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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사] 엄마의 느린 글쓰기(김미선)

아름다운 존재 2025. 2. 1. 19:29

중요한 건 그 순간들이 크고 대단해서 남기는 게 아니라 보잘것없고 초라해도 모든 순간이 내 시간이었기 때문에 남기는 것이다. 결국 나만 할 수 있는 남나의 이야기를 남긴다.

 

이제는 글쓰기를 모든 생활의 우선순위로 둔다. 쓰는 사람이 되기로 했으니 모든 핑계나 의심에 문을 닫고 일단 무엇이든 쓰기로 한다.

 

쓸거리가 준비되어 있든 없든 일단 펼치고 본다. 글을 처음 쓰는 우리에게 중요한 건 좋은 글을 쓰는 게 아니다. 그저 아무 글이나 써보는 글을 쓰는 경험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글을 써보는 시간이 쌓이면서 흐릿하던 내 글은 점점 선명해진다. 아무 글이나 일단 쓰자. 하루 종일 글만 쓰고 있자는 건 아니다. 오늘 하루 중 내가 꼭 해야 할 일. 그 중 일 순위를 글쓰기로 정한 것이다. 마음의 우선순위를 찾는 일은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자 하는 모습을 그려보는 일이다. 먼 훗날 내가 그리는 사람이 되고자 삶의 우선순위를 마음에 품어본다. 그렇게 살아가다 보면 나는 매일 글 쓰는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다짐이 언제 또 무너질지 모르지만 나는 글 쓰는 사람으로 다시 돌아가는 방법을 안다. 글을 꾸준히 쓸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은 내 삶에서 글쓰기를 우선순위로 두는 것이다. 나만의 루틴을 만들고 잘 지키는 일. 유해진님이 움직임을 위해 무작정 신발을 신었듯 나는 오늘도 무작정 종이 위를 달릴 준비를 한다.

 

재능이 있어서 글을 쓴 게 아니라 재능을 찾고 싶어서 글을 쓰게 되었다. 빈 종이 위에 나는 잘하는 게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라고 하소연을 해 본다. 쓰다 보니 어느새 나는 꾸준히 글을 쓰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글쓰기는 잘 써야겠다는 마음만 내려놓으면 된다. 내 생각을 진실되게 꺼내 놓는다는 마음으로 시작하면 누구나 할 수 있다. 빈 종이는 늘 나를 기다리고 있다. 언제라도 품어줄 준비가 되어 있다.

오늘도 빈 종이가 내게 말을 건넨다.

네가 왜 잘하는 게 없냐고.

지금까지 네가 써둔 글을 꺼내 보라고.

타닥타닥. 키보드 소리와 함께 들려오는 그 말이 오늘따라 참 고맙다.

그래, 쓰다 보면 나도 언젠가 잘 쓰는 날이 오겠지.

 

나만의 고유한 색을 찾으려면 무엇이든 두려움 없이 도전해 보고 꾸준히 닦아나가야 한다.

 

사람은 완벽할 수 없다.

나 또한 완벽하지 않은 사람이다.

내 글에 아무리 공을 들인다 해도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 있는 글을 쓸 수는 없다.

 

어깨에 힘 빼고 스스로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나를, 그리고 우리를 응원해 본다.

 

‘아, 내 마음을 훤히 드러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구나. 오히려 안전할 수 있구나.’

 

펜을 들고 또는 키보드 앞에 앉아 일단 써야 한다.

 

남들은 생각보다 내 글에 관심이 없다. 남들이 뭐라고 하든 ‘그게 뭐 어때서?’라고 받아들여야 한다. 내 글은 세상 사람들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다.

 

이제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저 나로 살아가기 위해 글을 쓴다.

 

늘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부담감. 자기 포장은 잠시 벗어두려 한다. 글을 쓸 때만이라도 좋은 사람이 아닌 솔직한 내가 되어야 한다. 나에게 좋은 사람이 진짜 좋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평범한 일상도 특별한 무기가 될 수 있다. 일상에서 나만의 콘셉트를 찾고 꾸준히 플랫폼에 공개해 보자. 똑같이 굴러가는 일상에서도 ‘낯설게 보기’라는 눈과 마음을 장착한다면 일상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아이가 생기면 아이의 웃음소리, 우는 표정 하나하나까지도 놓치고 싶지 않다. 사랑은 관찰에서 시작된다. 내 일상을 천천히 관찰해보자. 마치 처음 겪는 하루처럼 낯설게 바라보자. 인터넷 기사에 나올 법한 사건 사고가 아니어도 우리 일상은 충분히 각자의 자리에서 빛나고 있다. 일상에서 무언가를 발견하는 눈과 마음을 가지는 게 훨씬 중요하다.

 

오늘 하루는 무엇이 내 글감이 되어줄까? 일상 곳곳에 숨어 기다리는 소재를 보물찾기 하듯 천천히 둘러본다.

 

기록하지 않으면 1년이라는 시간도 숫자만 남기고 덩어리진 채로 공허하게 사라져 버린다. 정신 줄 놓고 의식하지 못한 사이에 나도 모르게 빠르게 흘려보낸 시간을 붙잡고 싶었다.

 

주구장창 읽기만 하는 사람은 요리의 재료만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그 재료는 써먹지 않으면 점점 썩어 못쓰게 된다. 나처럼 책을 대충 읽는 사람은 재료의 포장지도 뜯지 않고 갖고 있는 격이다. 책을 읽고 아웃풋이 있어야 비로소 나만의 요리를 시작할 수 있다. 내가 만든 요리는 다른 요리사의 일품요리보다 맛은 덜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만의 재료로 만든 요리는 내 입맛에 맞춘 세상에 하나뿐인 요리가 된다. 그렇게 만들어진 글은 나만을 위한 최고의 식사이자 영양분이 되어준다. 읽는 사람에서 쓰는 사람이 되는 건 나를 위해 요리하는 요리사가 되는 것과 같다. 매일 나를 위해 맞춤형 영양분을 가득 채운 요리를 제공한다.

 

이제 나의 목표는 쓰고 싶은 글을 오늘 쓰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글쓰기에 늘 현재진행형인 사람. 글을 처음 쓸 때 가졌던 완벽한 글을 쓰고 싶은 마음, 더 좋은 글을 쓰고 싶은 마음, 글로 인정받고 싶은 마음은 잠시 내려둔다. 매일 쓰는 사람이 되는 것에 중점을 둔다. 단 한 줄이라도 좋다. 어제 바빠서 글을 못 썼으면 숙제가 밀린 학생처럼 오늘치 글을 부지런히 써 나가는 것.

 

느리게 오래도록 쓰는 사람이 될 것이다.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고 스스로 못났다고 아파하지 말라고. 너는 너만의 멋이 있다고.’ 8세의 상처 입은 나를 만나 꼭 다정하게 이야기해 줄 수 있는 어른이 되어야지. 기억나는 아픈 장면을 수정하고 성장하면서 아픈 내면 아이는 점점 치유될 것이다. 그제야 지금 내 곁에 살아 숨 쉬는 나의 아이들,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 앞에서 진정한 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고통은 마음껏 표현해야 치유된다고 한다.

 

새로운 분야의 도전기는 그 자체로 좋은 글감이 된다.

 

운동으로 몸의 근육도 기르고 글쓰기 근육도 기를 수 있는 더없이 좋은 프로젝트다. 운동으로 성장하는 내 모습이 다른 사람에게 전달된다면 누군가는 나를 응원해 줄 것이다. 또 어떤 사람에게는 움직임의 동기가 될 수 있다. 운동도 하고 글쓰기도 하고 선한 영향력까지 1석 3조의 효과를 얻게 된다.

 

어떤 날은 글을 쓰기 위해 달리기를 했고, 또 계속 달리기 위해 글을 썼다.

 

이제는 일기장에 먼저 마음을 털어놓는다. 내가 듣고 싶은 이야기를 해주는 사람이 된다. 내 마음을 헤아려 줄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나여야 했다.

 

이제는 일기를 쓸 때 오늘 하루는 어땠는지, 마음은 괜찮았는지, 진짜 원하는 건 무엇인지 살피려고 노력한다. 연인에게, 친구에게 이야기하듯 상처받고 아픈 일들을 털어놓는다. 그곳에 무거운 짐을 내려놓는다. 그리고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을 써준다. 힘들었을 텐데 고생했다고. 눈에 보이는 성과는 없을지라도 잘하고 있다고.

나를 알아주기. 내 영혼을 달래주는 일.

그 누구보다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다.

이제야 오롯이 나만을 위한 안전한 공간이 생겼다.

 

생은 고통의 연속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매일 반복되는 버거운 삶에도 감사의 이유를 찾아 헤매는 건 결국 의식을 바꾸는 일이다. 내게 닥친 불행에만 집중하며 그곳에 매여 있지 말자. 하루의 마무리에 감사를 찾아 내일을 살아갈 힘을 비축하자. 내일은 분명 새로운 해가 떠오른다. 감사가 쌓인 하루하루는 험난한 세상을 이겨낼 힘이 된다.

 

결국 나를 사랑하는 일

쓰다 보면 나를 관찰할 수 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는 과정에서 나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세상에 보이고 싶은 마음이 아닌 지금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게 된다. 진정한 나를 만나는 것은 세상을 살아가는 데 큰 버팀목이 된다. 나는 유일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마음을 들여다보고 내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 나를 사랑해 주는 것이다. 나를 만드는 일상, 내 마음을 살피는 것은 곧 내 인생의 전부가 된다. 일기는 내가 세상을 살아가며 지나간 시간들의 흔적이다. 일기를 쓴다는 건 나에게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나에게 있었던 일, 나의 감정들을 살피다 보면 자연스럽게 나는 다시 글 쓰는 사람이 되어 있다. 일기는 다른 글을 시작하기 위한 준비운동이 되어 주었다. 쓰다 보면 내가 모르는 어디론가 가 있을 때가 있다. 그 순간이 좋아 또 다짐하게 된다. 매일 써야지. 날마다 하루를 남기는 사람이 되어야지.

 

남들이 보기에 ‘뭐 저런 것까지 쓴다고?’ 지극히 하찮고 사소한 일상을 모아 본다. 다른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아닐지라도 모아두면 커다란 글 자산이 된다. 커피 타임에 쓴 글만 모아도 특별한 책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곰팡이는 따사로운 햇볕에서 말리는 게 가장 좋다. 마음 안에 자리 잡은 응어리도 언젠가는 꺼내 말려야 앞으로 더 잘 살아갈 수 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눈으로 보면서 정리하는 건 뇌를 훨씬 편안한 상태로 만들어 준다.

 

욕심을 내려놓아야 물 흐르듯 오래 일할 수 있는 건가 보다. 성공보다는 과정을 결과보다는 의미에 더 집중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세상의 좋은 것은 모두 거칠고 자유롭다. 데이비드 소로.’

 

나의 목표는 신춘문예당선 같은 큰 공모전에서 상을 받는 게 아니라 오늘도 내일도 꾸준히 쓰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넌 고유한 문체도 없으면서, 너보다 글 잘 쓰는 사람도 많은데 왜 쓰는 거냐고.’ 내가 묻는다. 남보다 잘 쓴 글을 쓰고 싶은 게 아니라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는 거라고. 나만이 쓸 수 있는 글을 쓰고 있는 거라고 나에게 답을 한다. 마음이 훨씬 편해진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나에 대해 더 많이 관찰하고 계속 연구해야 한다. 내 글은 지극히 개인적인 글이다. 내 이야기를 나보다 더 잘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없다. 나만 할 수 있는 이야기, 그 이야기에 담긴 특별함으로 나만의 향을 만들어 간다.

 

‘가장 개인적인 가장 창의적인 것.’이라는 봉준호 감독의 말을 기억하며 부지런히 써 나가야겠다.

 

결코 대단한 글을 쓰자는 게 아니다. ‘잘’해야 한다는 생각을 빼면 글이 술술 써진다. 완벽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보다 지금 내가 보여줄 수 있는 것, 내가 사람들에게 들려줄 수 있는 이야기를 그대로 쓰면 된다.

 

‘나는 매일 이런 일기를 써요.’ ‘내가 읽은 책을 간단히 소개해 볼게요.’ 글을 잘 쓰고 싶은 마음을 내려놓은 나, 이제 내가 가진 만큼의 글을 부지런히 쓴다. 남들의 평가에 휘청대며, 울고 웃었던 인정욕구 강한 어제의 나를 놓아준다. 여전히 완벽하지 않고 실력도 출중하지 못하지만 꾸준히 쓰는 사람이 되었다. 충분히 틀릴 수 있고 불완전한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한다. 글쓰기를 통해 나의 완벽하고자 했던 욕심을 하나씩 내려놓게 된다. 내려놓아야 한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이는 연습을 하게 된다. 나는 오늘도 완벽하지 않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썼다. 글을 마무리한다. 이 정도면 되었다.

 

그 물이 흐르고 또 흐르고 

끊임없이 흐르지만

그러면서도 그곳에 언제나 존재한다.

언제나 똑같은 존재이며

그러면서도 매 순간 새로운 것이다.

-헤르만 헤세 <싯다르타> 중

 

끊임없이 변하는 것 같지만 늘 그 자리에 있다. 늘 같은 자리에 있는 것 같지만 매 순간이 새롭다는 것.

 

과거의 후회, 미래에 대한 두려움은 잠시 덮어두자. 일상이라는 현재에서 새로운 순간을 발견하며 주어진 시간을 자유롭게 만끽하는 것. 그게 최선의 삶을 살아가는 방법이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그 마음이 한 겹 두 겹 쌓여 어느새 도톰한 내가 되어 있겠지. 돈 주고도 못 사는 그 마음을 살면서 하나둘 쌓아가는 게 진정한 행복이 아닐까.

 

나는 여전히 불안하고 서툰 사람이다. 그런 나를 인정하고 이제는 나를 열심히 가꾸고 도닥이면서 평안을 찾아가는 사람이 되려 한다. 꾸준한 글쓰기를 통해서 말이다. 멈추어도 괜찮다고. 느려도 괜찮다고. 그 지점에서 다시 시작하면 된다고. 나에게 이야기하며 느리지만 오래도록 글을 쓰며 내 길을 걸어갈 테다.

 

결국 행복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맛있는 밥을 먹는 것’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