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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사] 어른이 되어 그만둔 것(이치다 노리코)

아름다운 존재 2023. 10. 4. 12:54

제대로 알고 나서 시작해야 한다고 그동안 고집한 이유는 틀리기 싫어서였습니다. 아프기 싫었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아픔이 뒤따르지 않으면 제대로 된 결과를 손에 넣기 힘들어요.

그렇다면 일찍 틀리고 빨리 수정하면 정답에도 빨리 도달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니 과감하게 한걸음 앞으로 나가보자, 그렇게 마음먹고 '모르지만' 일단 시작해보니 이번에는 그 길이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어라, 이게 아닌가?' '그럼 되돌려서 이쪽으로 가볼까?' '와~ 이 길 끝에 이런 풍경이 보이다니!' 하고 말이죠.

처음 가는 길에서 체험하는 모든 일이 설렙니다. 항상 정답이 아니면 안 돼, 늘 100점이 아니면 안 돼, 그렇게 생각하던 나를 벗어던지니 미로를 걷는 것조차도 너무 즐겁습니다.

 

스스로를 닦달하며 몰아붙여서는 나를 긍정하며 살기 힘듭니다. 나는 그런 방식이 맞지 않는 사람이라는 걸 인정하기까지 꽤 많은 시간이 걸렸어요.

하지만 '못하는 것'을 단념할 수 있게 되자 비로소 '그럼 이제 어떻게 해볼까?' 하고 다음의 수를 찾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못하는 것을 억지로 할 수 있게 만드는 것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찾는 편이 빠른 데다 확실한 결과를 만들어주더군요.

슬슬 지겹네 하는 생각이 든다면 몸이 보내는 신호라고 생각하세요. 억지로 어떻게든 버티려 애쓰지 말고, 순순히 몸의 리듬에 따라 휴식하고 빨리 기분전환을 해서 일도 생활도 스트레스 없이 하면 좋겠습니다.

 

일단 믿을 것은 내 몸의 면역력과 자기치유력밖에 없습니다. 이것을 기르려면 너무 피로하게 움직이지 말고, 충분한 수면을 취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전에 'n100'을 운영하신 오이 유키에 씨가 "나의 모토는 내일 해도 될 일은 오늘 하지 않는 거예요"라고 하신 말씀을 듣고 무릎을 쳤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오늘은 여기까지 해야 해' 하고 생각하는 나를 살짝 풀어주는 것, 그렇게 자신을 느슨하게 해방시키는 것도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요.

그러면서 편안하게 숨을 내쉴 때 눈에 들어오는 풍경, 들려오는 소리, 느껴지는 바람을 소중히 여기고 싶다고 생각하니 10퍼센트 너머로 펼쳐지는 세계를 바라보는 일이 기다려지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는 제가 지금껏 배우고 얻은 것을 사용하는 인생을 시작해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내 안에 있는 것을 표현하기 시작하면 그곳에 자연스레 나의 자리가 생깁니다. 아마도 '난 이런 생각을 갖고 있어'라고 드러냄으로써 거기에 공명하는 사람들이 모여들기 때문이겠지요.

젊은 시절은 어딘가로 무언가를 찾아다니는 때지만, 인생 후반은 이미 가진 것을 잘 성숙시키고 내 테두리 안을 충실히 만드는 시기인 것 같습니다. '더, 조금 더'라는 태도를 버리니 새로운 발견이 가득하네요.

 

독차지하지 않을 것. 이것은 몰랐던 세계로부터 날아올 선물을 받아들이기 위한 마음의 자세인 것 같아요.

 

젊을 때는 무엇이든 최선이 아니면 직성이 풀리지 않았어요. 하지만 최선이 안될 때는 차선이라도 괜찮다고 여기는 태도가 때로는 필요하더군요.

 

누구나 완벽하게 살 수 있는 건 아니에요. 모든 사람이 최선의 상태로 산다면 AI와 무엇이 다를까요. 누구든 '못하는 일'이 있고, '해낼 수 있는 정도'가 다르기 때문에 각자의 개성이 생기는 거죠.

그렇게 생각하니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은 자신이라는 존재를 사랑하는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거면 할 수 있겠다 싶은 것을 끌어내어 무리하지 않고 차선의 삶을 살고 싶은 나이가 되었나 봅니다.

 

정보가 너무 많으면 느끼는 시간이 없어져요. 하지만 새로운 정보가 전혀 없으면 설렘을 느낄 수가 없지요. 그러니 균형이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느낍니다. 그런 균형을 찾는 데는 욕심내는 것을 그만두는 일도 좋은 방법입니다.

이것저것 모두 알아두어야만 성에 차고, 모두가 아는 것을 모르면 부끄럽고, 남들보다 늦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내려놓으세요. 정말로 필요한 정보라면 분명 손에서 놓아도 훗날 내게로 찾아오기 마련입니다. 가득찬 마음을 정리하고 틈을 만들어두면 '우와~ 그런 거였어?' 하고 여러 가지 일에 감동할 수 있을 겁니다.

 

"우리 집은 아주 좁아요. 그치만 마음은 너무 편한 곳이에요. 내가 싫어하는 게 하나도 없거든요. 아무리 작은 곳이라도 거기에 내가 좋아하는 것을 모아두기만 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젊은 시절에는 '누군가와 똑같이' 하면서 마음의 안정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누군가와 똑같아야 해'라는 생각이 거꾸로 나를 속박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중요한 것은 스스로의 안목과 기준으로 고를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인생 후반은 내 안에서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을 찾아내는 설렘을 즐겼으면 합니다.

 

카멜레온으로 살던 시절에는 주변을 살피느라 늘 커다란 눈을 이리저리 굴리면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눈을 감고 내 안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요. 나는 이 둘 중에서 뭘 더 좋아하지? 왜 나는 이게 더 끌릴까? 이걸 고르면 어떤 삶이 펼쳐질까?

그것은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 모두를 '나의 일'로 새로 받아들이는 작업이었습니다. 내 손에 들린 것을 나만의 저울과 자로 다시 측정하는 느낌이랄까요. 스스로 제대로 관찰하고 생각한 후에 판단하는 습관을 쉰에 가까워져서야 시작한 셈입니다.

그렇게 진정한 나로 살기 시작하자 자연스레 내가 좋아하는 것, 관심 가는 일, 마음 맞는 사람들이 모여들게 되어 신기할 따름입니다. 그러자 누군가와 자연스레 연결되면서 새로운 문이 차례차례 열려요. 내가 나만의 색깔로 나이 들어갈 때, 그 앞에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기대됩니다.

 

'지금'을 어떻게 느끼느냐에 따라 사람은 이렇게 달라지는구나 싶었습니다. 그 후로 자기 전에는 반성이 아니라 감사함을 떠올리게 되었어요. 오늘도 별일 없이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었던 것, 부모님이 건강하게 지내시는 것, 오늘도 남편과 집에서 맛있게 저녁을 먹은 것, 내가 쓴 글을 읽어주는 분들이 있다는 것. 지금 나를 둘러싼 일상의 기쁨을 떠올리기만 해도 자연스레 '아~ 오늘도 좋은 하루였어' 하고 기분 좋게 잠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소하고 평범하지만 무탈하게 오늘 하루도 잘 보냈다는 안도감은 나이가 들수록 최고의 행복이 아닌가 싶어요.

 

무언가가 압도적으로 부족하면 그 부족한 것을 늘리려고 하지 말고, 전혀 다른 해결법으로 보완하는 방법이 있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일단 그 자리를 떠나서 새로운 접근 방법을 찾아보면 줄곧 해결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던 문제가 술술 풀리곤 합니다. 세상의 많은 '잘 안 풀리는 일'은 사실 의외로 잘 풀리고 있는데, 나만 '잘 안되고 있어'라고 여기는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들어요.

저녁 식사의 반찬을 한 가지 줄이는 것. 좋은 기분으로 맛있는 식사를 하기 위한 매우 좋은 방법이었습니다. 가짓수를 줄이면 하나하나의 질이 높아집니다. 이 '반찬의 법칙'은 다른 일에도 적용될 수 있을 것 같네요.

 

청소를 하고, 요리를 하고, 원고를 쓰고, 아이의 숙제를 봐주는 일 등 생활 속에는 다양한 할 일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대개 한 번 하면 끝이 아니라 매일 반복해야 하지요. 저녁 식사도 매일 준비해야 하고, 원고도 하나가 끝나면 또 다른 하나가 시작됩니다. 목표에 도달했다고 생각했는데 또다시 출발점에 서서 다음 목표를 향해 달려가야 하지요. 그렇게 생각하면 목적을 달성하는 일보다 중요한 건 항상 골인 지점까지 도달할 수 있는 '순환'을 만드는 일임을 알게 됩니다.

 

일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실적을 쌓고, 성공하는 것. 인생에는 수많은 '목적'이 존재하는데, 그 이후에 무엇이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면 다른 길이 있음을 깨닫습니다.

일에서 아무리 좋은 평가를 받아도 은퇴한 후에 어떤 행복이 기다리고 있을지 생각하면 지금 이 순간의 평가에 일희일비하는 것이 왠지 허무하게 느껴지지요. 아이가 좋은 학교에 가는 것과 개성을 살려서 자신만의 길을 걷는 것 중 무엇이 더 큰 행복일지 생각해보면, 조금 더 느긋한 시선으로 미래를 바라볼 수 있을지 모릅니다. 목적 너머로까지 시야를 넓혀보면 '반드시 이렇게 해야 해'라는 집착이 풀리지 않을까요.

 

화장실 솔과 작별해보니 간단히 청결을 유지하는 시스템이 탄생한 것처럼, 당연히 필요하다고 여겼던 것을 내려놓았을 때 진정으로 무리 없는 순환의 고리를 이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행복은 조건이 갖춰졌을 때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는 걸 나중에야 알았지요. 일이 잘 풀리지 않아도, 집에서 밥을 짓고 무조림을 만들어 맛있게 먹을 수 있으면 행복하고, 부모님이 건강하게 지내시는 것만으로도 행복이라는 것을요. 주말에 햇볕에 말려 까슬까슬해진 이불을 덮고 잘 수 있으면 '아~ 진짜 행복해' 하고 느끼고, 내가 낸 책이나 잡지를 읽고 힘을 얻었다는 독자가 있으면 너무나도 행복합니다. 뭐지? 행복이란 여기저기 넘쳐나고 있는 것이었잖아!

우리는 어디를 향해 달려가면 될지, 목표만을 좇기 쉽습니다. 그래서 정답을 알고 싶고, 행복을 정의하고 싶어 하지요. 하지만 과연 목적에 도달하는 일만이 좋은 것일지 생각해보게 됩니다. 골인 지점을 억지로 정해두고 그곳에 도달하면 마음이 채워질까요? 그렇지 않은 것 같아요. 분명 그곳에 도달하면 또 그 너머를 보며 달리고 싶어질테니까요.

아무리 달려도 어디에도 도달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면 지쳐버립니다. 그럴 바에야 그 '어딘가'를 정하지 않으면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달리는 동안에 잠시 다른 곳에 들러 누군가와 수다를 떨거나, 잠시 휴식하면서 맛있는 것을 먹는 편이 훨씬 즐거울 것 같아요. 감자를 통째로 삶지 않게 되자 차를 한 잔 마실 수 있는 시간이 생긴 것처럼 말이죠.

'정답'의 바로 곁에는 더 멋진 '덤'이 떨어져 있다는 것... 그것을 주우면서 걷고 싶다고 생각하는 요즘입니다.

 

혼자서 애쓰지 않아도 돼요. 나보다 잘하는 사람의 힘을 빌려도 됩니다.

 

가능하면 언제나 '유연한 머리'를 유지하고 싶어요. 이게 아니면 안 돼, 하고 한 가지에 집착해서 다른 것을 잘라버리기보다 이쪽도 괜찮네, 하고 내 안의 선택지를 늘리는 것이 풍요로운 삶을 사는 비결인 것 같습니다.

 

물건을 줄이고 싶어지는 것은 편하게 살고 싶어서예요. 물건이 많을수록 정리정돈에도, 관리에도 시간과 수고가 드니까요. 거기에 들이는 노력을 가능한 한 줄이고 '물건'; 대신 자기 안에 축적한 '경험'이라는 리스트의 페이지를 넘기며 할 수 있는 것을 찾았으면 해요.

이 방법은 분명 젊은 분들에게도 효과적일 거예요. 뭔가를 사는 행위만으로 나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새로운 물건과의 만남을 완전히 차단한다면 생활에 신선한 바람이 들어올 수 없지요. 인생을 즐기려면 사는 것과 활용하는 것의 균형이 중요합니다. 그 판단을 '점'이 아니라 길게 이어지는 '선'으로 생각해보는 거예요. 그러면 자기 인생에 진짜 필요한 조미료가 보이리라 믿어요.

 

'입력하는 시기'에서 자기 안에 있는 것을 '활용해서 즐기는 시기'로 옮겨가는 거지요. 이것이 의식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찾아오는 인생의 반환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필요 없는 것을 손에서 내려놓고 자신이 정말로 필요로 하는 것만으로 살고 싶어지는 때도 찾아옵니다.

 

생활에는 '관리'라는 것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최근에야 느끼고 있어요. 갖고 싶은 것을 손에 넣고 생활 속에 자리 잡게 하면 새로운 시간이 시작되는 것마냥 설레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그 후의 일들입니다.

새로 들여온 물건을 어디 놓을지, 기존에 가진 것들과 어떻게 조합할지, 앞으로 매일 어떤 식으로 사용할지, 어떻게 손질해 깨끗하게 유지할지 등을 생각해야만 하거든요.

 

물건을 사는 건 쉽지만 관리는 그냥 생활 속에 던져두는 게 아니라 관찰하고 개선하며 스스로 그 규칙을 만들어나가야만 합니다. 되는 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의지가 필요하다는 뜻이지요. 다만 너무 의식적으로 애를 쓰면 중간에 숨이 차서 지속할 수 없으니 귀차니즘을 가진 나도 계속할 수 있는 방법을 만들어야지요.

그렇게 생활 속에서 몇몇 관리법이 정착되는 동안 문득 생각했습니다. 어쩌면 생활의 재미란 이러한 관리 (매니지먼트)가 아닐까 하고 말이에요.

어떤 일이든 원인과 결과가 있습니다. 일이든 생활이든 보람된 일을 하고 싶다거나 기분 좋은 하루를 보내고 싶다며 좋은 결과를 바라기 마련이지요.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원하는 것이 이루어진다면 과연 재미있을까요? 그렇지 않을 겁니다.

어떻게 하면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마음에 드는 방으로 꾸밀 수 있을까? 이렇게 시행착오를 겪는 과정이야말로 재미를 낳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생활의 관리는 남에게 맡길 수 없습니다. 생활의 디테일은 자신만 아는 데다, 지속 가능한 방법이 무엇인지도 스스로에게 물어볼 수밖에 없으니까요. 나만이 만들 수 있는 것이기에 만들어가는 과정이 즐거운 것이겠지요.

 

탤런트 히로미 씨가 후지타 스스무 씨와 함께 펴낸 <작은 휴식의 권유>라는 책에서 한 말을 보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10년 동안 예능계를 쉬었던 히로미 씨는 과거에 150퍼센트, 200퍼센트의 힘을 일에 쓰지 않으면 성에 차지 않았다고 해요. 그런데 휴식을 거쳐 복귀한 후에는 80퍼센트면 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는 "휴식이 있었던 덕분에 80퍼센트의 힘 조절로 주위를 살피면 일이 잘 풀린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라고 했어요.

100퍼센트를 다 쓰면 남는 연료가 없습니다. 그러면 자신이 계획한 일을 해내는 것만으로도 벅차서 계획 이외의 일에 눈을 돌리지 못하지요. 목적을 향해 직진하는 것밖에 생각하지 못하니 그 길의 옆에 떨어져 있는 큰 행복을 알아차릴 수 없고, 조금만 길을 벗어나면 멋진 풍경이 펼쳐지는데도 그냥 지나칩니다.

 

20퍼센트의 여백이 생겼을 때 거기에 무엇이 흘러들어올지 생각해보는 것. 그것은 분명 지금껏 몰두해온 일과는 조금 다른 인생의 재미라는 생각이 들어요.

 

대개 체중 감량이나 체력 향상을 목표로 헬스장에 다니는데, 잘 생각해보면 우리 주위에는 실상 목적과 행동이 잘 이어지지 않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멀리 돌아가고 있는 경우가 많아요. 그러니 당연하다고 믿고 있는 방법이나 과정을 한 번쯤 그만둬보는 일이 필요합니다. 그러면 목적과 최단거리로 이어지는 새로운 방법이 눈에 들어올지도 모르거든요.

목적에 도달하려면 누군가에게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어떻게 달성할 수 있는지 그 과정만 배우는 겁니다. 그 이후가 정말로 중요하지요. 배운 것을 매일 지속하면서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 하니까요. 어떻게 자기 생활 속에 자리 잡게 만들고 정착시켜 습관화시키느냐에 따라 승부가 납니다.

인생의 다른 일반적인 일도 마찬가지일거예요. 평소 하던 일이나 일상을 한번 살펴보세요. 복잡하고 불필요한 회로를 일단 끊어준 후, 목적과 최단거리로 이어지는 회로를 새로 만들어보았으면 합니다.

 

어릴 땐 무엇과 무엇을 손에 넣으면 행복해질까, 어떤 일을 하고 얼마를 벌면 행복을 손에 쥘 수 있을까를 고민했습니다. 그런데 문득 주위를 둘러보면 부족한 듯 생활하면서도 행복하다는 사람이 있는 반면, 고급차를 타면서도 늘 불안해하는 사람이 있었어요. 행복해지는 방법을 이리저리 찾기보다는 행복하다고 느끼는 마음을 갈고닦는 편이 훨씬 빠르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물건을 사는 것도 다르지 않아요. 무엇을 가지느냐보다 어떻게 쓸지가 더 중요하지요. 아무리 좋은 냄비를 가지고 있어도, 옛날부터 써오던 알루미늄 냄비 하나로 탕부터 스튜까지 여러 요리를 만들어내는 어머니의 솜씨를 못 당합니다. 그것을 마음에 새겨놓고, 무언가 하나를 손에 넣으면 열심히 잘 활용했으면 해요.

주말이면 매번 시트와 이불 커버를 세탁합니다. 덤으로 방석도 햇볕에 말리고, 그 사이에 침대 밑을 청소하고 물걸레질을 하지요. 깨끗해진 침실에서 바싹 마른 시트를 까는 것이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인지 몰라요. 이렇게 자신의 시간을 이어가는 것이야말로 물건을 사는 목적임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저축이라는 미지의 세계를 체험해보고 느낀 것은 일단 출발해보는 것도 꽤 효과적이라는 사실이에요. 전혀 예상되지 않는 일을 한걸음씩 알아가려면 우선 시도해보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이에요.

중간에 역시 이건 아니라며 되돌아가는 일이 있더라도, 일단은 해보지 않은 이상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조차 알 수 없으니까요. 만약 틀린 길이라면 되돌아가서 또 새로운 방향으로 걸어나가면 그만입니다.

어쩌면 제가 주먹구구식으로 살던 시절에 통장을 보지 않았던 것처럼, 우리가 한걸음을 내딛지 못하는 것은 막연한 불안 때문인지도 몰라요. 그곳에 바람이 통하게 하고 빛을 비추어보니 불안은 내 마음이 만들어내는 그늘이었다는 걸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좋아하던 빵에게 작별을 고했어요. 취재를 하며 푸드코디네이터인 에구치 케이코 씨에게 "아침에는 과일을 드시는 게 좋아요"라는 말을 들은 것이 계기가 되었지요 오전은 '배출'의 시간이라 생각하고 과일만 먹으라고 하네요. '배출→섭취 →흡수'라는 사이클을 몸속에 제대로 만들어두면 변비가 해소되고 몸 상태가 좋아진다면서 말이지요. 따라쟁이인 저는 일주일만 도전해보겠다는 마음으로 토스트를 꾹 참고 사과와 귤, 바나나 등 과일을 접시에 가득 담아서 먹어보았습니다.

그러자 생각지도 못한 효과가 나타났어요. 변비가 사라진 것은 물론이고, 당질을 섭취하지 않으니 오전의 업무 능률이 확연히 올라가는 거예요. 그 전에 토스트와 밀크티, 직접 만든 콤포트에 요구르트를 아침으로 먹었을 때는 식후에 원고를 쓰려고 책상 앞에 앉으면 배가 불러서 너무 졸렸거든요. 그런데 과일만 먹으니 전혀 졸리지 않았습니다.

이런 경험을 통해 사람의 몸은 그가 먹은 음식으로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무엇을 먹느냐에 따라 건강 상태도, 마음의 안정도, 두뇌 회전도 달라진다는 것을요.

하지만 무엇을 먹었을 때 자신의 몸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는 해보지 않고는 몰라요. 그러니 조금씩 무언가를 평소 먹던 메뉴에 추가해보거나, 무언가를 섭취하지 않도록 해보세요. 그렇게 하면서 몸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거예요.

그런 실험의 계기가 되는 것이 바로 건강에 좋다는 음식 정보입니다. 혼자서는 지금까지의 식생활을 바꾸려는 생각을 하기 쉽지 않으니까요. 믿을 만한 사람이 좋다고 추천해주면 저는 가급적 순순히 따라해보려고 합니다. 내 몸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만 지속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말이지요.

맑은 마음으로 살고 싶다, 일의 능률을 올리고 싶다, 집안일을 착착 빠르게 해내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런 결심만으로 나를 바꾸려고 해도 좀처럼 쉽지 않아요. '내일부터는 진짜 열심히 할 거야!' 하고는 금세 좌절하기를 여러 번. 실패를 거듭하면서 저는 '의지'의 힘을 신뢰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보다는 주위의 '환경'을 갖추고 자연스레 나의 힘을 헛되지 않게 쓸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면 돼요.

음식은 그런 환경을 만드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토스트를 사과와 귤, 바나나로 바꾸는 것. 단지 그것만으로도 '할 수 있는 일'이 훨씬 많아진답니다.

 

제철 과일을 사용해 그때그때 잼을 만들면 계절의 축복을 통째로 받는 기분이 들어요. 그러고 보니 '아, 나는 오랜 세월 얼마나 손해를 본 거지?'라는 생각이 들지 뭐예요. 그 어떤 과일보다 유자잼이 맛있다고 믿고 유자잼이 아니면 필요 없다고 단언하며 마치 제가 맛에 대해 꽤 잘 아는 사람인 양 굴었던 것 같아요.

이것저것 다 좋다고 하는 것보다 "이것 말고는 안 먹어"라는 게 더 멋있다고 여기는 마음이 있었나 봅니다. 그런데 그런 집착을 놓아버리니 제철 과일의 맛을 다양하게 즐길 수 있어서 계절이 바뀌는 것이 기다려지기도 해요.

젊은 시절의 저는 분명 많은 것 중에서 '이것' 하고 저만의 특별한 취향을 분명히 드러내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거예요. 하지만 지금은 눈앞에 좋아 보이는 것이 있으면 순순히 손을 뻗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멋을 부리기보다는 그 순간을 즐기면 그걸로 되었다고 여기는 것. 작은 잼용 냄비가 가르쳐준 교훈입니다.

 

30대엔 각 잡힌 사람으로 보이는 것이 목표였다. 그래야 일 잘하는 프로페셔널로 보일 거라고 생각했다. 옷장엔 똑 떨어지는 정장이, 신발장엔 하이힐이 그득했다. 지금은 그런 옷이나 신발을 거의 입고 신지 않는다. 예전의 내 모습을 부정하거나 지우려는 것이 아니다. 그때의 나는 나를 좋아했고 오늘의 나도 나를 좋아한다. 그저 40대 중반이 되니 스판기 없는 옷과 볼 좁은 구두가 힘들어져 바이바이 했을 뿐이다. 스타일은 언제든 바꿀 수 있는 것이다. 그깟 게 뭐라고.

몸이 불편하면 짜증이 나고, 짜증이 나면 얼굴에서 티가 난다. 나는 많이 웃고 싶다. 마주치는 사람들을 기쁘게 반기고 싶다. 그래서 와이어가 들어간 브라를 가벼운 브라렛으로 바꾸었고, 어지간하면 노브라로 생활한다. 품이 넉넉하고 가벼운 옷을 입는다. 피부화장을 거의 하지 않고, 손에 물을 묻혀 머리를 쓱쓱 만진다. 꽉 조이거나 거치적거리는 게 사라지니 한 번이라도 더 웃게 된다. 내 몸과 마음의 쾌적함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래야 다른 사람에게 뭐가 되었든 좀 잘해줄 마음이 생긴다.

나는 매일 변한다. 나이를 먹어가고 몸이 변한다.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흘러가니 나도 함께 흐른다. 50대에 어떤 스타일로 나를 치장할지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다. 분명히, 아주 멋있을 것이다.

 

화장을 완전히 그만둔 것은 올해 들어서예요. 레미오라는 모로코의 아르간오일을 소개하는 분을 만난 것이 계기가 되었지요. 저보다 조금 연배가 많은 그 여성분은 전혀 화장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남자들이 입을 법한 스웨터와 데님을 가볍게 걸치고, 두껍고 야무진 눈썹을 그대로 둔 모습이었어요. 특별히 결이 곱거나 예쁜 피부도 아니었고, 주름과 기미도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인 그 모습이 너무나 아름답게 느껴졌어요. 그 영향으로 저도 자연스레 화장을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하기 힘들 만큼 침울할 때는 이것저것 생각하기보다 잠을 푹 자는 편이 낫다는 것. 잘 자고 나서 눈을 뜨면 머리도 마음도 맑아져서 하늘에서 쏟아지는 좋은 아이디어를 손으로 잡기만 하면 돼요.

하지만 언제까지고 끝없이 배우기에는 돈이 아무리 많아도 부족해요 물론 지금도 새로운 것을 손에 넣고는 '아~ 그런 거구나!' 하고 발견하는 일은 설레고 즐거워요.

하지만 마흔이 넘을 무렵부터 슬슬 인풋의 속도를 완만하게 만들고 싶어졌습니다. 이미 필요한 것은 어느 정도 갖춰진 상태였기에, 이것과 저것을 조합해서 어떻게 사용할지, 이미 가진 것들 속에서 재미를 만들어내는 쪽으로 옮겨간 것이지요.

그리고 무엇에 얼마의 돈을 쓸지도 여러 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체험'을 사는 것이 아니라 진짜로 일상에 '필요'한 것에 돈을 쓰고 싶었으니까요. 그렇게 생각하자 불필요한 것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의 내 생활'에 맞아야 한다는 것.

 

멋이란 디테일을 더해가는 것이며, 그것들을 어떻게 조합하느냐가 그 사람의 분위기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 '어른의 멋'에 또 하나의 새로운 규칙이 더해졌어요. 바로 '언제나 같은 옷이어도 된다'는 것입니다. 이를 알려주신 분은 수필가인 미쓰노 모모 씨예요. 모모 씨는 저서인 <흰 셔츠는 백발이 될 때까지 지니고>에서 '늘 다른 옷을 입지 않아도 된다'고 썼습니다.

세계적으로 활약하고 있는 디자이너들은 늘 같은 옷을 입는다고 해요. 조르지오 아르마니나 드리스 반 노튼, 톰 포드 모두 그렇다고 합니다. '피부처럼 익숙한 옷차림을 확립한다는 것은 멋을 둘러싼 여러 걱정거리로부터 해방되고, 해야 할 일에 집중하기 위한 프로의 몸가짐'이라는 것이었어요.

 

이게 내 스타일이라고 정하고 같은 옷을 입으면 일관되게 멋스러움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건 '멋을 포기하는 것'과는 조금 달라요. 남에게는 똑같이 보여도 미묘하게 소재가 다르거나 조합의 밸런스가 달라지거든요. 오늘은 남색의 캐시미어 소재인 넉넉한 스웨터를 입고, 같은 색의 얇은 팬츠를 입어 한 가지 톤으로 맞춰 입어야겠다거나 두꺼운 흰 팬츠에 옅은 그레이의 스웨터를 조합하는 등 디테일한 변화를 즐기는 겁니다. 굳이 새로운 것을 시도할 필요도 없어지고, 멋의 정밀도는 더 높아지니 자신감이 생겨요.

애를 써가며 멋내기를 그만두는 것. 그것은 '누구에게 보이려는' 멋내기를 그만두는 일이었습니다. 저 사람보다 더 멋있어 보이고 싶다는 마음과 작별하고, 내가 나답게 지낼 수 있는 멋을 추구하기로 한 것이지요.

이런 멋내기의 효과는 생각보다 훨씬 큽니다. 아침에 거울을 봤을 때 잘 어울리는 옷을 입은 내 모습이 비치며 자신 있게 집을 나설 수 있어요. 오늘은 에나멜 구두를 신어볼까 하고 작은 변화를 즐기는 건 얼마나 설레고 신나는 일인지요.

 

차라리 그걸 받아들이고 '그러면 뭘 할 수 있지?' 하고 생각하는 편이 훨씬 마음이 편합니다. '최소한 할 수 있는 일'을 꾸준히 하면 방치하는 것보다는 훨씬 깨끗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거든요.

 

'애써서 하는 일'은 오래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오래 지속하는 일이니까요. 그 편이 훨씬 마음도 가볍고 기분도 좋은 데다 청결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이렇게 되면 좋겠다며 계속 생각하다 보면 자연스레 길이 커브를 그리기 시작하며 조금씩 원하던 '그쪽'으로 가까워지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이제부터 이렇게 해야겠다며 결심하고 시작한 일은 하나도 없어요. 다만 '이쪽'이 아니라 '저쪽'이 재미있어 보인다며 관심을 놓지 않거나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이런 걸지도 몰라'라는 막연한 생각을 가졌을 뿐이죠. 정답은 몰라도 계속 좇아가다 보면 언젠가는 '만남'이 찾아오는 법입니다. 지금 되돌아보면 그랬던 것 같아요.

그리고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자신의 인생을 두근거리는 방향으로 이끌어주는 것은 '결심'이 아니라 '만남'이라는 사실입니다. 행복은 자신의 힘으로 낚아채는 것이 아니라, 그저 때가 되기를 기다리다가 툭 떨어지는 과실을 줍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외출할 때 좋은 옷을 골라서 입는 건 당연하지요. 하지만 아무도 보지 않는 집에서 자신을 위해 멋을 내는 것, 그것만으로도 어깨가 펴지고 기분이 밝아지며 생활이 훨씬 윤택해진 기분이 듭니다.

젊었을 때 '겉모습을 꾸며봐야 내실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어른들의 지적을 자주 들었는데 '겉모습이 갖춰지면 내실도 갖춰진다'는 것도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우선은 '그릇'을 준비하고 그에 어울리는 '내용물'을 스스로 만들어가면 됩니다.

 

<생활의 배꼽>에서 <<매일 매일 좋은 날>>의 저자인 모리시타 노리코 씨를 취재한 적이 있습니다. 20대부터 다도를 계쏙해오고 있다는 모리시타 씨. 처음에는 다도에 대해 잘 알지 못했던 저자가 사계절의 흐름과 더불어 1년을 마무리하고 2년째를 맞이하면서, 전년과 같은 철이 되면 봄의 그릇에 봄의 과자와 함께 차를 마십니다. <<매일 매일 좋은 날>>은 그런 체험을 통해 차를 알아가는 과정을 정성껏 담아낸 글이에요.

거기서 모리시타 씨는 세상에는 금방 알 수 있는 것과 금방은 알 수 없는 것, 두 종류가 있다고 말해요. '이 일은 어떤 걸 하는 일일까?' '내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곳은 어디일까?' '풍요로운 인생이란 뭘까?'처럼 세상에는 금방은 알 수 없는 것들이 많습니다.

모리시타 씨는 매주 다도의 날이면 방금까지 정신없이 일을 하다가도 '일상의 뿌리를 억지로 빼내듯이' 다도 교실로 간다고 해요. 아무것도 몰라도 그렇게 매주 반복하다 보면 점차 눈에 들어오게 되는 것이 있다고 합니다. 우선 '형태'가 있어야 하니, 먼저 그 '형태'를 만들어두면 거기에 차차 '마음'이 들어간다는 것. 그것이 다도라고 알려주셨어요.

집에서 추리닝 차림을 그만두고 몸가짐을 갖추는 것. 그렇게 형태를 만들자 어떤 마음이 들어올지 기대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일에서도 생활 속에서도 '모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알아가는 과정'을 신나게 맛보고 싶어졌습니다.

 

저는 책이나 잡지를 만들 때 가급적 처음 해보는 시도를 하려고 하는 편이에요. 하지만 무슨 일이든 처음 착수할 때면 부담이 크기는 하지요. '이렇게 하면 어떻게 된다'는 경험치가 제 안에 없다 보니 결과가 보이지 않고 불안해져요. 하지만 한걸음 한걸음 발 디딜 곳을 찾아가며 만들었을 때, 생각지도 못한 발견도 더 많고 내용도 재미있어진다는 사실을 경험 속에서 배웠어요.

맨 처음 시도는 제 안에 아직 보이지 않는 힘을 이끌어내주는 마중물 같은 건지도 몰라요. 그렇다면 이것을 거꾸로 이용해서 자신을 처음의 환경에 놓아보면 나도 몰랐던 새로운 나를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자칫 편하고 실패할 일이 없는, '이미 해본 일'을 고르기 쉽지만 중요한 것은 첫 한걸음입니다. 그 너머로 설렘이 가득한 길이 이어진다면 계속해서 처음이라는 문을 열어볼 용기가 생기지 않을까요.

 

나 자신의 결점을 고치려고 오랫동안 애써 왔지만, 그건 사실 '나밖에 못하는 일'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무언가를 그만두는 일은 지금껏 걸어온 길의 바로 옆에 '또 다른 길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과정이었습니다. 넓은 대로가 아니라 좁은 골목길을 걸어도 분명 다른 풍경을 바라보면서 목표 지점에 도달할 수 있어요. 그런 재미를 알고부터는 삶이 조금 편해진 것 같아요.

무언가를 그만두는 일은, 못 하겠다며 포기하는 것이기도 하지요. 그렇지만 그건 전혀 잘못이 아니라는 걸 나이가 들고서야 겨우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저마다 할 수 있는 것과 못하는 것이 있어요. 누구라도 못하는 것이 있는 게 당연하지요. 그런데도 젊을 때는 못하는 것이 있으면 안 된다고 여기며 스스로를 몰아붙였습니다.

인생에 끝이 있다고 느끼기 시작한 인생 후반에 들어서서야 비로소 못하는 것을 어떻게든 해보려고 애쓰기보다는 가볍게 내려놓는 편이 훨씬 편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못하는 일'을 그만둬보면 내 안의 힘을 통째로 '할 수 있는 일'에 쓸 수 있어요. 그러면 할 수 있는 일의 정밀도가 높아져서 더 잘하게 되지요.

 

그것이 바로 제가 찾아낸, 저를 더 효율적으로 쓰는 좋은 방법입니다.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연료에 불이 붙으면 더 편하게, 더 멀리까지 기분 좋게 나아갈 수 있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