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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사] 너는 다시 외로워질 것이다(공지영)

아름다운 존재 2024. 1. 16. 11:51

시골에 살다 보니 자연의 빛이 내게 흘러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자연의 빛 속으로 들어간다. 이 자연은 가만히 놓아두기만 하면 모든 것이 하나가 된다. 아무리 큰 통나무라 해도 생명이 다한 후에 그것들은 아스라이 흙 속으로 스며들어 하나가 된다. 어쩌면 죽는다는 것은 소멸이 아니라 하나 됨이다.

그러나 사람이 만든 것은 아무리 작은 것들도 자연과 하나가 되지 못하고 영원히 썩지 않은 채 자기 자신으로 남는다. 그것들이 포기하지 않는 것은 그 본질이 아니라 껍질이다. 그래서 그것들은 저 넓은 바다까지 흘러들어가 미세플라스틱이라는 이름으로도 떠돌아다닌다.

사람이 만든 것들에 둘러싸여 있으면 그래서 외로웠나 보다. 도시에서, 그 많은 사람 사이에서, 그 많은 건축물의 아름다움과 화사함 속에서도 나는 오래된 목욕탕의 굴뚝처럼 외로웠다. 그런데 이 적막, 이 침묵, 이 자연 속에서 나는 외롭지 않았다. 저 나무, 산, 바위, 그리고 바람과 구름들, 우리 집 강아지 동백이와 자태가 아름다운 들고양이들조차 에덴의 신성을 간직하고 있는 듯했다. 그들은 도시에서 헤매다가 하늘이 주신 신성을 다 잃어버리고 누더기가 되어 돌아온 나에게 그것들을 한 숟가락씩 먹여주는 듯했다. 이곳에서 내가 혼자였지만 혼자가 아닌 까닭이 그것이었다.

 

가장 큰 후회는 더 사랑하지 못했던 것, 사랑함을 소유로 굳혀버리려던 것.

 

나는 십 대 이후로 죽음에 대해 거의 하루도 잊은 적이 없다. 어려운 일이 닥치거나 선택을 해야 할 때 하다못해 이사를 할 때도 나는 '이곳에서 생을 마쳐도 좋은가?' 하고 스스로에게 묻곤 했다. 지금도 날마다 한다. '이렇게 하고 죽어도 좋은가' 혹은 '이것이 너의 마지막이어도 후회하지 않을 텐가' 하고.

그렇기에 나에게는 지금 이 한순간들이 너무나 소중하다. 그리고 생의 각 순간들도 그랬다. 그렇지 않았을 때도 있었는데 그건 대개 내 생이 나쁘게 흘러갈 때였다. 아마도 남들에게 "몰라 몰라, 요새 정신없이 바빠"라고 말하던 때였을 것이다. 하지만 정신이 좀 나서 '네 마지막이 이래도 좋은가?' 하고 질문을 던졌을 때 나는 대개는 지금 다시 돌아봐도 올바른 결정을 내리곤 했다.

 

오늘 나는 무슨 '처음'을 맛볼까? 오늘은 어떤 꽃이 새로 피고, 오늘은 어떤 싹이 새로 돋고, 오늘은 어떤 구름이 어떤 바람을 타고 내 곁을 스칠까? 그것은 모두 처음이 될 것이고, 이 처음은 내가 맛볼 마지막 처음일 것이기에 이 단어를 쓰고 있자니 다시 설렌다. 설렘을 가진 나는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지.

 

'이제 어떻게 할까? 어떻게 살고 싶어?'

이 질문은 아주 어려웠다. "이번 소설은 무슨 이야기예요?"만큼 어려웠다. 선뜻 대답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란 말이다. 그래서 나는 질문을 바꾸었다.

'누가 부러워?'

농담이지만 나는, 돈 잘 벌어서 아내에게 다 주고 집에는 잘 들어오지 않으면서 오직 아내만을 사랑하는 남편을 가진 친구가 부러웠다(!). 그런데 타워팰리스에 살거나 압구정동 대형아파트 혹은 청담동에서 수백억을 가지고 사는 친구는 부럽지 않았다. 이건 진심이었다. 그래도 '누가 부러워?'라는 질문에 나는 대답했다.

'나는 타샤 튜더 할머니가 부러워. 알지? 뉴욕에서 태어나 우리로 치면 강원도쯤 되는 버몬트주에서 자신만의 꽃밭을 가꾸다 가신 할머니.'

"청담동 주택에서 수백억을 가진 삶을 살래? 타샤 튜더 할머니처럼 살래?"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나는 아무 망설임이 없었을 것이다. 나에게는 통장에 숫자로 존재하는 돈 같은 것보다 오늘 내 앞에서 향기로이 피어나는 꽃송이들이 더 소중했다. 아직도 철이 없어서이기도 할 것이다. 사람들은 곧장 나를 그렇게 비난하곤 하니까. 그러나 나도 할 말은 있다. 나는 늘 생각하는 것이다, 이게 마지막 날일지도 모른다고.

물로 내게 "넌 어느 때 행복해?" 하고 물어본 사람은 없었다. 질문이 없으니 대답도 없었다. 그런데 코로나가 창궐하여 내 모든 일정과 계획이 취소되고, 더구나 날이 가도 코로나가 사라질 기약이 없어지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한적했던 그해 봄, 삶이 내게 물었다.

'대답해 봐. 정말이지 어떤 때 너는 진심 행복하니?'

그것은 약간의 충격을 내게 안겨주었다. 내가 평생을 두고 행복하기를 원한 것은 사실일 것이다. 평생을 열렬히 그러기 위해 노력한 것도 진심이었다. 그런데 이런 질문을 나 자신에게 처음으로 구체적으로 하다니, 나는 그것이 더 충격적이었다. 작가라면서, 남들보다 더 많이 느끼고 생각한다면서 어떻게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처음 할 수가 있을까. 그토록 행복을 원하고 그토록 행복해지고자 노력했으면서 '남들이 그러는 거 말고 오직 내게 있어서!' 구체적인 행복은 무엇인지, 나는 진심으로 고민해보지 않았다.

 

'대답해 봐. 정말이지, 어떤 때, 너는, 진심으로 행복하니 혹은 행복했니?'

 

생각을 끝까지, 아주 끝까지 밀어붙이면 결론은 늘 단순하다. 이것은 신비롭니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질문의 끝이 삶의 암반에 도달하고 나면 기초를 쌓아 올리는 일은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 무렵 나를 방문한 친구가 "외롭지 않니?" 하고 물었다. 이미 이런 질문을 여러 번 들은 나는 대답이 준비되어 있었다.

"응, 말이지,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3번>을 들을 귀가 아직 싱싱하고, 신기하게도 맘속에 한 줄기 섬진강이 지치지 않고 흘러가고 있어. 세상의 어떤 자들도 빼앗아가지 못하는 푸르고 청정한 그 물줄기가 말이야. 가끔 내 한숨과 눈물이 보태지기는 하지만."

그런데 나는 약간 울먹이다가 단순하게 대답하고 말았다.

"나는 좀 고요하고 싶어."

이 질문과 대답은 화두처럼 내게 남았다. 내게 있어서 혼자란 것이 자유라고 서서히 각인되기 시작한 것이다. 고통과 외로움 혹은 결핍 대신.

 

30년 동안 살아온 땅을 떠나 우리 집에 온 백동백은 그 꽃들을 떨어뜨리지도 못하고 시들고 있었다. 아직 집을 짓기 전이었는데, 나는 매일 그 터에 출근하여 시든 꽃을 땄다. 시든 꽃이 달린 건 이미 동백이 아니었다. 동백이란 그 꽃의 절정에서 가차 없이 그 절정을 버려서 동백이 아니던가.

키가 내 두 배는 되는 커다란 동백의 시든 꽃을 다 따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아침마다 그렇게 해주자 비로소 새 꽃들이 조금씩 피어나기 시작했다. 일단 가졌던 것을 다 버려야 새 것이 오는 것이리라. 뿌리도 조금씩 제자리를 찾는 것이리라.

그때 나는 알았다. 새것이 오기 전에 옛것을 반드시 버려야 하는 때가 있는데 이 버리는 데도 힘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만두고 포기하는 것, 멀리 보내고 이별을 해내는 것도 힘이 있어서라는 것을. 그것이 사람이든 사랑이든 물건이든 제가 이루어낸 과거의 꽃 같은 영화로움이든.

 

원래 저런다, 혹은 원래 그랬다, 참 무서운 말이라는 것을 나는 나중에야 알았다. 우리는 이 한 문장으로 얼마나 많은 불의와 학대와 아픔을 지나쳐 생명들을 죽음에 이르도록, 혹은 죽지도 못할 만큼 절망에 빠뜨리는 것인지.

 

하지만 가끔 내게도 사랑이 두려움보다 클 때가 있다.

 

나는 문득 생각했다. 남에게 나 자신을 내어주는 일은 결코 약해지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어쩌면 거대하고 힘이 센 우주 혹은 신과 하나가 되는 일이었다. 그래서 성자 프란치스코는 "우리는 줌으로써 받고 용서함으로써 용서받으며 자기를 버리고 죽음으로써 영생을 얻습니다"라고 했던 거였다. 그래서 우리가 조건 없이 무엇을 남에게 주기로 하는 순간 우리는 마치 거센 대양의 조류를 올라타는 조각배처럼 우주의 힘을 얻게 되는 것이리라.

 

내가 동백이를 위하여 내 잠과 내 안락을 내어주고 뒤척임으로써 나는 아주 잠시이지만 이 세상의 이기심을 떠나 우주의 커다란 법칙 속으로 들어갔고, 어쩌면 잠시 우주와 한 맥박으로 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지난날 내가 남에게 해를 끼치고 나의 이익을 고집하면서 살았을 때, 어쩌면 작은 이익 같은 것을 분명 얻고는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홀로 있는 순간 한없이 외로웠고 초라하며 무력해졌다는 것도 기억났다.

 

감정은 확신으로, 확신은 결심으로 굳어져갔다.

왜 예루살렘이야?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도 정확히 스스로에게 대답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 이유가 무엇인지는 나중에 천천히 깨닫게 되겠지. 이건 나이가 나에게 준 선물이었다. 서두르지 않는 것. 답이 언제나 그 순간에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어쩌면 답은 없어도 좋을지도 모른다는 것.

 

언제나 선택은 포기를 동반한다. 가장 큰 원칙이 떠남이라고 정해졌으면 나머지 것들은 포기하거나 저절로 큰 원칙에 맞춰지기를 기다려야 했다. 이것이 내가 예순 해를 살면서 깨달은 것들이었다. 어떤 선택이든 반드시 버림이 동반된다는 것.

 

떠나야 했고 나는 떠났다. 그저 떠나보았던 것이다.

 

혼자인 것은 싫다고, 광야에 홀로 서 있는 일 같은 것은 내게 왜 시키시는 거냐고 세 번이나 울부짖던 내 모습이 멀고 우습고 낯설었다.

이 구절을 읽은 며칠 동안 나는 내내 골똘한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저기압이나 고기압 혹은 기압골과 같이 우리 눈에 절대 보이지 않지만 필연코 존재해서 눈이나 비 혹은 햇빛이나 바람으로 닥쳐오는 어떤 놀라운 힘이 내 곁에 있었다는 것을 나는 한 번 더 깨달았다. 나는 내 마음대로 할 거야, 하면서 내키는 대로 날고 움직이고 있는 줄 알았으나 실은 제트 기류를 타고 동쪽으로 동쪽으로 날아가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뛰어도 이 지구보다 빠른 속도일 수는 없다는 것을 알았다고 해야 하나, 부처님 손바닥에 있는 손오공, 아니 이 모든 것으로도 다 표현할 수 없는 경외와 전율이 나를 엄습했다. 심지어 나는 지금 말하고 있지 않나 말이다. 저 광야가 매혹적이라고.

나는 결국 그분의 바라대로 광야에 혼자 서 있을 뿐 아니라, 서 있어보니 좋은데요, 계속 이렇게 살다 죽고 싶어요, 뭐 이러기까지 하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나는 나 자신의 망상을 사랑했었다.

 

그저 가지려고만 하고 움켜쥐려고만 할 뿐 내어주고 흘려보내고 놓아버리지 않으면 자신뿐만 아니라 모든 것은 죽음으로 변한다는 것을 사해는 보여주고 있었다.

 

"지위가 높고 남의 이목을 생각해야 하는 엘리사벳이 남들의 이목이나 체면 같은 걸 따지며 마리아를 외면할 수도 있었겠지만, 오직 신앙에 기반을 둔 이런 환대와 축복은 훗날 마리아가 쓰라리고 힘든 일을 겪을 때마다 기억 속에서 큰 힘이 되었을 것입니다."

언제나 생각하는 것이지만 말 한마디가 인생을 바꾼다. 한 사람의 인생을 나락으로 떨어뜨리기도 하고 가시밭을 벗어나는 용기도 준다. 돈 비싸게 주고 부적 같은 것을 살 필요조차 없다.

 

레오는 그 후로도 많은 역경을 겪는데, 그때마다 할머니의 말씀을 떠올린다.

'할머니는 불운을 물리치는 유일한 방법이 뜻밖의 친절이라고 했다. 그것만이 삶이 구렁텅이에 빠질 때 우리가 무너질 거라고 믿는 악마를 혼란스럽게 할 거라고.'

이 구절을 읽다가 나는 한참을 더 들여다보았다. 뜻밖의 친절, 할머니는 그것이 베푸는 친절인지 받는 친절인지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았지만, 아시다시피 받는 것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으니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걸 주는 일일 뿐일 것이다. 어쩌면 그건 배고픈 이의 고달픈 삶의 길에서 반짝이는 작은 은화 같은 것이었으리라. 그것이 받는 것이든 주는 것이든. 또한 내가 그것을 남에게 주면 삶의 구렁텅이에 빠진 한 사람을 구할 수도 있다. 우리 모두 알다시피 인간은 이상하게도 남이 나로 인해 행복해지면 덩달아 행복해지는 존재가 아니던가.

 

부질없는 감각에 빼앗겨버린 너무도 중요한 것, 세상의 소음에 산란해져 놓쳐버리고만 어떤 음성, 전구 빛에 빼앗겨버린 별의 빛들...... 오래전 미술관에서 명화란 어떤 것일까를 고민한 적이 있었다. 여러 차이가 있지만 가장 중요한 명화의 특징은 단순하다는 것에 있었다. 정물이나 인물화의 경우 대개 그 배경은 완전 암흑이거나 단순처리된 것이었다. 모든 허접한 것을 지워버리지 않고는 우리는 어떤 대상에 도달할 수 없는지도 모른다. 하동에 내려와 혼자 고요 속에 머무르면서 나는 그걸 깨달았다.

중요한 것 하나만 남기고 나머지는 지우거나 억제해야 했다. 새벽녘 그 고요한 시간에 드리는 기도가 가끔은 시끄러움에 방해 받는 신비를 나는 알게 되었다. 자극적인 영화나 시사에 대한 동영상을 보는 것도 영향을 주었지만 제일 마음을 시끄럽게 한 것은 사람들과 만나 부질없는 이야기들을 나누었을 때 다음 날 새벽까지 이어지는 영향이었다. '정신 시끄럽다'라는 표현이 무엇인지 새삼 실감이 나는 것이다. 부질없는 만남들, 결국은 결국에는, 자신이 아니라 타인의 결점을 들추어 비난하고 마는 그 대화에서 남겨진 것이 얼마간 독약과도 같이 느껴진 순간도 있었다.

그러니 수많은 성인들, 수많은 현자들이 인간 세상을 떠나 사막으로 간 것이었으리라. 거기에는 우리 감각을 미혹시키는 배경들이 가장 최소화되어 있기 때문이리라. 불교에서 '미혹'이라고도 말하는 그 모든 감각을 지워버리고 나면 인간은 하는 수 없이 자기 자신을 만난다. 그리고 통곡하는 것이다.

대답은 간단해졌다. 마치 몇십 년 만에 만난 어머니를 붙들고 울듯이, 어쩌면 그것보다 더 간절히 그리워하며 내 밖에서 찾아 헤매던 그 사람을 만나게 되니까. 결코 잊어버리지 않았으나 잊은 줄만 알았던 첫사랑의 기억과도 같은 나 자신. 사람은 신의 모상을 닮게 만들어졌으니 그 나 자신 속에 사랑의 원천인 신의 모습이 들어 있으니까 말이다. 인간에게 그보다 더한 그리움이 있을까.

 

고통이 오면 우리는 이 고통이 내게 원하는 바를 묻고, 반드시 변할 준비를 해야 한다. 이것은 그동안 우리가 가졌던 틀이 이제 작아지고 맞지 않음을 알려주는 것이다.

 

"너의 자세는 무엇이냐? 이 삶을 바라보는 너의 방향은. 그가 성자가 된 것은 고통 때문이 아니었다. 신을 만나 황홀한 접선을 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고통은 성자가 아니라도 온다. 상처도 온다. 가난도 오고 멸시와 따돌림도 온다. 그때 비로소 인간은 선택하는 것이다. 성자가 될 것인지, 희생된 비참한 늙은이가 될 것인지.'

 

나에게 결여된 것은 침묵, 침묵이 가져올 여백을 감당하는 여유였다.

 

"그것은 너의 말이다."

 

그녀는 침묵하며 아들의 길을 그저 따라갈 뿐이었다. 그리하여 그녀는 모성을 완성한다. 내 맘에 들지 않고 이해도 할 수 없고 남들 보기에도 엄청나게 부끄럽지만, 그러나 아들에게 아들이 원하는 길을 가게 함으로써.

 

신이 우리에게 주셨다는 자유는 스스로 생각해 보고 배신할 수 있는 자유이다.

 

사랑은, 그러니까 참사랑은 강요하지 않는다. 사랑은 그 자발적임으로 완성된다.

 

"사람에게 신세를 지는 것도 배워야 해요. 아무에게도 신세 지지 않고 혼자서 잘 살겠다는 거 그거 교만일 수 있어요."

 

고통은 우리로 하여금 남을 판단하게 만든다. 나는 이미 그 인부를 악심에 가득 찬 나쁜 인간이라고 결정했다. 혹시 훗날 그와 마주치게 된다거나 그에 대해 누군가 물으면 이 경험에 의해 판단할 것이다. 그의 40~50년 인생 중 나는 겨우 그 몇 초를 목격해 놓고 말이다. 주저하지도 머뭇거리지도 않고 말할 것이다. "인간성이 아주 못됐어."

 

아잔 브라흐마 스님은 그의 책 <성난 물소 놓아주기>에서 '고통이란 이 세상이 줄 수 없는 것을 기대하는 마음'이라고 짧고 멋진 정의를 내렸다. 나는 결혼이 줄 수 없는 것을 결혼에서 바랐고, 사람이 줄 수 없는 사랑을 사람에게 원했던 것 같다. 나중에 신을 다시 찾게 되었을 때 내가 원했던 그 사랑의 원형이 거기 있었다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다. 그걸 인간에게 바랐었다. 우상숭배를 하려 했던 것이다.

 

한때 나는 고통이 우리를 성장시키고 성숙시킨다는 말에 반감을 가졌었다.

"싫어요. 성장 안 해도 좋으니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게 해주세요" 하고 기도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렇게 기도해도 고통은 왔고 나는 선택해야 했다. 성장할 것인지, 망가질 것인지.

 

"저 사람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사실 그들은 무슨 짓을 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다시 돌아보니 치유도 언제나 밤에 일어났다. 어린 시절 엄마가 말하곤 했었다.

"자라. 자고 나면 나아 있을 거야."

자고 일어나면 신기하게도 많은 것이 달라져 있기도 했다. 자고 일어나면 내 바지가 껑충해지고 옷소매가 짧아져 있기도 했다. 비단 인간에게만 그런 것은 아니어서, 하동에 와서 살다 보니 자고 일어나면 아랫집 감나무가 초록초록 했고, 자고 일어나면 길가 은행나무가 노랗게 물들어 있기도 했다.

해가 있어야 싹이 튼다고 생각하지만 어둠 속에서야말로 싹이 트고 꽃이 피어난다는 것, 이것은 정말 위대한 일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밤에 자랐고, 고통 중에 성숙했고, 아프고 나서야 키가 반 뼘쯤 자란 것일까.

 

하루는 친구가 자신의 뜰에서 민들레가 필 듯 말 듯 하기에 그 피는 순간을 관찰하려고 몇 시간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거의 벙글어진 꽃은, 그러나 아침 해가 중천에 오르도록 피어나지 않았다고 했다. 몇 시간 후 요의를 참다 못해 화장실에 다녀왔는데, 그제야 꽃이 피어 있어서 너무 화가 났다고 했던 이야기에 우리는 한참을 웃었다. 그러나 그게 정답이다. 우리가 억지로 보려고 한다고 보이지는 않는 것이다. 모두가 안 보는 사이, 성장이 이루어진다.

우주의 힘은 수줍다. 우주는 힘이 잔뜩 들어간 사람, 눈 부릅뜬 사람을 비켜 다닌다. 알지 않는가. 모든 스포츠도 결국은 힘을 빼면 고수가 된다. 삶도 그렇다. 밤이란 건, 하늘이 '좀 가만히 있을래? 넌 좀 자. 눈 좀 감고 가만히 있어봐. 내가 그대로 치유해 줄게. 제발 네 힘 좀 빼봐'라고 속삭이는 시간인지도 모른다. 모든 것이 어둠 속에서 이루어졌고 밤이 했다.

 

이상하다. 얼핏 생각하면 화려하고 사치스럽고 방탕한 생활이 다채롭고, 매일 기도하고 가난을 소중히 여기며 신을 섬기는 생활이 단조로울 것 같지만, 이상하게도 그건 정반대다. 그는 이 환락으로 가득 찬 생활에서 엄청난 권태와 공허, 그리고 외로움을 느꼈다.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내 삶의 남은 시간들을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 신앙이란 무엇이며 선함이란 또 무엇인가, 올바르게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 생각들 속에서 한 가지 확실했던 것은 모든 것이 불확실하다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이 '불확실성'이야말로 인간의 숙명이자 에너지의 원천일 것이다.

 

나는 이제 적어도 지나온 내 삶을 미워하지 않는다.

 

이웃을 위해, 남을 위해 나를 나누고 도와주는 삶을 산다는 것과 희생한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일인 것이다.

내 젊은 날 스승이었던 M. 스캇 펙의 명저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떠올랐다.

사랑에 관한 흔한 오해 중 두 번째는 의존도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 "사랑이란 선택의 자유로운 실천입니다. 서로가 없어도 잘 살 수 있지만 함께 살기로 선택할 때만이 서로 사랑한다고 할 수 있는 겁니다."

사랑의 느낌에는 제한이 없지만 사랑할 수 있는 능력에는 한계가 있다. 그러므로 나는 사랑할 능력을 누구에게 집중할 것인지 선택해야 하고, 그를 향해 사랑의 의지를 집중해야 한다. 참사랑은 사랑으로 인해 압도되는 그런 느낌이 아니다. 그것은 책임감 있게 심사숙고한 끝에 내리는 결정이다.

 

'허락해 주신다면 가게 되겠지요. 그러나 가지 못하면 예루살렘을 걷겠습니다. 그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무엇이든 열심히 하는 버릇이 있는 내가 이런 태도를 가지게 되는 데는 돌아보면 20년이 걸렸다. 나더러 책을 열 권 더 쓰라거나 잘 걷지도 못하는 내게 높은 산을 올라보라거나 하는 것이 어쩌면 더 쉬웠을 시간들이었다. 주님은 기도마다 내게 명령하셨다.

"너는 멈추고 하느님 나를 알라."

나는 아직도 그 시간들을 다 기억한다. 그렇게 멈추어 있으면 땀구멍마다 녹즙이 흘러내리는 듯한 고통이 일었다. 몸을 멈추고, 머리를 멈추고, 감정을 멈추는 일 말이다. 그렇게 혹독한 날들이 지나간 후, 아주 약간씩 나는 멈추고 힘을 빼는 법을 알게 되었다. 지금도 누군가 내게 다가와 "성당에 가고 싶어요" 할 때 나는 그를 데리고 가면서 딱 한마디를 건넨다.

"워터파크 가보셨죠? 그중에서 유수풀 알죠? 물이 흘러가고 우리는 튜브 타고 둥둥 떠내려가는 곳이요. 자, 이제부터 그렇게 해요. 성당에 오는 마음이라는 튜브를 탔으니 힘을 빼세요. 그리고 즐겨요. 그러면 모든 것을 그분이 다 하시고 데려다놓으실 거예요. 참 쉽죠?"

 

역사라는 거, 지금은 융성하다가 곧 사라지고 지금은 쇄약해도 곧 융성하고...... 이 반복을 모르는 것일까요?

 

이 땅에서 이렇게들 살면 안 되는 걸까. 싸우지 말고 그냥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사는 것, 그게 인류에게 그토록 어려운 일인 것일까 하는 오래된 의문이 내게 맴돌았다.

 

"우리가 비겁하다는 사실이 너에게 이렇게 할 권리를 주는 것이냐? 잘못을 잘못으로 갚는다고 그게 옳은 것은 아니다."

 

이분들은 "너희들 중에 가장 작은 자들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라는 복음 말씀을 따라 사는 사람들이다.

"왜 이 수도원이어야 했어요?"

내가 물었다. 수녀님은 잠깐 웃으시더니 심드렁하게 대답하셨다.

"사는 게 허망하잖아요. 무언가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싶었어요."

그러고는 '이유가 너무 단순해서 재미없죠?' 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셨다. 이순의 나는 귀가 순해지고 고통으로 단련되느라 마음의 모서리가 많이 닳아 이제는 얼마간 안다. 단순함의 위대함을.

 

이렇게 반응할 수도 있는 거구나. 믿음이 있어 이런 신세계가 펼쳐진다면ㅡ아마 나는 절대로 갈 수 없겠지만ㅡ혹여 가능하다면 나도 한번 그 시계로 가보고 싶다고.

 

시간이 지나갔다. 고통이 닥칠 때마다 다시 평화를 찾기 위해 하느님이 곳곳에 설치하신 허들을 넘으면서, 혹은 곳곳에 숨겨놓으신 퀴즈들을 풀면서 나는 자라났다. 확실히 성장을 한 것은 같다. 고통이 나를 키운 것이었다. 이제는 얼마간, 그게 무엇이든 내게 주셨다 도로 가져가신 것을 원망하지 않을 만큼 말이다.

 

교만에 대한 최고의 약은 아마도 눈앞의 모욕일지도 모른다.

 

길거리에 주저앉다시피 해서 버티느라 더러워진 옷을 갈아입고 저녁을 지으며 천천히 내 마음을 점검했다. 약간 어이가 없었지만 신기하게 그에 대한 미움이나 분노 같은 것은 일지 않았다. 다행이었다. 나는 고통이 주는 유혹에 넘어가지 않은 것이었다.

 

달도 없는 밤에 별빛이 홀로 저렇게 맑고 아름답게 빛날 수 있다는 것이 신비로웠다. 몸이 뻐근하고 아픈 건 아픈 거고 놀란 건 놀란 건데, 엄청난 행복감이 내게 밀려들었다. 그것은 크신 어떤 분이 내게 보내는 사랑의 눈빛 같았다. '이렇게 크고 밝은 눈으로 널 바라보고 있단다. 괜찮다. 다 괜찮다' 하고.

 

'세상에는 생을 걸고 도전해 볼 만한 일이 몇 가지 있는데, 그중 하나가 문학이라는 것이로구나.'

 

"홀로 있는 시간만이 내 창작의 원동력입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문을 닫아겁니다."ㅡ박경리

 

이제 나는 그분들의 일생, 그런 일들을 되짚으면서 슬픈 게 아니라 삶의 신비에 대해 생각할 만큼 나이를 먹었고 그게 참 좋다.

 

그녀는 세상에 절망했을 것이다. 그런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살아남는 일과 쓰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녀는 여기서 택한다. 고립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문을 닫아걸고 자발적으로 자신을 고립시킨 것이다. 이것은 완전히 다른 일이다. 절벽 같던 외로움은 창작에의 벼랑길로 변한다. 그녀가 그것을 당하지 않고 택했기 때문이다. 당하면 외로움이고 택하면 고독 아니던가.

 

그러니 남는 것은 고독의 왕국, 그녀는 그곳의 여왕이 되어 대하소설 <토지>라는 하나의 '월드'를 창조한다.

 

생각해 본다. 세상이 말하는 좋다는 것이 꼭 좋은 걸까. 세상이 말하는 나쁜 것이 꼭 나쁜 것일까. 그 당시 시인 김지하가, 그가 말년에 그랬듯이, 정권이 협조하고 그래서 박경리 선생도 온갖 문학상을 휩쓸고 덩달아 문화훈장을 받고 대통령이 보낸 귀한 양주를 하사받고 그러면 그녀의 서울 집에는 더 많은 문객이 드나들고 그녀는 더 호화로워졌겠지. 어쩌면 '댄스파티'를 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게 좋은 걸까. 그녀는 '진짜로' 행복할 수 있었을까? 그러면 우리 문학이 <토지>를 가질 수 있었으며 우리는 그걸 읽을 수 있었을까. 무엇이 좋은 일이고 무엇이 나쁜 일일까.

 

내가 해야 할 일을 묻기 전에 나는 누구인가를 먼저 물어라.

인생에서 무엇을 이루려 하기 전에 

인생이 당신을 통해 무엇을 이루려 하는지 귀 기울여라.

인생의 문이 닫힐 때

그 앞에 너무 오래 서 있지 마라.

문이 닫힐 때 나머지 세상이 열린다.

ㅡ파커 J. 파머, <삶이 내게 말을 걸어올 때> 중에서

 

좀 자주 고독해 보세요.

고독하지 않고서 사물을 정확하게 판단하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고독은 즉 사고니까요.

사고는 창조의 틀이며 본입니다.

작가는 은둔하는 것이 아니며 작업하는 것입니다.

예술가는 도피하는 것이 아닌 작품으로 참여하는 것입니다.

ㅡ박경리, <문학을 사랑하는 젊은이들에게> 중에서

 

사느냐 죽느냐 하는 것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때

삶은 시작된다.

ㅡ안소니 드 멜로

 

이 고요를 위해

이 정적을 위해

그 모든 소란이 필요했던가.

ㅡ창극 <리어> 중에서

 

아잔 자야사로 스님은 유창한 태국어로 차분하게

말을 이어 나갔습니다.

"갈등의 싹이 트려고 할 때, 누군가와 맞서게 될 때,

이 주문을 마음속으로 세 번만 반복하세요.

어떤 언어로든 진심으로 세 번만 되뇐다면,

여러분의 근심은 여름날 아침 풀밭에 맺힌

이슬처럼 사라질 것입니다." (......)

"내가 틀릴 수 있습니다.

내가 틀릴 수 있습니다.

내가 틀릴 수 있습니다."

ㅡ비욘 나티코 린데블란드,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중에서

 

희미한 기억의 퍼즐들이 안개를 걷고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안개를 뚫고 떠오르는 것은

그때 썼던 편지의 구절이 아니라

편지를 쓰던 자신이었다.

배가 고팠던 밤, 바람이 거셌던 길고 긴 밤들,

결국 추억이라는 것은 상대가 아니라

그 상대를 대했던 자기 자신의 옛 자세를 반추하는 것일까.

ㅡ공지영, <먼 바다> 중에서

 

잊지 말자.

희망은 원래 억지로 가지는 것이다.

그래서 갖는 것 자체에 엄청난 힘이 있다.

ㅡ작자 미상

 

만나는 사람마다

네가 모르는 전투를 치르고 있다.

친절하라. 그 어느 때라도.

ㅡ노르웨이 드라마 <스캄(Skam)> 중에서

 

가장 어두운 시간에도

행복은 존재한단다.

불을 켜는 것을 잊지 않는다면 말이지.

ㅡ영화 <해리 포터> 중에서

 

우리가 헤어지는 것은

역경 때문이 아니라

성장했기 때문이다.

ㅡ파블로 네루다

 

타인의 행복을 위해 박탈과 고통의 삶을 살기로

결심해서는 안 됩니다.

탄탄하고 오래 지속되는 참된 사랑은 자기 자신의

행복과 타인의 행복을 동시에 추구하는 사랑입니다.

우리가 타인을 향해 가려고, 종종 우리 자신을 가두는 

고리를 깨뜨릴 때, 인생은 흥미진진해집니다.

ㅡ엠마뉘엘 수녀, <나는 100살, 당신에게 할 말이 있어요> 중에서

 

내 안에서 소식이 올 때가 있다.

참으로 소중한 소식

우주의 비밀을 알려주는 소식

그것 말고 내가 반드시 아랑야 할 정보는 없다.

ㅡ헨리 데이비드 소로, <고독의 즐거움> 중에서

 

봄이라는 계절은 모든 것을 용서하기 위해 돌아온다.

ㅡ헨리 데이비드 소로, <고독의 즐거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