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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사] 실패를 사랑하는 직업(요조)

아름다운 존재 2023. 11. 19. 09:45

나는 그전 해에 프랑스에 갔다가 우연히 클림트의 작품으로 선보이던 오리지널 전시를, 문자 그대로 넋을 잃고 본 경험이 있다. 심지어 그 당시 프랑스로 떠나기 직전 읽은 책도 의도치 않았지만 <클림트>(아르테)였다. 작가를 대충 알고 보는 전시와 많이 알고 보는 전시가 얼마나 다른지 나는 그때 제대로 알았다. 그때 이후로 나는 모든 전시를 보기 전에, 모든 여행을 떠나기 전에, 모든 모르는 사람을 만나기 전에, 모든 모르는 음식을 먹기 전에 조금이라도 더 알아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되었다. 사전 정보 없이 냅다 부딪히는 좌충우돌을 즐기며 살던 버릇을 완전히 바꿔버릴 만큼 엄청난 깨달음이었던 것이다. 한국의 '빛의 벙커'에서 선보이는 반 고흐의 전시를 앞두고 <반 고흐, 영혼의 편지>를 다시 읽은 것은 그러므로 당연한 절차였다.

 

지금의 초초분분이 얼마나 지극하게 소중한 것인지,

 

나와 반드시 연결되어 있는 그 많은 사람들의 자는 얼굴을, 그 나약한 존재들을 떠올려보면서, 그리고 그렇게 연민에 취한 채 아늑한 잠자리에 드는 나의 팔자 좋음에 치를 떨면서 매일 잠이 든다. 며칠 전에는 눈을 뜨자마자 어마어마한 무력감이 느껴져 오전 내내 일어나지도 않고 침대에 누워 눈만 껌벅이고 있었다. 그때 위아래(친구)에게 문자가 왔다. '나는 왜 이렇게 타인의 불행에 쉽게 흔들리는 걸까.' 조금 뒤에는 조소정(위고 출판사 대표, 친구)에게 문자가 왔다. '과연 언제까지 이럴까. 이후엔 어떤 삶이 기다리고 있을까.'

내가 시도 때도 없이 자는 얼굴을 생각하며 지내고 있는 것처럼 모두가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있다. 그러면서 하루씩 하루씩을 견디고 있다. 다들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나는 위아래와 조소정의 자는 얼굴을 상상하면서 가만히 궁금해졌다.

 

"저 역시 지금 제 목표를 더 잘하는 데 두고 있지 않아요. 최대한 오랫동안 그저 즐겁게 운동할 것을 목표로 두었어요. 계획도 다시 짰고요. 그 계기가 저에게도 나이였던 것 같아요. 수진도 한번 정말 나이 때문인지 차분히 생각해보세요. 그리고 그게 맞는다면 거기에 맞춰 다시 목표를 세우고 계획을 짜보세요. 이건 슬플 일도, 아쉬울 일도 아니고, 그냥 하나의 변화니까요."

 

모른다는 말로 도망치는 사람과 모른다는 말로 다가가는 사람. 세계는 이렇게도 나뉜다.

 

"나는 평생을 비워내고 비워내면서 그림을 그렸어. 이젠 그걸 신경 쓸 필요도 없어졌어. 그냥 몸 가는 대로 하면 되는 거야. 고민할 필요도 없고 즐겁게 그리는 거지. 내가 이제야 그림 그리는 것이 즐겁다고 말해. 물론 그 과정은 굉장히 고통스럽지. 근데 그 고통을 통해서 엄청난 즐거움을 느끼거든. 그게 내가 이전하고 달라진 점이야. 90이 되어서 처음으로 그림 그리는 게 즐겁다고 말하게 된 거지."

 

나는 글을 쓸 때 장강명을 따라 하고 있다. 먹을 때는 김홍란을 따라 하며, 소비할 때는 허세과를 따라 한다.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따라 하는 삶이 나에게 굉장히 잘 맞는 것 같다. 앞으로도 타인들을 유심히 응시하면서 따라 하고 싶은 것을 발견할 때마다 신나게 따라 할 생각이다. 내년 이맘때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까?

 

모든 걸 이렇게 하자. 책방도 음악도 글도, 내 나머지 인생 속에서 하고 싶은 일들을, 다 이렇게 하자. 부드럽게, 허벅지가 터지지 않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이 감각을 잊지 않으려고 눈을 오랫동안 꾹 감았다.

 

장강명 작가와 진행하는 도서 팟캐스트에 초대되었을 때 "우리는 늘 화가 나 있어요" 하고 자신의 얼굴을 미안해하던 허혁 작가를 이제 나는 내가 매일 타는 수많은 버스 안에서 본다. 그들의 구겨진 얼굴이, '징그럽게 외롭고 고독한 삶의 대목'이 이제야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거리에도 '구겨진 얼굴'은 많다. 집회 현장에 나와 앉아 있는 사람들. 그들은 조용하고 얌전하지 않다. 늘 화를 내고, 얼굴을 빨갛게 만들어 언성을 높이고, 머리를 깎고 피를 토할 듯 절규하고 있다. 나는 그 구겨진 얼굴들을 보며 이제 절대로 '저렇게까지 흥분할 일이야?'하고 생각하지 않는다. 죽고 싶을 만큼 매일같이 겪는 불평등과 차별들, 아무리 좋게 말해도 듣지 않고 변하지 않아 결국 얼굴이 꾸깃꾸깃 구겨진 채로 거리에 나온 노동자들과 여성들, 장애인들, 그 밖의 약자들. 언제 어디서든 어떤 구겨진 얼굴을 마주했을 때 '얼굴을 펴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당신의 얼굴이 이렇게 구겨지도록 만들었는지를 묻는 것. 최대한 자주 그 구겨진 얼굴을 따라 옆에 서는 것. 책방을 운영하면서 힘들고 귀하게 배운 태도이다.

 

자기 삶에 뜻 없이 이런저런 제약을 걸어 일부러 약간 불편하게 살아보는 재미를 다들 경험한 적이 있을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오른손잡이의 경우 왼손으로 젓가락질해보기일 텐데 실제로 나는 이 불편한 재미를 거쳐 양손으로 젓가락질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그 외에도 겨울에 보일러 안 틀로 버텨보기, 냉장고 없이 살아보기, 수건 한 장으로 한 달 버텨보기, 뭐 이런 걸 재미 삼아 해본 적이 있다. 나는 비건 생활을 약간 그런 마음으로 시작했고 한두 달 정도 지속했었다.

 

그렇게 짧은 비건 생활을 거쳐 느슨한 채식 생활로 돌아왔더니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 왔다. 그것은 감사함이었다. 무슨 종교도 아니고 뜬금없이 웬 감사함이냐 싶은데 정말 그런 기분이 몰려왔다. 비건 놀이를 하며 먹지 못했던 하나하나의 익숙한 식재료가 그렇게 새롭고 감사할 수가 없었다. 생선도, 계란프라이도, 된장찌개에 들어간 바지락도 너무 맛있어서, 먹을 수 있어서 감사했다. 버터 범벅 크루아상이 내 입으로 들어간다는 사실이 말도 안 되게 감격스러웠다. 그렇게 한동안 매 끼니를 굽신굽신 감사하다는 마음으로 먹다가 자연스럽게 깨달았다. 지금 이 정도로도 내가 먹을 건 과분하게 많다는 것을. 이 정도의 식생활로도 앞으로 충분히 행복하겠다는 사실을. 나는 그냥 이 세계에 눌러앉았다.

 

각자의 상황과 입장에 맞춰서 얼마든지 나보다 더 묽게, 혹은 더 진하게 커스터마이징하며 각자 독창적이고 주체적인 채식주의자가 되어주기를 바란다. 치팅 데이가 일 년에 한 번은 너무 적다고 여겨진다면 한 달에 한 번, 일주일에 한 번도 좋다. 마치 채식주의자가 라이센스라도 있다는 듯, 그런 건 진정한 채식주의자가 아니라고 누군가 조롱하거나 비난하더라도 조금도 신경 쓰지 말기를 바란다. 이 일은 타인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매일매일 먹는 끼니라는 것을 통해 조금 더 지구에 이로운 선택을 하는 존재가 되고 싶다고 생각하는 당신 자신에게만 중요한 문제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당신의 주인공은 당신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