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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사] 그렇게 나는 다시 삶을 선택했다(최지은)

아름다운 존재 2025. 4. 1. 09:50

그리고 한 가지를 깨달았다. 지난 열흘간 지옥을 오가며 가장 견딜 수 없었던 것은 암이 전이되었다는 사실도 아니었고, 생존율이 매우 낮아졌다는 사실도 아니었고, 끔찍한 치료를 더 해야 한다는 사실도 아니었다. 내가 가장 견딜 수 없었던 것은 두려움에 잠식되어 인생을 완전히 놓아버린 내 태도였다. 그 두려움은 암보다 빠르게 내 온몸에 퍼져나갔다. 얼마나 남았을지 모를 내 인생에 대해서 이렇게 무책임한 태도를 보인 나 자신이 암보다도 싫었다.

이런 일이 나한테 왜 생겼는지 모르겠지만 돌이킬 방법은 없었다. 대신 이 일에 어떻게 반응할지는 전적으로 내가 결정할 수 있었다. 두려움에 절인 피클처럼 물컹하게 누워 있는 것을 선택할 수도 있고, 바닷가로 걸어나와서 세상의 아름다움을 조금이라도 더 느껴보려 하는 것을 선택할 수도 있다. 정해진 결말이 있다고 해서 선택할 수 없는 건 아니다. 결말이 어떻든 주어진 운명을 받아들이고 인생을 완주하겠다는 결정도 선택이다. 이 선택이 열심히 살아온 내 인생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자 책임이다.

 

앞으로 두려운 일들이 점점 더 많아질 것이다. 두려움이 없어질 수는 없다. 하지만 그 두려움에 어떻게 반응할지는 전적으로 내가 선택할 수 있다. 선택지는 항상 있다. 그때마다 나는 바닷가로 걸어나오는 선택을 하겠다고 스스로 다짐했다. 이미 몸을 지배한 암이 정신까지 지배하게 둘 수는 없지 않은가. 그건 너무 화나는 일이다. 단 하루도 더 이상 두려움에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죽음은 나를 한 번만 죽일 수 있지만 두려움은 나를 몇천, 몇만 번이고 갈기갈기 찢어서 죽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두려움에 대응하는 게 중요하다. 두려움에 대해 어떤 선택을 할지 결정하는 게 중요하다.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한참을 생각하고 언덕을 내려왔다. 다시 호텔로 들어가서 오랜만에 샤워하고 옷을 챙겨 입었다. 그리고 자는 남편을 깨웠다. 내가 어디가 아픈 줄 알고 놀라서 깬 남편한테 너무 배고프니 샌디에이고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브런치 맛집을 찾아가자고 하니 어리둥절해했다. 나는 간만에 걸신이 들린 것처럼 먹었다. 펜케이크를 가득 쌓고 메이플 시럽을 잔뜩 부어 두 접시를 먹었고, 산더미 같은 계란스크램블을 몇 초만에 먹어 치웠다. 세상에는 이렇게 맛있는 것들이 있다는 사실을 잠시 잊고 살았다. 이것만으로도 꽤 살 만한 세상인 것 같다.

남편과 나는 다시 바닷가로 와서 하루 종일 물개와 서퍼를 구경했다. 물개들이 새끼들과 함께 해변가로 올라오는 시즌이었다. 새끼 물개들이 해안가의 얕은 곳에서 다 같이 물장구를 치며 놀았고, 찰랑이는 투명한 바닷물은 햇빛에 닿으면 진주빛으로 변했다. 이런 순간이 다시 오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더없이 그 광경이 소중했다. 서퍼들은 바다 위를 역동적으로 질주했다. 자연의 힘을 온전히 느끼니 웬만한 보약을 먹었을 때보다 기운이 났다. 우리는 해 질 녘에 잔디밭에 나와서 팔 다리를 쭈욱 뻗고 누웠다. 살면서 본 가장 아름다운 일몰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나는 웃었다. 몇 주 만인지 모르겠다.

그렇게 나는 다시 삶을 선택했다.

 

용기로 두려움을 물리치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것에 어떻게 대응할지 선택하는 것

 

강해야만 겨우 극복할 수 있을 것 같은 최악의 상황에서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위로가 되었던 말은 강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들이었다. 열다섯 살에 유방암으로 엄마를 잃은 친구 J가 그런 위로를 해주었다. 슬픔, 상실, 공포, 허무, 분노 등 다양한 스펙트럼의 감정을 느끼게 될 텐데 이 모든 감정들을 온전히 느끼는 것이 당연하고 괜찮다고. 지금 하고 있는 것은 싸움이 아니라고. 무언가와 싸워서 이기려고 기를 쓰지 말고 묵묵하게 버티라고, 그리고 자기가 바로 옆에서 같이 버텨주겠다고. 상실을 겪어본 사람들만이 소통할 수 있는 비밀스러운 언어가 존재한다. J는 그 언어로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그리고 그녀의 위로 덕분에 나는 철갑을 벗어던지고 가장 연약한 내 안의 알맹이를 드러냈다. 나는 강하지 않다, 그래도 괜찮다. 싸움이 목표가 아니라 완주가 목표이기 때문에 강하게 힘을 줄 필요가 없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집에 갑작스럽게 피자 배달이 왔다. 시킨 적이 없다고 배달원에게 이야기했지만, 그는 이 주소가 맞고 M이라는 사람이 주문했다고 했다. M은 직장 동료였다. 우리는 사실 친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함께 프로젝트를 한 적이 있었다. 독일 사람답게 커뮤니케이션이 명확해서 업무적으로 매우 좋아하고 신뢰했지만, 개인적으로 친해질 기회는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내 투병 사실에 대해서 직접 얘기한 적도 없다. 피자와 함께 전달된 메모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아프다고 들었습니다. 뭐가 필요한지 모르겠지만 끼니 챙기기 힘들 것 같아서 피자를 보냅니다. 피자를 싫어하면 부담 없이 그냥 버리세요.” 이 사람을 좋아했던 이유가 생각났다. 무엇이 필요한지 모르는 나에게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엇이 필요한지 물어보는 단계에서 끝났지만, 이 사람은 조금 투박하고 서툴더라도 행동이 먼저였다. 잘 생각해놓은 그럴싸한 말보다 서툰 행동을 좋아한다. 그리고 그런 행동이 나에게는 위로가 되었다. 항암 후 처음 먹는 피자는 까무러치게 맛있었다.

 

위로가 필요한 사람은 항상 주위에 있다. 아무리 강한 사람이라도 힘들면 울어도 된다고 위로해주고 싶다. 아니, 오히려 강함을 잠시 내려놓고 온전히 울어야 다시 강해질 수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이기고 지는 싸움이 아니니까 완주만으로도 최선을 다한 것이라고 위로해주고 싶다. 원하는 결말이 아니더라도 그 결말을 마주하는 것만큼은 함께해주겠다고 말해주고 싶다. 무엇이 필요한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토핑 가득한 피자를 보내주고 싶다. 그렇게 같이 위로를 주고받고 싶다, 해줄 수 있는 것이 위로뿐이라 할지라도.

 

문제의 원인은 나였다. 애초부터 소수의 인간관계에 너무나 복합적이고 수많은 내 감정과 생각을 끼워맞출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나를 걱정하되 병에 대한 이야기만 하지는 않았으면 좋겠고, 재밌는 수다도 떨었으면 좋겠고, 같이 울 수도 있었으면 좋겠고, 의학 지식도 공유할 수 있었으면 좋겠고, 사는 이야기도 했으면 좋겠고, 궁극적으로 이 모든 것들을 하나의 관계에서 해결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나의 큰 착각이었다. 그 누구도 나에게 직접적으로 얘기하지는 않았지만 상대방도 나도 관계에 대한 번아웃이 오는 가장 확실한 지름길이었다. 시간, 공간, 상황에 따라서 스르르 깊어졌다가 얕아졌다가 넓어졌다가 좁아지기도 하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인간관계이다. 인간관계는 정의 내려지고 선이 그려지고 유연함이 없어지는 순간부터 그 기능을 상실하고 만다.

 

분명한 것은 모두 각자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다양한 모양새의 인간관계를 유연하게 유지해나가는 것이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가장 자연스러운 모습이 아닐까 싶다. 내 이불 속에 기어들어와서 귓속말을 들어줄 사람도 필요하고, 먼 발치에서 나를 지켜보며 때때로 손을 흔들어줄 사람도 필요한 것이다.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도 필요하지만 나를 전혀 모르는 사람도 필요하다.

 

사회생활을 하는 이상 나를 힘들게 하는 인간관계는 모두의 숙명이다. 하지만 확실히 예전과는 다른 시각으로 접근한다. 내 기운을 뺏는 인간관계에 너무 많은 생각과 에너지를 소모하고 싶지 않다. 그러기에는 인생이 너무나 짧고 시간과 마음을 쏟을 만한 가치가 있는 인간관계가 훨씬 많기 때문이다. 그런 힘든 인간관계가 있으면 상상 속의 내 장례식 명단에 그 사람을 블랙리스트로 올려버린다. 소위, ‘입뺀’이다. 신나는 음악이 쿵쿵 들리는 장례식장 앞에서 들어가고 싶어 죽겠는데 덩치 좋은 사람들에게 막혀 ‘명단에 없습니다. 죽어서도 당신은 보기 싫다는군요’라고 입뺀 당하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장례식에도 초대받지 못하는 사람이 구분되는 순간, 정리가 한결 쉬워지는 느낌이다.

대신 나에게 의미 있는 관계에는 마음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려고 노력한다. 이 관계가 나한테 왜 중요하고 당신이 나한테 어떤 의미인지 부지런하게, 하지만 자연스럽게, 기회가 나는 대로 표현한다. 시간이 지나고 공간이 바뀌고 상황이 변하면서 이 관계가 어떻게 또 바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이 순간이 더욱더 중요한 것이다. 상당수의 인간관계는 right place and right time이 결정해준다고 생각한다. 그 시공간이 다시 틀어지기 시작하면 당사자들의 의도나 진심과는 무관하게 충분히 흐름이 바뀔 수 있다. 그래도 괜찮다. 그래도 차고 넘친다. 한철의 공생관계 같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잘 안다,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우리 모두 진심이었다는 것을.

 

살아서 나가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하게 되었다. 이 병을 극복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 그래서 목표를 바꿨다. 살아서 나가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매일을 사는 것으로 목표를 완전히 바꿀 수밖에 없었다. 다시 살아갈 날을 기다리는 것은 바보 같은 일이었다. 지금 살지 않으면 기회가 없을 수도 있다. 더 이상 삶을 유예하는 일 따위는 하지 않을 것이다. 고통의 끝을 희망하던 내 안의 긍정주의자는 죽었다. 볕이 따뜻한 곳에 고이 묻어주고 이 고통이 끝나면 그토록 마시고 싶었던 샴페인 한 병으로 근사하게 제사를 치러주었다.

대신에 비관적 낙관주의자가 탄생했다. 고통을 인정한다. 너란 놈이 없어지지 않을 것이란 빌어먹을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찾을 수 있는 희망과 의미가 없지는 않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결박된 상태에서도 분명히 자유로울 수 있다. 이상하게 마음이 무척 편해졌다. 갑자기 만나고 싶은 사람들이 너무 많아졌고,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졌고, 하고 싶은 일들도 너무 많아졌다.

 

그런데 이상하게 기분은 좀 더 나아졌다. 헛된 희망 같은 것을 품지도 않고, 더 이상 무한 긍정주의를 믿지도 않는다. 끝이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것을 인정하면서 잠시 멈추었던 내 삶이 조금씩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오늘은 항암 갈 때 무슨 옷을 입을지, 거울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행복한 고민을 해본다.

 

런던의 길거리를 홀로 걸으면서 잊고 지내던 ‘자유’라는 단어가 나를 다시 찾아왔다. 부축 없이 걸을 수 있는 자유, 콧줄 없이 숨쉴 수 있는 자유, 마음 먹은 대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유. 걸으면서 조금 울었던 것 같다.

남편이 일하러 나간 아침과 낮에는 주로 런던의 수많은 미술관들에서 시간을 보냈다. 인간이 한 생을 살면서 남길 수 있는 위대한 업적은 많지 않다. 아무리 많은 돈을 남겨봤자 시공간을 초월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그림은 다르다. 몇백 년, 몇천 년이 지나도 미술 작품을 보는 사람의 감정을 일깨운다. 죽은 사람이 산 사람에게 말을 걸고, 위로를 하고, 행동하게 하는, 시간을 초월하는 매개체이다. 그래서 미술관을 좋아한다. 특히나 고전 작품들을 보고 있으면 너무 무서운 존재였던 시간이 조금 덜 무서워진다. 1405년에 태어나 생전에는 전혀 인정받지 못하고 1428년에 안타깝게 요절한 젊은 화가나, 1600년경에 태어나서 많은 작품을 남기고 장수하고 1681년에 죽은 화가나, 2022년 현재는 모두 죽었다는 사실이 나에게 묘한 위로가 된다. 나에게만 유독 가혹하게 느껴지는 시간이 결국 마지막에는 모두에게 공평하다는 사실이 위로가 된다.

 

투병 초기에는 암보다 세상과 멀어지는 것이 더 무서웠다. 세상이 시속 100km로 나아가고 있으면 나는 늘 120km로 달려야 마음이 편했다. 20km의 차이는 여유가 아닌 필수였다. 그런데 갑자기 사고가 나서 기한도 없이 정차하게 되었다. 영원히 그 자릴에 그대로 있어야 할 수도 있단다. 그럴 수는 없었다. 항암 때문에 정신이 몽롱한 와중에도 아침부터 밤까지 활자 중독자처럼 시사 뉴스, 업계 뉴스, 교육 콘텐츠 등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가족들은 내가 단순히 시간을 보내기 위해 그런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나는 뒤처지지 않기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이 집착을 버리게 된 결정적 계기는 특별히 없다. 다만 저녁 밥상에서 시작되었던 것 같다. 저녁만큼은 남편, 엄마, 아빠, 나 이렇게 넷이서 모여서 집에서 먹었고 하루 중에 유일하게 내 세상에만 갇혀 있지 않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었다.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은 웃었다. 내 세상이 당장 내일 끝난다면 가장 중요한 사람들은 이 세 사람이었다. 이 세 사람이 곧 나의 세상이었고 내가 집착해야 할 세상은 밖이 아니라 이 밥상 앞에 있었다. 우주는 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앞에 계속 존재해왔던 것이다.

 

남은 내 인생을 지키기 위한 결정이었지, 포기하는 결정이 절대 아니었다.

 

바다를 보고 있으니 분명해졌다.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나는 이제 알고 있다. 예전의 나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앞으로 내가 걸어야 할 길은 그 누구도 걸어본 적이 없는 길이다. 데이터도 없고, 정답도 없고, 지도도 없다. 영구 궤도 이탈이 발생한 것이다. 그렇지만, 괜찮다. 돌아갈 수 없으면 그냥 앞으로 나아가면 되니까. 오랜 시간 만들어진 내 궤도의 관성을 뿌리치고, 새로운 궤도를 만들어가면 될 뿐이다. 계획했던 대로, 상상했던 대로, 염원했던 대로 인생이 풀리지 않았다고, 궤도를 이탈했다고 절망하고 슬퍼할 이유도 없고 시간도 없다. 돌아갈 곳이 없어졌으면 그냥 앞으로 나아가면 된다. 단순하다.

둑에 앉아서 바다를 바라보며 한참을 쉬었다. 한 치 앞도 나아갈 수 없을 것 같았는데 쉬고 나니 다시 기운이 생겼다. 핸드폰 배터리는 이제 0퍼센트가 되면서 완전히 까만색으로 꺼져버렸다. 집으로 다시 돌아갈까 했는데 이제 그럴 필요가 있나 싶다. 지도도, 계획도,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페달을 밀며 앞으로 나아간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곳으로 가봐야겠다.

휴스턴, 문제가 생겼다. 영구 궤도 이탈이다. 가던 길 계속 간다. 오버.

 

남들에게 자랑할 만한 화려한 성과들보다 남들에게 이야기조차 할 필요 없는 평범하고 지루한 그 순간들이, 나는 너무 그리웠다. 그 순간들을 간절하게 다시 느껴보고 싶었다.

요란하지 않게, 화려하지 않게, 과하지 않게. 지루하디지루하게, 일을 다시 시작하고 싶었다. 그래서 내가 회사에 돌아오는 날을 아무에게도 공지하지 않고 덜렁 나타났다. 꽃바구니를 사겠다는 둥, 샴페인을 가져오겠다는 둥, 다 같이 모여서 인사하러 오겠다는 둥, 그 요란스러움이 싫었다. 내가 그리운 것은 지루하디지루함이기 때문이다.

 

내가 어떻게 달라졌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더 강해졌을 수도 있고 더 약해졌을 수도 있다. 더 열심히 일할 수도 있고 덜 일할 수도 있다. 일을 더 사랑할 수도 있고 일이 싫어져버릴 수도 있다. 알던 방식으로 일을 할 수도 있고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일을 할 수도 있다. 하나도 모르겠다. 결국 그 답을 알기 위해서는 일을 해보는 수밖에 없다. 다시 뛰어들어보는 수밖에 없다.

 

이것이 바로 내가 그토록 그리워했던, 그리고 앞으로 소중히 여기며 살아갈 나의 지루하고도 지루한 일상이구나.

 

병을 극복하지 못한 수많은 사람들이 의지와 투기와 긍정의 힘이 부족했던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 정말 노력하면 막을 수 있었을까? 우리가 무언가를 잘못한 걸까? 내가 본 환자들은 그저 열심히 살다가 어느날 좋지 못한 운을 만난 사람들일 뿐이다.

 

우리는 그저 운이 나빴던 사람들이다. 그래서 덕담보다는 도움을 줄 수 있으면 좋겠고 연민보다는 응원을 해줬으면 좋겠다.

 

어쩌면 내가 책을 쓰게 된 이유도 이와 관련 있을지도 모르겠다. 자격지심이라면 자격지심이고, 건강한 사람들에 대한 부러움이라면 부러움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건강을 잃는다고 전부를 잃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오히려 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우리 중에 운이 나빴던 사람들이 눈에 보인다. 내가 갖고 있는 최고의 자원인 시간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그 시간을 어디에서, 누구와,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분명한 윤곽이 보인다. 이런 게 보이지 않았더라면 제일 좋았을 것이다. 이런 책을 쓸 일이 없었더라면 제일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돌이킬 수는 없기에, 나는 저항해보기로 한다. 건강을 잃으면 다 잃는다는 사회에 대항해 열정적으로 저항하는 중이다.

이렇게 개인의 인과응보로 치부되는 것은 비단 질병뿐만은 아닐 것이다. 사회 저변에 다양한 방식으로 발현된다. 놀러 가서 사고를 당했으니, 놀러 간 사람의 탓이다. 위험한 상황에 제 발로 걸어 들어갔으니, 들어간 사람의 탓이다. 생각이 있었으면 그러지 않았을 것이고, 스스로 관리만 잘했더라면 그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건강을 잃으면 전부를 잃는다는 사회는 이미 건강을 잃은 사회다. 가장 건강하지 못한 사회다.

 

사람은 이렇게도 우스운 존재다. 직접 경험해보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모르는 존재. 똥인지 된장인지 꼭 찍어 먹어봐야 아는 존재. 뉴스에 나오는 그 얘기가 내 얘기는 아니겠지, 생각하는 존재. 허탈한 웃음이 깔깔 나왔다.

 

단순하게 보면 일의 순수한 즐거움은 바로 이런 순간이다. 내가 해야 할 일을 하면서 성취감을 느끼고 남에게도 도움을 주는 것

 

일과 오랜 시간 지긋지긋한 애증 관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 있다. 일이 나를 훨씬 더 나은 인간으로 만들었다는 점이다. ‘일의 의미’ 같은 철학적 주제에 대한 답은 잘 모르겠다. 세상에 진정으로 의미가 있는 일을 하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그리고 일의 의미를 찾기 위해 과도한 에너지를 낭비할 필요도 없다고 본다. 대신 일이 나에게 줄 수 있는 가치들을 이해하고 그 가치들을 향해 조금씩 의도적으로 나아갈 필요는 있다. 상처를 안 받을 수는 없지만 그 상처가 흉터가 되게 내버려두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그러기에는 당신의 시간, 노력, 그리고 가능성이 너무 아깝다.

 

일을 통해 자유로워졌으면 좋겠다. 일을 통해서 내 경쟁력을 키우는 데에 집중한다면, 그 경쟁력을 기반으로 어디든 자유롭게 갈 수 있다. 경쟁력은 문제를 하나둘씩 해결해나가면서 쌓인다. 그렇기 때문에 문제를 피해 도망가지 말고 문제를 향해 달려가는 것이 중요하다. 다양한 상황에 부딪힐수록 문제 해결 능력은 발전한다. 회사를 위해 맹목적으로 고생한다는 마음가짐이 아니라 내 실력을 높이기 위해 난이도 높은 문제를 해결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일을 대한다면, 나의 경쟁력을 가장 최우선 가치로 둔다면, 몇 개월 만에도 큰 차이를 만들 수 있다. 가장 잠재력이 높은 사람들은 난제에 불나방처럼 뛰어드는 사람들이다. 난제를 만나면 심박수가 올라가는 다소 이상한 사람들이 꼭 있다. 힘 조절이 전혀 안 돼서 여기저기 상처를 달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그들은 나태하게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굳이 힘든 길을 가는 이유는, 본인의 경쟁력에 대한 집착이 있기 때문이다.

경쟁력은 예쁘고 곧은 곡선처럼 올라가지 않고 계단식으로 좀 엉망진창으로 올라간다. 어려운 문제에 부딪혀 시행착오를 겪고 다시 여기저기 부딪히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주욱 올라간다. 그리고 실력이 올라가는 순간은 흑과 백의 영역이 아니라 회색의 영역에 있다. 내 영역처럼 보이지 않는 일에 뛰어들거나, 남들이 시도해보지 않은 방식으로 도전해보거나, 모든 것이 모호하고 아무것도 정해진 것이 없는 영역에서 무언가를 이루어낼 때, 성장의 순간이 있다. 누군가 임의로 그어놓은 선 밖으로 나왔을 때, 비로소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다. 그러므로 선 밖으로 나오려고 하지 않으면 그 선은 내 한계가 된다. 회사와의 정해진 관계에서 하루도 손해 보지 않으려고 하면 손익계산서의 한 항목 이상으로 발전할 수 없다. 매일 1인분만 맞추려고 하면 평생 1인분만 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그 한계를 박차고 나올 수 있다면, 회사를 포함한 그 누구도 뺏어 갈 수 없는 나만의 경쟁력이 생기고, 그 경쟁력은 엄청난 자유를 선사한다.

 

사람은 얻기 참 어렵다. 머리로 얻어지지도 않고, 보상으로 얻어지지도 않고, 얻었다고 생각했다가도 별것도 아닌 일에 다시 후르륵 잃기도 한다. 분명한 건 기꺼이 상처받을 각오를 하고 심장을 내줘야 한다는 것이다. 아플까 봐 내주지 않는다면 큰 일은 일어나지 않지만 작은 재미도 찾기 힘들어진다. 나는 그렇다.

직장생활 인간관계라고 늘 선을 긋고 피곤해만 할 필요는 없다. 서로의 상황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 성실하고 일관적인 태도로 상대방에게 예측 가능성과 신뢰를 주는 것, 작은 친절과 배려를 베푸는 것, 이 모든 게 직장생활의 스킬이자 인생 스킬이다. 과하게 친할 필요는 없더라도 이유 없이 상처를 줄 필요는 없다. 최소한의 정서적인 연대를 바탕으로 서로의 성장에 관심을 가져주는 것이 성과를 잘 내는 팀의 기본이다. 그렇게 되기까지 우리는 뜨겁게 싸워야 하고, 결국에는 시원하게 화해를 해야 하고, 그 모든 과정에서 속닥속닥 이야기를 나누어야 한다. 정반합의 과정을 계속 겪으며 더 나은 우리가 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고 보면 단체 생활은 일종의 종합예술이다. 그리고 그 종합예술을 조금씩 터득해가는 과정은 끝이 없고, 무엇보다 재미있다. 사람 간의 일은 언제나 예측 불가능하지만, 그 사람들이 한마음이 되어 무언가를 딱 해냈을 때의 쾌감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가 없다.

 

일을 통해 상처받아도 일어날 수 있는 힘을 키웠으면 좋겠다. 어쩌면 일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의미일지도 모르겠다. 1년 넘는 치료를 마치고 복직하며 깨달았다. 지난 18년간 내가 일을 해온 이유는 다시 일어서는 방법을 익히기 위해서였다. 다사다난한 18년이었다. 때로는 걷던 길이 없어지기도 했고, 지도에도 없던 샛길이 큰길로 이어지기도 했다. 예측도 계획도 힘들었지만, 길을 찾는 것에 매 순간 최선을 다했다. 길의 불확실성을 받아들이면서도 길을 찾는 것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근육을 키웠다. 이 근육은 특별히 돈을 더 많이 벌거나, 남들보다 더 빨리 앞서나가는 데에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인생이 무너졌을 때 내 유일한 나침판이 되어주었다. 앞이 전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앞으로 나아가는 방법은 근육의 감각에 의지하는 것뿐이다. 어떤 불행이 닥치든, 어떤 변수가 생기든, 어떤 결말을 맞게 되든, 상황을 판단하고 그 상황에서 나에게 주어진 제일 나은 선택을 할 것이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일을 하면서 수도 없이 연습해봤기 때문이다. 막다른 길에서 주저앉아 울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곳에 오래 머물러 있지 않았다. 한 차례 울고 나면 다시 걷기 시작했다. 아무리 깊은 상처도, 흉 지게 내버려두지는 않았다.

 

오래 일을 했으면 좋겠다. 어디서 어떤 일을 하든지 상관 없다. 자유를 줄 수 있고,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고, 인생에 닥칠 난관들을 미리 연습해볼 수 있다면 어디여도 상관없다. 기꺼이 상처받을 준비가 되어 있다.

그래서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오늘도 일을 하러 간다.

 

커리어라는 단어 옆에 ‘설계’, ‘플랜’, ‘로드맵’ 같은 단어들이 함께 놓여 있는 것이 매우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애초에 커리어라는 게 설계 가능한 것인지 잘 모르겠다. 계획대로 커리어가 척척 풀리는 경우가 거의 없기도 하거니와, 커리어에 있어서 가장 큰 성장과 도약의 순간은 내가 촘촘하게 계획한 플랜 A에 있지 않고 계획이 틀어져서 경로를 수정한 플랜 B에 있기 때문이다.

 

플랜 B는 나에게 기술을 통해 세상을 발전시키는 일을 하고 싶다는 열망을 선물했다.

 

플랜 A는 명확했다. 치열하게 일해서 이곳에서 성공하는 것, 더 큰 업무들을 맡는 것, 업계의 영향력 있는 사람으로 성장하는 것. 시간과 건강만 있으면 충분히 달성 가능한 일이었다. 시간을 유한한 자원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하고 싶은 것을 다 해볼 수 있는 시간은 언제나 충분했으니까. 건강이 특권이라고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건강은 당연하니까. 그 충분하고 당연한 것들이 사라지면서 플랜 A가 더 이상 의미가 없어졌다.

그러면 어쩌겠는가, 플랜 B를 살아야지. 이력서에 쓰기 위한 커리어는 더 이상 나에게 의미가 없다. 내가 얼마나 대단한 프로젝트들을 이끌고 있는지, 얼마나 엄청난 규모의 돈을 회사에 벌어주는지, 얼마나 승진을 빨리하고 자주 하는지, 이런 것들은 인생의 종착점에 다가가면 정말 아무런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당신이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하는 사람이든 이 진리는 변함이 없다고 자신한다. 스티브 잡스조차 췌장암으로 죽던 마지막에는 그랬으니까.

그래서 나는 오히려 부고에 쓰기 위한 커리어에 집중한다. 일터에서의 나는 어떤 모습으로 기억되고 싶은지를 기준으로 매 순간을 살아간다. 냉정하고 혹독한 비즈니스의 세계지만 우리 모두 조금 더 따뜻한 사람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내 일, 네 일, 우리 일, 그들의 일, 범위와 경계를 나누고 조금도 손해 보기 싫은 마음으로 매일을 살고 싶지 않다. 뜻이 맞다면 뭐든 함께 해보고 싶다. 사람과 비즈니스의 잠재력과 가능성에 무한하게 투자하고 싶다. 안 될 이유가 열 개라도 될 이유가 하나라도 있다면 밀고 나가고 싶다. 야무지고 싶지 않고 조금 무식해지고 싶다. 남들의 방식보다는 내 방식으로 승부를 보고 싶다. 플랜 B는 나에게 자유를 선물했다.

 

인생은 결국 수많은 플랜 B를 엮어 만든 결과이다. 그러니 플랜 A에 너무 집착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나는 이런 사람이니까’라고 자신을 레이블 하면 미래의 가능성이 제한된다. 우리 모두 자신을 잘 알지 못할뿐더러 잘 안다고 해도 여건이 바뀌고 상황이 달라지면 절대 바뀌지 않을 것 같던 나의 코어도 결국 달라진다. 그렇기 때문에 유연한 사고가 중요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무언가를 배우겠다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심지가 굳건히 자리 잡고 있다면, 플랜 B는 커리어와 인생을 훨씬 풍성하게 만들어줄 수 있다. 가끔은 플랜 A를 통해서 이루고 싶었던 것들까지 더 빠르게 이루어줄 수 있다.

 

플랜 B는 단순한 정신승리가 아니다. 커리어와 삶을 빚어가는 태도이자 나침판이다. 그런 의미에서 플랜 ‘Be’다. 지금 이 순간에 내 앞에 있는 위기를 가장 나답게 돌파하면,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길이 보이기도 한다. 낯선 길들을 조금씩 익숙한 길로 만들어가면서 더 이상 지도가 필요 없어지는 순간이 반드시 온다.

 

인생이 계획대로 풀리지 않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 글을 바친다. 이 순간이 당신의 플랜 B 모먼트이기를 바라며.

 

키 상위 97%, 몸무게 상위 65%, 머리둘레 상위 80%! 모두 박수! 조카의 인생 첫 성적표였다. 영상통화 너머로 부모님의 박수가 쏟아져서 나도 덩달아 같이 손뼉을 쳤다. 무슨 일인지 알 턱이 없는 자그마한 아기는 박수갈채가 좋은지 핸드폰 속의 작은 화면 속에서 방실방실 웃기 시작했다.

아리아, 이 경기에 공식적으로 출전하게 된 것을 축하한다. 오늘을 시작으로 세상은 너에게 끊임없이 점수와 등수를 매기려고 할 것이고 서열을 정하려고 할 거야. 처음에는 분명 세상이 너한테 이 경기를 강요한 것 같은데, 어느 순간 시작점이 어디였는지 더 이상 기억나지 않을 거야. 왜냐하면 그 누구보다 너 자신이 경기에 완전히 빠져 있을 거거든. 실체도 없는 평가단이 너의 순위를 계속해서 정해줄 거야. 처음에는 순위가 올라가는 것에 즐거움을 느끼다가 앞에 사람이 수두룩하게 많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지칠 거야. 동시에 뒤처지는 것은 죽기보다 무서워지겠지. 앞으로 나갈 힘은 점점 없어지는데 뒤로 갈 용기도 점점 없어지는 것이 이 경기의 실체야. 그래도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어. 누구나 다 겪는 인생의 통과의례거든. 나는 네가 이 경기를 어떻게 더 잘 할까 고민하기보다 이 경기를 왜 해야 하는지 고민했으면 좋겠어. 왜냐하면 네가 경기장을 뒤로하고 스스로 뚜벅뚜벅 걸어나와야 이기는 경기거든.

 

‘남’은 우리 인생을 참 고달프게 하는 존재다. 프랑스의 법학자이자 철학자 몽테스키외도 그렇게 얘기하지 않았던가. “단순히 행복해지려고만 한다면 누구든 쉽게 행복해질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행복해지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남보다 행복해지기를 원한다. 하지만 남보다 행복해지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우리는 남이 실제보다 훨씬 더 행복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아, 도대체 남이라는 존재는 나한테 왜 이러는 것일까.

 

‘남’은 계속해서 다양한 얼굴로 진화하다가 변신 최고 단계에 오른다. 그것은 바로 ‘실체가 없는 불특정 집단이라는 남’이다. 어렵게 생각할 것 없이 우리가 일상적인 대화에서 쓰는 ‘그래도 남들 사는 만큼은 사니까’, 혹은 ‘그래도 남들 시선이 있는데’의 ‘남’이 바로 그런 남이다. 실체가 없는 이 불특정 집단은 우리 인생을 완전히 지배해버린다. 내 인생의 중요한 의사결정들을 대신해서 내려주고,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게 만들고, 하고 싶은 일들을 가슴 한편에 고이 간직하게 만든다. 우리는 이 집단을 굉장히 혐오하면서도 이 집단으로부터 어떻게든 인정받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이 집단의 평가가 우리를 완전히 장악한다. 출발선은 있지만 도착점은 없는 이 이상한 경기는 이 실체 없는 집단이 만들어낸 것이다.

 

내 인생이 멈추었다고 모두가 멈출 수는 없는 일이라는 것을 머리로는 알아도 마음으로는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나는 남과의 완전한 단절을 선택했다. 철저히 혼자가 되었다. 주위에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있더라도 내 인생의 무게를 대신 짊어질 수는 없었다. 머리가 터질 것 같은 두통, 가슴을 옥죄어오는 불안감, 뼈 마디마디의 고통은 나 혼자 감당해야 할 몫이었다. 그리고 세상은 나 하나 없이도 너무나 잘 돌아갔다. 계절은 알아서 척척 잘 바뀌었고, 내가 하던 일들은 다른 곳으로 잘 흘러 들어갔고, 가족과 친구들은 하루하루의 일상을 살아냈다.

 

나는 처음으로 나 자신과 엄청나게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다. 예전의 경기에서 내가 거두었던 성취들은 병이라는 새로운 세계 앞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이 세계에서 중요한 것들은 좀 많이 달랐다. 온 내장을 식탁에 다 토할 것만 같아도 딱 다섯 숟가락만 눈을 질끈 감고 먹을 인내심이 필요했다. 몸이 침대에 접착제로 붙어버린 것만 같아도 하루에 딱 1000보만 걸을 끈기가 필요했다. 너무 무서워서 내 존재 자체가 사라져버렸으면 싶어도 병원 문을 열고 들어갈 용기가 필요했다. 어떤 성취로도 만족하지 못했던 내가 밥을 먹었다는 이유로, 5분이라도 집 밖을 나섰다는 이유로 스스로를 칭찬해주기 시작했다. 내면의 꾸준함이 강해질수록 ‘남’이라는 존재에 대한 기억은 흐릿해져갔다.

그리고 혼자가 되는 경험은 생각보다 큰 해방감을 선사했다. 세상이 나 없이도 잘 돌아간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나도 세상에 휩쓸리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역으로 알게 되었다. 마지막에 내 삶을 평가하는 것도 오로지 나 자신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지경에 이르러서야 그걸 알았냐고 한다면 별로 할 말은 없다. 신기하게도 마지막을 생각해야 하는 순간들이 올 때마다 ‘실체 없는 불특정 남’들이 전혀 생각나지 않았다. 그들의 얼굴이 더 이상 기억나지 않았다. 그 집단이 한때 내 인생을 지배했다는 것조차 완전히 잊게 되었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남의 평가가 아니라 나 스스로의 평가이다. 내 삶은 충만하고 후회가 없었는가, 유일하게 의미 있는 질문이다. 그리고 많은 것들이 정리되기 시작한다. 나에게 중요한 사람들이 누구인지,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들이 무엇인지,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혹은 어떻게 죽을 것인지. 그리고 드디어 경기장에서 나갈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내 발로 그곳을 걸어나오는 것이, 진짜로 이기는 길이다. 그 출구는 남에게 있지 않고 나에게 있다. 밖에 있지 않고 안에 있다. 대단한 성취에 있지 않고 내면의 꾸준함에 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나에게 박수를 쳐주던 시절보다 나에게 아무것도 남지 않았던 시절이 아이러니하게도 더 평온하다고 느꼈다.

이제 경기장 밖으로 나왔다. 경기장 안은 분명 모두가 일직선으로 달리고 있는 일자대로였는데, 경기장 밖은 여러 갈래길이 언덕 위아래로 구불구불 자리 잡고 있다. 각자 가고 있는 방향과 속도가 제각각이다. 그리고 그저 각자의 갈래길에서 최선의 의사결정을 하고 있을 뿐이다. 누구나 고유한 길을 걷고 있다. 특별한 길은 아니더라도 ‘고유한 길’임은 분명하다.

당신이 경기장 밖으로 나오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오늘도 응원한다.

 

갖고 싶은 것보다 버리고 싶은 것이 많아지는 시기가 가끔 온다. 그 시기는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인지도 모르겠다. 채우는 행위는 어느 정도의 욕망만 있으면 가능하지만 버리는 행위는 명료한 사유가 있어야 가능하다.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에 관성이 붙기 때문에, 그 관성을 거스르는 것은 의지가 없으면 안 된다. 그래서 무얼 취하느냐보다 무얼 버리느냐가 그 사람에 대해 더 많은 것들을 알려준다. 나를 알고 싶으면 내 쇼핑백보다는 내 쓰레기통을 뒤져야 할 것이다.

 

나는 몇 번의 ‘대 버림 시대’를 거쳤다. 한국을 떠날 때, 10년 넘게 간직하고 있던 많은 책들을 버렸다.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서 새롭게 다시 시작하고 싶었고 그러려면 내 머릿속에 들어가 있는 것들까지 다 지워야 할 것 같았다. 미국을 떠날 때, 2년 넘게 회사에서 모아둔 딜 트로피들을 다 버렸다. 딜을 성공적으로 끝마칠 때마다 자축의 의미로 함께 제작해서 월스트리트에 있던 내내 책상 위에 보물처럼 간직했다. 싫어서 버린 게 아니라 사랑하기에 버렸다. 장거리 연애의 끝에, 나는 트로피에 대한 사랑보다 남자와의 사랑을 택했다. 그리고 그 선택에 자신이 없었다. 좀 더 자신이 생기려면, 트로피들을 버려야 했다.

길었던 투병 생활이 어느 정도 정리되어갈 때, 나는 거의 모든 물건들을 버렸다. 차가운 방사선실에 들어갈 때 입었던 오렌지색 후드티, 항암실에 보리차를 싸 갔던 텀블러, 발끝의 신경이 무뎌지기 시작하면서 신었던 바랜 수면양말까지. 어디 멀리 이사를 가는 사람처럼 수십 개의 박스에 아픔을 차곡차곡 쌓아서, 알 수 없는 곳으로 보내버렸다.

집뿐만이 아니었다. 일터에도 버릴 것이 사방 천지에 널려 있었다. 나에게 더 이상 쓸모가 없는 것들도 있었고, 나를 해치고 있는 것들도 있었고, 남들이 갖고 있으니 나도 갖고 있어야 한다고 막연히 생각했던 것들도 있다. 그것들이 무엇인지 파악하기까지 시행착오가 필요했고, 버리는 데까지 용기가 필요했고, 다른 것들로 채우기까지 시간이 필요했다.

 

정답을 버렸다. 책임이 커질수록 정답을 맞혀야만 한다는 부담감이 같이 커졌다. 그 부담감이 어느 수준의 역치를 넘어서면서부터 오답에 대한 두려움으로 바뀌었다. 틀리고 싶지 않다는 태도로 일을 하기 시작하면 앞으로 한 발짝도 나아갈 수가 없게 된다. 정답을 찾으려 하면 할수록 정답과는 거리가 멀어지는 셈이다. 나는 자주 틀린다. 아니, 매일 틀린다. 누군가에게 배려를 보여주면 일이 더 순조롭게 진행될 줄 알았는데, 틀렸다. 중요한 의사결정이라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의견을 받았는데, 틀렸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시장 상황에 대해 다양한 시나리오로 예측했지만, 틀렸다. 이쯤 되면 틀리기 위해 일을 하는 것 같다. 그런데 오늘 이렇게 많이 틀려야 내일 조금 덜 틀린다. 성장은 정답을 잘 맞히게 되는 것이라기보다 어제보다 조금 덜 틀리게 되는 것이다. 오답보다 더 최악인 것은 오답이 두려워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가뿐히 정답을 버렸다.

 

모두에게는 제각기 고유한 변수들이 있기 때문에 조언이 무의미하다. 그리고 나 자신도 계속해서 변한다. 내가 어제 한 조언과 오늘 하는 조언은 다르다. 그렇기에 감히 몸 밖으로 함부로 토해내지 않는다 조언을 버린 자리는 질문으로 채웠다. 스스로 해야 할 질문들을 대신 물어봐준다. 조언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하는 것이 가장 무거운 종류의 책임이다. 이직을 고민하는 후배에게 어디가 더 나은지 조언하지 않는다. 일을 하며 가장 성취감을 느꼈던 상황이 언제인지, 장기적인 목표는 무엇인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데에 필요한 스킬들이 무엇이라 생각하는지, 질문을 하고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돕는다. 처방하지 않는다. 조력할 뿐이다.

 

예의를 버렸다. 예의는 사회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윤활유라고 생각했다. 예의를 지키느라 내가 원하는 것을 이야기하기까지 늘 많은 사람들의 기분을 살펴야 했고, 상황을 읽어야 했고, 풍향을 지켜봐야 했다. 내가 정말로 하고 싶었던 일들과 하고 싶은 말들의 대다수는 예의의 관문을 통과하지 못했고,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한 채 뜨끈한 어딘가로 삼켜졌다. 이렇게 살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다는 것을 깨달았다. 예의를 차릴 시간이 없다. 나 자신을 포함한 모두에게 조금 솔직해지기로 했다.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해두고 그 방향으로 거침없이 나아간다. 그러다 실패하기도 하고 망신을 당하기도 한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자유롭게 하다가 실수를 하기도 한다. 그 과정이 모두에게 생중계되어도 그렇게 쑥스럽지는 않다. 적어도 예의를 차리다가 본질을 놓치지는 않았으니까.

 

결과를 버렸다. ‘결과로 보여주겠다’라는 말이 일종의 시대정신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모두 결과를 향해 달리고, 결과로 평가를 받고, 결과를 겸허히 수용한다. 결과에 이렇게까지 집착하는 것치고, 결과는 인생의 마지막에서 아무런 힘이 없다. 정말 놀라울 정도로 결과에 대해서는 아무런 기억도 남지 않는다. 죽을 때 사상 최고치 매출을 달성했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웃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 매출을 달성하기까지 직원들과 함께 겪었던 고통의 과정, 서로 다른 의견을 조율하면서 더 나은 팀으로 변모했던 과정, 즐겁고 치열하게 일했던 그 모든 과정을 기억하면서 웃는다. 그래서 ‘결과만 보겠다’는 리더들의 말을 들으면 솔직히 좀 우습다. 일단 결과만 보겠다는 말을 하는 사람치고 결과가 좋은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그리고 결과만 보는 것만큼 쉬운 일이 없다. 숫자로 정렬만 하면 되니까. 아무나 앉혀놓아도 할 수 있는 일이다. 결과보다는 과정이다. 과정이 잘 설계되어 있으면 좋은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다. 조직장으로서 내가 하는 고민은, 우리가 얼마나 함께 밀도 있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가이다. 이 부분이 만족스럽다면 결과는 자신 있다.

 

경계를 버렸다. 오랜 기간 암 투병을 하고 돌아온 나에게 모두가 처방해주는 약이 있었으니 그것은 ‘워라밸’이었다. 그간 너무 열심히 일하지 않았느냐, 일을 챙기느라 삶을 챙기지 못한 것 아니냐, 이번 기회에 인생의 우선순위를 바꿔야 하지 않겠느냐. 일과 삶이 제로섬 게임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일을 줄여야 삶이 늘어나고, 일이 늘어나면 삶은 줄어드는 식이다. 6시에 퇴근하면 그때부터 내 인생이 시작되고 아침 9시에 출근하면 내 인생은 잠시 유예되는 건가? 안타깝게도 죽음은 내가 일을 하는 동안 나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시간은 계속해서 간다. 일을 하는 시간도 삶이고 퇴근한 이후의 시간도 삶이다. 똑같은 삶이다. 일을 삶의 중요한 한 축으로 존중하고, 일을 하는 시간만큼은 그 시간을 후회 없이 보낸다. 삶을 완성하는 축들은 무 자르듯 뚝뚝 끊을 수 없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일, 취미, 가족, 친구들, 커뮤니티 등 삶의 다양한 축들은 서로 유기적으로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이지 제로섬 관계가 아니다. 나는 직원들의 성장을 이끄는 리더이자, 집에 오면 뜨개실로 아기의 머리띠를 떠주는 누군가의 이모이며, 멋들어진 와인 파티의 호스트이자, 암 환우들과 주말을 보내는 환자이자 상담가다. 지금 이 순간에는 이 이야기들을 전하는 책의 작가이다. 경계를 버리니, 삶이 풍요로워졌다.

 

이것저것 박스채로 내다 버리고 파쇄기로 갈아버리는 작업을 반복했다. 그러면서 몸과 마음이 좀 더 가벼워진 느낌이다. 좀 더 빨리 움직일 수 있게 되었고 좀 더 높이 뛸 수 있게 되었다. 완벽함은 더 이상 더할 것이 없을 때가 아니라 더 이상 뺄 것이 없을 때 달성된다고 하지 않았던가. 아직은 아니다. 나는 아직 버릴 것이 많은 사람이다.

 

내가 알던 세계가 얼마나 한순간에 종말을 맞을 수 있는지 이제는 너무나 잘 안다.

 

불안에 잠식되지 않고 마음을 안정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내일에 있지 않고 어제에 있다는 것을 이제는 잘 안다.

 

하지만 이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비범한 확률 위에 지어져 있는지 잘 알고 있다. 다음 상자를 열 때는 어떤 확률로 어떤 결과를 듣게 될지 전혀 모르겠다. 상자를 닫는 순간, 죽어 있는 상태와 살아 있는 상태가 다시 중첩되어 시간이 흘러간다. 하지만 슈뢰딩거의 암 환자는 다음 상자를 열기 전까지 살기로 결정한다. 일상의 사소한 걱정들도 하면서, 잔소리도 하면서, 투덜투덜하면서, 깔깔깔 웃으면서, 그렇게 치열하게 살기로 결정한다.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지만 동시에 모든 것이 바뀌었다.

 

그러나 더 이해할 수 없는 일도 있었다. 생존율 50퍼센트를 위해 3기 치료를 받던 시절보다 생존율 15퍼센트를 향해 발버둥치며 4기 치료를 받던 시절이 더 즐거웠다는 것이다. 슬프고 불안한 날들이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이상하게도 죽음에 한 발자국 더 가까이 다가갔을 때, 또렷하게 살아있음을 느꼈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지 않는가. 4기 암 선고는 사실상 죽음인데. 항암제는 더 늘어났고, 몸은 만신창이가 되어 거울을 볼 수 없을 정도로 망가졌는데. 주인공과 조르바가 열과 성을 다해 노력했던 광산 산업이 망했을 때 조르바가 왜 갑자기 춤을 췄는지 이해할 수 없듯이, 나는 나 자신을 이해하는 데까지 시간이 꽤 걸렸다.

어쩌면 살면서 처음으로 현재만을 살았기 때문일 것이다. 목표 지향적인 삶에는 큰 부작용이 따른다. 현재를 볼 수가 없다. 학창 시절에는 다음 학교 진학을 위해서 공부한다. 대학에 가서는 취업을 준비한다. 취업을 하고서는 이직을 준비한다. 한곳에 도달하면 마음은 이미 저 멀리 다음 곳에 머물러 있다. 즉, 미래에 살고 있다. 미래에 살고 있으면 어떻게든 나의 현재를 그 미래로 끌고 가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계획이 생기고, 통제가 생기고, 궁극적으로는 불안이 생긴다. 내가 그린 미래에 가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에 대한 불안감. 혹여라도 계획한 대로 가지 못하면 우리는 과거로 돌아가서 그곳에 갇혀 산다. 무엇이 잘못됐을까. 그 길목에서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조금 더 열심히 했더라면, 건강에 조금 더 신경을 썼더라면. 미래의 불안과 과거의 후회는 거울의 양면이고 꽤 비슷한 얼굴을 하고 있다.

그래서 3기 치료를 받는 시간이 너무나 힘들었던 것이다. 미래에 대한 병적인 집착을 열병처럼 앓다가 과거에 대한 후회의 무게로 삶이 점점 무거워졌다. 하지만 참 아이러니하게도 4기가 되면서 미래를 빼앗겼다. 미래의 끝이 보이는 순간, 미래를 생각하는 것은 더 이상 의미가 없어졌고 과거에 대한 후회도 무의미해졌다. 오로지 지금 이 순간, 내 앞에 있는 사람과,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가장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이 중요해졌다. 친구들을 만나서 최대한 많이 웃으려고 노력했다. 조카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들을 부지런히 글로 남기려고 노력했다. 비슷한 처지의 암 환우들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주고 싶어서 노력했다. 미래를 다 빼앗기고 나서야, 현재를 살 수 있게 되었다. 4기 투병을 하던 그 6개월 동안, 그때까지 살아왔던 긴 세월보다, 훨씬 더 의미 있는 순간들을 만들어냈다. 현재를 산다는 것은 일종의 초능력이다. 하지만 재능이라기보다는 근육이다. 쓰면 쓸수록 노련해지는 근육이다.

 

이제 나는 ‘생각’보다 ‘감각’에 집중한다. 내일 있을 업무 미팅을 생각하다가 내려야 하는 정류장을 지나칠 뻔하면서 ‘언제 여기까지 왔지?’ 스스로에게 묻는 경험을 누구나 갖고 있다. 생각에만 집중하면 이런 버스를 몇 년씩 타게 되고 정류장을 계속해서 지나가게 된다. 기억에 남지 않을 시간이 속수무책으로 흘러간다. 생각과 다르게 감각은 현재에만 존재한다. 누군가 정성스럽게 차려준 음식을 맛있게 음미하는 감각, 땀을 흘려 가며 운동을 하는 감각, 계절의 사소한 변화를 느낄 수 있는 감각.

생각을 너무 많이 하고 사는 삶에는 감각이 필요하다. 최근에도 출근을 하다가 걱정스러운 일을 어떻게 해결해야 될지, 이 일이 잘 안 풀리면 어떻게 해야 될지, 누구의 도움을 받아야 할지 끊임없이 생각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생각의 흐름을 타고 이미 저 먼 미래에 가 있었다. 나는 즉각 걸음을 멈추고 감각에 집중했다. 따뜻한 햇살, 파란 하늘, 바람에 살랑이는 가로수. 그렇게 현재로 돌아왔다. 그래서 감각에 집중할 수 있는 활동들을 찾아서 한다. 최근의 취미는 도예이다. 손에서 느껴지는 찰흙의 느낌, 물에 젖은 흙의 냄새, 공방의 오래된 선풍기가 돌아가는 소리. 생각을 덜고 감각을 발달시킬수록, 현재를 온전히 살 수 있게 된다.

 

이제 나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은 바로 앞에 있는 사람이다. 누군가를 앞에 두고 내내 딴생각을 한 경험은 다들 있다. 바빠서일 수도 있고 상대방의 이야기가 재미없어서일 수도 있다. 하지만 대화를 당장 중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어차피 함께 보내야 할 시간이라면, 그 시간을 소중히 여길 필요가 있다. 나는 내 앞에 있는 사람과의 대화에 완전히 몰입하려고 노력한다.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입을 좀 더 다물어야 하고 귀를 좀 더 열어야 한다. 상대방과 깊은 대화를 나누려고 노력하면 생각지도 못한 것들을 배울 수 있다.

 

최근에 업무를 통해서 새로 알게 된 사람과 의견이 맞지 않아 자주 충돌했다. 일대일로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하고 그와의 대화에 집중하자 많은 변화들이 일어났다. 그 사람의 아들이 지적 장애가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고, 그 사람이 업무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들을 알게 되었고, 그 사람이 사안을 바라보는 시각을 알게 되었다. 내 앞에 있는 누군가와 깊은 대화를 나누다 보면 현재에 살아 있음을 느낄 수 있다. 편견 없고, 판단 없고, 의도 없는 다양한 대화가 우리 삶에 필요한 이유다.

 

이제 나는 미래에 대해 통제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저녁에 뭘 먹을지 결정하는 정도라고 생각한다. 미래에 대해서 관심이 전혀 없다는 뜻은 아니다. 여전히 내 미래가 소중하다. 하지만 미래에 대해서 과도하게 계획하고, 통제하고, 걱정하는 것이 도움이 아니라 독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이제는 잘 안다. 실패할 가능성에 대해서 과도하게 걱정했던 시절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한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기도 하고 이미 남겨놓은 발자국만 따라가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많이 덜었다. 좀 망하면 뭐 어떤가. 아무것도 해보지 못하고 안 망하느니 뭐라도 해보고 거하게 망할란다. 망했어도 축배는 들 것이고 가장 비싼 샴페인을 살 것이다.

 

소설을 읽은 지 20년이 지나서야 조르바라는 사람을 이해하게 되었다. 가진 것은 없어도 엄청난 초능력 보유자였다. 현재를 살아가는 방법을 가장 잘 알았던 것이다. 눈을 감고 몸을 흔들며 세상의 모든 것을 잊은 듯 산투르(그리스 전통 현악기)를 연주하며 ‘나는 지금 산투르요’라고 말하던 그는 현재를 온전히 경험하고 있었다. 과거의 업적이나 미래의 가능성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고, 눈앞에 있는 사람과 편견 없이 현재를 함께 즐길 줄 아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몽땅 망했어도 해변가에서 열정적으로 춤을 출 수 있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과거에 대한 후회도, 미래에 대한 불안도 없는 그는 현재를 살 수 있는 초능력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성동가도(별 2개): 남들이 좋다고 해서 와봤는데 생각보다 별로네요. 여기로 오는 길이 왜 1차로 하나밖ㅋ에 없는지 잘 이해가 안 가요. 길을 좀 여러 개 뚫어주면 안 되나요? 정체도 너무 심하고 시간도 너무 오래 걸렸는데 기껏 와보니까 왜 왔는지 까먹었어요. 누군가랑 시간 약속을 한 것도 아닌데 마치 약속에 한참 늦은 사람처럼 초조하고 불안하게 달려왔어요. 막상 와보니까 경치는 그냥 그런데, 좀 더 예쁜 길로, 천천히, 돌아서 올 걸 그랬나 봐요. 충분히 그래도 됐을 것 같은데.

 

지금, 여기(별 5개): 이 장소가 1점짜리로 느껴지는 날들도 많고 어떤 날은 정말 0점을 줄 수 있다면 그러고 싶어요. 5점으로 느껴지는 날들은 정말 드물고 늘상 3점짜리 정도로 느껴져요. 그저 그런, 평범한 장소. 하지만 어쩌면 평범한 것이 가장 어려울지도 모르겠네요. 매일 마주하는 이 공간을 평가할 수 있는 건 오로지 나뿐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장소이고, 나는 이 장소를 깨끗하게 치우고 반듯하게 가꿀 책임이 있어요. 다른 장소들에 신경이 팔려서 이 공간을 소홀히 하면 그건 죽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죽는 것보다 못한 삶을 살 수는 없잖아요.

 

미친 사람이라 그리 외치는 것이 아니다. 여기까지 온 데에는 나름의 이유와 명분과 설계가 다 있다.

 

서로 더 이상 얼굴을 보지 않아도 되는 좋은 날이 오기는 왔다. 다스베이더가 가장 먼저 그룹을 졸업했고, 몇 주 뒤에 차차도 졸업했다. 졸업하기까지 내가 가장 오래 걸렸다. 모두가 ‘정상인’이 되어서 떠나간 뒤에는 연락을 잘 하지 않았다. 떠난 사람의 입장에서는 남은 사람한테 미안해서, 남은 사람의 입장에서는 떠난 사람이 아픈 기억을 다 떨쳐내고 새로 시작하길 바라기 때문에 연락이 뜸해진다. 단절이 곧 배려이다. 그럼에도 종종 그들을 생각했다.

 

중학교를 올라가면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던데, 책을 읽을 여유는 이 여름이 마지막일 것 같아서 나는 여름 내내 고전을 읽었다.

 

함께 아무것도 하지 않는 무의 상태에서 그저 서로의 존재를 문득문득 느끼는 것을 좋아한다. 각자의 구석에서 조용히 책을 읽으면서 서로의 존재감을 느낀다. 각자 소파의 양쪽 끝에서 핸드폰을 쳐다보며 서로의 존재감을 느낀다. 각자 갈 길을 가면서 서로의 존재감을 느낀다.

 

마흔은 확실히 중요한 나이인가 보다. 죽음을 본격적으로 느끼고, 인정하고, 죽음을 내가 하는 많은 의사결정들에 녹이는 작업을 시작하는 나이가 마흔인가 보다.

 

올해로 97세가 되신 할아버지는 움직이기 싫어하는 93세 할머니를 겨우 끌고 나와 하루에 두 번씩 꼭 함께 산책을 한다. 두 분 모두 보행기에 의존해서 동네 공원을 고작 한 바퀴 도는 데 두 시간은 넘게 걸린다. 앞이 잘 안 보이는 할아버지는 평생 다니던 동네 길도 잘 잃어버린다. 치매를 앓고 있는 할머니는 걷는 도중 할아버지와 함께 걷고 있다는 사실을 종종 잊어버리는 것 같다. 그렇게 헤매다가 서로를 발견하면 투덜거리는데, 그 모습이 참 부럽다. 그 오랜 세월을 함께 공유하고 여기까지 왔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 부럽다. 은퇴한 친구들끼리 왁자지껄 여행을 온 60대 아주머니들도 부럽다. 누구네 집 자식이 어떻다는 둥, 그 집은 시어머니가 문제라는 둥, 새로운 목욕탕에 가봤냐는 둥, 오만가지 토픽을 총망라하는 40년은 족히 넘어 보이는 우정이 부럽다. 그들을 뒤따라 산을 오르며 세월은 함께 공유 못하더라도 순간을 함께 공유해본다. 그러다 보면 아주머니들에게 자두나 사과를 얻어먹을 수도 있다.

우리 사회에는 잘 늙어야 한다는 일종의 엄청난 강박 같은 것이 있다. 나이가 드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힘이 드는데, 거기에 추가로 나이를 ‘잘’ 먹어야 한다. 그런 사회적 잣대가 왜 존재하는지 짐작할 수 있지만, 그 틀에서 잠시 벗어나서 그냥 세월을 부딪혀 살아왔다는 것 자체만으로 주어지는 ‘참가상’ 정도는 서로 줄 수 있지 않나 싶다. 서로 그 정도의 여유는 허용해도 되지 않을까.

 

나는 마흔을 앞둔 지금의 내 모습이 썩 괜찮아 보인다. 완벽과는 거리가 매우 멀지만, 그런대로 자연스럽고 편안한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20대, 30대에는 늘 무언가를 갖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그것들을 하나씩 수중에 넣으면서 얻는 즐거움은 엄청난 중독성이 있었다. 하지만 마흔을 바라보는 지금, 나는 하나씩 다시 버리면서 즐거움을 느낀다.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 옷은 과감히 버린다. 남들의 시선 때문에 불편하게 입고 있을 필요가 없다. 젊어서는 내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이고 멋진 옷에 나 자신을 꾸겨 맞추는 것이 중요했다. 그 옷은 단순히 돈, 명예, 학벌같이 남들에게 보여지기 위해 필요한 것들뿐만 아니라 ‘나는 이런 사람이야’라는 관념적인 틀까지 포함한다. 시련 앞에 강한 사람, 기회를 만들어내는 사람, 주위를 살갑게 챙기는 사람 등 나 스스로 원했던 수식어들이 무척 많았다. 남들처럼 정상적으로 늙을 기회가 있었다면 여전히 이런 것들이 중요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는 나 자신을 누구보다 잘 안다. 아침에는 인생에 대해 통달한 것 같은 글을 쓰다가도 한밤중에 일어나 앞날이 막막해서 아이처럼 질질 짜다가 잠드는 사람이 나다. 운 좋게 살고 있는 인생 2회차, 한시도 허투루 쓰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살다가 몸이 조금이라도 아프면 몇 시간 동안 멍하니 짧은 영상들만 보고 있는 사람도 나다. 앞으로 너그러운 마음가짐으로 살아야지 다짐했다가 뜻대로 진행되지 않는 미팅에서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는 사람도 나다. 이제는 흉한 모습들까지 다 나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그럴수록 남에게 덜 휘둘리고 내가 갈 길을 온전히 갈 수 있다. 가까스로 내 색깔을 찾아갈 수 있는 힘을 비로소 발견한다.

 

그리고 나는 이제 포기를 할 수 있다. ‘포기’, ‘한계’, ‘타협’ 같은 단어들은 어감이 영 별로긴 하다. 뭐든지 쟁취해도 모자란 사회에 이런 김 빠지는 단어들을 늘어놓다니. 모든 것이 무한하다고 여기는 세계관에서는 이런 단어들은 쓸데없이 기운 빼는 단어들이 맞다. 하지만 모든 것이 유한하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세계관이 완전히 바뀌게 된다. 삶도 유한하고 그 삶을 구성하는 수많은 요소들도 다 유한하다. 시간, 자원, 노동력, 에너지 등 모든 것은 결국 유한하고, 그렇기 때문에 늘 기회비용이 존재한다. 어딘가에 시간을 쏟기로 결정하는 것은 다른 곳에 시간을 낭비하지 않겠다고 결정하는 것과 같다. 선택에는 반드시 대가가 따른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무엇을 얻을지보다 무엇을 포기할지 결정하는 것이 중요해진다. 마흔에 가까워져서 주위를 둘러보니, 가장 불행한 사람들은 놀랍게도 아무것도 갖지 않은 사람들이 아니라 그 무엇 하나도 포기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이 유한한 세계에서 나한테 중요한 몇 안 되는 것들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 이상은 깔끔하게 덜어내고 더 이상 뒤를 돌아보지 않는 용기를 내는 것이 ‘포기’이다. 그리고 세상의 걱정과는 다르게 빠르게 포기할 수 있는 사람은 다시 빠르게 집중하여 가장 진취적인 사람이 될 수 있다.

 

이제는 내 인생이 조금 엉뚱하게 흘러가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조금 편안해졌다. 예상치 못한 낭떠러지로 추락하거나, 길을 완전히 잃어버리거나, 오랜 시간 걷고자 계획했던 길들이 사라지는 상황들이 썩 재미있지는 않았다. 그래도 그런 상황이 벌어졌을 때 머쓱 웃고 주위를 탐색해볼 정도의 여유는 생긴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불안감이 없지는 않다. 불안은 늘 달고 산다. 마흔 정도의 엄청난 어른이 되면 불안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 실상은 애나 어른이나 노인이나 불안하기는 모두 마찬가지다. 암 병동에서 자기 이름이 불리기를 기다리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그렇다. 아직 살날이 너무 많이 남은 아이도 불안하고, 한창 잘나가야 할 나이에 인생이 멈춘 청년도 불안하고, 인생에 미련 없으니 더 오래 살고 싶지 않다고 푸념하는 노인도 속마음은 너무나 불안하다. 나이가 든다고 우리 모두의 불치병인 불안이 없어지지는 않는다. 다만, 그 불안에 어떻게 반응할지 선택할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내 선택은 호기심을 갖고 세상에 접근하는 것이다. 이야기를 나눠본 적 없는 사람과 말해본 적 없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배워본 적 없는 것들을 탐구하고 싶다. 해본 적 없는 경험들을 수집하고 싶다. 어린아이 같은 호기심을 잃지 않고 세상을 풍성하게 경험하고 싶다. 그렇게 불안을 다스리고 싶다. 향후 커리어 계획이 어떻게 되냐는 누군가의 질문에 나는 진심으로 대답했다. 커리어는 모르겠고 푸드트럭을 몰며 우리나라를 횡단하고 싶고, 추리 드라마 작가도 하고 싶고, 최근에 재미가 붙은 도예로 전시회도 하고 싶다고. 믿지 않는 눈치였다.

너무 많은 것들을 바라기 전에, 나이에 관한 글을 마친다. 와, 정말 마흔이 될지도 모르겠다.

 

거실의 큰 통유리 창문 밖으로 비가 오기 시작했다. 몇 분도 지나지 않아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장대비가 되었다. 사람들이 흩어져서 뛰기 시작했다. 그 사람들을 보면서 문득 생각했다. 왜 아무도 죽음을 생각하며 살아가지 않지. 빗길에 미끄러져서 죽을 수도 있고, 비 때문에 시야가 가려진 차에 치여 죽을 수도 있고, 뛰다가 심장마비로 죽을 수도 있는데. 죽음에 대해 매초 생각하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미친짓인데. 이 사람들아, 지금 비를 안 맞는 게 중요한 게 아니야, 당신들 모두 언젠가 죽을 거라고! 연약한 두부처럼 그렇게 쉽게 으스러지고, 깊고 어두운 갱도로 흘러 들어가서 녹아 없어지는 존재가 우리라고. 매서운 소나기가 칼날처럼 떨어져서 땅에 박히던 날이었다.

 

생명이 넘치는 열대의 정글 속에, 나는 살아 있다.

죽지 않았다, 아직은. 의사들이 말했던 것보다 훨씬 오래 살아 있다. 심지어 꽤 잘 살고 있다. 잘 살고 있다는 기준은 꽤 단순하다. 일단 장기들이 여전히 움직이고 있고 퍼져나가던 암은 현재로선 보이지 않는다. 내가 있어야 할 곳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내가 함께하고 싶은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고 있다. 장기들의 움직임 여부는 전혀 내가 선택할 수 없지만 그 외의 모든 것들은 나의 선택이다. 이 말도 안 되는 정글 탐험이 선택인 것처럼. 가이드가 벌목할 때 쓸 것 같은 커다란 칼을 가방에서 꺼내더니 열대의 시퍼런 이파리들을 베면서 길을 만들어간다. 세상에 이게 무슨 일인가. 여기는 도대체 어디인가. 길이 없는 거였나? 여기 와본 적은 있는 건가?

죽음은 정중하게 문을 노크하고 거기 혹시 계시냐며 예의 있게 들어오지 않았다. 벽을 부수고 들어와서 내 멱살을 잡고 언제든 내키면 다시 돌아오겠다고 한참 소리를 질러댄 후에 나갔다. 도저히 없어지지 않는 지독한 냄새를 온 벽에 칠하고 나갔다. 너는 이제 내 거라고 호언장담하고 나갔다. 80퍼센트일 수도 있다던 생존율은 MRI 한 번 찍고 50퍼센트대로 떨어졌고 암이 전이되기 시작하자 20퍼센트대도 어렵게 되었다. 이 추세대로라면 0퍼센트로 수렴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누구나 언젠가 죽는다지만 나는 내 죽음이 너무 허망했다. 사회를 위해 정의로운 일을 하다가 죽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죽는 것도 아니고, 무언가에 저항하다가 죽는 것도 아닌, 병마로 인한 그저 그런 죽음. 혹시 내일이라도 지구에 커다란 운석이 날아와서 누군가 그 운석에 가서 폭발 버튼을 눌러 스스로를 희생해야 한다면 기꺼이 자원하겠다고 친구들에게 몇 번씩 이야기했다. 이상하게 죽음 앞에서는 내가 살면서 이룬 많은 것들이 한없이 작게 느껴졌다.

 

세상의 유일한 절대적 평등은 죽음이다. 궁극적인 생존율은 0퍼센트이다. 투병하는 동안 많은 죽음을 보면서 나는 죽음을 준비해보기로 했다. 잘 죽기로 결정한 것이다. 하지만 누구도 가르쳐줄 수 없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과하게 넘쳐나는데 어떻게 죽어야 하는지에 대한 조언은 찾을 수가 없었다. 유경험자에게 조언을 받을 수도 없는 일이고 리허설을 할 수도 없는 일이다. 죽음은 처음이라, 아주 서툴렀다.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나는 차곡차곡 죽음을 준비했다. 어차피 죽을 거라 남들에게도, 나 자신에게도 더 이상 이런저런 거짓말을 할 필요가 없어졌다. 좋은 마음을 불쑥 표현하는 것이 덜 쑥스러워졌고, 서로 아프더라도 진실한 말만을 전달하는 것에 익숙해졌다. 어차피 죽을 거면 하고 싶은 일을 모두 다 하고 죽고 싶어서, 너무 깊이 생각하지 않고 뭐든 해본다. 고민하고 분석하고 걱정할 시간에, 무조건 지르고 본다.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사람을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 지금 내 앞에 닥친 과제를 충실하게 해결해야 한다. 지금 내가 있는 곳을 조금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어차피 죽을 거라 잃을 것이 하나도 없다. 뭐, 죽기밖에 더 하겠는가. 내 몸을 무겁게 짓누르던 평생의 군더더기들이 사라지고 알맹이만 남았다. 그렇게 가장 중요한 것들만 내 곁에 남았다. 그제서야 깨달았다. 나는 마지막으로 죽음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처음으로 살고 있는 거라고.

 

어차피 정글에 잡아먹힐 운명이면 내 발로 기꺼이 먹히겠다. 풍덩!

시원한 물속에 온몸이 잠기면서 정신이 번쩍 든다. 갑자기 모든 것이 명료해졌다. 죽음에 대한 공포보다는 삶에 대한 호기심을. 죽음에 대한 저항보다는 삶의 의미를. 죽음에 대한 분노보다는 삶을 향한 에너지를. 죽음을 인정하는 순간 진짜 삶이 시작된다는 것이 내가 겪은 인생의 가장 큰 아이러니였다. 결국 유서를 쓴 이후의 모든 날들이 보너스이자 선물이었다. 그리고 잘 사는 것과 잘 죽는 것은 결국 일맥상통하는 같은 이야기였다.

 

우리는 물 밖으로 나와 햇빛 아래에서 몸을 말렸다. 병에 담아 온 시원한 레모네이드를 한 잔씩 마셨고 가져온 간식들도 나눠 먹었다. 제법 멋진 밀림 속의 피크닉이였다. 별 생각 없이 시작했고, 왜 시작했는지 후회스러운 순간도 많았지만, 이렇게 와보니 어쨌거나 즐거운 소풍이었다. 분명 너무 힘들었는데, 이상하게 시작할 때보다 몸이 더 가벼워진 느낌이었다. 내려갈 일이 남아 있지만, 일행 모두 웃고 있었다.

소풍의 끝에서 이렇게 외치고 싶다.

“재밌었고, 기회를 주셔서 감사했고, 자알 놀다 갑니다!”

무성한 풀밭으로 다시 성큼 걸어 들어갔다.

 

극복하지 못하더라도 선택은 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결말이 정해져 있더라도 그 결말까지 가는 길은 무한하고 흥미롭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플랜 A가 대차게 망해버렸어도 우리에게는 플랜 B가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돌아갈 수 없으면 앞으로 나가면 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평범한 일상은 비범한 확률로 지탱됩니다.

 

길이 조금 험해졌어도 완주는 해보고 싶어졌습니다.

 

그렇게 다시 삶을 선택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