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위에서 다들 실패했다고 한다면 뭐, 실패했어도 상관없어요. 실패했고 또 실패해도 인간은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학교에 다니지 못해도 괜찮아요. 대기업에 다니지 못해도 괜찮아요. 도시뿐만 아니라 지방으로 가는 사람도 있어야지요. 결혼에 실패해도 상관없어요. 꼭 이러이러해야 한다고 삶의 방식을 비좁게 설정하면 숨이 막혀서 살기 힘들지요.
주위에서 엘리트라고 부러움을 받는 사람들 중에 오히려 자신이 살아 있다는 것을 실감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아주 많아요. 사회의 톱니바퀴 중 하나로서의 자신밖에 의식하지 못하는 것이지요. 무엇을 위해 일하는지조차 알지 못해요. 그건 대단히 불행한 일입니다.
성공하는 것,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사는 것이 행복과 동의어는 아니라는 말씀이군요. 왕도를 선택하지 못했다고 고민하거나 자신을 책망할 필요는 없지요. 물론 그래도 인간이니까 때로는 비교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나는 남들과는 조금 다르다'고 생각할 줄 아는 게 중요합니다. 남과 다르다는 건 아주 귀한 매력이니까요. 인생이 무척 재미있어지잖아요. 이건 큰 기회라고 생각하면 되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주위 사람들과 나를 비교할 필요는 어디에도 없어요. 비교해가면서 나 자신을 없애가기보다는, 자기 자신을 직시하며, 살아 있는 것에 감사하고, 타인들과의 만남을 순수하게 기뻐하는 편이 훨씬 더 인생이 풍성해지는 비결입니다. 비교하지 않는 것이 인생에 얼마나 큰 가치를 가져다주는지 모두 아셨으면 좋겠어요.
인간이라면 누구나 미움이나 분노나 원망을 품는 일이 있어요. 하지만 그런 마음이 들끓을 때 그걸 잠깐 옆으로 밀어둘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누구라도 잘못은 하게 마련입니다. 남이 한 그런 잘못을 용서해야지요. 미움이나 원망은 아무것도 만들어내지 못합니다. 폭력으로 이어질 뿐이지요. 야수의 마음을 마구 날뛰게 해봤자 아무것도 변하는 게 없으니까요. 그렇게 시간이 해결해주기를 기다려야 합니다.
어떤 경우라에라도 분명하게 말로 설명해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설명해봤자 못 알아들을 거라는 분들이 많지만, 그런 일은 없습니다. 오히려 설명해주지 않기 때문에 알아듣지 못하지요. 설령 그 순간에는 알아듣지 못해도 엄마가 끈기 있게 설명해주다 보면 아이는 귀 기울여 듣는 버릇이 생깁니다. 점점 자라서 말을 듣지 않는 사춘기가 된 뒤에야 갑작스럽게 부모 말을 들으라고 하면 아이들로서는 받아들이기가 어렵겠지요. 그때는 이미 들을 귀를 갖고 있지 않아요. 아이가 부모 말을 듣지 않는 것은 아마도 안 된다는 말만 반복해서 전달했을 뿐 그 이유는 설명하지 않았기 때문일 거예요.
나쁜 짓을 하는 아이는 분명하게 꾸짖어야 한다고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왜 그게 나쁜 짓인지, 왜 화를 내며 나무라는지에 대해서는 전달하지 않는 부모들이 많아요. 왜 꾸짖는지 알지 못하면 꾸지람을 듣는 쪽은 그저 반항심만 생길 뿐입니다.
마주보며 차근차근 설명해주지 않으면 괜히 감정대로 화풀이하는 거라고 생각하기 십상이지요. 이러이러한 점을 잘못했기 때문에 꾸짖는다는 것을 아이에게 분명하게 알려줄 필요가 있어요.
그건 자칫 잘못된 길로 빠져드는 아이들에게도 가장 필요한 일이지요. 찬찬히 시간을 들여 설명해주고 분명하게 언어로 이해시키는 것을 통해 신뢰관계가 쌓입니다. 그런 신뢰가 잘못된 방향으로 뛰쳐나가려는 마음을 붙잡아주고요.
초등학교에서도 대화가 극단적으로 줄어드는 바람에 선생님들이 힘들어하시는 것을 자주 목격해요. 이를테면 목이 마를 때, 아이가 "물!"이라고만 한대요. "물 주세요"라는 말을 못하는 거예요. 아마 집에서도 비슷한 상황이겠지요. 근데 집에서는 통해도 밖에서는 그런 외마디 말은 통하지 않아요. 그런 전달 미숙으로 자칫 충돌이 일어납니다.
언어로 표현을 못하는 아이들이 많아서 의사소통이 점점 더 어렵다고 학교 선생님이 제게 고충을 털어놓으시더군요. 그럴 때마다 우선 선생님이 모범을 보여주십사고 이야기합니다. 이를테면 분필을 집어달라고 할 때, "OO야, 분필"이 아니라 "OO야, 거기 분필 좀 집어줄래?"라고 분명하고도 정확한 말로 의사를 전달하는 것이지요. 우선은 그런 작은 일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중요한 말씀입니다. 요즘은 말이 자꾸 줄어들고 그때그때의 분위기만으로 끝내버리지요. '전달한다'는 본래의 의미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어요.
우리 아버지들이 특히 반성해야 합니다. "물", "신문", "밥"..... 그렇게 단어 하나만 툭툭 던지잖습니까? 아이들은 어른을 보면서 자랍니다. 한 단어의 짤막한 대화만 오가는 분위기라면 그야말로 냉랭하지요. 어느새 마음까지 차가워집니다.
평소부터 정확한 말로 전달하려는 의식을 가지면 상당히 달라져요. 마음이 마구 날뛰려는 때에도 그런 심정을 분명하게 말로 표현할 수 있으면 그게 브레이크 역할을 하지요.
요즘은 대화는커녕 전화 통화도 번거롭다고 문자나 메일로 해결해버리지요. 바로 눈앞에 사람이 있는데 문자를 보내는 경우도 있어요. 활자가 무서운 것은 똑같은 얘기를 전달했는데도 읽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좋게도 해석되고 나쁘게도 해석된다는 점이에요. 그쪽의 상황에 따라 받아들이는 방식이 완전히 달라져요. 활자를 올바르게 받아들이려면 읽는 쪽의 성숙한 의식도 필요합니다.
무리라는 말은 '~할 리가 없다'는 뜻이지요. 가능할 리가 없는 일을 하려고 들면 그게 오래갈 리가 없어요. 무리한다고 해서 좋은 결과를 얻는 것은 아니에요.
저는 열심히 뛰는 것과 열심히 뛰지 않는 것을 항상 한 세트로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양쪽 카드를 마음속에 간직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한 번은 열심히 뛰는 쪽 카드를 선택해서 그대로 실행해봅니다. 하지만 지나치게 열심히 뛰어버렸다면 다시 열심히 뛰지 않는 쪽 카드로 바꾸는 거예요. 일단 걸음을 멈추는 것도 좋고 아예 쉬어가도 괜찮습니다. 때로는 오히라 씨처럼 용기를 내서 물러나는 것도 필요해요.
다운증후군이라는 장애를 안고 열심히 살아가는 딸아이를 보고 있으면, 어떻게든 해내야 한다는 의무감 따위는 아주 사소한 일로 여겨져요. 살아나리라는 보장도 없는 심장 수술을 극복해낸 딸아이와 이렇게 집에서 함께 지낼 수 있다니, 그것만으로도 정말 행복하다는 실감이 들어요. 무리해가며 일에 파묻혀 지내던 시절에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지요. 행복한가 아닌가는 결국 나 자신이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달린 것이었어요.
열심히 달려가는 것만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는 건 아니라는 얘기군요.
저는 요즘 주위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으면서 뛰고 있습니다. 그래서 무척 바쁜 것처럼 보이지만 결코 무리하지는 않아요. 이제는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열심히 달린다는 것은 절대량의 문제는 아니지요. 때로는 '열심히 달리는 사람'이기를 딱 멈춰보는 거예요. 열심히 달리지 않는다는 선택이 틀림없이 인생을 좀 더 재미있게 만들어줍니다.
무리하지 않겠다, 무리하지 않겠다 하고 마음속으로 자꾸 되뇌어보는 것도 좋아요. 언젠가 자연스럽게, 그야말로 어쩌다 한 번일지도 모르지만, 무리하지 않는 선택을 하는 자신을 깨달을 거예요.
저는 열여덟 살 때부터 43년 동안 '아침 네 시 반에 일어나기'를 꾸준히 실천하고 있습니다. 일어나서 네 시간 동안 공부도 하고 책도 읽고 음악도 듣고, 그렇게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합니다.
대학 입시를 계기로 또 한 가지 꾸준히 실천하고 있는 게 정보를 한 권의 노트에 적어두는 거예요. 오랫동안 스케줄 수처의 3분의 2를 할애해 저한테 정보를 기록해왔습니다. 읽은 책의 한 줄을 적어놓기도 합니다. 빈 시간이나 전철을 탔을 때, 수첩을 펼치고 수없이 그 정보를 반복해서 읽어보는 거예요. 제가 기억력이 별로 좋지가 않아요. 그래서 어떻게든 반복하는 게 중요합니다. 그렇게 취재나 대담에서 어떤 이야기가 나와도 술술 풀어나갈 수 있게 준비하는 것이지요. 대학 입시 때는 참고서 한 권에 필요한 사항을 빽빽이 써놓고 수없이 반복해서 공부했어요.
제 공부 방법도 똑같았어요. 참고서에 차곡차곡 써 넣어 제가 공부한 족적을 만들어서 그 한 권만 보면 모두 다 해결되게 했지요.
저는 결코 머리가 좋은 편이 아닙니다. 아이큐가 낮아요. 그런데도 대학 시험이며 국가고시에 합격한 것은 수없이 반복하는 공부법을 실천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일본인은 영어 능력이 떨어진다고 하는데 그건 반복해서 배우지 않기 때문인 것 같아요. 학교에서는 자꾸 어려운 단계로 진도를 나가서 원어민이 봐도 어렵다고 할 영어를 가르치고 있지요. 게다가 교재가 셀 수 없이 많아서 줄줄이 새 참고서를 사들여요. 하지만 이것보다 저 참고서가 더 좋을 것 같은 마음이 들더라도 일단 선택한 교재로 꾸준히 밀고 나가는 게 가장 확실해요. 같은 참고서를 철저히, 백 번쯤 공부하면 틀림없이 내 것이 됩니다.
수없이 반복해서 버릇이 되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해요. 저는 아예 시험에 합격하는 것도 버릇을 들였어요. 말하자면 '합격 버릇'이지요. 공인중개사 다음에 법무사라는 식으로 서서히 단계를 높인 덕분에 사법시험이라는 허들도 단번에 뛰어넘을 수 있었어요. 하나하나 정복하는 버릇을 몸이 기록하도록 했으니까요. 갑작스럽게 사법시험을 봤다면 아직도 합격하지 못했을걸요.
합격으로 자신감을 높이고, 그것이 버릇이 되게 했군요. 'OO 버릇'이라는 말, 아주 좋은데요? 이를테면 행복한 것도 버릇이 되는 '행복 버릇'이라든가.
처음에는 저를 괴롭혔던 친구에게 복수하겠다는 일념으로 공부를 시작했는데 공인중개사 시험에 합격했을 때, 제가 품었던 미움 따위는 아주 작은 것으로 느껴지더군요. 합격으로 자신감이 붙으면서 미움이라는 감정에서 풀려난 것 같아요. 그리고 다음 단계에 도전할 때는 오로지 시험 합격만을 목표로 달릴 수 있었어요.
지나치게 높은 목표를 설정하면 자신감을 잃고 그것이 자기 부정으로 이어집니다. 자신이 할 수 있을 만한 목표를 설정하고, 실패할 경우도 반드시 염두에 두고 달려야 해요. 오래 지속한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니까요.
예를 들어 다이어트를 하는 중이라면 깜빡하고 배부르게 먹어버렸더라도 나는 안 돼, 관두자 하고 실망할 필요가 없어요. 오늘 맛있는 걸 잔뜩 먹어서 행복하다, 내일부터 다시 제대로 해보자, 하고 기분을 바꾸면 됩니다.
네, 그런 후회가 가장 안 좋다고 하더군요. 배부르게 먹어버렸다고 끙끙 고민하면 그게 스트레스가 되어 뇌에 쌓이고, 뇌가 만족하지 못하니까 또다시 먹어버립니다. 그리고 먹는 양은 점점 늘어나고요.
반복이라는 건 철저히 하느냐 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에요. 대충대충이라도 어떻든 반복하면서 가늘고 길게 이어나가면 성공하는 것이지요.
저는 책을 읽을 때도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는 게 좋더군요. 책은 의사로서의, 그리고 인간으로서의 감성을 키워줍니다. 쉰다섯 나이에 원장 직책을 내려놓은 이유 중 하나는 책을 좀 더 실컷 읽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오히라 씨가 그야말로 밑바닥까지 떨어져도 다시 일어선 것은 어릴 때부터 읽어온 책들이 아주 중요한 요소가 되었을 것 같군요.
네, 그런 것 같아요. 어렸을 때, 도서관을 정말 좋아했어요. 꼭 필요한 책이야 부모님이 사주셨지만 그 밖에도 읽고 싶은 책들이 많아서 도서관에서 빌려오곤 했어요. 추리소설이나 어른들 책까지 뭔지도 모르면서 굳이 찾아 읽었지요.
책 속에는 살아가기 위한 힌트가 무궁무진하게 들어 있지요.
네, 맞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어려서부터 책 읽는 습관을 갖게 해주고 싶어요. 책 읽기의 밑바탕에는 뭔가를 알고 싶다든가 읽으면 재미있다든가 하는 호기심이 필요해요. 그런 호기심이 삶의 원동력이 되어주지요.
인간이 파충류나 짐승과 분명하게 차이나는 게 있어요. 바로 대뇌전두엽의 발달입니다. 이 대뇌전두엽의 발달을 촉진시키기 위해서는 가능한 한 많은 자극을 주는 게 좋아요. 책을 읽는 것은 가장 효과적인 자극이 됩니다.
딸아이가 다니는 유치원에서 매주 금요일에 한 사람당 한 권씩 그림책을 빌려줍니다. 집에 책이 없더라도 아이들이 주말에 느긋하게 책을 읽게 해주려는 원장선생님의 배려예요. 그런 식으로 한 권 두 권 독서 경험을 쌓아가는 게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어떤 장르의 책이든 괜찮아요.
어려서 못했다면 어른이 된 뒤에라도 늦지 않아요. 독서에 때를 놓쳤다는 건 없으니까요. 내 인생을 바꾸고 싶다면 우선 책을 읽어보는 게 좋습니다. 살아가기 위한 힌트를 책에서 얼마든지 배울 수 있어요. 지금부터라도 꼭 책을 손에 들고 읽어보세요. 책도 여러 번 반복해서 읽었으면 합니다. 여러 번 읽다 보면 오히라 미쓰요는 중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않았는데 어떻게 사법시험에 합격했는지, 어떻게 폭력단 소굴에서 빠져나왔고 어떻게 호스티스 생활에서 손을 씻었는지, 그리고 큰 도시에서 시골로 옮겨와 어떻게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지, 서서히 그 답이 보일 겁니다.
집 안에서 어른들이 텔레비전을 끄고 아이 앞에서 책 읽는 모습을 보여주면 정말 효과적이겠지요. 아이와 함께 독서하는 시간을 공유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았으면 합니다. 그런 시간을 하루하루 쌓아나가면 분명 아이들도 몰라보게 달라질 거예요.
어떤 일을 반복하거나 늘 책을 들여다보는 건 단조롭고 따분하다고 느끼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어찌됐든 꾸준히, 지속적으로 이어나가는 게 중요합니다.
처음에는 자신이 할 수 있을 만한 목표를 설정하고 그것을 꾸준히 반복할 것. 독서가 됐든 일찍 일어나기가 됐든, 무엇이라도 좋아요. 그리고 도중에 결심이 무너지더라도 자기부정에 빠지지 않는 게 중요합니다.
그렇습니다. 아이는 주위 사람들을 반복적으로 따라하는 과정을 거쳐 어른이 됩니다. 그런 식으로 공부에서든 무엇에서든 주위의 뛰어난 누군가를 반복적으로 따라하면서 그보다 더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성장할 수 있지요. 단조롭고 재미없게 느껴지더라도 땅에 발을 딱 붙이고 구체적으로 반복해서 배워나가는 게 가장 중요해요. 그것이 목표를 달성하는 가장 빠른 길입니다.
도쿄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 갑작스럽게 나가노 현의 시골에 가기는 했지만, 처음부터 35년 동안 거기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면 분명 중간에 좌절했을 겁니다. 반복한다는 거, 함부로 볼 게 아니에요. 인간이란 하루하루 변하기 쉬운 동물이지요. 하지만 거기서 꾹 참고 꾸준히 지속하다 보면 지금까지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고 불가능했던 것이 가능해집니다. 틀림없이. 너무 매달리지도 너무 떨어지지도 말고 꾸준히 반복하다 보면 이윽고 엄청나게 큰 것이 내 손에 들어옵니다.
요즘 가구를 만드신다면서요? 딸을 위해 목공을 배우고 테이블이며 의자를 손수 만들어 곁에 놓아주다니 정말 어던 일에나 열심이시네요.
뭔가 만들다 보면 저도 모르게 푹 빠져버려요. 얼른 나가서 하나 사오면 간단히 끝날 일이겠지만 딸아이에게 딱 맞는 것을 직접 만들어준다는 게 저한테는 정말 큰 기쁨이에요. 나중에 하루카가 이런 건 필요 없다고 할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괜찮아요.
밥을 차리는 데도 정말 정성을 들이시던데요. 손이 많이 가는 요리를 하고, 거품을 일일이 걷어내는 수고도 아끼지 않고.
음식은 생명의 원천이니까요. 식구들에게는 아무래도 맛있는 걸 해주고 싶어요. 요리도 의무적으로 하면 단순 작업이 되지만 식구들의 건강이나 기뻐하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하다 보면 힘은 들어도 보람이 있어요. 할머니가 항상 음식에는 사랑과 정성이 담겨야 한다고 얘기하셨어요.
그저 배만 채우는 것이라면 패스트푸드를 먹어도 상관없겠지요. 하지만 막다른 벽에 부딪쳐 살아갈 힘을 잃었을 때, 또 괴롭고 슬픈 때일수록 시간과 돈이 좀 들더라도 정성껏 먹을 것을 챙겨야 합니다. 그 음식을 먹어줄 사람을 생각하고 무엇보다 소중한 자기 자신을 생각해서 말이지요.
오히라 씨는 지옥에 떨어진 듯한 시절을 겪어봤기 때문에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잘 아시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삶의 기초가 되는 음식이나 내 손으로 만들어내는 물건에 정성을 들이는 게 아닐까요?
그런지도 모르겠네요. 많은 여성들이 집안일에 시간을 빼앗기고 자신을 희생한다는 불만을 갖고 있는 것 같은데, 그렇게 생각하는 건 자신에게도 큰 손해예요. 좀 더 즐기면서 하다 보면 이렇게 행복한 일도 없는데 말이에요.
제가 모든 일을 접고 살림에만 전념하겠다고 했을 때, 남편과 아이만을 위해 산다면 자기 자신은 없어지는 거 아니냐고 생각하신 분들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그렇지는 않아요. 모두 나를 위한 일이지요. 가족이 기뻐하면 저도 기쁘거든요. 그래서 하는 거예요. 게다가 밤낮없이 일하던 시절에 비하면 날마다 생활에는 별로 달라진 게 없는데도 하루하루의 내용이 무척 진해졌다는 게 느껴져요. 딸아이가 커나가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넉넉해진 기분이 들거든요. 로봇처럼 무턱대고 일만 하던 시절에 비하면 지금은 정말 깊이 있는 인생을 보낸다는 실감이 듭니다.
역시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는 문제군요. 게다가 어떤 일이든 억지로 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즐기며 하느냐 아니냐가 중요하지요.
결국은 제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거예요. 그래서 손이 많이 가도, 돈이 좀 들어도 계속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일단 만난 사람과는 반드시 좋은 관계를 만들려고 노력합니다. 바꿔 말하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좋은 관계도 자신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다는 뜻이지요.
타인과 내가 서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해요.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 하고 무심코 넘어갔다가는 관계가 점점 무너져버립니다. 그러니까 좋은 관계라는 것이 처음부터 존재하는 건 아니라는 얘기지요.
인간관계나 지역사회의 네트워크, 아이를 키우는 일도 다시 한 번 '만들어낸다'라는 시점에서 새롭게 인식한다면 많은 것이 바뀔 겁니다.
이런저런 물건들을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새삼 깨달은 것은 우리가 이미 만들어진 것들을 사들이는 데 너무 익숙해져 있다는 거예요. 하나의 제품이 어떤 제조과정과 노고를 거쳐 우리 손에 들어왔는지, 제가 가구를 직접 만들어보고서야 부품 하나 끼우는 데도 이만큼 손이 많이 간다는 것을 알았어요. 물건 하나하나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고 진심으로 깨달았지요. 이런 얘기를 아이들에게 꼭 전해주고 싶어요.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을 통해 우리가 매일매일 무심코 사용했던 것,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의 가치를 다시 한 번 분명하게 깨달았으면 좋겠습니다.
너무도 당연해서 그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를 잊어버리기 쉽지요. 당연함을 깨닫기 어려워진 시대를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더더욱 내 손으로 직접 만들어내는 것을 통해 현재의 환경이 얼마나 행복한지를 좀 더 실감했으면 좋겠어요. 그런 의식을 가지면 미래는 반드시 변화할 겁니다. 가구를 만들어내고 음식을 만들어내고 사람들과의 관계를 만들어내면서 미래를 주체적으로 만들어나갈 수 있으니까요.
사회적인 분위기라는 것도 만들어낼 수 있어요. 요즘 한창 경제 불황으로 사회 분위기가 어둡지요. 분명 경제 상황의 반은 실체가 있는 일이에요. 하지만 나머지 반은 그 사회의 분위기에 큰 영향을 받습니다. 그래서 각자 마음이 냉랭해지지 않도록 노력해야 해요. 마음이 따뜻해지면 경제도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분위기 파악을 못한다는 말이 있던데, 분위기는 파악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내는 것이지요. 설령 분위기를 파악하지 못하더라도 최대한 내 주위의 분위기를 좋은 것으로 바꿔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찬찬히 생각해보면, 뭔가를 만들어내려는 그 마음이 삶의 원동력이에요.
네, 정말 그렇군요. 돈만 있으면 뭐든지 살 수 있는 시대예요. 하지만 그것이 정말 행복한 일일까요? 적어도 아이들에게는 자신이 갖고 싶은 물건은 스스로 노력해서 손에 넣는 법을 가르쳤으면 합니다.
딸아이에게도 차근차근 가르쳐주려고 해요. 아직은 장애를 극복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하고 이것저것 챙겨주고 있지만, 어느 정도 자라면 뭔가 만들어낼 정도가 되면 지금 가진 것들은 모두 치워야지요. 그런 다음에 아이가 뭔가 만들어내는 것을 옆에서 끈기 있게 함께해 줄 생각이에요.
괜히 착한 척해봤자 소용없다, 나는 나일 수밖에 없다 하는 배짱 같은 것도 있었어요. 민낯을 그대로 내보이고, 그래서 퇴짜를 맞는다면 어쩔 수 없다, 그런 마음이었어요. 언제까지고 착한 며느리 연기를 할 수도 없고, 그게 깨졌을 때에 힘든 건 나 자신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으니까요.
며느리는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틀을 만들어놓기 때문에 다들 힘들어져요. 거기서 자유로워지려면 나는 이 정도밖에 못합니다 하고 분명하게 전해야 합니다. 서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매우 중요한 일이지요.
거짓된 자신을 연출하려면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해요. 하지만 그렇게 자신을 소모시켜봤자 언젠가는 반드시 본모습이 드러나게 마련이에요. 그러느니 애초부터 무리하지 않는 게 좋지요. 괜히 스스로를 들볶다가 남편이나 시댁과의 관계까지 망쳐서는 아무 의미가 없잖아요.
착한 아이여서 나쁠 거야 없지만, 내 아이 안에는 착한 아이가 아닌 부분도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우선 부모가 인정해야 합니다. 인간이란 모두가 '못된 나'라는 면을 갖고 있다는 것만 제대로 전달해줘도 아이는 크게 달라집니다.
공부 좀 못해도 괜찮아요. 원래 학교에서 배우는 공부가 세상의 극히 일부분일 뿐이잖아요. 그걸 잘하느냐 못하느냐로 인생이 결정되다니, 정말 이상한 일이지요.
부모가 좀 더 세상의 틀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시선으로 아이를 대한다면, 성적 좀 떨어졌다고 자기 비하에 빠져 자살을 꾀하거나 친구를 괴롭히는 아이가 되는 일은 틀림없이 줄어들 거예요. 물론 이건 부모를 둘러싼 사회 자체의 가치관이 달라져야 한다는 얘기이기도 합니다.
나 자신을 드러낸다는 것은 정말로 중요한 일입니다. 그런데 좀 더 중요한 것이 있어요. 나를 드러낼 수 있는 인간관계를 만들어나가는 것이지요.
그리고 나를 드러내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더더욱 아이들에게는 자기 멋대로 하는 것과 착각하는 일 없이, 제대로 본모습을 드러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어요. 완벽한 인간이란 없으니까요. 주위 어른이나 사회가 어떻게 하면 아이들에게 그걸 깨닫게 해줄 수 있을지, 우리 모두가 깊이 생각해봐야겠지요.
전후 민주주의는 '자립'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소리 높여 가르치고 주입해왔어요. 하지만 저는 '자립'이라는 말이 그리 좋지 않더군요. 자립이 분명 중요한 일이긴 하지만, 그보다 누군가와 함께 살아가는 게 훨씬 더 중요해요. 괴로울 때나 기쁠 때, 저녁 해를 보며 감동할 때도 나 혼자가 아니라 누군가와 공유할 때 인생이 풍요로워집니다.
자립을 중시하는 현대의 풍조가 고독을 낳는 요인이라는 것을 하루 빨리 깨닫는 게 바람직합니다. 남에게 기대고 또한 내게 기댈 수 있게 내 곁을 내주며 살아가는 것이 사회를 활성화시키지요. 그건 결코 편하게 살려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스스로 할 수 있는 일까지 남에게 기댄다면 편하게 살려는 이기심이라고 욕을 먹어도 무방하겠지요. 하지만 스스로 할 수 없는 일, 스스로 알지 못하는 일이라면 당당하게 누군가에게 기댈 수 있어야 합니다. 일단 주위의 도움을 받아 기술을 익히면 그다음에는 다른 사람이 기댈 수 있게 하는 식으로 선순환을 만들어나가는 게 지역사회의 활성화에도 큰 도움이 되겠지요.
남에게 기댈 때뿐만 아니라 남을 기대게 해주었을 때 내 인생이 크게 변화하는 일도 많아요. 누군가에게 기대는 용기, 그리고 누군가 내게 기댔을 때 그걸 지탱해줄 수 있는 있는 힘, 양쪽 모두를 가져야겠지요. 그러다 보면 인간이란 혼자서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도 자연히 깨달을 수 있습니다. 남에게 기대거나 남이 내게 기대게 하는 것으로 사회는 한층 따뜻해질 겁니다.
현재 너무도 괴로워서 죽고 싶은 마음뿐이라는 청소년, 그리고 어른들이 있을 거예요. 하지만 죽는 것만은 멈추고 어떻든 살아 있기를 바랍니다. 자연을 접하고 사람들과 만나는 가운데 인생이 달라지는 경우가 정말로 있으니까요.
의료 현장에서 일하면서 저는 수많은 죽음을 봐왔어요. 아직 더 살고 싶은데 병으로 어쩔 수 없이 죽어가는 사람들을 참 많이 봤습니다. 죽고 싶다고 생각하다니, 그런 사람들에게 정말 죄송스러운 일이지요. 그래서 저는 어떻든 힘껏 살아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습니다. 지금 좀 괴롭더라도, 앞이 막막하더라도 절대로 자살만은 안 됩니다.
나쁜 때가 있으면 반드시 좋은 때도 오게 마련입니다. 인생은 물결 같은 거예요.
물론 아무리 노력해도 도무지 풀리지 않는 시기가 있어요. 그런 때, 이 악물고 열심히 달리라는 말은 할 수 없어요. 하지만 인생에는 굽이굽이 물결이 있다는 것만은 잊지 말았으면 합니다.
행운과 불운은 종이 한 장 차이입니다. 행복과 불행도 종이 한 장 차이지요.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인생이 이토록 크게 변합니다.
저를 데려다 이만큼 길러주신 아버지의 말씀.
"우리처럼 가난한 사람들이 어떤 심정으로 의사를 찾아가는지, 너는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약자를 결코 잊어서는 안 돼."
비교하기 때문에 나 스스로 비참해지고 장래를 비관합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한지는 저마다 다릅니다. 지금 나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 그 점에 따라 달라지는 것입니다.
남들과 다르게 산다는 것은 무척 힘듭니다. 하지만 그 선택은 인생을 재미있게 만들어줍니다. 그건 어쩌면 큰 기회인지도 모릅니다. 남들과 비교하면서 내 인생을 선택하지는 않는 것이니까요.
용서한다는 것은 집착을 버리는 것입니다. 집착에서 해방되고서야 비로소 '너도 자유, 나도 자유'라는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미움이나 분노나 원망을 품는 일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마음이 들끓을 때 잠깐 옆으로 밀어놓으십시오. 시간이 해결해주기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열심히 달린다는 것은 절대량의 문제가 아닙니다. 때로는 '열심히 달리는 사람'이기를 딱 멈춰보는 거예요. 열심히 달리지 않는다는 선택이 틀림없이 인생을 좀 더 재미있게 만들어줍니다.
지나치게 열심히 뛰면서 자신을 몰아붙이기 때문에 마음이 채워지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도 저것도 무리를 하지 않게 되면 살아가는 일이 무척 편안해집니다.
반복한다는 것은 철저히 했느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대충대충이라도 좋으니 꾸준히 반복하면서 가늘고 길게 이어나가면 됩니다. 너무 매달리지도 너무 떨어지지도 말고 꾸준히 반복하다 보면 이윽고 엄청나게 큰 것이 내 손에 들어옵니다.
어린아이가 주위 사람들을 반복적으로 따라하며 어른이 되어가듯이 주위의 뛰어난 누군가를 반복적으로 따라하며 그보다 더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우리는 성장할 수 있습니다. 단조롭고 재미가 없더라도 땅에 발을 붙이고 구체적으로 반복해서 배워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가구를 만들어내고 음식을 만들어내고 인간관계를 만들어내고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미래는 주체적으로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뭔가를 만들어내고자 하는 그 마음이 삶의 원동력입니다.
우리는 이미 만들어진 것들을 사들이는 데 지나치게 익숙해져 있습니다. 너무도 당연해서 그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잊어버리기 쉽습니다.
자립은 중요한 일이지만 누군가와 함께 살아가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누군가에게 기대는 용기, 누군가가 내게 기댔을 때 그걸 지탱해줄 수 있는 힘, 양쪽 모두를 가져야 합니다.
설령 말로 하지 않더라도 '힘들었겠구나' 하고 곁에서 공감해주는 그런 분위기만 있어도 구원 받는 것입니다.
우리는 한계가 있는 목숨을 살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누구나 죽습니다. 중요한 것은 38억 년 동안 끊임없이 이어온 생명을 계속 이어가는 것입니다.
인생에는 물결이 있는 게 당연한 일입니다. 밑바닥까지 떨어졌다는 절망감이 든다면 휴식기라고 생각하고 힘을 비축해두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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