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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사] 배움이 습관이 될 때(사이토 다카시)

아름다운 존재 2023. 11. 29. 16:10

즐기는 것이 두뇌훈련 제1의 규칙이다.

 

분명 나 혼자서는 꾸준히 못할 테고, 선생님께 배우러 다니는 것도 오래 가지 못할 것 같았다. 평소 나 자신을 돌아봤을 때, 조금 호사스럽지만 방문 레슨을 받는 게 효과적일 듯했다. 3주에 한 번, 한 시간 동안 방문 레슨을 받았다.

당시 내 목표는 '잘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하는 것'이었다. '이 곡을 완벽하게 연주해보자', '발표회까지 앞으로 며칠 남았으니 틀리지 않게 연주하자'라는 목적 같은 건 처음부터 없었다. 기를 쓰고 하면 싫증이 날 게 분명하니 너무 자주, 오래 연습하지 말고 오로지 3주에 한 번, 한 시간만 레슨을 받자는 다짐이었다.

그것이 효과를 발휘했는지 첼로 연주는 내 삶에 완전히 한 부분이 되었다. 전에는 상상도 하지 못한 '음악 하는 나', '악기 연주하는 나'라는 전혀 다른 정체성이 생겼다. 벽을 깨니 생각지도 못한 긍정적인 방향으로 세계가 확장되었다.

 

지적 능력은 단련하는 것이다. 사람의 지능이나 지적 능력은 타고난 것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절대 아니다. 후천적으로도 얼마든지 지적 능력을 높일 수 있다. 오히려 타고난 지적 능력보다 후천적으로 발달하는 비중이 더 클 것이다.

흔히 천재라도 불리는 사람들은 자신을 성장시키는 방법을 일찌감치 터득한 이들이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도 처음부터 위대한 연구를 했던 것은 아니다. 매일 한계에 다다를 때까지 머리를 쓰고 공부를 계속하는 동안 두뇌가 발달한 것이다. 사람의 지적 능력은 후천적인 노력으로 만들어진다.

 

지적 능력의 단련 주체는 살아 숨 쉬는 인간이다. 지知란 인간이 소유하고 있을 때에만 비로소 효용이 있다. 지 자체만으로는 존재하지 못한다. 따라서 인간은 스스로 알고 싶은, 꼭 그만큼의 지적 능력만을 습득한다.

 

정체성이란 '어떠한 자격으로 산다는 의지로 가득 찬 마음'을 뜻한다. 정체성이 확고하면 공부 목적이 분명해진다.

 

지를 얻느냐 얻지 못하느냐는 자신이 어떤 나무를 갖고 싶어 하는가에 달렸다. 열매(지)와 나무 몸통(정체성)의 관계로 공부에 대한 사고방식을 전환하면 흙, 줄기, 가지를 손질하는 일 같은 소소한 작업을 반복하더라도 열중하게 된다. 시험, 진학, 취직, 승진, 임금 인상 등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에만 정신이 팔려서는 안 된다. 눈을 크게 뜨고 공부의 목적과 의의를 다시금 확인하는 일에서부터 지적 능력의 단련은 시작된다.

 

정체성을 확고히 하는 일이야말로 공부 의욕을 불러일으키는 일

 

사람의 일생에는 교양과 지를 동경하는 시기가 있어야 한다. 그 시기는 이왕이면 조금이라도 빠른 것이 좋다. 원래대로라면 학창 시절이어야 한다. 모든 것을 배우기에 충분한 시간과 장소가 준비되어 있기 때문이다. 학생 때는 지를 즐기고 신장하는 환경이 마련돼 있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내던져져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은 불합리이자 부조리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인간은 스스로 미래의 행동을 선택한다. 또 그 선택에 의해 향후 자신의 모습을 바꿀 수 있다. 바로 이 '선택'이라는 행위에 사람의 미래가 달려 있다.

 

'신경 쓰이는 부분에 주목해 질문하는 것'이 바로 공부의 요령이다.

"이 부분이 좀 이상하네, 왜 그럴까?" 하고 어색한 점을 찾아냈다면 우선 그 부분에 주목해 질문해보라. 한 발짝만 들여놓으면 그 안에 또 다른 무언가가 있음을 알게 된다. 산길을 가다 커브를 돌면 다음 커브가 보이는 것처럼 새로운 질문이 생겨난다. 그 다음은 반복이다. 끊임없이 "어째서? 왜 그럴까?"라고 질문을 던지고 세세한 부분까지 계속 파고들어라.

 

좋은 교사가 되려면 의문을 품게 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단순히 지식만 전달해서는 지루한 수업으로 전락하고 만다. 거꾸로 말해서 재미있게 공부하고 싶다면 여러 가지 세세한 부분을 탐색하고 스스로 질문을 만들어야 한다.

 

그 위대함의 근본에는 의문을 제기하는 능력이 있었다. 배움에는 스스로 하는 질문이 중요하다.

 

공부를 시작하기 전에 멀리 내다보고 큰 흐름의 본질을 파악하는 일이 우선이다.

 

자신의 의사를 제대로 이야기하고 상대의 이야기를 제대로 들을 줄 아는 능력이야말로 '깊이 있는 교제 능력'이다. 이 능력이 있으면 누구와도 커뮤니케이션을 잘할 수 있다. 자신의 말을 잘 경청하는 사람에게는 누구나 좋은 이야기를 해주고 싶기 마련이다.

훌륭한 사람은 멀리 내다볼 줄 아는 눈을 가졌다. 깊이 있는 교제를 통해 자신도 그와 같은 거시적 안목을 키울 수 있는 것이다. 사귀는 상대는 누구라도 상관없다. 나보다 좀 더 앞선 사람이라면 자주 인사해서 안면을 익히고 좋은 이야기를 들어라. 유익한 충고나 힌트를 얻었다면 일단 믿고 당분간 실천해보라. 이것이 자신이 크게 성장하는 요령이다.

 

사귀는 시간의 길고 짧음은 중요하지 않다. 설령 한순간의 교제라 하더라도 서로에게 깊이 영향을 미치는 친분이 중요하다.

 

사람과 깊이 사귈 때 중요한 것은 거리감이다. 깊이 사귀되 상대로부터 배운 것을 혼자 실천해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상대를 한걸음 떨어진 곳에서 바라보고 항상 나 자신은 자유로운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대상에게 너무 심취한 나머지 그 사람 말밖에 안 듣는다거나 그 사람 말이면 무조건 따르는 일은 경계해야 한다.

 

사숙(직접 가르침을 받지는 않았으나 마음속으로 그 사람을 본받아서 도나 학문을 배움)이라는 말처럼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관계가 적당하다.

 

독립적이지 못한 사람은 반드시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려 든다. 남에게 의지하는 사람은 사람을 두려워한다. 사람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남에게 아첨한다. 시키는 대로 하는 사람이 되고 만다.

 

자신의 미숙함을 알고 사치하지 않으며 오로지 공부하는 마음을 간직한 사람

 

가치가 있다면 아무리 시간이 걸린다 해도 아까워하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멀리 돌아가는 듯 보이는 길이야말로 때로는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자산이 된다. 오히려 쓸모없어 보이는 것 속에 다른 곳에서는 얻지 못하는 풍요로운 지知가 들어 있는 경우가 많다. 지름길이라는 쉬운 길을 피하고 정도를 걷는 것이 결국에는 현명한 방법이다.

 

내 흥미는 '두뇌와 지력을 어디까지 단련하는가?'에 있다. 아무리 요약, 줄거리, 지름길로 속도를 내봐도 두뇌는 절대로 단련되지 않는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일부만이라도 좋으니 진정한 것에 꼼꼼히 몰두해야 공부가 된다.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대상일지라도 우선은 물고 늘어져보는 데 의의를 둔다. 복권에 당첨되고 싶다면 복권부터 사라는 말이 있다. 무슨 일이든 시도해봐야 뭐라도 생긴다. 도토리를 깨물어보고 딱딱하다고 실감만 했다 해도 참된 배움이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본질을 실감하기 위한 대상으로, 예컨대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읽어보는 건 어떨까? 이 책은 난해하기 짝이 없다. 너무 치밀한 문장이라서 도중에 읽기를 포기하고 싶어질 정도이다. 무엇을 말하는지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이게 대체 무슨 소리야?' 하고 머리를 쥐어뜯는 광경이 눈앞에 선하다. 그럴 때에는 여기저기 책장을 넘기며 띄엄띄엄 읽어도 좋다. 우선은 모르는 것을 만난다는 데 의미가 있다. 무거운 아령을 들어 올려야 근육이 단련되듯 난해함에 맞서야 두뇌가 단련된다.

한 번밖에 들어 올리지 못했던 아령도 단련을 통해 두 번을 들어 올릴 수 있다. <자본론>도 일주일이고 한 달이고 열중하다 보면 조금씩 읽기 쉬워진다. 1년을 읽는다면 크게 달라질 것이다. 3년 정도 지나 다시 읽어본다면 스스로 놀랄 만큼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매우 난해했던 글이 고학년이 되자 어려움 없이 읽히던 경험이 있지 않은가? 어려운 일도 단련하면 할 수 있게 된다. 물고 늘어져라.

 

공부하는 즐거움은 사실 무지를 간직하는 데 있다.

 

보통 사람은 생각해야 할 일이 많으면 마음이 무거워진다. 하지만 우수한 사람이나 잘난 사람은 문제를 많이 안고 있어도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 문제가 많을수록 문제 해결을 위한 힌트도 늘어나기 때문에 오히려 새로운 문제가 생기는 걸 반긴다. 우수한 사람은 새로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존의 문제 해결법을 적용할 줄 안다.

해결해야 할 문제를 5개 가진 사람과 50개 가진 사람 중에서 문제를 더 잘 해결하는 사람은 당연히 50개를 가진 사람이다. 이것은 저것의 힌트가 되고 그것은 이것의 참고가 되는 식으로 정보는 해결에 도움을 준다. 문제를 5개 가진 사람보다 50개 가진 사람에게 정보가 더 많다. 문제가 적으면 갖고 있는 힌트끼리 상호 연관될 가능성이 적다. 반대로 문제가 많을수록 많은 힌트를 찾게 된다. 그러니 스트레스로 괴로워할 것도 없다.

 

적성에 맞고 맞지 않고는 머리의 좋고 나쁨과는 관계가 없다.

 

공부란 모든 육체를 써서 생각하는 것이다. 직접적으로는 두뇌와 관련된 문제지만 진짜 공부는 역시 신체감각과 무관하지 않다. 깊이 이해했을 때 '뱃속으로 아는' 것 같지 않은가? 머리가 아니다. 그래서 '가슴에 와닿다', '속 시원히 이해하다', '뼛속에 새기다' 같이 신체감각을 이용한 다양한 표현이 탄생한 게 아닐까.

 

가장 무서운 것은 의문을 갖지 않는 것이다.

 

감동이란 자신의 마음 깊은 곳에서 뭔가를 느끼고 그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다. 대상에게 이끌려 마음이 뭔가를 느끼고 움직이면 행동이 변한다. 진정한 의욕이 솟아나고 그것이 두뇌를 단련시킨다.

 

자기를 성장시키고 싶다면 솔직해져야 한다.

 

추리력이란 맞추는 능력만을 의미하지 않고, 계속 스스로 질문을 찾고 '이것인가?', '저것인가?' 하고 다음 일을 헤아리는 것을 말한다.

 

어쨌든 가설이 출발점이다. '이건 이렇게 하면 이렇게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하고 실험해보는 발상이 필요하다.

 

어떤 일에 대해서든 가설의 씨앗은 무한히 존재한다. 공부가 힘들다고 느껴질 때 자신에게 채찍질을 가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이렇게 하면 즐거워질까?'. '저렇게 하면 재미있을까?', '덜 지루하게 하는 방법은 뭘까?' 하고 궁리하고 가설을 세워보는 것이 중요하다. 재미없는 일을 받았다고 "이런 일은 의욕이 나지 않아"라고 불평만 하면 더 재미없어진다. '어떻게 하면 재미있어질까?', '이 일은 이렇게 하면 가치가 올라가지 않을까?'라고 가설을 만들어보라. 이를 얼마나 잘하는지가 가설력이다.

 

헤이안 시대(794-1185)에는 사람을 괴롭히는 귀신이 나타나면 "훠이, 훠이, 물러가라"라며 굿을 하거나 주문을 외는 일이 고작이었다. 그 이상으로 사고가 발전하지 못했다. 두렵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상황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기만 할 뿐 두뇌 회전이 멈춘 것이다. 그러나 지금, 21세기를 사는 사람들은 이제 매사에 과학적인 가설을 세울 줄 안다. 당연히 '귀신은 그저 마음이 만들어낸 환영이 아닐까?'라고 생각하는 시대이다.

지금까지 주어진 대로 멍하니 일이나 공부를 해온 사람은 자신의 모든 활동에 대해 가설을 세우는 습관을 들여야 할 것이다.

 

자신의 지식을 대화 흐름이나 상대에게 알맞고 흥미로운 형태로 인용할 줄 아는 사람이 교양 있는 사람이다.

 

일반적인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는 자신이 가진 지식을 그대로 드러내서는 안 된다. 대화의 흐름에 맞춰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재구성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진정한 교양인이란 눈앞에 있는 상대를 위해 맞춤형 정보를 제공할 줄 아는 사람이다.

 

그러려면 책을 읽고 내용을 외울 정도여야 한다. 전문을 다 외우지는 못해도 마음에 드는 부분만이라도 노트에 적어두고 가끔 펼쳐보면서 암기해보자. 그러면 평소의 대화에서도 자연스럽게 인용할 수 있다. 교양이란 암기하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무리 공부를 많이 하고 지식이 많다 해도 이를 대화에서 살리지 못한다면 엄청난 손해이다.

 

'이 대화에는 이 내용이 최적'이라는 취사선택이 필요하다.

 

나는 학창시절 테니스 코치로 오랫동안 지냈는데 연습하는 선수에게 "무슨 생각을 하고 있지?"라고 종종 물었다. "특별히 생각하는 게 없습니다"라는 대답이 돌아올 때면 "생각이 없으면 절대로 잘하지 못한다. 오른쪽 팔꿈치든, 공의 착지 타이밍이든, 발의 중심이든 어디에 주목할지를 정하고 연습해라. 자, 다음 열 개의 공은 발의 중심에 집중해서 연습해보자"라고 조언했다.

결과를 의식해서 '무엇을 위해 연습하는지' 명확하게 파악하고 얻고자 하는 결실에 대해 끊임없이 상기하는 것이다. "열 번 중에 가장 잘한 것은 몇 번째인가?"라고 물어서 "세 번째와 네 번째입니다"라는 대답을 들으면 "그 느낌을 잘 기억해두도록!"이라고 지시했다. 효과적인 발의 중심에 대한 감각을 얻은 후 이를 100~200회 연습하면 대부분 자연스럽게 자리가 잡혔다.

 

적절히 질문함으로써 상대가 말로 정리하게 하여 의식을 일깨워주는 게 좋다.

 

어떤 공부든 상관없다. 원전이 어렵다면 해설서나 가벼운 관련 서적도 좋다. 자신에게 맞는 형태를 도입하면 2주 만에 많은 것을 말할 수 있다. '말할 만한 두뇌'가 되면 자연히 말하고 싶어진다. 2주간 빅뱅에 흥미를 갖고 공부하다 보면 누구를 만나든 빅뱅에 대해 이야기하게 될 것이고 듣는 사람도 재미있어할 것이다. 그리고 2주일이라는 기한이 지나면 '빅뱅 두뇌'를 다음 2주 동안은 전혀 '다른 두뇌'로 교체하는 것이다. 이렇게 관심사를 옮겨 가며 탐구하는 것도 공부 방법 중 하나이다.

 

중요한 것은 흡수한 지식을 활용해 현실의 구체적인 생활 속에서 판단을 내릴 줄 아는 능력, 즉 응용력이다. 그리고 가능하며 전문 분야 외에도 폭넓은 지식이 있어야 한다. 그런 사람이 진정한 교양인이다.

진정한 교양인은 굳이 드러내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지식이 배어 나온다. 사소한 일상의 언동 하나하나에 공부한 성과가 배어 나와 주위에 전달된다.

 

자신이 깊이 있게 추구하는 공부는 몇 년이든 계속하면 된다. 그것과는 별도로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몰두할 대상을 차례차례 바꾸는 2주 공부법'을 통해 지식 폭을 넓히고 깊이를 심화시키는 게 중요하다.

 

새로운 것을 흡수하라. 이것은 원래 하던 공부에도 분명 상승효과를 가져다줄 것이다.

 

지적 능력과 스포츠 능력도 마찬가지이다. 단련하면 신장한다. 훌륭한 트레이닝 방법을 습관화한다면 누구라도 강력한 지적 능력을 자기 것으로 만들게 된다.

 

'쓰기 위해 행동'하게 된다. 수첩에 충실하게 적으려고 행동이 변화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