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 전파자들이 이용하는 승자와 패자라는 이분법에 속지 말자. 우리 삶은 그렇게 간단한 대립 구도로 설명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삶의 방식은 매우 다양하고, 모순투성이기도 하며, 그래서 흥미롭다. 무엇보다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사실은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 ‘성공한 인생을 살아간다’는 뜻이 아니라는 점이다.
인생은 승패를 나누는 경쟁이 아니다. 그건 성공을 팔아 돈을 버는 사람들이나 들먹이는 불손한 말이다. 자기 생각이 분명하고, 내면의 힘을 믿는 사람들은 자신의 명함을 금박으로 치장하려는 생각 따위는 하지 않는다.
“우리는 직감적으로 알고 있다. 삶에서 가장 멋진 것은 상품이 아니며 인간관계, 경험, 의미 있는 일이라는 사실을.”
-그레이엄 힐, 기업가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더 깊고 강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바람, 남에게 칭찬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행복해지기 위한 삶을 살고 싶다는 바람, 타인보다 월등하게 높은 곳에 존재하는 게 아니라 땅에 발을 딛고 서서 남들과 더불어 잘 살고 싶다는 바람
실패하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에 실패의 영역이 점점 더 넓어지고 깊어진다.
성공을 위해 과도한 목표를 바라보며 달리는 사람은 충만한 삶을 누리지 못한다. 오히려 삶을 살면서 기진맥진해 버리기 쉽다. 그래서 겸손하게 삶을 사는 사람은 외적인 성공에 지나치게 매달리지 않는다. 한 인간의 가치란 성공과 목표로 측정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겸손은 독립되어 있다는 표시’라는 점이다. 겸손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박수갈채와 최고라는 평가를 수집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이들은 자신들의 가치를 잘 알고 있다. 따라서 이를 외부로부터 인정받아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히지 않는다.
반대로 자신의 탁월함을 드러내고 과시하는 사람, 사회적 지위로 자신을 장식하는 사람은 그렇게 해야 할 이유가 절실한 사람들이다. 그와 같은 연출이 없다면 존재감을 발휘할 수 없다는 불안, 자신의 재능을 들이대지 않으면 아무도 알아주지 못할 거라는 걱정이 그들을 흔들고 있기 때문이다. 겸손한 사람도 물론 칭찬과 인정을 받으면 기뻐한다. 하지만 그것이 그들을 바꾸지는 못한다. 타인의 평가가 마음에 든다면 그건 그냥 마음속에 품고 있을 뿐, 그들은 스스로 평가하는 것이 더 중요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겸손함은 타인을 배려하는 태도인 동시에 자의식을 보여주는 가장 효과적인 방식인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감정이 제멋대로 표출되도록 하지 않는다. 자신의 감정을 타인이 지배하도록 두는 게 아니라 스스로 다스리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있는 그대로의 나에 대해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느냐 하는 점이 중요하다. 철학자 빌헬름 슈미트는 이를 “자신과 친해지기”라고 표현한다. 자신과 친해지려면 자신의 한계를 알고, 자신에게 과도한 것을 요구하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 자신을 신뢰할 수 있으며, 자존감도 안정된다.
“무능해도 정말 괜찮다. 나도 그렇고, 내가 아는 모두가 그렇다.”
-스티븐 파일, <영웅적 실패에 관한 최우의 책>의 저자
타인의 판단에 의지하거나 좌우되지 않는다. 타인의 인정 없이도 자기 자신과 잘 지낼 수 있다.
다른 사람에게 아첨하며 특별한 인상을 주지 않아도 된다. 뽐내거나 화려한 겉치레를 할 이유도 없다. 오히려 그런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질 때, 당신이라는 사람이 더 빛날 수 있다.
사다리 위를 너무 성급히 오르려 애쓰다 소박하게 빛나는 당신의 모습을 잃지 않기를 바란다.
그 어떤 사람도 당신을 소진시킬 권리는 없다. 당신은 비상시를 위해 에너지를 남겨둬야 하며, 그 누구도 당신이 비축해 둔 에너지를 함부로 가져가서는 안 된다. 사실 비상용 에너지의 본질은 가능하면 사용하지 않는 데 있다.
에너지를 비축하려면 스스로 독립성과 자주성을 지켜야 한다. 방해받지 않는 시간이 있어야 하며, 자신만의 자유 공간이 필요하다. 없으면 의도적으로 만들어서라도 말이다.
“나는 두려움이 별로 없었다. 왜냐하면 정치를 등산할 때처럼 했기 때문이다.
나는 한계를 넘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늘 비상용 에너지가 있었던 것이다.
내가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 처하더라도 누군가 나를 구출해 줘야 하는 상황을 만들지 않았다.”-하이너 가이슬러, 전 독일 기민당 사무총장
자신만의 에너지를 비축해 두려면, 스스로를 과대평가하거나 사람들로부터 과대평가 받는 상황과도 거리를 두는 게 현명하다. 사람들 앞에 내 모든 능력을 드러내놓기 바쁘게 내 비상 수단은 아무것도 남지 못하니까. 강해 보이려고, 능력이 많은 사람처럼 보이려고, 똑똑해 보이려고 당신의 에너지를 낭비하지 마라. 과장된 포장은 결국 벗겨지기 마련이다. 오늘이 아니더라도, 내일이 아닐지라도, 언젠가 그렇게 되는 것을 누구도 막을 수는 없다. 그러니 그저 단단한 땅 위에서 당신이 가진 보폭과 당신의 속도대로 걸어가기를 바란다. 당신이 가진 에너지를 비축해 두면서, 당신의 무기를 갈고닦기를 응원한다.
그저 내가 좋으면 그걸로 충분하다.
비싼 옷을 입으면 사람도 진짜가 될까? 고급 옷으로 치장하면 지위도 올라가는 걸까? 아니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가 더 중요하다. 스스로 진짜가 되지 못하면 아무리 비싼 옷도 소용이 없다.
애초부터 그 무거운 짐을 짊어지지 않는 사람도 있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물질적인 소유물을 쌓아두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하고 누리는 경험’이다. 그런 경험이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들고, 향유할 수 있게 해준다. 여기에서 향유라 함은, 스스로 선택한 검약과 노력, 결핍을 누리고 즐긴다는 의미다.
심리학자 볼프강 크뤼거는 “우정은 어려운 삶의 과제”라고 표현한다. 그러므로 우정이라는 관계에 너무 높은 기대를 하지 않는 게 좋다는 것이 그의 충고다.
아무리 가까운 친구라도 자랑을 떠벌리는 것은 좋지 않다.
인간관계에서 겸손이란, 모든 상황에서 세심함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이다. 우정은 말로 떠든다고 깊어지는 것은 아니다.
“당신이 존경할 수 없는 사람과는 절대 친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찰스 다윈, 생물학자
‘최고의 성과’만을 좇는 이런 현상은 ‘해내지 못하면 가치가 없는 거야’라는 생각에서 비롯된다.
겸손은 그와는 완전히 다른 길을 선택하는 것이다. 표면의 아래에 교묘한 속임수, 거짓말, 힘으로 위장한 약점이 감춰진 삶은 그들이 원하는 모습이 아니다. 그들이 보여주는 표면 아래에는 본질, 신뢰, 진지함이 숨어 있다. 겉으로만 반짝이는 것은 그들의 목표가 아니다. 단순한 수치만으로는 파악할 수 없는 능력이나 소질을 기르는 것, 그것이 진정한 그들의 목표다.
소박한 사람들은 자신이 받을 수 있는 것보다 적게 바라며, 심지어 자신의 몫보다 더 적게 가진다. 타인에 대한 존중의 표시이며 사람들과 더불어 사는 태도인 것이다.
흠이 없다는 것은 부담스럽고 때로는 위압적이다. 완벽할 수 없는 우리가 완벽을 추구한다는 것 자체가 지극히 부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럼에도 완벽을 추구하다 보면 경쾌함은 사라지고 지루함만 남는다. 원래 모든 일이란, 부족함이 존재할 때 비로소 흥미로워지는 법이다.
우리는 스스로의 특별함을 보다 자세하게 인식해야 한다. 우리가 삶으로부터 얻은 긁힌 자국들은 결코 흠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자신을 유일하고 특별한 존재로 만들어 준다. 무결점의 이상형에 상응하는 삶을 살거나 기존에 통용되는 목표나 기준들을 이어받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그런 삶은 우리를 풍요롭게 하는 게 아니라 제한하며, 우리 자신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데 방해가 된다. 성과를 내려고 스스로의 힘을 소진할 게 아니라 그 안에서 더 많은 것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그러니까 우리 자신의 유일무이한 삶을 살아야만 하는 것이다. 그럴 수 있을 때 삶은 비로소 행복하고 충만해질 수 있다.
“와비사비는 진짜인 모든 것에 다가간다. 왜냐하면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단순한 진실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이다.
어떤 것도 머물지 않으며, 어떤 것도 끝나지 않고, 어떤 것도 완벽하지 않다.”-리차드 R. 파웰, <와비사비 심플>에서
겸손을 선택할 수 있다면 당신은 자의식을 가지고 긴장하지 않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 눈에 띄지 않고 소박하지만 누구에게도 종속되지 않는 삶, 다른 사람의 기준과 요구에 내 행복을 걸지 않는 삶, 무엇을 할 것인지 스스로 결정하는 삶 말이다. 이는 자기 자신을 존중할 수 있느냐의 문제며, 내면의 힘과 독립성에 대한 표시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 내 삶의 기준을 정하는 일이다. 물론 이 기준도 변하지 않는 건 아니며 다른 사람의 영향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역시 내가 결정하는 것이다. 당신의 품위를 지켜주는 것은 바로 그 스스로의 판단에 달려 있다.
'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필사] 취향 육아(이연진) (0) | 2024.08.09 |
---|---|
[필사] 햇빛은 찬란하고 인생은 귀하니까요(장명숙) (0) | 2024.06.17 |
[필사] 미학적 인간으로 살아가기(최광진) (0) | 2024.06.10 |
[필사] 아이는 무엇으로 자라는가(버지니아 사티어) (0) | 2024.06.02 |
[필사] 나는 읽고 쓰고 버린다(손웅정) (0) | 2024.05.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