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50
살면서 책 읽기가 성적을 올리는 데 도움을 줬다든가, 좋은 카피를 쓸 수 있게 즉각적인 영감을 줬다든가 하는 혜택 따윈 없었다. 하지만 나만의 감수성, 생각하는 스타일, 삶을 대하는 태도는 지금까지 읽어온 책들의 집합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책은 즉효약보다는 보약과 비슷해서 인생 어딘가에서 책의 부분 부분들이 조용히 힘을 내고 있달까.
p.64
남을 도와주느냐 마느냐의 결정적 요인은 마음에 여유가 있느냐 없느냐였고, 선한 마음을 빼앗는 건 악한 마음이 아니라 바쁜 마음이었다.
p.81
저걸 이룰 수 있을까 없을까 하는 성공 여부는 더 이상 나의 관심사가 아니다. 도중에 그만두면 어떻고 계획을 바꾸면 또 어떤가. 여전히 꿈을 꿀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게 그냥 멋지다. 나는 내가 1년 후에도 10년 후에도 계속 무언가를 꿈꿀 수 있었으면 좋겠다. 꼭 이뤄내지 않더라도 꿈을 꾸는 행위 자체를 유희했으면 좋겠다. 아직 탑승하지 않은 비행기 티켓을 안쪽 호주머니에 품고 사는 것처럼, 언제나 나의 삶이 두근거릴 수 있게.
p.85
이런 궁금증을 가진 적이 있다. 왜 지금의 1년은 어릴 때보다 훨씬 짧게 느껴질까? 아이의 시간은 어른의 시간보다 천천히 흐를까? 아마도 그건 어릴 적엔 처음 보고 처음 느끼고 처음 먹고 처음 경험해보는 것들이 많기 때문이 아닐까. 무언가에 익숙해지면 우리는 더 이상 그것을 의식하지 않게 된다. 아무런 의미를 두지 않는다. 의미가 없으니 금세 까먹게 되고 까먹게 되면 그것은 없던 것과 마찬가지처럼 되어버린다. 그렇게 어른의 인생엔 없던 것과 마찬가지인 날들이 많은 게 아닐까. 없던 것과 마찬가지인 날들이 점점 늘어나면서 지금의 1년은 365일이 아닌 137일 혹은 82일이 되어버린 게 아닐까.
p.104
행운을 발견하는 삶
땅만 보고 살면 볼 수 없어요
당신 머리 위에 떠 있는 무지개
p.115
건물주의 삶
1평짜리 카페
1평짜리 식당
1평짜리 극장
1평짜리 도서관
어느 곳에나 돗자리를 펴면
나만의 1평이 생기지요
p.121
직장 생활을 하고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인정하게 되었다. 내가 모든 일을 다 잘할 순 없다는 것을. 이번 일을 잘했다고 다음 일까지 잘하리라는 보장도 없고, 반대로 이번 일을 못했다고 다음 일까지 못하리라는 보장도 없다.
p.122
패셔니스타
햇볕에 탄 피부는
가장 예쁜 외출복입니다
p.136
부자 되는 법
뱃살이 늘었어요
주근깨가 늘었어요
웃음이 늘었어요
친구가 늘었어요
감사가 늘었어요
호기심이 늘었어요
하고 싶은 게 늘었어요
p.142
나의 삶이 혼자서 순조롭게 굴러갈 수 있었던 건, 매일 만나고 매일 연락하지 않아도 그냥 전화를 걸면 그냥 전화를 받고, 그냥 만나자 하면 그냥 만나는 이들이 삶의 밑바탕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 인생에 훈수를 두는 대신에 나의 속내를 가만히 들어주는 이들. 혼자 있는 삶은 함께 있는 삶이라는 뿌리가 지탱하고 있었음을 이제야 깨닫는다. 그토록 사랑했던 나만의 삶은 스스로 이뤄낸 것이 아니라 함께 이뤄낸 것이었음을.
p.144
예쁘게 삶
웃음으로
풀 메이크업했어요
맨얼굴인데
참 예뻐 보여요
p.152
지금을 살아요
밥 먹을 땐 밥만 먹기
책 읽을 땐 책만 읽기
대화할 땐 대화만 하기
핸드폰은 내려놓고
지금에 충실하기
p.159-161
언제부턴가 와이파이가 조금만 느려도 엄청 답답하고 안 터지면 불안하다. 스마트폰이 없으면 불편한 게 한둘이 아니다. 하지만 아이폰이 처음 출시된 게 2009년이니까 스마트폰 없이 산 세월이 더 길다. 그땐 어떻게 살았을까 싶지만 아주 잘 살았다. 책을 보면서 친구를 기다리고, 좋아하는 가수의 CD가 발매되는 날짜에 맞춰 레코드 가게에 가고, 만화책 신간이 나오면 서로 돌려보고, 갑자기 궁금한 게 생기면 친구에게 전화하고, 잠자기 전에 라디오를 듣고, 다양한 것들이 시간의 공백을 채워주었다. 와이파이의 빈자리를 사람이 꽉 채우고 있었다.
한국에 돌아와 핸드폰을 다시 개통할 때 일부러 데이터가 가장 낮은 요금제를 골랐다. 스마트폰이 채웠던 시간의 공백을 다른 것들로 채우고 싶어서. 요사이 외출할 때면 입을 옷을 고르듯 밖에서 읽을 책을 고른다. 버스 안에서, 친구를 기다리면서, 헌혈을 하면서, 파마를 하면서 스마트폰 대신 책을 보고 있는데, 이런 변화가 아주 마음에 든다.
p.172
하기 싫은 것을 단호히 거절하고, 싫어하는 것을 돌려 말하지 않고, 싫어하는 사람을 만나지 않는 내가 되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원하는 대로 사는 삶은 쉽게 쟁취된 것이 아니었으므로 무엇보다 소중했다. 하지만 인생에는 억지로 하지 않으면 느끼지 못할 것들이 존재한다. 걱정은 잠시 뒤로하고 현재에 풍덩 빠지는 것도 괜찮겠구나 싶다. 가끔은.
p.182
반짝반짝한 1년
365개의 보석이 들어 있었습니다
1년이라는 상자 안에
p.188
힘들면 쉬자
가다가 힘들면 쉬자
쉬어도 힘들면 조금 더 쉬자
그래도 힘들면 그냥 내려가자
힘든 산을 끝까지 오르게 한 힘은
버티지 않으려는 마음이었습니다
p.192-194
"우리는 우리의 이상 때문에 괴로워하며,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의 중요성을 너무 크게 생각하기 때문에 괴로워한다."는 알랭 드 보통의 글귀가 떠오른다. 일이 고통스러운 이유는 두 가지 때문이다. 하나는 남, 하나는 나. 내가 준 고통만 생각해보았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의 중요성을 너무 크게 생각하고 있진 않은가? 나의 역할을 실제보다 부풀리고 있진 않은가? 부담감을 스스로에게 부여하고 있진 않은가? 하나같이 맞았다. 애당초 해결할 수 없는 과제였는데 그걸 해결하지 못한 나를 무능하다 여겼다. 윗사람 취향에 의해 결정된 결과였는데 자책부터 했다. 회자되고 사랑받는 광고가 한 사람의 능력만으로 완성되는 게 아닌데 부족함이 보이는 결과물이 내 탓 같았다. 나의 업, 나의 역량을 과장하고 있었다. 그게 지나쳐서 독이 되었다.
화가 노은님은 말했다. 나비는 날개가 가장 무겁고, 목수는 망치가 가장 무겁고, 화가는 붓이 가장 무겁다고. 그러나 가장 무거운 걸 가장 가볍게 다룰 때 비로소 나비는 나비이고, 목수는 목수이고, 화가는 화가라고. 붓을 가볍게 다루는 사람이 화가라면 카피라이터는 펜을 가볍게 다루는 사람일 텐데 나는 언제나 펜이 무거웠다. 도대체 무거운 날개가 가벼워지고, 무거운 망치가 가뿐해지고, 무거운 붓이 수월해지는 지점은 어디일까. 노은님은 다른 인터뷰에서 말했다. "그림은 잘 그리려고 할수록 잘 안 된다. 그저 밥 먹고 싶을 때 밥 먹는 마음으로 그려야 한다." 왜 나의 펜이 무거웠는지 알겠다.
가야 할 곳을 높게 잡으면 날개마저 짐이 된다. 대단한 작품을 완성해야 한다는 압박이 못 하나 박는 일을 주저하게 만든다. 실수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붓을 무겁게 만든다. 나는 잘해야 한다는 태도로 손에 힘을 주고 일해왔다. 내 아이디어가 선택되면 보람 있는 날이 되고, 그렇지 않으면 하루를 망친 날이 되었다. 살면서 느끼는 기쁨, 슬픔, 분노, 즐거움, 행복, 감사가 '일이 잘 되고 안 되고'에 자주 결정되곤 했다.
일하기를 두려워하는 나에게 해준 말이 있다. 일이라는 건 하루 중 3분의 1을 차지하는 만큼 중요하지만 나머지 3분의 2를 좌우할 만큼은 아니다. 이번에 못하면 다음에 잘하면 된다. 혼자서 못하면 다 같이 하면 된다. 15초 광고를 만드는 거지 2시간짜리 영화를 만드는 게 아니다. 힘을 빼자.
일을 그만두고 삶의 곳곳에서 희로애락을 느끼며 살았다. 직접 분갈이한 식물에 연한 새잎이 올라온 걸 발견하고서 어찌나 행복했는지. 처음 시도한 요리가 맛있어서 정말 뿌듯했고, 소설을 읽으며 밤새 울었다. 친구의 분노에 함께 동참하고, 잘 마른빨래에서 햇볕 냄새를 맡으며 미소 지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주변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여유가 생겼고, 이렇게 글을 쓰는 기쁨을 얻었다. 삶을 잘 사는 것이 무엇보다 소중해진 나는 달라진 삶의 태도를 가슴에 품고 네 번째 면접을 보았다. 그리고 나는 1년 3개월 만에 다시 직장인이 되었다.
p.196
순례자의 삶
골목길
자락길
올레길
혹은
퇴근길
순례자의 마음으로 걷는 모든 길이
순례길
p.204
끄적이다
머릿속으로 끄적인 첫 문장을
창가 책상에서 옮겨 씁니다
405번 버스에서 덧붙이고
화장실 세 번째 칸에서 다듬고
공원 벤치에서 완성합니다
글쓰기 좋은 서재는
모든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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