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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사] 활자 안에서 유영하기(김겨울)

아름다운 존재 2022. 12. 27. 08:32

p.7

나는 책이라는 기반 위에 삶의 터를 잡을 일을 생각한다. 어쨌든 나에게는 그것밖에 없기 때문이다. 부서져 망가지는 속에서 남이 쓴 글과 내가 읽은 글이 나를 만들었다.

 

p.22

우리는 인생의 그 어떤 부분도 피해갈 수 없다. 우리의 삶은 영화가 아니다. 기승전결을 갖춘 소설이 아니다. 잘 편집되고 이야기로 조직된 매끈한 무엇이 아니다. 우리는 기어이 1초, 1초를 온몸으로 통과해야 한다. 가장 행복한 1초든, 가장 고통스러운 1초든 우리가 겪어내야 하는 시간은 같다. 그것은 때로 지루하고 자주 고생스럽다. 그러나 그 어떤 1초도 다른 이에게 의탁할 수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과거의 1초도 미래의 1초도 나의 몫이며, 나의 몫이어야만 한다. 그 온몸으로 밀어내는 시간이 층층이 쌓여 '나'라는 인간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p.33

그 어떤 1초도 다른 이에게 의탁할 수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과거의 1초도 미래의 1초도 나의 몫이며, 나의 몫이어야만 한다. 그 온몸으로 밀어내는 시간이 층층이 쌓여 '나'라는 인간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인생에는 그것 외에 다른 방식이 있을 수 없다. 그 과정에 고통스러운 상처가 있을지언정 없었던 셈 치고 새로운 인생을 살 수는 없다. 그 상처를 가진 내가 여기 있다. 이것이 죄르지가 알아낸 삶의 본질이다.

 

p.33

우리는 기어이 1초, 1초를 온몸으로 통과해야 한다.

 

p.37

새로운 삶이란 없고, 언제나 예전의 삶을 계속 이어갈 뿐이라고. 나는 누구도 대신 걸어가 줄 수 없는 나의 길을 걸었다.

 

p.37

다른 피란 없다. 다만 주어진 상황과 그 안에서 새롭게 주어지는 여건들이 있을 뿐이다.

 

p.37

모든 사람은 자신이 할 수 있는 한에서 각자의 단계를 거친다.

 

p.38

이 고통이 끝나지 않으리라는 확신을 차라리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그것마저도 하나의 단계로 끌어안는 태도만이 그들을 살게해준 유일한 원동력이었을는지 모른다.

 

p.41

나 자신이 곧 운명

 

p.41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이고 새로 주어지는 상황을 어떻게든 내 것으로 만들어보겠다는 태도

 

p.42

결국은 모든 단계가 '오기만 한 것이 아니라 우리도 그리로 갔다'는 것. 그러므로 운명이 고통을 주거든 기꺼이 끌어안고 싸워야 한다는 것

 

p.43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마도 매일의 삶을 기꺼이 살아내는 것, 절망 속에서 절망을 나의 일부로 만들어버리는 것, 그래서 단계를 거치며 기어이 조금씩 나아가는 것이지 않을까.

 

p.54

자신의 행동이 자신의 삶과 사회에 미칠 영향을 생각하고 책임을 지는 것

 

p.55

세상 전체에 대한 확실하고 확정적인 예측이란 허상에 가깝다.

 

p.57

운명이 있다면 자유란 없고, 자유가 존재한다면 운명은 없으므로, '나 자신이 곧 운명'이라고.

 

p.57

그것이 너에게 일어나지 않을 이유는 무엇인가

 

p.58

그 어떤 세계에서든 우리는 살아서 자신을 위로해야 한다.

 

p.83

나에게 주어진 고통이 없다고 할지라도 타인이 고통받지 않을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

 

p.83

나의 행복이 타인의 고통 위에 세워지지 않았는지 성찰하는 것

 

p.83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

 

p.96

그 시대가 그랬다는 것이 개인의 행위를 면책시켜줄 수는 없다.

 

p.98

역사의 한가운데 있었던 모든 사태에는 개별성과 보편성이 함께 존재한다.

 

p.102

순전한 무사유가 권력의 환상과 결합할 때 끔찍한 일이 벌어지는 게 아닐까.

 

p.103

최소한의 윤리의식, 최소한의 공감 능력, 최소한의 양심을 지키기란 (그것이 최소임에도) 때로 너무나 어려운 것이어서 늘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있어야 한다는 것

 

p.103

내가 매번 내 삶을 넘어서서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p.104

결국 우리에게 남는 것은 구체적인 사건들에 대해 치열하게 생각하고 따져보고 논의하는 태도밖에는 없는 게 아닐까

 

p.104

은폐된 악을 발견해 행하지 않기

 

p.105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깨닫고 삶에 적용하기

 

p.134

인간의 고독이란 외로움을 달래고 마음을 나눌 상대가 없다는 슬픔을 넘어서, 인간은 오로지 혼자 태어나 혼자 살아가다 혼자 죽을 수밖에 없다는 근본적인 깨달음이다. 우리는 매일 잠들기 때문에 이 깨달음은 매일 강화된다. 사랑하는 이와 함께 있더라도 결국 혼자 잠들 수밖에 없다는 것, 이 사람과 함께 죽을 수는 없다는 것, 마침내 우리는 홀로 존재한다는 사실이 잔인하게 달려든다.

 

p.159

감히 지성을 사용할 용기를 가져라! 스스로 생각하라! 미성숙으로부터 탈출하라!

 

p.161

그는 평생 자신의 생각을 정연한 글로 남김으로써 스스로의 주장을 인생으로 살아냈다.

 

p.169

나와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이여, 그처럼 편협한 편견을 뛰어넘도록 하자! (...) 우리의 생각을 일상의 사소한 사건에만 국한하거나, 우리의 지식을 연인이나 남편의 마음을 알아내는 데 한정하지 말자. 우리의 지성을 증진하게 하고 지금보다 고귀한 상태를 위해 우리의 마음을 다잡게 하는 위대한 목적 아래, 삶의 모든 의무를 다하자.

 

p.190

우리는 모두 그러한 의미에서 삶의 창조자이며, 그렇기에 삶의 흔적은 언제든 그 주인을 호시탐탐 노리지만, 설령 그 흔적이 그 주인을 잡아먹더라도 우리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어떤 삶이든 그것은 내가 만든 것이므로.

 

p.191

생명[삶]을 사랑하지도 말고 미워하지도 말고 사는 한 잘 살아라. 길고 짧은 것은 하늘에 맡겨라.

 

p.210

나는 예감에 저항한다. 아직 벌어지지 않은 일은 벌어지지 않았고 시간은 미래로 흐른다고 말한다.

 

p.235

'현재'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현재는 부피와 넓이를 가지지 않는 점과 같다. 흘러가는 모든 시간이 현재를 거쳐 가지만 아직 오고 있는 현재는 미래에 불과하고, 존재하려고 하는 순간 현재는 과거가 된다. 이는 동시에 현재가 모든 곳에 존재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점'이라는 것이 실질적으로 존재하지 않으면서도 가상적으로는 평면의 모든 지점에 무한히 존재하는 것과 같다. 현재는 실질적으로 존재하지 않지만 가상적으로는 영원히 존재한다. 모든 시간은 현재였고, 현재일 것이다. 그렇게 현재만을 가진 인간들은 영원한 인간의 표상이 된다.

 

p.243

인생은 본디 해명되지 않는다. 세상이 과학으로 해명되더라도, 적어도 인간의 삶은 그렇지 않다. 눈으로 보이는 원인이 꼭 실제 원인이 아닐 수도 있고, 자신조차 몰랐던 작은 계기가 인생 전체를 바꿨음에도 그것이 다른 계기 때문이라고 확고하게 믿을 수도 있다. 우리는 하나의 인간 속에 몇 개의 특성이 있는지조차 모른다.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정확히 어떤 영향을 주는지, 반대로 집단이 개인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개별의 인간이 그 영향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를 명확한 지도로 그려낼 수도 없다. 모든 일은 아주 복잡하고 아주 자연스럽고 아주 부산스럽게 일어난다.

 

p.247

모두가 시간 안에서 시간과 싸우며 시간을 보낸다.

 

p.247

시간은 가장 일상적이면서 가장 철학적이고, 가장 표면적이면서 가장 심층적인 존재가 된다.

 

p.248

시간은 오로지 변화와 움직임을 통해서만 감각된다.

 

p.252

인간이 경험하는 시간 자체는 늘 그대로였다. 적어도 지금까지 밝혀진 바로는, 인간들이 지극히 실용적인 목적으로 시간을 나누는 동안, 우주의 시간은 아주 오랫동안, 아주 독자적으로, 아주 근사하게 그 자리에 있었다.

 

p.255

그 사람의 상태에 따라 실제로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

 

p.255

시간은 상대적이다.

 

p.262

현재야말로 가장 새로운 시간이다.

 

p.266

결국 시간은 흐르리라.

 

p.266

어찌 되었든 시간은 흐른다는 믿음, 이것은 과거가 되리라는 믿음, 내가 시간을 뛰어넘어 지키려던 다짐이 결국 흩어질 것이라는 믿음, 끔찍한 기억과 행복한 시절이 시간 속에 흐려질 것이라는 믿음. 그렇게 시간은 신앙이 된다.

 

p.272

이 평정심은 욕심을 버리는 데서 온다. 외적인 가치보다 내적인 가치를 중요시하고, 소박하게 살며, 공동체에 봉사하고, 이성을 방해하는 충동과 정념을 물리치는 삶이 스토아 철학이 말하는 이상적인 삶이다.

 

p.272

우주의 원리를 받아들이고 평정심을 갖는 삶

 

p.274

인간이란 무한하고 영원한 우주에서 잠시 태어나 조금의 인생을 손에 쥐었다 이내 먼지로 돌아가는 존재임을 마주할 때, 우리는 평소에는 잊고 있는 삶의 허무를 깨닫는다.

 

p.276

영원한 우주에서 변하지 않는 유일한 진리는 모든 것이 변한다는 사실뿐이며, 죽음은 반드시 다가올 것이므로, 원자로 흩어지기 전에 너 자신을 구원하라.

 

p.276

모든 것은 변한다.

 

p.276

이 허무를 맞하면서도 매일을 살아내려면 자신이 소멸하는 존재임을 인정해야 한다.

 

p.278

현재에 집중하고, 욕심을 버린다. 헛된 희망을 버리고, 모든 것은 잊힐 것임을 생각한다. 살아있는 한 선한 인간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한다. 살아있는 한 세상에 기여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 차분하고 담담하게 할 일을 한다. 껍데기가 부푼 인간이 아닌 작고 소박한 인간으로서 살아간다.

 

p.279

허무 위에 삶을 세우라.

 

p.280

그래봤자 머지않아 너는 모든 것을 잊을 것이고, 머지않아 모두가 너를 잊을 것

 

p.280

나를 가장 작게 만들고 가장 초라하게 만들어 시간 앞에 겸손하도록 무릎 꿇린다.

 

p.281

이 가련한 육신과 호흡의 영역 안에 있는 것은 그 어떤 것도 네 것이 아니며 너에게 달려 있지 않다는 점을 명심하라.

 

p.282

3000년 전에도, 800년 전에도 인간은 똑같은 하늘을 바라보았을 것이다. 밤하늘에 뜬 별을 볼 때, 그리고 그 별이 인간보다 한없이 오랫동안 존재해왔고 또한 존재할 것임을 생각할 때면 사소한 땅 위의 일들이 마음속에서 연기처럼 사라진다. 나는 이내 재나 유골이 될 것이고 이름조차 남지 않을 것이므로, 성실과 염치와 정의와 진리를 마음에 새기고 선행을 베풀며 모든 것을 담담하게 기다리는 수밖에는 없다.

 

p.294

이 분열 자체가 인간이라고 느꼈다.

 

p.295

스스로를 방어하고, 되어가는 대로 몸을 맡기지 않고, 마지막 남은 환상의 조각들을 빼앗기지 않는 법을 배워야 한다.

 

p.315

인간에게 완벽히 새로운 세계란 없으며, 세계는 인간들끼리 알아낸 지식으로 변화할 뿐이고, 인간은 신과 직접 만나지도 못하며, 영원히 과정으로만 존재한다.

 

p.321

그의 목표는 그 자체로 오만이었다. 상대가 이긴 것은 지능이 더 뛰어나서가 아니라 주인공을 간파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p.321

그는 오로지 그 자신에게 매몰되어 있었기 때문에 상대방의 수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p.339

기억은 우리를 정의한다. 우리는 기억의 총체다. 기억이란 단순한 사실의 나열일 수 없다. 기억은 매 순간 새롭게 선택된다. 따라서 우리는 선택한 기억의 총체다. 이 선택은 무의식적으로 이뤄진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선택한 기억의 총체다. 타고난 기질과 매 순간 쌓은 경험이 만나 그 사람에게 남길 기억을 골라내고, 우리는 우리가 남긴 기억으로 자신을 정의한다. 보통 기억은 감정과 결합할수록 지속할 가능성이 높으므로 중립적인 기억보다는 즐거운 기억, 또는 불행한 기억이 오랫동안 저장된다. 자전거 타기, 피아노 치기, 타자 치기, 운전하기와 같은 절차적 기억은 감정과는 비교적 상관이 없지만 자연스러운 몸의 일부로 저장된다.

 

p.355

현실 세계와 지옥을 가르는 일은 인간의 몫이다.

 

p.359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구원을 허락하자.

 

p.364

말하고 쓰는 모든 일이 행동이다. 인간의 언어는 단순한 포장지가 아니다. 언어는 살갗 같은 것이라, 껍데기처럼 보이나 떼어낼 수는 없다. 살갗이 두르고 있는 몸통이 분명히 거기에 있다. 그러므로 아주 섬세하게 말하고 쓰지 않으면 판단은 엇나가고 진실은 은폐될지도 모른다.

 

p.364

발화가 곧 행동이 되는 행위

 

p.369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작은 흠집이라도 내며 사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분열하고 움직이며 무엇이든 쓰고 또 쓴다. 그렇게 겨우 그 시기의 내 자리를 찾는다.

 

p.373

책은 읽은 이의 몸 구석구석에 남아 생명을 유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