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필사] 베테랑의 공부(임종령)

아름다운 존재 2024. 11. 7. 17:05

나의 하루는 밀려오는 단어와 표현들을 상기하면서 시작된다. 5시는 고요한 시간이다. 아직 남편은 잠들어 있고 태평양 너머에 있는 두 딸도 각자의 일과를 치르느라 분주할 시간이다.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어떤 잡음도 없는 나만의 새벽 시간. 조용히 영자신문 홈페이지에 접속한다. 오늘의 뉴스 헤드라인을 훑고, 새로운 단어와 표현을 머릿속에 넣고, 같은 문장을 어떻게 다르게 표현할지 작문을 해보기도 한다. 그렇게 일과 나만이 존재하는 세상에서 가장 황홀한 새벽이 흘러간다.
 
내가 계속 일을 할 수 있는 뿌리는 ‘공부’에 있다. 처음 통역사로 일하기 시작한 30여 년 전부터 지금까지, 나는 매일 변함 없이 새벽에 기상해 한국 뉴스를 정독하고 영어 뉴스를 확인한다. 운전을 하면서 영어 오디오북을 듣거나 그날 동시통역에 필요한 중요한 문장을 AI의 목소리로 들으며 따라 말한다. 일과가 마무리되는 밤이면 다음날 있을 번역 자료를 검토하며 하루를 마친다. 이렇게 나의 하루는 24시간이 거의 모두 공부로 이루어져 있다. 통역에 필요한 영어 공부, 한국어 공부는 물론이고, 통역 관련 분야의 배경지식, 빠르게 바뀌는 시사 뉴스, 경제, 학술, 과학 정보에 이르기까지 그 폭과 깊이는 다양하다. 이렇게 30년을 공부로 일상을 빼곡하게 채우다 보니, 일을 위해 시작한 공부는 어느새 삶을 위한 공부로 이어지고 있음을 새삼 경험한다.
나는 일을 하는 자세가 결코 일에만 머물러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 일을 끝까지 마무리하겠다는 책임감, 일과 관계된 모든 사람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성실함, 힘든 순간에도 포기하지 않는 의지와 끈기, 최선을 다했으나 초라한 결과가 나왔을 때에도 감사히 받아들이는 겸허함까지, 일하면서 경험한 희로애락은 고스란히 내가 삶을 살아가는 태도로 연결되어 나를 성장하고 성숙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진심으로 일에 매진했을 때 일은 곧 인격이 됨을 매 순간 실감하며 살아가고 있다.
 
대중이 흥미를 느낄 만한 이야기는 나에게 없다. 영어를 잘하는 방법도 꾸준히 피나게 노력하라는 말밖에는 해줄 게 없다.
 
국제회의 동시통역사들은 그 작고 어두운 부스 안에 들어갈 자격을 갖추기 위해 엄청난 고통과 시련의 시간을 겪는다. 통번역대학원을 다니는 2~3년의 기간 동안에는 인간이 가진 모든 욕구를 포기해야 한다. 쉴 수도 없고 잠을 푹 잘 수도 없고 여행은 꿈도 꿀 수 없다. 친구를 못 만나는 것은 물론, 지인 행사, 가족 행사에 가는 것도 거의 할 수 없으며, 연애나 결혼은 다른 세상 얘기다. 오직 공부, 공부, 공부만으로 가득 찬 나날로 2~3년을 꽉 채워야 한다.
그렇게 힘들게 들어간 동시통역 부스이기에, 우리는 그곳을 사랑하며 자랑스럽게 여긴다. 마이크를 차고 발화자의 음성에 집중하는 그 고요한 순간을 사랑한다. 시간과 공간 감각이 사라지면서 언어와 내가 일체가 되는 그 집중의 순간도 사랑한다.
 
직업이란, 일이란 생계를 가능하게 한다는 점만으로도 이미 신성하다. 하지만 그것에 의미가 추가되고 행복과 설렘까지 느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하루 중 가장 뿌듯한 나만의 시간은 힘들지만 설레는 일을 폭풍처럼 해내고, 지친 몸을 이끌고, 마치 전장에서 승리한 기분으로 집으로 돌아오는 그 순간이 아닐까.
 
일에 갇혀 몰두하다 보면 자신이 하는 일이 작고 보잘것없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한 발 떨어져 큰 그림을 보면 생각보다 큰 영향력을 발견하고 놀라게 된다. 하루하루 내가 하는 일들이 작은 변화를 만들고 그것이 차곡차곡 쌓여 세상을 바꾼다. 이런 마음으로 일을 대하면 어느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다. 세상이 나를 밀고 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세상을 끌고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Professionalism is doing your best work when you don’t feel like it.”
(프로 근성이란 하고 싶지 않을 때에도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미국의 저명 저널리스트 앨리스터 쿡이 남긴 말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끝까지 하는 것. 좀 버겁더라도, 스스로 초라해지더라도, 어떻게든 목표를 향해 달리는 것. 그래서 위기 때 더 빛나는 것이 근성이 아닐까 한다.
 
그날 밤, 나는 통역사로서 가져야 할 나만의 첫 원칙을 정했다. 바로 날마다 나를 리셋, 즉 초기화하는 것이다. 그날 내가 통역을 얼마나 잘했든 혹은 얼마나 못했든, 어떤 칭찬이나 비판을 들었든, 기분 나쁜 일이 있었든, 집에 들어오는 순간 모두 다 잊어버리고 내일을 위해 리셋 버튼을 누르는 것이다. 머리를 다 비우고 온전히 내일을 위한 준비 모드에 들어가는 것. 그것이 앞으로 살아갈 통역사로서의 긴긴 삶을 잘 살아낼 수 있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32년 동안, 나는 정말 그렇게 했다. 밖에서 느낀 어떤 기분도 집으로 갖고 들어가지 않았다. 파트너와의 호흡이 맞지 않아 동시통역에서 실수가 많았던 날도, 억울한 일로 클라이언트에게 항의를 들은 날도, 클라이언트가 밥을 챙겨주지 않아 하루 종일 쫄쫄 굶은 날도, 집에 들어가는 순간 머릿속에서 모두 지웠다.
“What’s done is done.”(이미 일어난 일은 어쩔 수 없다.)
“You can’t change the past, so learn from the past and move on.”
(과거를 바꿀 수 없으니, 그로부터 배우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지금이야 일의 기쁨을 만끽하면서 스스로를 칭찬하는 법을 배웠지만 당시는 내게 훨씬 더 엄격했다. 나쁜 일뿐만 아니라 좋은 일, 기쁜 일도 되도록 지웠다. 지나친 기쁨 역시 평정심을 유지하는 데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성취감에 도취하다보면 자만에 빠지고, 자만에 빠지면 내일을 소홀히 하게 된다. 그래서 나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수행이 무사히 끝난 후에도, 그 까다로운 국제통역사협회 멤버십 신청이 드디어 승인됐을 때에도, 한미 확대 정상회담 만찬 후 트럼프 대통령에게 “대단했어요!”(You were great!)라는 칭찬을 들었을 때에도, 집으로 들어서는 순간 모두 잊어버렸다. 그저 조용히 옷을 갈아입고, 가족들과 저녁을 먹고, 남편과 강아지를 데리고 짧은 산책을 한 후, 내일 맡은 또 다른 통역 프로젝트를 준비했다.
우리의 하루하루는 날마다 100미터 단거리 경기가 벌어지는 육상 대회와 같다. 오늘의 레이스가 끝나면 내일 또 다른 레이스가 시작된다. 매일 경기를 잘 치르려면 체력과 정신력을 기복 없이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려면 이미 발생한 일에 연연하지 말고 앞일을 생각해야 한다. 별로 어렵지 않다. 머리를 다 비우고 지금 주어진 일, 해야 할 일에 집중하면 된다. 맛있게 밥을 먹고, 청소와 정리정돈을 하고, 깨끗이 씻고 잠자리에 드는 것이다. 내일은 오늘보다 더 잘해야 하니까. 내일보다 더 소중한 기회는 없으니까.
“Reset yourself and go to bed.”(나를 리셋하고 잠자러 가자.)
 
미셸 오바마 전 미국 영부인이 자서전에서 한 말은 정말 진실이다.
“There is no magic to achievement. It is really about hard work, choices and persistence.”(성공에 마법은 없습니다. 노력, 선택, 꾸준함이 있을 뿐입니다.)
 
나는 통역사를 선택했고 그에 딸려 오는 괴로운 것들을 기꺼이 견딘다. 사실 30년이 넘으니 이제는 기계 취급을 당해도, 부당한 일로 항의를 받아도, 상처 같은 건 받지 않는다. 출장 갈 때는 꼭 음식을 싸 가서 조금씩 먹으면서 컨디션을 관리한다. 사실 통역이 내게 주는 기쁨과 보람을 생각하면 이런 괴로움은 아무것도 아니다. 늘 새로운 분야를 공부하느라 가족과 느긋하게 시간을 보낼 수 없는 것도, 남편과 주말에 오붓하게 극장 한번 못 가본 것도 크게 아쉽지 않다. 그만큼 통역을 사랑하기에, 이 직업이 요구하는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
 
자기 권리는 자기 자신이 챙겨야 한다. 좋은 사람인 척하며 받아들이고 넘어가면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 내 시간을 함부로 쉽게 생각하는 사람을 그냥 두고 넘어간다면 세상 모두가 계속 내 시간을 귀하지 않게 여길 것이다. 
권리는 누가 챙겨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챙기는 것이다.
 
통대 입시를 준비하기 위해 학원을 다니면서 처음에는 학원에서 들려주는 영어 뉴스가 전혀 이해가 되질 않아서 어려움에 빠지기도 했지만 이를 극복하기 위해 <33,000 Vocabulary>라는 책을 사서 반복해서 보고 또 봤다. 또 영어 뉴스와 신문을 보면서 잠자는 시간 외에는 영어 공부에만 몰두한 결과 통역대학원에 합격했다.
 
그들의 통역 수준을 보며 나는 평생 그들이 구사하는 영어를 할 수 없다는 것을 직감했다. 최초의 좌절을 맛본 순간이었다. 그 좌절은 결코 작지 않았다. 외국어로 영어를 공부한 사람은 결코 가질 수 없는, 원어민만의 동물적 감각이 내겐 없었다.
처음에는 너무 절망스러웠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따라잡을 수 없다는 좌절감에 혼자 운 적도 많았다. 그럼에도 나는 오기와 희망으로 버텼다. 원어민은 아니지만 그들이 쓰는 표현들을 날마다 보면서 훈련하면, 그래도 언젠가는 비슷한 수준으로 영어를 할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버티고 또 버텼다.
통역대학원을 다니는 2년 동안 나는 단 하루도 편안하게 살 수 없었다. 두 배 세 배 노력하지 않으면 원어민 친구들의 실력을 따라잡을 수 없으니, 눈뜨면서부터 잠들 때까지 하루종일 영어에 매달렸다. 일어나자마자 영자신문을 읽고 주한미군이 주로 보던 AFKN 뉴스를 듣던 습관 때문에 요즘도 일어나면 아리랑 뉴스를 먼저 듣는다. 대학원 재학 시절에는 틈틈이 페이퍼백 소설을 읽었고 요즘에도 틈만 나면 오디오북을 하루도 빠지지 않고 듣는다. 원어민이 구사하는 영어다운 영어, 영어스러운 영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려면 시사 표현뿐만 아니라 유행하는 새로운 표현, 길거리 생활 영어, 유머 코드까지 흡수해야 했다.
졸업 후 동시통역사로 일하면서도 나의 콤플렉스는 사라지지 않았다. 보통 원어민 출신의 동시통역사는 의뢰받은 분야의 배경지식과 전문용어 정도만 공부하면 통역하는 데 문제가 없다. 하지만 나는 그 분야의 기초 용어는 물론이고 진행에 필요한 간단한 문장까지 가장 영어다운 표현을 찾아서 준비해 가야 했다. 특히 국제회의에 어울리는 좀 더 품위 있는 표현, 격식을 갖춘 표현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영어가 모국어인 사람에게는 아무 의식 없이 입에서 당연하게 나오는 표현을 나는 노력해서 획득해야 한다는 사실에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원어민이 아니면 그래야 한다.
 
그럴수록 나는 더 엄하게, 더 혹독하게 학생들을 가르친다. 첫 학기에 800쪽이 넘는 핵심 용어집 한 권을 강제로 외우게 해 시험을 보고, 매일 좋은 문장을 한국어와 영어로 1:1로 매칭시켜 몇 개씩 외우고 연설문도 통째로 암기하라고 한다. 실제로 하는 것처럼 통역을 해보고 그것을 듣고 교정하는 크리틱(비평의 뜻인데 여기서는 통역을 시킨 후 부족한 것을 조목조목 지적하는 교수법을 뜻한다)을 강하게 한다.
 
한편으로 내가 영어에 콤플렉스가 있지 않았다면 이렇게 열심히 살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남들보다 두세 배 열심히 노력한 것은 내가 아무리 열심히 공부해도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분명 콤플렉스 때문이었다. 그리고 아마도 나는 죽는 날까지 이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콤플렉스 때문에 인생을 너무 힘들고 피곤하게 살았고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지만, 그 덕분에 쉬지 않고 노력했고 내 한계를 뛰어넘는 성취의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콤플렉스에 감사한다. 브라질에서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언니, 오빠만 최고로 좋은 미국 사립학교에 보내고 나를 현지인들이 다니는 작은 규모의 국제학교에 보낼 수밖에 없었던 부모님에게도 감사한다. 무엇보다 콤플렉스에 내 자신을 가두지 않고 계속 극복하려고 노력하는 내 자신에게도 고맙다.
<플린스톤 가족>이라는 60년대 인기 TV 만화 시리즈에서 주인공 캐릭터의 목소리를 연기한 앨런 리드라는 배우가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한다.
“An inferiority complex would be a blessing, if only the right people had it.”
(열등감 콤플렉스는 임자만 제대로 만난다면 축복이 될 것이다.)
콤플렉스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 그것으로 무엇을 할지는 나 자신의 몫이다.
 
그런데 2학기가 돼 다시 만났을 때, 그 학생의 발음이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통역부스에서 통역을 하는데 이어폰으로 들리는 목소리는 내가 아는 학생의 목소리와 똑같았지만 어설펐던 발음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세련된 표준 발음으로 바뀌어 있었다. 내 조언을 듣고 방학 동안 이를 악물고 발음교정에 매달렸던 것이다. 사전에 수록된 모든 단어의 발음을 하나하나 들으면서 수백 번씩 반복하고 교정했다고 한다. 특히 단어마다 자음과 모음을 해체해서 마치 성악가가 노래를 부르기 전에 발성연습을 하듯이 큰 소리로 길게 발음연습을 한 것이 큰 도움이 됐다고 한다.
 
또 다른 1기 학생은 발음은 좋은데 영어 기초가 부족하고 한국어 어휘도 부족했다. 나는 하루도 빠짐없이 영어 연설문이나 신문기사를 외우고 한국어 번역도 통째로 외우라고 조언했다. 영어도 영어지만 한국어의 고급 어휘를 모르면 통역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학생은 정말로 1학년 초부터 2학년 졸업시험 전까지 내가 조언한 대로 실천했다. 단 하루도 빠짐없이 한국어 문장과 영어 문장을 1:1로 매칭해 하루에 몇 십 개씩 외웠다. 그 결과 졸업시험에서 거의 만점에 가까운 성적으로 수석 졸업을 한 뒤 한국 최고의 대기업 중 한 곳의 통역사가 됐다.
 
놀랍게도 내가 말한 학생들 모두 순수 국내파들이다. 해외파 학생들도 열심히 노력해 좋은 결과를 냈지만, 이들보다 더 노력해서 엄청나게 실력을 높이고 졸업 후 드라마틱한 성공을 보여준 것은 오히려 국내파 학생들이었다. 타고난 여건과 재능, 지능도 중요하지만 꾸준한 노력, 성실에 버금가는 힘은 결코 없다는 것을 학생들을 보면서 늘 확인한다.
 
더크워스는 노력하다 보면 도저히 진전이 없어 포기하고 싶은 위기가 찾아오는데 이것을 ‘임계점’이라고 표현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임계점을 넘지 못하고 포기한다. 하지만 정말 끈질긴 사람들은 절대 포기하지 않고 집념을 발휘해 기필코 임계점을 뛰어넘고야 만다. 2천 번의 실패 끝에 전구를 발명한 에디슨, 800번의 실패를 통해 기어코 하늘을 나는 데 성공한 라이트 형제, 8번의 실패를 딛고 마침내 중국 최대 인터넷 상거래 기업으로 성공한 알리바바의 마윈 등 임계점을 뛰어넘은 사람만이 성공의 기쁨을 누릴 수 있다.
과연 나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아직도 임계점에서 고군분투 중일까, 아니면 임계점 앞에서 포기하고 싶은 유혹을 느끼고 있을까? 지금 자신이 서 있는 위치에서 조금만 더 버텨보자. 곧 온도가 더 높아져 자신도 모르게 가벼운 기체가 되는 순간이 찾아올 것이다.
 
나 역시 통역대학원 시절 집에서는 잠만 자고 하루 종일 학교에서 보냈다. 트레이닝복은 아니었지만 나도 아침에 일어나서 뭘 입을까 고민하는 시간이 아까워서 매일 똑같이 머리를 질끈 묶고 티셔츠에 청바지만 입고 다녔다.
나는 집중을 위해 늘 통역대학원에서 조금 떨어진 일반대학원 건물 도서관을 이용했다. 매일 아침 일찍 자리를 맡고서 수업시간과 통역 스터디가 끝나면 그 외의 시간은 늘 도서관에서 보냈다.
그곳에서는 하루 종일 영자신문과 잡지를 읽었다. 이어폰을 꽂은 채 단어와 표현도 끊임없이 외웠다. 졸음이 쏟아지거나 집중이 안 되면 건물 밖 잔디를 걷거나 복도와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며 섀도잉(중얼거리며 들리는 대로 그림자처럼 말하는 학습법)을 했다.
일반 대학원 학생들은 그런 내 모습을 이상하게 생각한 듯 했다. 수업에서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여자가 화장도 하지 않은 민낯에 매일 같은 옷차림으로 도서관의 같은 자리에서 신문이나 잡지를 보고 있으니 말이다. 심지어 알 수 없는 말을 혼자 중얼거리며 계단과 복도를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을 봤다면 그럴 법했을 것이다.
그런데 몇 년 후 후배 통역사를 통해 학교에 내 소식이 알려졌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내가 정부부처 1호 통역사가 돼 언론의 조명을 받고 TV 인터뷰에도 나오고 일간지에도 얼굴을 비추자 그제야 도서관의 미친 여자에 대한 의문이 풀렸다고 한다.
 
이상하게도 나는 교수님께 분필로 머리를 맞아도, 창피하니까 뛰어내리라는 말을 들어도 상처를 받기보다는 오히려 의지가 활활 타올랐다. 내가 해야 할 일이 그토록 선명하게 보였던 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문제가 무엇인지,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가 명확하게 보였다. 다른 생각은 오히려 하나도 들지 않고 공부하고 싶은 생각만 간절했다.
통역대학원 시절을 생각하면 말 그대로 실성한 여자처럼 공부만 했다. 정말로 단 하루도 허투루 보낸 적이 없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공부에 미쳐 있었다. 영어권에서 체류한 경험도 전혀 없고 영어 실력도 보잘것없었던 내가 국제회의 통역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열정을 불태운 순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통역을 하며 어떤 일이 생겨도 큰 상처를 받지 않고 컴플레인을 받으면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성격도 이때에 만들어졌다. 국제회의 통역사는 스트레스를 정말 많이 겪는 직업이다. 작은 실수 때문에 항의를 받는 일이 부지기수이고 억울한 일도 많이 당한다. 하지만 나는 강하게 교육받은 덕분에 쉽게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다. 그리고 컴플레인을 받으면 깔끔하게 사과하고 오히려 더 개선할 기회를 내게 준 것이기에 감사하게 생각한다.
자신의 일과 관련한 문제가 무엇인지 모르고 지나가기보다는 문제가 무엇인지를 잘 파악하고 고칠 수 있을 때 발전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의 항의, 비판, 지적 등이 껄끄럽고 부끄럽고 싫다고 피하면 안 된다. 그런 이야기들을 귀담아들어야 내가 해야 할 일이 보인다.
 
나의 통역 크리틱 파트너도 내겐 너무 고마운 존재였다. 그 파트너가 “너는 나이가 몇 살인데 그런 표현도 몰라, 한국이 맞아?”라며 끊임없이 질타해준 덕분에 나는 매일 이를 갈며 신문 사설을 읽고 <신동아>라는 두꺼운 월간 잡지를 구독해서 시사 논평을 읽으며 한국어를 다졌다. 나의 한국어 실력은 그때 거의 완성된 셈이다. 어쩌면 2년간 나를 도와준 통역 스터디 파트너는 내 평생 은인이나 마찬가지다.
내가 학생들의 통역을 크리틱할 때 신랄하게 하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비판은 어차피 아픈 것이다. 상대방이 듣기 좋게 말하고 돌려 말하면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어차피 아픈 것인 만큼 정확하게 예리하게 지적해줘야 한다. 학생들이 자신의 문제를 분명하게 깨달아야 개선할 수 있다.
다만 분필을 던지거나 창문 밖으로 뛰어내리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 사실 그런 극단적인 방법은 나도 좋아하지 않을뿐더러 요즘 학생들에게 맞지 않다. 지금은 오히려 신랄하게 비판은 하되 점점 나아지는 점들을 분명하게 칭찬해줘야 한다. 잘할 수 있다고 용기를 북돋아주는 말도 잊지 말아야 한다. 무섭게 비판하되, 상처를 주지 않는 것. 그것이 내 수업의 기본 정신이다.
 
그날부터 나는 학교에서 밤 11시까지 공부하고 집에 돌아와서는 자정 뉴스를 빠짐없이 시청했다. 영어 섀도잉을 하듯이 아나운서의 말을 그대로 섀도잉하면서 목소리와 발음, 발성을 흉내 냈다. 그리고 평소 말을 할 때도 아나운서의 목소리 톤을 떠올리며 최대한 저음으로 낮춰서 말하려고 노력했다.
처음 몇 달 동안은 목이 쉬고 붓고 난리도 아니었다. 마치 감기에 걸린 것처럼 성대가 땡땡 부어 목소리가 나오지 않은 적도 있었다. 그래도 미친 척하고 계속 따라 했다. 그렇게 몇 달을 지내던 어느 날, 통역 수업 시간에 발표를 하는데, 내 목소리가 묵직한 저음으로 울리고 있었다. 내가 말하고도 내 목소리가 맞나 싶어 깜짝 놀랄 정도로 달라져 있었다. 의식적으로 흉내 낸 것이 아니라 아무 생각 없이 말했는데 저음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신기했다.
그날 이후부터는 밤에 뉴스를 보며 아나운서를 섀도잉하는 것만으로도 목소리가 잘 유지됐다. 그리고 신경을 써서 목소리를 낮추지 않아도 음량이 풍부한 저음의 목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목소리를 완전히 바꾸는 데에 성공한 것이다.
매일 섀도잉을 하고 발성 훈련을 하면서 저절로 득음 과정을 거쳤던 것 같다.
 
하지만 성격이 직업에 잘 맞지 않는다고 해서 반드시 불행해질 거라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사람은 누구나 직업을 통해 성격이 얼마든지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2003년 캘리포니아대학교 버클리캠퍼스 연구팀이 약 13만 명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연구한 결과, 오히려 20~30대에 성격이 가장 많이 변하고 60대까지도 서서히 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특히 직업을 통해 성격 변화가 가장 많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누구라도 직업을 통해 성격이 얼마든지 바뀔 수 있는 말이다.
연구진은 어렵고 도전적인 일을 할수록, 성취 경험을 쌓을수록 성격에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난다고 지적했다. 어린 시절에 성격이 형성돼 고정된다는 생각을 뒤집는 흥미로운 이야기다.
직업을 통한 성격 변화도 중요하지만 노력의 힘을 무시할 수 없다. 목소리를 고치고 무대공포증을 극복하는 과정처럼 성격은 스스로의 노력으로 얼마든지 고칠 수 있다. 별다른 노하우는 없다. 그냥 자신에게 필요한 것들을 파악해 열심히 흉내 내고 따라 하면 된다.
사람들 앞에서 더 많이 웃어야 한다면 웃는 연습을 하면 되고, 사교적인 성격이 필요하다면 소셜 스킬, 즉 사교술을 연습하면 된다. 예쁜 목소리가 필요하다면 발성 연습을 해서 목소리를 잘 관리하고, 튼튼한 근육이 필요하다면 열심히 운동해서 근육을 키우면 된다. 끊임없이 자신에게 부족한 것을 흉내 내고 따라 하고 훈련하다 보면 어느새 새로운 성격과 기술이 곧 내 자아가 된다. 직업을 위해, 자신의 부족한 자질을 위해 갖춰야 할 모든 것들이 내 자아로 흡수되는 것이다.
 
그동안 통역업무를 하면서 수많은 유명인사, 리더들을 만나봤다. 한 분야에서 최고의 위치에 오른 사람들은 그 분야가 요구하는 모든 자질을 갖추고 있어 마치 그 사람 자체가 그 일이 돼버린 듯한 분위기를 풍긴다. 예를 들어 유럽의 오아실 인사들은 그 사람 자체로 로열티, 즉 왕족이라는 느낌을 받곤 한다. 눈빛, 말투, 자세, 행동 하나하나까지 모두 여유가 느껴지고 품위가 넘친다. 수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서도 결코 흐트러지거나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그런 태도가 몸에 배기까지 얼마나 많은 훈련과 마인드 컨트롤을 했을지 쉽게 상상이 되지 않을 정도다.
큰 기업을 이끄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자신이 속한 기업의 이미지를 그대로 보여준다. 간결한 언어, 꼼꼼함과 정확함, 유연한 사고 등이 눈빛 하나에도 스며들어 있는 걸 볼 수 있다. 그들도 처음부터 그런 자질들을 타고나지 않았을 것이다. 리더의 위치까지 올라가는 과정에서 갖은 노력 끝에 그 모든 자질들을 획득한 것이다.
나 역시 좋은 통역사가 되기 위해, 듣기 좋은 저음의 목소리를 갖기 위해,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디며 점차 담대한 사람으로 바뀌어갔다. 지금은 통번역대학원을 다닐 때와는 달리 오히려 침착하고 강단이 있다는 소리를 더 많이 듣는 편이다. 원래 타고난 것인 양 내 직업에 꼭 맞는 자질들을 갖출 수 있게 됐다.
만약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있으나 재능이나 자질이 부족해서, 혹은 성격이 맞지 않아서 망설이는 사람이 있다면 꼭 말해주고 싶다. 정말로 간절하게 그 일을 하고 싶다면 노력해 획득하라고. 완전히 나의 일부가 될 때까지 훈련하라고. 누구라도 충분히 할 수 있다.
 
동시통역은 마치 기름칠을 계속해주지 않으면 녹이 슬어 고장나버리는 기계와 같다. 졸업한 지 얼마 안 되는 통역사이건, 나처럼 경력이 30년이 넘는 통역사이건 마찬가지다.
 
나도 그렇고 내 파트너들도 마찬가지다. 경력과 상관없이 누구나 겪는 증상이다. 불과 열흘 정도 쉬었을 뿐인데도 마치 기계가 시동이 걸리지 않는 것처럼 삐걱거리는 느낌을 받는다. 동시통역이 훈련과 반복에 얼마나 좌우되는 기술인지를 실감하는 순간이다. 이처럼 조금이라도 방심하고 나태해지면 수십 년간 쌓은 기술도 허무하게 사라져버릴 수 있다.
 
절대로 동시통역을 자전거 타는 법처럼 한번 배우면 평생 쭉 써먹을 수 있는 쉬운 기술로 생각해선 안 된다. 동시통역은 평소 감각을 유지하고 꾸준히 노력을 해야 하는 분야이다. 거의 매일같이 쉬지 않고 꾸준히 부스 안에서 통역을 해본 사람만이 신뢰를 얻을 수 있다.
 
동시통역 훈련법 중에 ‘사이트 트랜슬레이션’(sight translation)이란 것이 있다. 문장을 ‘눈으로 보면서’ 곧바로 ‘입으로 번역’을 내뱉는 것이다. 이때 절대 문장을 다 읽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문장을 다 읽은 후 번역하는 것이 아니라 앞에서부터 단어를 하나씩 보면서 즉각적으로 처리하는 것이 훈련의 핵심이다. 예를 들어 ‘to’가 나오면 곧바로 ‘그 목적은~’ 혹은 ‘그 결과는~’의 의미로 번역하고 ‘from’이 나오면 ‘떨어져 있다’라고 번역하는 것이다.
My friends and I stood on the street yelling to grab a taxi.
일반적인 번역: 택시를 잡기 위해 친구와 나는 길거리에서 소리쳤다.
동시통역식 번역: 친구와 나는 소리치며 택시를 잡았다.
이렇게 동시통역을 할 때는 연사가 하는 말을 디테일하게 다 전달하지 않고 의미만 전달하면 되기에 굳이 ‘on the street’를 전달하지 않음으로써 다음 문장을 듣고 말할 수 있는 시간을 번다.
Pusan is located 400km away from Seoul.
일반적인 번역: 부산은 서울로부터 40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동시통역식 번역: 부산의 위치는 400킬로미터 서울에서 떨어져 있다.
이렇게 해내려면 정말 수많은 문장을 보며 연습해야 한다. 의도적으로 통역한다는 느낌보다 거의 반사적으로 통역이 나오는 경지에 이르러야 한다. 마치 단어를 들으면 뇌에서 신호등이 켜진 것처럼 불쑥 나오는 수준이 돼야 한다. to, from, of, when, that 그리고 동사 같은 단어가 나오면 그 단어들을 신호등으로 생각하고 바로 그 지점에 뛰어들어 통역하는 것이다.
이 과정은 운동선수가 기술을 연마하는 훈련과 비슷하다. 권투 선수는 상대방 선수의 날아오는 훅과 잽을 피할 때 머리로 생각하지 않는다. 몸이 알아서 반응하도록 매일 수 시간씩 연습을 한 결과, 주먹이 날아오면 그것이 무엇인지 판단하기도 전에 몸이 먼저 방향을 잡고 피한다. 온종일 피하기 훈련을 거친 덕분에 몸이 상대방 주먹의 감각을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동시통역사 역시 졸업했다고 끝이 아니다. 끊임없이 행사장에서 동시통역을 하는 실전 경험을 쌓고 틈틈이 신문을 보고 오디오를 들으며 혼자서 중얼중얼 연습을 해야 한다. 매일 모르는 단어를 외우고 좋은 문장과 좋은 통역을 공부하지 않으면 감각은 허무하게 사라지고 만다.
동시통역사가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바로 자신감이다. 자칫 자신감이 자만으로 바뀌기 쉽기 때문이다. 자신감은 스스로의 능력에 확신을 갖는 것인 반면, 자만은 스스로의 능력을 부풀려 자신이 대단하다고 생각하게 만들고 남들보다 훨씬 잘한다는 우월감을 갖도록 이끈다. 그런데 주변을 보면 자만을 자신감으로 착각하는 통역사들이 더러 있다. 자신감이 자만으로 바뀌지 않으려면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살펴보고 남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나만큼 잘하는 사람이 없고 지금 자신의 실력이면 충분하다는 생각은 금물이다. 계속 자신에게 부족한 것을 찾으며 채우려는 태도야말로 동시통역을 평생 쭉 할 수 있는 기본자세다.
 
나와 천생연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호흡이 잘 맞는 동시통역 파트너이자 학교 동료인 송혜인 교수는 영어에 정말 강하다. 내가 모르는 주옥같은 표현을 자연스럽게 구사한다. 송 교수에 대한 전설적인 이야기가 있다. 경력이 좀 짧은 제자와 같이 동시통역을 할 때의 일이다.
당시 송 교수의 아이들이 어려서 만성 수면부족을 겪고 있었다. 그런데 그날 마침, 통역부스에서 자신의 통역을 마치고 잠시 엎드려 눈을 붙이고 있는데 제자가 통역을 하다가 막혀서 급히 송 교수를 깨웠다. 그러자 송 교수는 눈이 반쯤 감긴 상태로 마이크를 켜고는 그 어려운 연설을 기가 막히게 통역해냈다. 거의 자동반사식으로 통역을 술술 해냈다.
그와 같은 반사신경은 타고나는 것도 아니고 해외 체류 경험 덕분도 아니다. 밤을 새우면서 통역 준비를 완벽하게 하고, 동시통역 감각이 떨어지지 않도록 자주 통역을 해야 감을 잃지 않는다. 또 평소에도 시간이 날 때마다 영어 뉴스를 듣고, 틈틈이 영어 소설을 읽으면서 영어 표현을 익히는 것도 비결이다. 이미 완벽한 실력이지만 결코 안주하지 않고 더 완벽해지고자 노력하는 자세, 스스로에게 자만하지 않고 계속 채우려는 자세, 그 이상의 비결은 없다.
 
물론 그 덕분에 통역을 준비할 때 연사의 국적과 그 나라의 영어 발음, 인사 문화까지 따로 공부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영어의 다양한 변화 속에서 우리도 영어를 공부할 때 굳이 원어민처럼 완벽한 미국식 영어나 영국 상류층 영어를 구사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식 억양일지라도 발음 기호에 맞게 단어를 말하고, 문법에 맞는 문장을 구사한다면 충분히 세계 사람들과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는 말이다.
내가 스페인어와 포르투갈어 발음이 섞인 영어를 찰떡같이 알아듣는 것처럼 영어권 사람들도 전 세계 사람들이 구사하는 독특한 영어 발음을 대체로 잘 알아듣는다. 만약 자신의 발음이 형편없다고 생각해 영어에 자신을 갖지 못한다면 너무 상심하지 말고 표현력과 문장력을 기르기 위해 노력하라고 조언하고 싶다.
 
발음을 잘하려면 반복 훈련, 모방 훈련이 중요하다. 원어민들이 어느 부분에서 숨을 쉬고 멈추는지, 문장의 어떤 부분에서 톤을 올리고 내리는지에 유의해서 많이 듣고 따라 해야 한다. 새로운 단어를 익힐 때에도 영영 사전에서 뜻을 이해하고 여러 가지 예문을 함께 외우면서 반드시 발음도 직접 듣고 확인해야 한다. 요즘은 케임브리지 영어사전, 옥스퍼드 영어사전, 네이버 영어사전 등의 온라인 사전 검색 서비스를 이용하면 발음 듣기 기능도 제공하므로 단어들의 발음을 꼭 들어보고 수십번씩 따라 해보기를 권한다.
또한 나는 ‘텍스트 투 스피치’(Text-to-speech) 서비스를 제공하는 여러 사이트들을 발음 연습 도구로 활용하는 편이다. 텍스트 투 스피치 서비스는 말 그대로 글을 말로 바꿔주는 AI 서비스다. 대표적으로 구글, 스피치파이, 티티에스리더 등이 있다.
만약 듣고 싶은 연설문이 있다면 텍스트 창에 옮겨 넣으면 미리 입력돼 있는 AI의 유창한 발음을 들을 수 있다. 남자 목소리, 여자 목소리를 선택할 수도 있고 속도도 조절할 수 있으며 미국 동부식 발음, 중부식 발음, 영국식 영어 등으로 자신이 원하는 발음을 선택할 수도 있다.
나는 주로 외워야 할 표현, 문장 등이 있으면 텍스트 투 스피치 서비스에 입력해 스피치로 바꾼 후 휴대전화에 파일로 저장해 듣는다. 이렇게 하면 좋은 표현들을 운전하면서 반복해서 들을 수 있고 발음을 따라 하면서 영어 발음도 좋아지는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다.
 
나는 평소 영어공부를 어떻게 하면 좋은지에 대해서 질문을 많이 받는 편이다. 그에 대한 대답으로는 조금 엄격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조금만 공부하고 큰 효과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은 결코 없다. 무조건 반복하고 연습하는 것이 최선이다. 어떤 공부든 시간을 많이 투자하면 투자할수록 실력이 늘어나는 것을 체감할 수 있다. 물론 직장인이나 다른 분야 전공자들이 영어마 붙들고 있기는 힘든 것이 사실이다. 그래도 하루 한 시간이든 두 시간이든 규칙적으로 시간을 내어 계속 훈련을 하면 모르는 사이에 실력이 늘어날 것이다.
무엇보다 영어 공부를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한다. 통학 시간이나 출퇴근 시간을 이용하거나 아침에 한 시간 일찍 일어나거나 저녁에 한 시간 늦게 자는 식으로 시작하면 된다. 본인이 관심을 가지는 주제에서 콘텐츠를 선택하는 것도 아주 좋은 시작점이다. 예를 들어 패션에 관심이 있다면 패션 콘텐츠를, 음식에 관심이 있다면 음식 콘텐츠를 찾아 영어 표현을 익히는 것이다. 이처럼 영어 공부를 생활의 일부로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만들면 굳이 거창하게 학원이나 스터디를 하지 않아도 자신에게 필요한 만큼 충분한 실력을 기를 수 있다.
영어는 모국어로 쓰는 사람조차도 다양한 방법으로 쓰는 언어다. 꼭 미국영어로 혹은 영국영어로 구사할 필요는 없다. 조금 달라도 괜찮다. 자신만의 억양으로, 자신만의 스타일로 영어의 길을 걸어가길 바란다. 영어는 모두의 언어다.
 
자연스럽게 습득한 언어의 위력은 이처럼 놀랍다. 생물학적으로 인간의 두뇌 구조는 어린 나이에 언어를 배우면 무의식적으로 그 언어를 흡수한다고 한다. 그리고 뇌에 흡수된 언어는 한참 사용하지 않아도 필요한 때에 불쑥 튀어나온다. 반면 성인이 돼 배운 외국어는 한동안 사용하지 않으면 쉽게 잊어버리고 만다. 이런 원리를 잘 알기에 나는 어린 시절부터 영어 감각을 체득한 통역사들이 내심 부러웠다.
어린 시절부터 영어 감각을 익혀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덕분에 나는 아이들을 키울 때 의욕이 앞섰다. 내 아이들만큼은 일찍부터 영어를 가르쳐서 영어 감각을 몸에 심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또 엄마가 통역사인데 영어 교육만큼은 똑 부러지게 잘했다는 소리를 듣고 싶은 마음이 있던 것도 사실이다.
 
영어권 국가에서 태어나거나 어린 시절에 외국에서 몇 년 살거나 조기교육을 받아 어려서부터 한국어와 영어를 동시에 익히면 확실히 장점이 많다. 문법, 표현 등을 공부하지 않아도 감각으로 알 수 있고 머릿속에 문장을 정리할 필요 없이 편하게 말할 수 있다. 두 언어를 함께 공부하면 지능이 발달하고 사고가 유연해지고 사교성도 좋아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언어학자들도 가급적 어린 시절부터 두 언어에 노출시키는 것이 좋다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작은딸을 보면 꼭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 시절부터 두 언어를 한꺼번에 익히는 것을 힘들어하는 아이도 있을 수 있다. 영어에 두려움을 가진 아이에게 조기교육을 강요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다. 오히려 아이 스스로 새로운 언어에 관심을 가질 때까지 기다리고 천천히 노출시키는 것이 좋다.
또 어린 시절부터 영어를 익혔다 해도 고급 영어는 반드시 따로 공부를 해야 한다. 고급 표현, 풍부한 어휘, 문장력, 세련된 발음과 억양 같은 것들은 제아무리 원어민이라도 노력해야 얻을 수 있는 것들이다. 언어는 곧 사고력과 함께 발달하는 것이기에 청소년 시기에는 억지로 가르치려들기보다 책을 많이 읽도록 권하고 세상의 여러 문제에 관심을 갖게 하면서 토론을 하는 것이 나을 수 있다. 그렇게 지능과 사고력을 발달시키면 영어 공부를 조금 늦게 시작해도 얼마든지 따라잡을 수 있다.
 
“Oh, Kindness. What a simple way to tell another struggling soul that there is love to be found in the world.”
(오, 친절이여. 고단한 영혼에게 세상에 여전히 사랑이 있음을 알리는 얼마나 간단한 방법인가!)
미국 시인 앨리슨 말리의 글이다. 리더가 베풀 수 있는 가장 강력하고도 가장 따뜻한 선물이 친절이 아닐까. 친절과 권위는 상충하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리더는 친절을 통해 더 큰 권위를 얻는다. 부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좋은 곳에서 편히 쉬고 계시길 간절히 기도한다.
 
메리 왕세자비를 보면서 사랑의 힘에 대해, 그리고 진정한 아름다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사랑 때문에 덜컥 왕세자비가 된 그녀는 사랑에 따라오는 책임들을 최선을 다해 수행했다. 또 늘 베풀고 도우며 선한 영향력을 펼치고 있다. 그녀가 아름다운 이유는 마음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외모도 중요하지만 메리 왕세자비처럼 나도 마음을 예쁘게 돌봐야겠다는 생각을 50대 중반의 나이에 들어서면서 다시금 되새겨본다.
 
2001년 출간된 자서전 <잭 웰치, 끝없는 도전과 용기>에서 그는 리더십에 대한 자신의 철학을 밝혔다. 그가 생각하는 리더십은 결국 사람을 움직이는 것이었다. 사람들에게 목적의식과 방향을 심어주고 그것에 확신을 갖게 하는 것, 그들이 성장하고 성공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곧 리더의 역할이라고 했다.
 
그런데 나는 단 한 번도 윤 부회장이 기쁨을 표현하거나 기뻐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오히려 늘 “지금이 위기다. 잘하고 있을 때가 더 큰 위기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세상의 변화 속도가 워낙 빠르기 때문에 갈수록 상황을 예측하기 어렵다. 이제 아침에 세운 계획을 저녁에 다시 바꾸는 조변석개식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 것도 순식간에 틀린 것이 돼버리는 시대이니 더 유연하고 빠르게 대처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케이건 교수는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남아 있는 것은 살아 있는 이 시간뿐이라고 말했다. 인간은 불멸의 존재가 아니라는 것. 영혼도 없다는 것. 그러면서 우리에게 주어진 삶은 이번 생 단 한 번뿐이니 현명하고 가치 있게 보내야 한다는 말로 강연을 끝맺었다.
케이건 교수의 강의를 통해 나는 죽음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죽음의 철학자 덕분에 죽음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솔직하게 받아들이자 오히려 위로를 받는 듯했다. 그리고 나의 아버지는 아버지의 시간을 열심히 살고 가셨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또한 내 시간을 열심히 살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언젠가 내 몸도 고장이 날 것이다. 그리고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삶은 유한하고 죽음은 불청객처럼 언제 찾아올지 모른다는 사실이 지금 이 순간을 더 특별하게 만드는 이유다. 열심히 뜨겁게 살자. 아버지가 그랬듯이 나도 내 가족을 더 많이 사랑하자. 내게 죽음을 직시할 용기를 준 셸리 케이건 교수에게 깊이 감사하는 마음을 전한다.
 
지난 30여 년 동안 통역사로 일하면서 길게 쉬어본 적이 없다. 아이 둘을 낳고 두 달 정도까지는 육아에 전념하느라 일을 쉬었지만 그 외에는 쉬지 않고 일했다. 지금까지 통역한 이력을 다 열거하면 A4용지 100장에 가까워가니 거의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달려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교수님은 쉬는 시간에 뭐 하세요?”
“취미는 뭔가요?”
“스트레스는 뭘로 해소하세요?”
이런 질문을 받으면 난감하다. 일만 하는 사람에게 취미가 있을 리가 없다. 조금이라도 여유가 있을 때는 영어 공부를 위해 영자신문을 읽고 오디오북을 들으니, 나는 쉬는 시간조차도 일을 위해 쓴다.
그나마 내가 갖는 유일한 휴식은 나의 열세 살 된 애견 마롱이와 함께 산책을 하는 것이다. 아파트 단지를 한 바퀴 도는 짧은 산책이 내가 아무 생각 없이 머리를 비우는 유일한 시간인 것 같다.
아니다. 또 있다. 나는 가족들과 카톡을 정말 많이 한다. 가족 단톡방을 만들어서 시도 때도 없이 메시지를 보내고 읽는다. 나는 주로 그날 통역하며 느낀 보람, 수업에서 생긴 일을 이야기하고, 남편은 마롱이를 데리고 산책하면서 찍은 벚꽃 사진이며 단풍 사진, 다양한 종류의 새 사진을 올리거나 재밌는 뉴스거리, 내가 바빠서 놓치는 중요한 시사 뉴스를 올린다. 미국에 있는 아이들도 한 명은 시카고에서 직장생활을 하며, 또 한 명은 샌프란시스코에서 학교에 다니며 그날 있었던 재미있는 일, 속상한 일, 기쁜 일, 고민거리, 직접 요리한 음식 사진을 찍어 올리고 끊임없이 이야기한다. 이렇게 주고받는 메시지가 하루에 50통은 기본이고 많은 날은 100통이 넘기도 한다. 가족에게서 온 메시지를 보며 혼자서 깔깔 웃고 답장을 쓰는 것이 어쩌면 내가 누리는 가장 큰 휴식이자 취미이자 힐링인지도 모른다.
 
딸 둘이 다 학생이던 시절 방학을 맞아 딸들이 집에 왔을 때, 거실 탁자에 앉아서 통역 준비에 여념이 없는 나를 보며 이런 대화를 나누는 걸 들었다.
“우리 엄마는 어쩜 저렇게 똑같지? 10년 전에도 20년 전에도 엄마는 저 자리에 앉아서 똑같은 모습으로 통역 준비를 하고 있었어. 어떻게 번아웃도 없이 계속 저렇게 일할 수 있을까?”
“그치, 언니. 우리 엄마는 지치질 않아. 지친다는 게 뭔지 모르는 사람 같아.”
“마롱이 덕분인가? 마롱이가 귀여움으로 엄마의 피로를 다 풀어주나 봐.”
“맞아, 맞아. 엄마에겐 마롱이가 최고의 피로회복제야.”
나는 눈을 들어 깔깔대는 딸들을 보며 웃었다. 그러고는 생각했다.
‘마롱이도 피로회복제이지만, 나의 진짜 피로회복제는 너희들이야.’
정말 그렇다. 내가 30년이 넘게 지치지 않고 통역을 나갈 수 있는 이유. 그것은 아이들과 남편, 나의 가족들이 있기 때문이다. 가족이야말로 내 에너지의 원천, 내가 계속 일해야 할 이유다.
 
30년 전, 내가 사회생활을 시작할 시절엔 여자가 사회적으로 성공하려면 결혼을 하지 않는 것이 낫다는 시각이 지금보다 많았다. 결혼을 하면 집안일과 양육으로 시간을 많이 빼앗겨 일에 집중하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어렵다고 해서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꼭 결혼이라는 형태가 아니더라도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가족을 이루는 것은 인생에 큰 의미를 준다. 독신주의, 비혼주의가 아니라면 한 번쯤 경험해봐도 괜찮은 인생의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사랑을 쏟을 수 있는 친밀한 관계, 무엇을 주어도 아깝지 않은 절대적 관계, 나를 다 드러낼 수 있고 위로받고 의지할 수 있는 대상. 친구, 연인, 또는 아끼는 동물과 식물도 중요한 관계지만 가족도 이에 포함된다.
만약 내가 가족을 만들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지금만큼 행복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통역을 아무리 성공적으로 끝냈더라도 그것을 들어주고 함께 기뻐해줄 사람이 없다면, 아무도 반겨주지 않는 텅 빈 집으로 들어가야 한다면, 마음 한편의 공허함은 채워지지 않을 것이다. 가족은 나에게 정서적 안정감을 주는 존재, 마음을 빈 곳 없이 꽉 채워주는 존재, 생각만 해도 너무 좋아서 눈물이 나는 존재,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존재다.
게다가 너무 감사하게도 나는 내 일을 이해해주고 전폭적으로 지지해주는 남편을 얻었다. 사실 매일 집안일보다 통역 준비에 빠져 있고 하루가 멀다 하고 해외로 출장을 가는 사람을 배우자로 두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남편도 성형외과 의사라서 늘 최신 의술을 공부해야 하고 학회와 세미나를 준비해야 하고, 날마다 한 사람의 인생이 걸린 극도로 정교한 수술을 해내야 하는 중압감에 시달린다. 그런데도 내가 집안일을 챙길 겨를이 없으니, 남편이 바쁜 와중에도 전구도 갈고 마롱이가 아프거나 하면 도맡아 동물병원에도 데려가고, 내 자동차 점검이나 컴퓨터 관련 문제도 아무 불평 없이 도맡아서 해결해준다.
또한 남편은 나의 베스트 프렌드다. 내가 힘들 때, 기쁠 때, 화날 때, 혹은 고민이 있을 때 남편은 같이 기뻐해준다. 마치 심리 상담가처럼 내 이야기를 열심히 들어주고 공감해주면서 내 편이 돼준다. 가족을 이루지 않았다면 이런 든든한 동반자를 어떻게 만날 수 있었을까.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가족을 이루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엄마를 응원하고 내 베스트 프렌드가 돼주는 두 딸을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엄마의 손길이 가장 필요한 나이부터 나는 아이들을 시어머니에게, 친정어머니에게 번갈아 맡겼고, 도우미 아주머니에게 맡기고 통역을 하러 나가고 해외 출장을 다녔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집을 나갈 때마다 엉엉 울며 매달렸지만, 차차 이해하고 손을 흔들며 배웅해줬고, 내가 집에 돌아왔을 때는 한없이 반기며 내 품에 와락 안겼다. 두 아이 모두 초등학교 무렵부터는 통역사가 무슨 일을 하는 직업인지 이해하고 엄마를 자랑스러워했다. TV에 내가 나오면 뛸 듯이 기뻐하고 친구들에게, 할머니나 할아버지에게, 여기저기 전화를 걸어 자랑을 했다.
언젠가 아이들에게 “엄마 일 그만두고 집에서 너희들이랑 같이 있을까?”라고 물은 적이 있다. 통역으로 힘든 하루를 마치고 넋두리처럼 해본 말이었다. 그러자 아이들이 둘 다 정색을 하며 “안 돼, 엄마!”라고 대답했다.
“엄마가 집에 왜 있어? 엄마는 밖에서 통역을 해야 돼.”
“힘들어서 그래? 힘들면 잠자고 기운 내서 다시 일해, 엄마.”
“나는 엄마가 일하는 모습이 좋아.”
이 말을 들었을 때의 내 기분은, 마치 천군만마의 응원을 받는 것 같았다. 힘내라는 아이들의 응원만큼 달콤한 것이 또 있을까.
그동안 취미가 뭐냐, 여가 시간에 무엇을 하냐는 질문에 늘 당황했는데, 이제는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제 취미는 가족이에요. 가족들과 메시지 주고받고 일상을 나누는 게 세상에서 제일 즐겁답니다.”
 
다른 무엇보다도 엄마가 딸들을 많이 사랑한다는 것,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다는 것, 늘 믿고 응원한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그걸 알고 있는 아이들은 결코 불행해지지 않는다. 어떤 환경, 어떤 역경 속에서도 반드시 스스로 행복해지는 길을 찾을 것이다.
 
내가 아이들에게 싫은 것을 강요하지 않고 애정 표현을 많이 하는 엄마가 된 것은 아마도 어머니에 대한 반작용일 것이다. 나는 아이들이 공부를 잘하는 것보다 매일매일 즐겁게 보내는 데에 더 의미를 두었다. 그림 한 장을 꼭꼭 채워서 완성하거나, 달리기 경주에서 1등을 하는 것 같은 작은 성취에 뛸 듯이 기뻐하는 엄마가 됐다. 아이들이 싫어하면 절대로 강요하지 않았다. 책과 참고서도 스스로 고른 것을 사줬고, 장난감도 옷도 스스로 고를 수 있는 자유를 줬다. 뭘 배우겠다 하면 학원을 끊어줬고, 배우기 싫다 하면 그만 다녀도 좋다고 했다. 어머니에게서 충족되지 못한 것을 내 아이들에게 주고 싶어서, 더 넉넉하고 더 따뜻한 엄마가 되려고 한 것이다.
 
아이들 교육 문제로 인해, 나는 어머니를 다시 보게 됐다. 어머니는 삶 자체를 일로 생각하는 분이었다. 늘 목표를 만들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문제를 하나씩 해결해나가는 것이 어머니의 삶의 방식이었다. 마치 직장 생활을 하는 것처럼 자식 교육에 사명감과 프로의식을 갖고 임한 것이다. 사랑을 원하는 딸에게는 매정한 엄마였지만, 한 명의 여자로서는 너무나 멋지고 대단한 분이었다.
 
위대한 여성 추리 소설가 중 한 명인 질 처칠이 남긴 유명한 명언이 있다.
“There’s no way to be a perfect mother but a million ways to be a good mom.”
(완벽한 엄마가 되는 법은 없지만 좋은 엄마가 되는 법은 수없이 많다.)
어쩌면 내가 너무 완벽한 엄마를 갖고 싶어 했는지도 모른다. 엄마도 한 명의 인간이고 자신만의 성격과 개성이 있는데, 나는 내 엄마가 늘 사랑을 퍼주는 따뜻한 엄마이기만을 바랐다. 나에게 딱 맞는 맞춤 엄마, 내 마음을 100퍼센트 알아주고 가득 채워주는 그런 엄마를 원했던 것인데, 세상에 그런 엄마는 없다.
나 역시 우리 딸들에게 완벽한 엄마가 아니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엄마의 손길이 가장 필요한 시기에 곁에 있어주지 않았고, 공부와 생활을 열심히 챙겨주지도 않았고,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별 도움을 주지 못했다. 늘 믿어주고 함께 있을 때 사랑을 열심히 표현하는 엄마이긴 했지만, 반면에 옆에서 밀착해서 관리해주는 엄마는 아니었던 것이다.
언젠가 큰딸이 “나도 단 하루라도 치맛바람이 센 강남 엄마랑 살아보고 싶어”라고 말했을 때 가슴이 철렁했다.
‘그렇구나. 나는 사랑만 주면 되는 줄 알았는데 아이에겐 또 다른 면의 엄마도 필요하구나. 나의 어머니처럼 공부와 생활을 탄탄하게 관리해주는 엄마도 아이들에겐 필요하구나.’
나는 부족한 사랑만 크게 생각하고 나를 관리해준 엄마의 노력을 몰랐던 것이다.
사랑이 철철 넘치고 아이들의 말을 잘 들어주면서 공부도 스파르타식으로 시키고 생활관리도 철저히 하는, 그런 완벽한 엄마는 세상에 없다. 각자 자신의 형편에 따라, 가치관에 따라, 최선을 다하는 좋은 엄마들이 있을 뿐이다. 양육에 정답은 없다. 각자의 스타일대로, 개성대로, 소신대로 하면 된다. 물론 아이가 크게 작게 불만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언젠가는 알아줄 것이다. 엄마가 최선을 다했다는 것을. 엄마가 좋은 엄마라는 것을 알아줄 때가 올 것이다.
 
우리 집에서 나에게 밥을 차려달라고 요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이들도 남편도 알아서 먹을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일하러 나가라고 나에게 말한다.
하지만 나는 계속 밥을 차린다. 일어나자마자 식구들이 아침을 먹을 수 있도록 반찬을 만들어 냉장고에 넣어두고, 찌개나 국을 끓여 놓는다. 시간이 너무 없을 때에는 샌드위치를 사와서 과일이나 샐러드와 함께 준비해둔다. 식구들이 깨기 전에 집을 나설 때는 꼭 쪽지를 써놓는다.
‘냉장고에 샌드위치와 샐러드가 있으니까 아침은 그걸로 먹으렴. 모자라면 계란 프라이 부쳐 먹고. 저녁에는 엄마가 늦을 것 같아. 된장찌개 끓여둔 것 있으니까 데우고 불고기 재워 놓은 것 익혀서 먹어. 사랑한다.’
이렇게 식사를 챙겨주려면 집에 늘 재료가 준비돼 있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한번 장을 보러 가면 엄청난 쇼핑을 한다. 모자라면 또 사러 가야 하는데, 그럴 시간도 마음의 여유도 없으니까 한 번에 가서 많이 사는 것이다. 참치도 열 캔 넘게 사고, 스팸도 상자로 산다. 즉석밥도 잔뜩 사서 쟁여놓는다. 간식을 좋아하는 남편을 위해 과자도 몇십 개씩 한꺼번에 사고, 커피도 떨어지면 안 되니까 커피캡슐을 몇 박스씩 사놓는다. 이렇게 두서없이 쇼핑을 하다 보니 우리 집 부엌살림은 늘 포화상태다.
아이들이 방학 때 집에 왔을 때, 너무 열심히 밥을 챙겨주는 나에게 살짝 불만을 표시한 적이 있다.
“엄마, 우리 다이어트해야 돼. 그만 좀 먹여요.”
아침 먹기를 싫어하는 남편 역시 볼멘소리를 한다.
“아침 먹으면 속이 거북한데, 안 먹으면 안 될까?”
이렇게 다들 알아서 먹을 테니 밥을 차리지 말라고 하는데, 왜 나는 늘 식구들 밥 생각을 하고 새벽부터 일어나 밥을 차리고 있는 걸까?
사실 식사 때 맞춰 누가 꼭 밥을 차려야 하는 법은 어디에도 없다. 하지만 그래도 내가 계속 밥을 차리는 이유는 아내이기 때문에, 엄마이기 때문에, 여자이기 때문이 아니라 내 가족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나에게 끼니를 걱정하고 챙겨주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사랑의 표현이다. 내 아이가, 내 남편이 내가 차려주는 식사를 통해 배를 채우고 건강한 몸을 유지하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지만, 늘 무엇을 먹었는지, 맛있게 잘 먹었는지, 사랑하기 때문에 신경이 쓰인다.
남편과 아이들은 그런 관심이 그다지 필요하지 않다고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내가 밥을 먹었는지 늘 물어보고 시간이 될 때마다 밥을 차려주려고 애쓰는 사람이 있다는 건 알게 모르게 엄청난 힘을 준다. 마치 내가 세상에서 철저히 버림받아도 끝까지 내 곁에서 믿고 응원해줄 사람이 있는 것 같은 그런 든든함, 자신감을 준다.
나는 통역사로 일하면서 밥 때문에 서로운 일을 많이 겪었다. 클라이언트가 밥 먹을 시간을 주지 않아 하루 종일 쫄쫄 굶으며 통역한 적도 많고, 행사장에서 나눠주는 호텔 도시락을 먹었다가 통역사가 왜 먹었냐며 항의를 받은 적도 있다. 먹는 것은 생존에 필요한 기본 행위이자 욕구인데 이것을 무시당하거나 차별당했을 때의 기분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마치 사람대접을 못 받은 기분이 든다. 하지만 이럴 때 남편으로부터 “당신 밥 먹었어? 바빠도 꼭 챙겨 먹어”라는 문자 한 통을 받으면 그렇게 든든할 수가 없다. 딸들이 본인들이 먹은 식사 사진을 보내며 “엄마도 점심 맛있게 먹어”라고 문자를 보내면 서러움이 스르르 풀린다.
나를 걱정하고 지켜보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응원이 되는지 너무나 잘 알기에, 나도 남편과 아이들의 끼니를 즐거운 마음으로 챙기게 된다.
 
통역하기 어려운 한국어 표현 중에 밥에 대한 말들이 참 많다.
“밥 먹었어?”
“밥 한번 같이 먹자.”
“내가 밥 한 끼 살게.”
“밥 꼭 챙겨 먹어.”
이런 표현들은 그냥 문자 그대로 통역하면 이상하고 엉뚱하게 들린다. 그래서 반드시 밥에 대해 품고 있는 우리의 정서를 곁들여 설명해줘야 외국인이 이해할 수 있다.
밥을 매개로 친해지고 정을 쌓고 서로 걱정하고 위로를 주고받는 것은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우리만의 문화다. 특히 ‘식구’라는 단어의 한자 뜻에서 알 수 있듯이, 함께 밥을 먹는 것이 가족이다. 그래서 나는 바쁘다는 것을 핑계로 가족의 식사를 모른 척할 수가 없다. 비록 함께 먹을 수 있는 시간은 많지 않지만 내가 차려줄 수 있을 때는 되도록 가족을 생각하며 밥을 차려주고 싶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새벽에 영어 오디오북을 틀어놓고 섀도잉을 하면서 남편이 먹을 아침거리를 신나게 준비한다. 베이컨을 굽고, 좋아하는 계란 요리를 만들고, 우유와 오렌지 주스를 준비하고 과일과 토마토를 한가득 썰어놓는다. 어설프지만 정성을 가득 담아 차린 아침과 함께 하루를 시작할 남편을 생각하면 마음이 흐뭇하다.
그러고 보면 가족을 위해 밥을 차리는 건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좋으라고 하는 일인 것 같다. 내가 하면서 전혀 귀찮지도 고생스럽지도 않고 그저 기쁘고 즐겁고 흐뭇한 일.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은 수없이 많다. 그저 나에게는 그것이 밥으로 표현될 뿐이다.
 
“나는 워라밸이 모든 사람에게 꼭 필요한 건 아닌 것 같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 경우도 일을 하는 게 재미있는데 굳이 워라밸을 챙기느라 휴식이나 취미 생활을 찾아야 하는 게 부담스럽기도 해.”
“그래, 언니. 나도 사실 그렇거든. 나도 지금은 미래를 위해 공부에만 집중하고 싶어. 취미나 여행, 연애 같은 걸 다 하면서 일에서도 성공하기는 쉽지 않잖아. 평생을 일에만 매진하는 것도 생각해봐야겠지만, 엄마처럼 자기가 사랑하는 일을 잘해내려면 어느 한 시기에 집중적으로 헌신하는 게 필요한 것 같아.”
“엄마도 아빠도 각각 통역사와 성형외과 의사가 되기 위해, 20~30대를 공부와 일에 올인해서 얻어낸 거라고 생각해. 워라밸을 휴식과 충전에 쓰는 것이 누군가에겐 건강한 삶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일 수도 있지만, 자기 분야에서 최고가 되고 싶은 사람, 성공하고 싶은 사람에게는 잠깐 미뤄두는 것도 필요할 수 있어.”
딸들의 대화를 들으면서 나도 워라밸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다. 사실 나는 지금까지 살면서 일 이외에는 별다른 욕구를 가져본 적이 없다. 아이들을 키울 때 잠이 모자라서 잠을 좀 실컷 잤으면 하고 바랐던 적은 있지만, 흔히들 말하는 것처럼 한달만 아무 일도 안 하고 쉬고 싶다든지, 세계여행을 하면서 느긋하게 살고 싶다든지, 골프나 요가 같은 운동을 하고 싶다는 그런 욕구를 가져본 적이 없다. 내 생활의 중심은 늘 일이었다. 일을 끝내고 약간의 여유 시간이 주어지면 일을 더 잘하기 위해 영어 공부를 했고, 그러고도 남는 여유 시간이 있다면 가족을 위해 썼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얻은 여가를 어떻게 활용할지는 전적으로 개인의 선택이다. 정말로 나머지 시간을 가족과 함께 보내거나 휴식, 취미생활로 보내고 싶은 사람도 있겠지만, 나처럼 오히려 그 시간을 일을 위해 투자하면서 보내고 싶은 사람도 있을 수 있다. 내가 일을 더 잘하기 위해 영자신문을 읽고 영어소설을 오디오북으로 들으며 끊임없이 공부하는 것처럼, 여가를 이용해 외국어 공부를 하고, 필요한 자격증을 준비하고, 더 좋은 직장으로 옮기기 위해 자기계발 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결과에 대해서도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휴식하고 영화 보고 여행 가는 것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은 여가가 주는 삶의 기쁨을 생생하게 만끽할 것이다. 계획하고 준비한 사람들은 반드시 결과로 증명해낼 것이다. 그럴 때 자기발전을 위해 노력한 사람을 향해 기쁘게 박수를 쳐줄 자신이 있다면, 나는 휴식과 재미를 선택하는 삶은 충분히 가치롭다고 생각한다.
 
내가 30년이 넘게 통역을 하면서 만났던 모든 성공한 사람들은 다들 자발적 워커홀릭이었다. 그들은 남들보다 훨씬 이른 시간에 하루를 시작해서 황소처럼 일한다. 이들은 쉬는 시간에도 결코 쉬지 않는다. 복잡한 머리를 정리하고, 전문가에게 조언을 구하고, 더 좋은 아이디어를 찾아 헤맨다. 잠을 줄이고 줄여서 더 많은 일을 해내려고 애쓴다. 그렇게 일 중심으로 살아왔기에 그 위치에 오른 것이다. 워라밸을 다 챙기며 살았다면 결코 최고의 자리에 오르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학교에서 제자들을 통해서도 이것을 확인한다. 통역사 공부를 하면서 취미와 연애를 절대로 포기 못하는 학생들이 있고, 모든 걸 다 포기하고 통역사 공부에만 올인하는 학생들이 있다. 그 결과는 불과 반년이면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당연히 공부에만 올인한 학생들이 단어도 표현도 훨씬 더 많이 알고 동시통역 실력도 쑥쑥 는다. 이런 학생들이 졸업시험도 무난히 통과하고 곧바로 국제회의 통역사로 뛰어들어 활발히 일한다. 워라밸을 꼬박꼬박 챙기면서 쉬엄쉬엄 공부한 학생들은 결국 통번역 실력이 뒤쳐지고, 졸업시험에서도 수차례 떨어지고, 정식으로 국제회의 통역사로 일하지 못하고 저가 통번역 시장에 자리 잡게 되는 경우가 많다.
과정이 있으면 반드시 결과가 있기 마련이다. 나는 자신에게 꼭 성취하고자 하는 목표가 있는데도 마냥 즐기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매일 저녁 6시에 칼퇴근해서 친구와 만나 영화보고, 집에 와서 잠을 충분히 자고, 주말에는 캠핑을 가고, 휴가기간에 해외여행을 다녀오는 삶을 누구든 동경할 것이다. 그러나 그 이상으로 더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고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가 되는 삶을 동경한다면, 워라밸을 더 배우고 능력을 키우는 데에 써야 한다.
최고에게는 취미도 휴식도 없다. 그리고 최고는 취미와 휴식으로 가득 찬 워라밸 없이도 충분히 행복하다. 일이 주는 도전, 승부욕, 성취, 이런 것들이 어떤 휴식이나 취미보다도 훨씬 큰 짜릿함을 주기 때문이다.
 
나는 어릴 적부터 일찍 자고 동이 트기 전에 일어나는 습관이 있다. 새벽 4시경이면 저절로 눈이 떠진다. 어릴 적에 새벽마다 일어났던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째는 사과가 먹고 싶어서였다. 70년대에는 과일이 흔치 않았다. 그래서인지 어머니는 사과를 늘 박스로 사서 2층 다락방에 올려두고 조금씩 꺼내 나눠주셨다. 삼형제가 나눠 먹기에는 너무 적은 양이었다. 나는 사과를 워낙 좋아해 더 달라고 졸랐지만 어머니는 단호하게 안 된다고 하셨다. 그래서 다들 잠자는 새벽에 다락방에 몰래 올라가 먹고 싶은 사과를 상자에서 꺼내 야금야금 먹었다.
두 번째 이유는 동화책을 읽고 싶어서였다. 어머니는 내가 공부보다 동화책에 빠져 있다며 책 읽는 걸 싫어했다. 책을 읽고 있으면 늘 그 시간에 공부를 더 하라며 혼을 냈다. 어떻게 하면 엄마에게 혼나지 않고 책을 읽을까 궁리하다가 새벽에 일어나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엄마가 잠든 시간에 몰래 일어나 다락에 올라가 사과를 먹으며 읽고 싶은 책을 실컷 읽는 새벽이 나에게는 하루 중 가장 기다려지는 시간이었다.
이때 생긴 습관으로 나는 계속 일찍 잠들고 새벽에 일어났다. 브라질에서 살 때에도 홀로 새벽에 일어나 거실의 창문을 열고 하늘이 푸른색에서 노란색으로 서서히 바뀌어가는 모습을 홀린 듯 쳐다보곤 했었다. 한국으로 돌아와 대학 입시를 준비하면서도 나는 식구들 중 제일 먼저 일어나 수학 문제를 풀고 역사 교과서를 읽었다. 대학에 다니면서도, 통역대학원을 다니면서도 새벽은 늘 나의 것, 나만의 시간이었다.
 
일찍부터 새벽형 인간이 된 덕분에 통역사로 일하면서 덕을 많이 봤다. 국제회의나 기업회의는 대부분 아침 일찍 시작한다. 아침 7시에 조찬모임부터 시작하는 경우도 상당히 많다. 모임 시작 최소 한 시간 전에 도착하는 것이 원칙이니 기본적인 채비부터 회의 준비까지 다 하고 가려면 새벽에 일어나는 것이 유리하다. 주변 통역사들 중에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을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꽤 있는데, 나는 어려서부터 새벽에 일어나는 습관을 들여놓은 덕분에 훨씬 여유 있게 준비할 수 있었다.
새벽에 일어나는 가장 큰 장점은 하루가 길다는 것이다. 보통 사람들이 7시에 일어나는데 나는 새벽 4시에 일어나니 남들보다 하루를 몇 시간이나 더 쓸 수 있다. 그리고 새벽의 서너 시간은 정말 고요한 시간이기 때문에 집중이 잘돼 굉장히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조간신문도 읽고, 영자신문도 읽고, 회의준비도 하고, 수업준비도 하고, 오디오북을 들으며 아침 식사를 먹고 남편 식사까지 준비할 수 있다. 그러고도 머리를 감고 화장할 시간이 충분하다.
또 한 가지 장점은 긍정적인 사고를 갖게 되는 것이다. 동이 터오는 세상을 보고 있으면 “나는 할 수 있다”는 긍정의 생각이 절로 든다. 어둑했던 하늘이 태양빛으로 조금씩 환해지는 것을 보고 있으면 나의 목표와 계획이 떠오르고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마음이 벅차오른다. 실제로 2021년 MIT-하버드 브로드연구소에서는 평소보다 한 시간 더 일찍 일어나는 것만으로도 우울증 위험이 23퍼센트 감소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Wake up early everyday so that while others are still dreaming, you can make your dreams come true.”
(일찍 일어나면 남들이 여전히 꿈을 꾸고 있을 때 당신은 꿈을 이룰 것이다.)
 
나는 영어의 ‘리질리언트’(resilient)라는 표현을 좋아한다. 우리나라에서는 회복탄력성이라는 뜻으로 번역되기도 했다. 원래는 물건이 휘거나 늘어난 후 본래의 모양으로 잘 돌아가는 성질을 가질 때 쓰는 표현인데, 정신적 쇼크나 상처, 불쾌한 사건이 일어난 후 빠르게 회복하는 사람에게도 이 형용사를 쓴다. “She is resilient”라고 말하면 “그녀는 잘 회복해요” 혹은 “그녀는 잘 극복해요”라고 번역할 수 있다.
30년 넘게 통역을 하면서 내가 큰 무리 없이 지내올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회복탄력성을 잘 발휘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오늘 있었던 일을 별로 마음에 담아두지 않는다. 아무리 나쁜 일이 있었더라도 바로 잊어버리고 누군가로 인해서 화가 나거나 속상해도 바로 잊어버린다. 그 대신 지금 해야 할 일, 내일 할 일에 집중한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크게 스트레스가 없다. 동료 교수들, 선배, 후배, 제자 등 모든 사람의 장점만 보고 단점은 마음에 담아두지 않는다. 클라이언트 관계자들, 에이전시 직원들과도 대체로 좋은 관계를 유지한다. 가끔 어떤 일이 발생해서 갈등이 생기기도 하는데 나는 내가 잘못한 것이면 진심으로 사과하고, 되도록 양보하고, 좀 손해를 보는 것으로 끝낸다. 불합리한 요구를 하는 사람에게도 그 자리에서는 그냥 사과한다. 그리고 다시 함께 일하지 않는 것으로 마무리를 짓는다. 항상 좋은 일만 기억하고 늘 감사하며 산다. 공부할 자료가 너무 많아 힘들 때는 오히려 이렇게 중요한 행사 통역을 맡겨준 고객사에게 감사하며 행복한 마음으로 공부한다.
 
내가 이렇게 많은 일을 하면서도 스트레스가 많지 않고 ‘리질리언트’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결코 내가 강한 멘털을 타고났기 때문이 아니다. 멘털이 강해서가 아니라 멘털을 지탱해주는 기반이 튼튼하기 때문이다. 늘 감사하는 마음, 좋은 관계, 그리고 평범하고 단순한 일상이 있어서다.
정말이다. 내가 이렇게 세상 풍파에 시달리면서도 스트레스는커녕 오히려 행복을 느끼며 살고 있는 것은 내 뒤에 나를 이해해주는 동료들과 든든한 가족이 있고 매일 반복하는 소중한 일상이 있기 때문이다. 세상이 두 쪽이 나도 절대로 변하지 않고 내 곁에 있어줄 사람들, 내가 끝까지 지켜야 할 것이 있다는 사실이 나를 강하게 만든다.
그래서 나는 일을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들수록 내 주변, 내 가족들과의 관계가 소중하게 다가오는 것을 느낀다. 만약 이들과의 관계에 금이 가서 내 일상이 깨져버린다면 나는 결코 지금처럼 왕성하게 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바쁜 와중에도 내 일상과 나를 둘러싼 사람들에게 공을 들인다. 공을 들이는 데에 꼭 시간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잠깐이라도 눈을 맞추고 환히 웃어주면 된다. 상대방이 하는 얘기를 건성으로 듣지 않고 마음으로 들어주면 된다.
나는 저녁에 통역 준비로 정신이 없어도 남편이 집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들리면 하던 일을 모두 멈추고 남편을 맞이하기 위해 마롱이와 함께 현관으로 달려나간다. 마롱이를 데리고 산책을 다녀온 남편이 집 근처에서 내가 좋아하는 커피를 사 와서 공부하고 있는 내 책상 위에 살며시 올려주면 나는 고마움을 격하게 표현한다. 이런 것들은 불과 30초에서 1~2분 정도면 충분하다. 하지만 부부 사이를 정감 있게 만들어주고 나의 하루를 지탱하게 만드는 어마어마한 에너지가 된다.
딸들에게도 나는 똑같이 한다. 나는 단 한 번도 딸들에게 엄마가 바쁘니까 방해하지 말라는 말을 해본 적이 없다. 어릴적 같이 살 때는 내가 통역 준비를 할 때 아이들은 늘 내 옆에서 공부를 하거나 책을 읽었다. 아이들이 공부가 막혀서 질문을 하면 나는 꼭 대답을 해줬다. 방학 때 집에 오면 저녁을 먹고 단 10분이라도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 내가 통역 준비를 시작하면 아이들은 내 옆에서 어렸을 때와 똑같이 책을 읽거나 공부를 시작했다. 딸들이 학교를 다닐 때 방학에 한국에 나오면 함께 책을 싸 들고 카페로 자주 갔었다. 스타벅스의 커다란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음료수와 샌드위치, 케이크 등을 사서 공부를 하면서 하루 온종일을 보냈다. 각자 자신의 일을 하지만 중간중간 지칠 때마다 서로 격려하고 응원하면서 한 공간에 함께 있는 특별한 시간을 보낸 것이다.
 
주변에서 일을 열심히 하면서 인간관계까 나빠지는 사람을 간혹 본다. 더 빨리 성취하려는 마음에 이기적으로 행동하고 함부로 말해 상처를 준다. 심지어 가족을 너무 당연하게 여기고 소홀하게 대한다. 그렇게 해서 더 빨리 높은 위치에 올라간다 한들 과연 행복할까? 함께 마음을 나눌 사람이 한 명도 남아 있지 않다면, 성공이 무슨 소용일까.
일을 더 잘하고 싶은 사람들, 성공을 꿈꾸는 사람들이 이것을 절대로 놓치지 말았으면 좋겠다. 우리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은 성공보다도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단단한 관계다. 그 뿌리를 튼튼하게 만들어야 일도 잘할 수 있다. 완성된 관계는 없다. 당연한 관계도 없다. 하루하루 공을 들이고 보살피며 키워나가야 한다. 바쁘더라도 그들을 위해 잠시 일을 멈추고 차를 끓이거나, 눈을 맞추고 이야기를 하거나, 함께 산책을 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그것은 일에 쏟아야 하는 시간을 빼앗기는 것이 아니라 일에 필요한 에너지를 얻는 것이다.
매일 새벽에 일어나 신문을 보는 것, 남편을 위해 아침을 차리는 것, 저녁 찬거리를 걱정하는 것, 마롱이와 함께 산책하는 것, 시어머니와 친정어머니에게 안부 문자나 전화를 드리는 것, 아이들과 카톡으로 수다를 떠는 것..., 이런 작은 일상들이 통역사 임종령을 지탱해주는 힘이다.
 
“There was nothing inherently special about it, but that’s what made the whole thing so memorable.”
(특별할 것이 전혀 없지만 그래서 모든 것이 더 기억에 남는다.)
소설가 에마 이글스턴의 <탈출>이라는 소설에서 본 글이다. 우리가 갖고 있는 모든 소중한 추억들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한 평범한 일상이다. 더 많이 아끼고 사랑하며 살기를, 흔들림 없이 일상을 지키며 살기를, 오늘도 새벽 동이 트는 모습을 바라보며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