을 외부를 향해 열고 있어야 한다.

 

내 안에는 아직 수많은 거인들이 잠들어 있다. 거인을 깨우는 유일한 방법은 책을 읽는 것이다. 책은 내가 몰랐던 세상을 보여주고 그곳으로 나를 데리고 간다. 그곳엔 ‘진짜 내가’ 살고 있었다. 이제 나는 내가 가고 싶은 곳을 가고 싶은 시간에 갈 수 있다.

 

우주는 모든 존재가 자유롭길 원한다. 당신이 자유로워야 우주가 웃는다. 당신이 우주이기 때문이다. 결국 당신이 필요로 하는 사람은 당신 자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