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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사] 인생의 해상도(유병욱)

아름다운 존재 2025. 1. 6. 10:02

해상도 높은 인생

남들과 같은 세상을 살지만 더 선명하게 경험하고, 풍부하게 음미하는 삶

 

법정스님은 일전에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인간의 목표는 풍요롭게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풍성하게 존재하는 것이다.”

스님이 말씀하신 풍성하게 존재하는 것이, 말하자면 해상도 높은 인생의 다른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자리한 곳에서 더 많은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만끽하며, 종국에는 그것을 더 많은 사람에게 아낌없이 나눠주는 것이 풍성하게 존재하는 삶이겠죠.

 

여행 모드로 일상을 사는 사람

 

사람의 입체성은 그 사람이 매혹당한 세계의 수 또는 그 세계를 파고든 깊이에서 온다.

 

“인생의 보석들은 평소의 시간들 틈에 숨어 있습니다”

 

상대를 리스펙트하는 사람은 나와 관점이 일부 다르다고 상대의 전부를 무시하지 않죠. 좋은 센서는 결코 미리 거르지 않습니다. 아름다움이 어디에 숨어 있을지 어떻게 알겠어요. 내 취향이 아니라고 어느 영역을 통째로 스킵한다면 인생의 해상도가 올라갈 가능성은 더 줄어들 겁니다. 부분이 싫다고 전체를 다 버리진 마세요.

 

우리는 틈틈이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야 합니다.

“저 말은 옳은가. 남들은 맞다고 하지만 나에게도 맞는가.”

“나는 무엇이 가장 중요한 사람인가.”

“어쩔 수 없이 하나씩 포기해야 한다면, 마지막 순간까지 내가 포기할 수 없는 가치는 무엇인가?”

 

시간을 들여 숙성시킨 내 생각만이 비로소 누구의 것과도 구별되는 나의 관점이 됩니다.

 

스스로 시간을 들여 고민한 것만이 진정한 내 것이 된다.

 

헤맨 만큼이 내 땅.

 

두두시도. 머리 하나하나가 곧 도이고. 물물전진. 사물 하나하나가 전부 진리이다. ‘진리가 대단한 곳에 있는 것이 아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 나름의 방식으로 담겨 있다’는 이야기인데, 볼수록 인생의 진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들여다보면 작은 것에도 느끼고 깨달을 것들이 숨어 있습니다. 살아보니 의외로 쓸모없는 정보란 없더군요. 무용한 것을 사랑스럽게 보는 눈에서 의외로 놀라운 세계가 포착돼요. 쓸모없음을 미리 판단하지 말고 꾸준히 세계를 사랑스런 눈으로 탐구해 보세요. 그러다 보면 똑같은 정원을 거닐어도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지혜로운 할머니 할아버지처럼 나이들 수 있지 않을까요?

 

문 앞에서 너무 주저할 필요 없다는 것. 원래부터 열리지 않는 문이 많으니 열지 못했다고 창피해할 필요가 없다는 것. 게다가 열린 문 너머의 공간은 생각했던 것처럼 두렵지는 않다는 것. 그러니 뚜렷한 목표가 없어도, 결과가 예측되지 않아도 눈앞의 문을 열어보세요. 그것이 나의 세계를 확장해주고, 눈앞의 세상을 선명하게 만드는 겹이 되어 남습니다.

 

음식 그 자체만큼 중요한 것은 먹는 과정일지 모릅니다. 대상 그 자체보다, 음미하는 과정에 공을 들이면 원래 그것이 가진 매력을 더 잘 느낄 수 있게 되는 거죠.

 

인생에 어떤 타이밍을 지키지 못해 큰일 나는 것이 아니고, 때론 남들과 다른 타이밍으로 인해 눈길을 받고 기회가 열릴 수도 있는 거죠. 그날엔 이런 메모를 적었어요.

지각도 나쁘지 않아.

 

매일 타는 지하철과 매일 지나치는 화단이지만, 적어두고, 찍어두는 수고 덕분에 저는 이 장면을 계속해서 기억할 수 있게 되었어요. 게다가 책에까지 싣게 되었으니 이 또한 쓸데없는 메모의 쏠쏠한 쓸모군요.

 

시작만 하면 일은 어떻게든 굴러갑니다. 20년 넘게 뭔가를 만드는 일을 해보니 알겠습니다. 창조의 핵심은 ‘시작’과 ‘마감’입니다.

 

시작할 때 우리가 되뇌어야 할 주문은 ‘제발’이 아니라 ‘아님 말고’입니다. 그렇게 부담 없이 생각의 씨앗을 툭툭 내어놓고 – 저는 종이 위에 생각을 널어놓는다는 표현을 씁니다 – 판단은 나중에 하면 됩니다. 내놓은 씨앗이 영 별로면 어떡하냐고요? 그 과정을 반복하면 되죠. 시작점이 있다는 건 가능성이 있다는 겁니다.

 

누구나 시작할 수 있는 지점 말고, 당신이 제일 잘할 수 있고 또 앞으로도 계속 애정을 쏟아부을 수 있는 지점이 있다면 거기서 시작하는 것만큼 좋은 게 없겠죠.

 

‘만드는 나’라는 새로운 스테이지의 시작점이 어디일지 감이 오지 않을 때는, 가장 먼저 시간을 들여 원래의 나를 들여다보세요. 각자의 이불장을 살펴보세요. 이렇게 하면 사람들이 좋아할 것 같아서, 이렇게 하면 멋있어 보일 것 같아서 나에게 없는 것을 자꾸 만들어내려 하지 마세요. 그곳에서 좋은 결과물이 나올 가능성은 없습니다. 창조의 씨앗을 찾을 때는, 본능적으로 나를 몰입하게 하고 계속해도 질리지 않고 밀고 나갈 수 있는 영역을 들여다보는 것이 맞습니다. 나는 어떤 아이였나. 전 생애를 걸쳐 나는 늘 무엇에 마음을 빼앗겼고, 어떤 순간에 가장 큰 기쁨을 느꼈는가를 돌아보세요. 남들에게는 없는 나의 강점은 거기에 숨어 있을 겁니다. 그리고 가장 이상적인 창조의 지점이자 더 많은 이에게 사랑받을 가능성, 당대의 무엇이 될 가능성도 분명히 그곳에 있습니다.

 

커피를 좋아합니다. 근데 불행히도 카페인에는 약해요. 하루에 마실 수 있는 커피의 총량이 두 잔이다 보니 한 잔 한 잔이 굉장히 소중합니다. 회사 라운지 커피도 괜찮지만 저는 굳이 드립백을 사서 머그컵에 걸고 정수기 앞에서 졸졸 내려 먹습니다. 그 한 잔은 제게 굳이 그럴만한 가치가 있으니까요.

‘굳이’를 마다하지 않는 영역 당신에게도 하나쯤 있지 않나요?

사람들이 멈추는 지점에서 몇몇 사람들은 굳이 조금 더 나아갑니다. 그리고 거기서, 그 사람의 스타일이 생겨요.

굳이 끌어안고 더 좋은 단어의 조합을 찾아 내미는 카피라이터. 누가 안다고 조명에 필터를 걸었다 뺐다 하는 조명 감독님. 그대로 내놓으면 남들은 몰라도 나는 못 견디겠는 ‘굳이’가 있을 거예요. 그리고 거기에 당신의 진짜가 있습니다.

‘굳이’는 남들이 당신을 공격할 때 쓰이겠지만 밖에서 당신을 찾기 시작한다면 아마 당신의 그 ‘굳이’ 때문일 거예요. 당신의 매력은 아마, 그 ‘굳이’에서 시작될 겁니다. (후략)

 

아름다운 문제 해결

문제 해결도 아름다울 수 있다.

 

저는 우리 모두 각자가 가진 ‘굳이’를 더 자랑스러워했으면 좋겠습니다. ‘굳이’는 당신만의 뾰족한 취향과 기준점입니다. 그것이 당신의 인생을 더 입체적으로 만들고, 당신을 사람들 사이에서 도드라지게 만들어요. 심지어 그것이 당신에게 돈을 벌어주는 시대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꼭 한번 들여다보세요. 당신의 ‘굳이’가 무엇인지. 그것은 분명 당신의 강점을 선명하게 보는 데 도움이 됩니다.

 

첫 책보다는 확실히 다음 책들이 쓰기 수월합니다. 어떻게 하면 긴 호흡의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 방법을 알게 되었거든요.

여러 방법 중에서도 핵심은 ‘평소’입니다. 글의 실마리가 될 수 있는 생각들을 평소에 무엇이든 쌓아놓는 것이 중요해요. 갑자기 영감이 미친 듯이 떠올라서 글을 쓰는 모습은 드라마에서나 가능한 장면입니다. 잘하면 10장 정도의 이야기를 적어 내려갈 수는 있겠지만, 300페이지의 글을 쓰는 것은 불가능해요. 책이 아닌 다른 결과물도 마찬가지입니다. 평소에 틈틈이 생각해 보세요. 산책을 하며, 샤워를 하며, 마음이 맞는 친구와의 술자리에서, 또는 낯선 도시의 벤치 위에서. 내가 언젠가 무언가를 만든다면 그것이 무엇이 될지, 아주 어렴풋한 실마리라도 떠오른다면 꼭 적어두세요. 그것이 답이 아니어도 상관없습니다. 그 생각을 반복하고, 그것을 쌓아두는 것이 중요해요.

 

뭔가를 만드는 삶을 살겠다는 결심이 섰다면, 반드시 ‘마감’의 마법을 이용해 보세요. 우리들 인생에, 시작은 했지만 흐지부지되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요? 그것을 끝까지 가게 만드는 장치가 바로 마감입니다.

 

시작하는 날과 마감일 사이에, 군데군데 작은 마감들을 심어놓으세요.

 

내 것을 만들어본 경험이 쌓일수록 나에게 잘 맞는 과정 관리의 노하우가 쌓일 거예요. 처음보다 다음이, 그다음이 훨씬 수월해지는 비결이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니 안 된다고 미리 선을 긋지 말고, 만들어 내놓는 삶을 향해 한 발 내디뎌 보세요. 딱 한 발자국이면 됩니다. 어디서 시작할지 고민하고, 어떻게든 단 한 발이라도 내딛고, 마감이라는 장치의 힘을 빌리면 당신은 반드시 어떤 형태로든 결과물을 앞에 두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시시하고 별것 아닌 것 같아도, 결과는 결과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를 시작으로 다음 단계가 찾아온답니다. 그 과정을, 할 수 있는 만큼 반복해 보세요. 무엇을 하면, 어떤 일이든 일어납니다.

 

창조하는 편에 서는 순간 열리는 세상은 놀라울 정도입니다.

 

우리 모두는 적어도 한 영역에서는 창조의 주체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어요.

 

창조를 계속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제가 찾은 답은 ‘좋은 매일의 반복’입니다. 나를 파괴하는 방식으로는 콘텐츠를 오래 만들 수 없습니다. 연료가 공급되지 않는 불빛은 촛불처럼 언젠가 꺼지기 마련입니다.

 

내 삶을 내가 제어하고 있다는 감각

 

무엇인가를 만드는 데 필요한 건 천재적인 영감과 미친 듯한 몰입과 밤샘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의 사소한 약속, 설정한 루틴을 지키는 것에서부터 시작합니다.

 

뭔가를 만드는 삶을 계획하고 계신다면, 아주 간단한 규칙 속에 여러분을 집어넣어 보세요. 창조는 일단 불이 붙으면 모든 것을 잊고 몰입할 수 있을 만큼 재미있지만, 그 불을 붙일 때까지 꽤나 귀찮고 번거로운 시간을 견뎌야 합니다. 앉으면 바로 생각이 튀어나오는 크리에이터는 없습니다. ‘의자에 앉은 의지’가 필요하다고 말씀드렸었죠? 하루키나 헤밍웨이도 그랬다잖아요. 우리들 대부분은 이 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금방 포기합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하죠. “나는 창의적인 사람은 아닌가 봐.”

 

간단한 룰과 제한 사항 속에서 집중력과 영감이 태어납니다.

 

창조는 나 자신과의 대화이니, 이 시간만큼은 누군가를 곁에 두지 말고 나 자신을 앞에 두고 앉아보세요.

 

자주 쓰는 근육은 발달되고 쓰지 않는 근육은 퇴화되는 것처럼, 창조의 근육도 사라지지 않게 계속 유지해 주는 것이 좋습니다.

 

창조를 시작했다면, 해낼 만큼의 일에만 도전하지 말고 약간의 무리수 정도는 감수해 보세요. 덤벨의 무게를 올리듯 우리가 할 수 있다고 예상하는 것보다 살짝 버거운 창조에 도전해 보면, 고통도 있겠지만 분명 그 뒤에 슈퍼 컴펜세이션이 찾아옵니다. 탐색 없이 발견이 있을 수 없죠. 내가 할 수 있는 일 밖으로 내디뎌보지 않으면, 내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 사람인지를 알 길이 없습니다. 누가 그걸 알려줄 리도 없고요. ‘헤맨 만큼 내 땅’이란 멋진 말은 창조의 능력을 키우는 과정에도 적용됩니다.

 

워크의 밀도가 높은 5년 뒤에 라이프의 밀도가 높은 5년이 찾아온다면, 그 또한 훌륭한 워라밸 아닐까요?

 

창의력에도 때가 있고, 워크의 밀도를 높인 시기를 보낸 사람은 훗날 라이프를 위한 시간을 훨씬 수월하게 확보할 수 있다.

 

온 힘을 다한 과정이 끝나면 반드시 무언가 남습니다. 결과는 바로 내 손에 쥐어지기도 하지만, 때론 아주 천천히 도착하기도 합니다. ‘지금의 나는 지금까지 내가 보낸 시간들의 결과다’라는 말이 있죠. 그냥 멋있는 말인 줄 알았는데, 사실이었어요. 몇 년 전 이사를 하면서, 제가 신입사원일 때 쓴 카피들을 모은 파일을 발견하고 절감했습니다. (웃음)

 

설령 얻은 것이 없는 것처럼 보여도, 그 시간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시간 자체가 선물이 되기도 합니다.

 

원인과 결과의 단위를 3년, 5년으로 보고 기다려보세요. 당신이 정말로 얻고 싶은 능력일수록 더 그렇게 해보세요.

 

패배는 늘 있는 일입니다.

 

“인생 뭐 있어. 살다 보면 보석 같은 순간들을 만나고, 그 기억을 목걸이처럼 꿰어 가지고 있다가 가끔 들여다보고. 그 순간들의 힘으로 사는 거야. 그리고 그런 순간들이 많은 사람이 행복한 거야.”

 

정말로, 그 밤은 사라지지 않아요. 진심으로 마주했던 일의 과정은 때론 결과보다 더 깊은 흔적을 남깁니다.

 

인생은 고통이 기본값입니다. 틈만 나면 눈에 띄는 SNS와 미디어 속 장면들이 우리의 판단을 흐리게 하지만, 그 어떤 대단한 사람들도 각자의 고통을 견디며 살고 있습니다. 매일이 축제인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어요. 우리가 할 일은, 왜 다들 행복해 보이는데 나는 대체로 고통스러운가 괴로워할 게 아니라, 누구에게나 기본값인 고통 속에서 가끔씩 찾아오는 행복에 감사하며 그 행복을 힘껏 음미하는 겁니다. 행복함을 기본이라 생각하면, 조금만 불행해도 그것을 견딜 수 없게 됩니다.

 

음악에 몸을 맡긴다는 표현이 있죠. 그날의 제가 딱 그랬습니다. 4분 정도 아무 일 없이 악기 소리에만 집중해 보는데, 이상한 감정이 들었어요. 아... 적어도 오늘 하루에서 이 구간만큼은 고통스럽지 않구나. 심지어 아름답기까지 하구나. 남은 하루도 진창이겠지만, 그래도 또 이런 순간들이 있겠지. 그래 이 순간만 건너가자. 이 순간만 건너가자. 그리고 조금 차분해진 상태로, 갑자기 찾아온 어둠에 주눅 들지 않고, 그날 하루를 무사히 건너갈 수 있었어요.

 

어찌 매 순간 행복할 수 있을까요. 인생의 무게에 주눅 들지 말고, 참았다 마시는 커피처럼, 가끔 볕 좋은 곳에 의자 하나 내놓는 것처럼, 의도적으로 행복의 구간을 설정해 보세요. 벚꽃 구간. 그 빛으로 쉽지 않은 시대를 건너고, 덕분에 맑아진 눈으로 가끔씩 찾아오는 해상도 높은 순간들을 포착하고, 더 깊숙이 음미하길 바랍니다. 남과 나를 비교하며 왜 나는 매일이 축제가 아닐까 실망하지 않고, 단정한 쌀밥과 된장국 사이에 가끔 특별한 음식들이 놓이는 식탁처럼, 꾸준히 행복한 하루를 맞이하시길 바랍니다.

 

<코스모스>의 저자 칼 세이건은 말합니다. 우리는 결코 우주라는 드라마의 주인공이 아니라고요. 맞는 말이죠. 우주의 시간에서 우리는 잠깐 반짝이고 사라지는 불빛 같은 존재입니다. 잠깐이란 말이 민망할 정도로 명멸하는 점일 뿐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이 짧은 시간을 마음껏 음미해야 해요. 반짝이다 사라질 점에게, 내일로 미룰 시간이 어디 있나요? 최선을 다해 우리는 눈앞에 놓인 세상을 즐겨야 해요. 요즘 내내 드는 생각입니다.

 

아이가 자라는 모습.

제때 마시는 커피 한 모금.

아무렇지 않은 동료들과의 점심.

가끔씩 찾아오는 짧은 성취.

다른 도시의 음식과 냄새.

차창 밖으로 손 흔드는 아이.

볼륨을 투둑 올리게 만드는 음악.

다시 오지 않을 것이 분명한 순간들.

 

살면서 만난 무수한 아름다움에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제때 나타나 배움을 주고 떠난 존재들, 지인들, 스승들.

그들이 심어준 한마디의 불꽃들에 경외의 마음을 전합니다.

곁에서 끝없는 영감을 주는 아내와 아이에게 사랑의 마음을 전합니다.

여름의 초입에서 시작해 이듬해 여름에 글을 마무리하며, 

계절의 변화를 함께 지켜봐 준 카페의 나무 책상들과 창밖 풍경에도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