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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사] A4 한 장을 쓰는 힘(안광복)

아름다운 존재 2025. 1. 10. 10:42

읽은 내용을, 나아가 자신의 체험을 자기 말투와 생각으로 정리하여 영혼에 심는 능력

 

영혼의 근육을 제대로 기르려면 글쓰기에 ‘중독’되어 즐기는 수준이 되어야 한다.

 

좋은 욕구도 훈련해야 자라난다. 나에게 필요한 책은 무엇인지, 어떤 독서 기록이 의미 있는지를 알려면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수없이 되묻고 곱씹어보라. 이렇게 단련된 욕구는 독서 의욕과 쓰고 싶은 마음을 이끌어낸다. 이때에만 ‘긍정적 중독’이 일어날 테다. 진정한 독서가는 아무런 보상이 없어도 책 읽기를 즐긴다. 위대한 작가에게 쓰기는 그 자체로 쾌감을 주는 활동이다. 꾸준히 읽고 독서 노트를 남기는 ‘습관’의 뿌리는 긍정적 중독에 있다.

 

김열규 교수는 자신의 공부론을 이렇게 결론 내린다. “다른 이의 보호 없이는 생존조차 위태로운 존재로 이 세상에 태어나서 하나하나 나의 불완전한 부분을 채워가는 것, 그렇게 자연과 세계와 사물들을 이해하면서 전인적인 존재가 되어가는 것.”

 

연구의 가닥을 잡는 단계에서는 발품을 파는 노력도 빼놓을 수 없다. 숱하게 검색어를 입력하며 인터넷을 샅샅이 뒤져봐야 한다. 도서관이나 서점에 가서 관련 책들도 훑어보아야 한다.

거미가 만드는 실은 아주 가늘다. 거미는 이 실로 매미도 잡을 만큼 튼실한 거미집을 만든다. 자료를 찾는 일도 다르지 않다. 내가 찾는 모든 자료가 정답처럼 한 권의 책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경우는 없다. 여기 조금, 저기 조금.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자료들을 바지런히 모으다 보면, 어느새 ‘경탄할 만한 콘텐츠의 거미집’이 완성될 것이다. 필요한 정보를 캐내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어떤 책을 읽고 어떻게 써야 할지에 대해 가닥을 잡을 수 있다.

 

충분히 재운 생각은 다른 아이디어와 만났을 때 불꽃을 튀긴다.

 

창의적인 사람이 되려면 먼저 잘 버릴 줄 알아야 한다. 정리는 버리는 일이다. 잡다한 지식을 잔뜩 움켜쥐기만 해서는 자유롭게 생각을 펼치지 못한다. ‘망각’할 것.

 

프랑스의 대문호 오노레 드 발자크는 “잘 숙성된 주제는 제 발로 찾아온다”라고 말했다. 영국의 작가 월터 스콧도 고민이 있으면, “괜히 끙끙거릴 거 없다. 내일 아침 7시에는 다 해결될 거야”라고 스스로를 위안했다. 재워두는 시간이 충분할수록, 진정 나다운 생각들만이 영혼에 남게 된다.

 

창의적이 되려면 생각을 재울 줄 알아야 한다. “자꾸 들여다보는 냄비는 끓지 않는다.” 기발한 아이디어가 있으면 적어둔다. 그러곤 득달같이 매달리지 말고 뜸을 들이며 기다려라. 시간은 가치 있는 생각만을 추려내게 한다.

 

한 가지보다 여러 가지 일을 병렬적으로 진행하는 것이 좋다.

 

죽자고 매달릴 때는 창조적인 생각이 되레 달아난다. 창의성은 비워둔 상태에서 찾아든다.

 

창의성을 틔우려면 ‘맥락’에서 벗어날 줄도 알아야 한다.

 

창의적인 사람은 맥락을 뒤바꾸어 가치를 드높일 줄 안다.

 

운동선수는 하루도 몸 만들기를 거르지 않아야 한다. 작가도 마찬가지다. 작가는 ‘글 쓰는 몸’을 만들기 위해 매일같이 노력한다. 헤밍웨이에 따르면, 작가는 외로움을 달고 사는 직업이다. 반면 이름을 알린 작가들 주변에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는다. 북적이는 일상이 글쓰기에 좋을까? “(넓은 인간관계로) 작가의 공적인 위상은 올라가지만, 작품의 질은 종종 떨어지곤 한다.” 사람들과 어울리다 보면 마음이 쉽게 흔들린다는 뜻이다. 그러니 작가라면 글 쓰는 일에만 전념해야 한다.

 

헤밍웨이는 하루에 써야 할 원고 분량을 ‘400~600개 단어’로 정해놓기까지 했다. 제아무리 천재라도 꾸준히 노력하는 사람을 이길 수는 없다. 헤밍웨이는 늘 글 쓰는 상태를 유지하려고 애를 썼다.

 

헤밍웨이는 어디서 글의 소재를 찾았을까? “쇠를 두드려서 칼을 만들 듯, 작가는 부당한 일에 단련이 되어 만들어진다.” 시베리아 유배 경험이 도스토옙스키라는 위대한 작가를 낳았다는 식이다. 헤밍웨이는 자신의 경험을 소중하게 여겼다. 그리고 이를 작품에 살려내기 위해 매일 생각을 벼려내었다. “나는 그 이층 방에서 내가 알고 있는 것 한 가지에 단편 하나씩을 쓰기로 결심했다.”

단순히 경험만으로 작품이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작가는 이를 살려내기 위해 꾸준히 애를 써야 한다. “오늘 어떤 일이 있었는지 살펴보게. (...) 물고기가 뛰어오르는 모습을 보고 짜릿함을 느꼈다면 어떤 움직임이 그런 감정을 일으켰는지 알아낼 때까지 계속 돌이켜보게. (...) 그 감정을 일으켰던 것이 무엇인지 찾아내고 자네를 흥분시켰던 것이 무엇인지 알아내라는 말일세. (...) 그런 다음엔 독자들도 그 장면을 보고 자네가 느꼈던 것과 똑같은 감정을 느낄 수 있도록 정확하게 그 장면을 써내려가는 거야. (...) 그것은 피아노의 다섯 손가락 훈련과 같은 걸세.”

 

“돈이 되든 안 되든 행복해지기 위해서 글을 써야 합니다. 이건 선천적인 병이지요. 나는 글쓰기가 좋아요. (...) 이제는 지금까지 글을 써왔던 그 누구보다 잘 쓰고 싶습니다. 그래서 글쓰기가 집착이 되어버렸어요.” 이제 헤밍웨이는 ‘글쓰기 중독자’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나 천재들의 세계에서 ‘미쳐야 미친다’는 말은 언제나 진리다. <헤밍웨이의 글쓰기>는 위대한 작가도 결국 노력과 열정에서 비롯됨을 잘 보여준다.

 

뇌가 받아들이기 좋게끔 내용을 알맞게 쪼개보자. 짧고 속도감 있는 문장, 적절한 분량으로 쪼개진 단락은 읽고 싶은 글을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