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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사] 나는 읽고 쓰고 버린다(손웅정)

아름다운 존재 2024. 5. 27. 15:24

큰 부모는 마침표를 찍어주는 게 아니라 물음표 던지는 사람

 

이것만 기억해. 영원한 건 없어. 무조건 겸손해야 해.

 

놀아. 실컷 놀아. 놀고 싶은 대로 놀아.” 우리 아이들은 불안해하지 않았어요. 하루하루 엄청 자유롭게 놀았어요. 자유는 창조의 연료라니까요. 애들이 초등학교 4학년이 되기 전에 재능과 꿈을 찾으면 그건 베스트고요, 늦어도 6학년이 되기 전까지 찾을 수만 있어도 그건 차선의 성공이다, 전 그렇게 맘을 먹고 애들 지켜보고 있었어요.

 

일 킬로미터의 전력 질주보다 일 도의 방향 전환이, 일 톤의 생각보다 일 그램의 행동이 중요하다.

 

돌이켜보면 저는 말보다 행동이었던 것 같아요. 말로는 잘 안하고요, 어떻게 보면 절대로 무시할 수 없는 모범, 어떤 룰을 보여주려고 몸을 많이 써왔던 것 같아요. 정말로 부모는 자녀의 롤 모델이 되어야 해요.

 

행복을 아는 아이는 행복한 부모를 먹고 자라요. 부지런한 아이는 부지런한 부모를 먹고 크고요. 부모는 누구보다 제 아이에 대한 파악이 일찌감치 끝나 있어야 해요. 그러면 부모들이 하루하루 돈 버는 데만 급급하고, 자기 편한 대로만 게으름 피우고, 자기 좋아하는 일에만 진탕일 수는 없지 않겠어요? 관심의 여부는 시간이잖아요. 시간을 들였냐 안 들였냐 그것이 증거일 수 있잖아요.

 

예전부터 저는 다이어트의 개념이라기보다 노년기를 어떤 몸으로 살 것인가 아주 근본적인 고민을 꾸준히 해왔던 것 같아요. 늙어 제가 건강하지 못하면 주변 사람들에게 큰 폐가 되잖아요.

 

근력운동 시작한 지는 한 사십 년 가까이 된 것 같아요. 나이들수록 근육이 참 중요하거든요. 근육은 최고의 식량이라 할 수 있어요.

 

세상을 움직이려면 몸이 되어 있어야 해요. 운동도 상상인 것이요, 어쩌다 장소나 기구가 바뀔 때가 있잖아요. 그렇다고 운동을 안 할 수는 없고, 바뀐 환경에서 내 운동프로그램을 거기에 맞게 바꾸는 임기응변으로 하다보면 그런 사고의 신축성이 절로 생기거든요.

 

제가 어떤 일을 안 좋게 당했다 그러면 최소한 그거 남에게 그대로 안 저지르고 살면 좀 나아지는 거 아닌가.

 

소유에 대한 고민은 평생 가져가야 하는 거예요. 내 경쟁력은 안 키우고 내 소유욕만 키우고 있는 건 아닌지, 그에 앞서 욕망의 그릇만 너무 헤비하게 키우는 건 아닌지. 법정 스님 말씀이 모두와 잘 지내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없고 사람 사귐에도 헤프면 안 된다고 하셨잖아요. 소유라는 말을 착각하면요, 내가 소유한 것으로부터 내가 소유를 당하게 되어 있어요.

 

하루를 돌아봐요. 오늘 하루로 삶이 끝난다고 했을 때 무엇이 가장 후회되는 일일까.

 

기본에 충실한 사람은 나에게 집중하지, 남을 기웃대지 않아요. 그 시간에 우리 팀 선수 챙기지, 상대 팀 전술 챙기지 않는다고요. 저한테 비교는요, 남과 하는 게 아니에요.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를 재는 거예요. 정 해보고 싶으면 내 장점과 남의 단점을 대보라는 얘기예요.

 

제가 어렸을 때 막노동일 하고 다닐 적에 십이 년 된 프라이드를 백이십만 원 주고 사서 타고 다녔거든요. 사람들이 막 썩은 차라 그랬어요. 비가 많이 올 때는 물도 새고 하던 차예요. 그런데 저는 항상 그 차가 고마웠거든요. 그 차 아니고서 누가 나 대신 비를 가려줘요. 그렇잖아요. 누가 날 들어다 앉혀서 그만큼이라도 굴러가게 해줬겠느냐고요. 제 장기가 뭐예요. 청소잖아요.(웃음) 차는 오래됐어도 트렁크며 좌석이며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깨끗하게 치워가며 그 프라이드 참 열심히 타고 다녔어요. “몰라서 그렇지 안 보여줘서 그렇지 돈만 빼면 내가 당신들보다 잘하는 게 훨씬 많거든.” 안 보이는 남보다 잘 보이는 나에게 집중하는 방법을 저는 그렇게 스스로 터득해갔던 것 같아요.

 

돈으로 집을 살 수 있지만, 가정을 살 수는 없다. 침대를 살 수 있지만, 잠을 살 수는 없다. 시계를 살 수 있으나, 시간을 사지는 못한다. 돈으로 책을 살 수는 있어도, 지혜를 살 수는 없다. 지위를 살 수 있어도, 존경을 살 수는 없다. 돈으로 피를 살 수 있으나, 생명은 사지 못한다. 약은 살 수 있지만, 건강은 사지 못한다. 돈으로 성대한 장례식을 치를 수 있지만, 행복한 죽음은 살 수 없다.” 피터 라이브스라는 미국 신학자의 말이라고 내가 여기 써놨네.

 

제가 그중에서도 역사책을 많이 봤다고 자주 말씀드렸을 거예요. 한국사는 기본으로 하되 격변기 사회상을 엿볼 수 있는 책들이라든가 미시적으로 파독 광부들이나 간호사들에 관한 얘기까지도 제 도서 목록에는 있었어요. 물론 독일살이에 대한 영향도 미쳤겠고요. 우리가 왜 역사를 보아야 하는가. 제가 자녀 교육에 관한 탈출구를 찾아 책을 찾다보니까요, 일제강점기 때까지 타고 올라가더라고요. 깊이 보면 멀리 보게 된다는 말이 그런 뜻이려나요. 책은 정말 끝이 없구나. 평생이겠구나. 그래서 지루할 틈이 없겠구나. 민감하게 적극적으로 역사 공부를 하다보니까요, 성찰하지 않고 앞만 보고 빨리 달리면 분명 한계도 그만큼 빨리 오겠더라고요. 그쵸. 누구에게나 한계는 있잖아요. 겸허는 그 자신의 한계를 아는 거고, 겸손은 그 자신을 낮추는 거고.

 

리더는 그래서 정말 많이 공부해야 해요. 유능한 리더들 곁에 큰 서재가 있다는 말. 그래서 제가 강연장에서 성공의 비결이 뭐냐고 묻는 말에 늘 같은 대답을 하는 거예요. , 책 보시면 답이 거기 다 나와 있다고요. 책을 몸에 새기듯 읽으시라고요. 유대인들은 책과 돈이 동시에 바닥에 떨어졌을 때 책부터 집어든다잖아요.

 

이렇게나 바쁜데, 할 일이 많은데, 책 읽는 시간이 어디 있냐고요? 나만 바쁘겠어요. 우리 모두 다 바쁘지. 그렇다면 책 읽는 시간을 의도적으로 만들어내야만 하는 거예요. 내가 성장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인데 부러 시간을 내야 하는 건 당연한 이치 아니겠어요? 전 춘천에 있다가 일주일에 이삼일은 꼭 서울에 와요. 그 시간만큼은 내가 책에 온전하게 할애를 해요. 운동하고 독서, 딱 그것만 하고 다시 춘천에 가잖아요. 그러면 축구장에서 한 오 일 미친 듯이 뛰어도 불안하지가 않아요. 책으로 충전이 다 된 것만 같은 거예요.

 

지식을 얻고자 한다면 하루하루 무언가를 더하고, 지혜를 얻고자 한다면 하루하루 무언가를 버리라고 그랬어요. 지식은 내가 무엇을 배우느냐에 목적이 있고, 지혜는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관점이 있잖아요. 지식이나 지혜가 더해질 때 내가 얻는 게 많아 보이지만 이 가운데 버려야 할 것을 안다는 것은 내가 집중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안다는 얘기도 되거든요. 최고의 음식이 소식인 것처럼요. 효율을 따진다는 건 더 적게, 더 좋게, 그런 거 아니겠어요? 가장 적게, 하지만 가장 좋게. 수련의 최고 단계는 그리하여 단순함으로!

 

반복하는 훈련만이 답이다.

 

상대와 부딪치면서 계속 생각하고 고민하고 성찰하라고. 실수하고 실패하고 시행착오 겪으면서 너는 실시간으로 극복하는 거야. 그게 진짜 네 것이 되는 거야.”

 

망각은 최고의 복수니까요.

 

투쟁이란 사실 샤프한 거거든요. 샤프한 사람은 전쟁에서 힘 안 들이고 이길 수 있어요. 제가 선수 생활할 때도 체구가 작으니까 힘으로 치대는 축구가 너무 싫었거든요. 머리 터지게 계속 생각해왔죠. 좀 영리하게 할 수는 없는 걸까. 그래서 찾은 게 속도고, 디테일이었던 것 같아요.

 

승리하는 군사는 먼저 이겨놓고 싸우고, 패하는 군사는 싸움을 걸어놓고 뒤에 이기려 든다

 

우리는 태어날 때도 혼자고, 죽을 때도 혼자잖아요. 외로움을 극복하지 못하면 불쌍하게 늙어요. 나 스스로 외로움을 친구로 삼을 줄 알아야 돼요. 그렇잖아요. 나 외롭다고 여기저기 전화하면 좋아할 사람 아무도 없다고요. 아니 다 늙어서 자식들에게 왜 그렇게 전화들을 하는 거예요? 젊은 세대들 먹고살기 바쁜데 부모들 늙어 외롭다고 매일같이 전화해대면 자식들이 그거 좋아하겠냐고요. 공연히 전화하지 말아야 해요. 자기 삶을 스스로 추스르면서 살 수 있어야 해요.

 

볼 가지고 오래 있어봤자 좋을 거 하나 없어요. 나한테 볼이 오면요, 그 즉시 바로 떠나보내야 해요. 볼은 구십 분 동안 수백 킬로 뛰어도 하나도 힘 안 들지만, 사람은 힘들어 죽어요. 방법은 나 대신 볼을 뛰게 하면 되는 거예요.

 

내 기술이 좋으면 볼을 뛰게 할 수 있잖아요. 그만큼 내가 조금 덜 뛰어도 된다는 얘기잖아요. 삼류는 내 능력을 사용해서 사는 사람이고, 이류는 남의 힘을 이용해서 사는 사람이고, 일류는 다른 사람의 능력을 사용해서 사는 사람이라잖아요. 계속 삼류로 살거냐고요. 제가 삼류 선수로 뛰어봤잖아요. 기술이 좋고 영리하고 기본기가 잘되어 있으면 그만큼 덜 뛰어도 돼요. 왜 미련하게 모든 걸 체력으로 접근하냐고요. 왜 한계가 불 보듯 뻔한 육체적인 걸 가지고 접근하냐고요. 몸이 아니라 볼로 접근하면 훨씬 영리하게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어요. 그러면 우리 애들은 휘파람 불면서 축구할 수 있어요. 아주 안 뛸 수는 없지만 효율성이 높아질 수 있어요.

 

이기고 지고를 떠나서 플레이 자체를 얘들은 좀 다르게 하네, 그런 소리를 듣고 싶어요. 물론 경기에서 이기면 좋기야 하겠지만, 저는 일단 경기력을 따지는 거예요. 경기력이 우세해도 패할 수 있어요. 열 골 먹어도 돼요. ? 제 목표는 지금 열 골 먹고, 스무 골 먹어도, 후에 열다섯 골로 줄이고, 열 골로 줄이고, 다섯 골로 줄이고, 두 골로 줄이고, 한 골로 줄여가며, 제가 원하는 축구에 색을 한번 칠해보겠다는 거니까요. 평생의 꿈이라면 그거 하나예요. 저는 이기기 위한 뻥 축구는 절대로 안 해요. 예의가 살아 있는 축구를 하고 싶은 거예요. 전 다 젖혀두더라도 이 표현을 꼭 한번 듣고 싶은 거예요. “, 참 아름답게 축구한다.”

 

감독이 노력할수록 선수는 성장해요. 감독이 공부할수록 선수는 성공하고요. 혜성은 없어요.

 

일등은 판을 지키는 사람이라 했고, 일류는 새 판을 짜는 사람이라 그랬어요.

 

잘 들어, 나 세 가지만 얘기할 거야. 첫째는 투쟁심이야. 축구는 양복 입고 치마 두르고 하는 거 아니야. 싸움할 의지가 없는 녀석은 가차없이 빼버릴 거야. 둘째는 자신감이야. 너희에게 실수는 없어. 경험만 있어. 이 경험이 쌓이고 쌓일수록 너희들 크게 성장해. 셋째는 판단력이야. 상황 파악을 빨리 빨리 하라고. 많이 보는 만큼 옵션도 많이 생겨. 너희들이 보던 축구와 다른 거 해야 해.”

아이들 이 얘기 다 흡수하다가 경기 시작 전부터 진이 다 빠지겠는데요.

그럴지도 모르지만 그건 애들 몫이고, 이건 제 몫이니까요. 각자 자기 몫들에 충실하면 되니까요.(웃음) 저는 늘 아이들을 직접 가르치고 싶었어요. 내가 가장 나다운 역할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운동장이라고 믿어왔고요. 저는 흥민이를 통해서 제가 아이들 가르치며 축구할 때 가장 행복한 사람인 걸 확인했잖아요. 이 행복이야말로 저의 절대 가치 아니겠어요. 제 발아래에 축구공이 있다는 거, 그 생각만 해도 제 열정은 폭발해요.

 

용기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일단 앞으로 가고 보는 거, 그거요. 지금 우리들 중에 사면초가에 놓이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그건 다 마찬가지 아니겠어요? 용기 있는 사람은요, 일단 가기부터 해요. 그리고 용기 있는 놈한테는요, 길이 생겨요.

 

인생은 고난이잖아요. 일상은 문제 해결의 연속이잖아요. 그게 살아 있음의 증거잖아요. 그래서 우리가 미리미리 책을 읽어두면 좋을 것이, 작가들한테 빌린 지혜가 쌓여 있을수록 그때그때 융통하기가 얼마나 좋아요.

 

간단해요. 그 순간 나는 내 가치를 어디에 뒀지? 하고 묻는 거예요. 내가 지금 돈을 잃게 생겼어. 그런데 나는 내 가치를 건강에 뒀어. 그러면 그 순간 뭔가 좀 심플해지지 않나요? 내가 지금 친구를 잃게 생겼어. 그런데 나는 내 가치를 축구에 뒀어. 봐요. 그 순간 뭔가 아주 선명해진다니까요. 누가 저한테 와서 이 문제 때문에 고민이야, 하고 서두를 꺼내잖아요? 그때 제 물음은 쏜살같이 튀어나갈 거라고요. “그래서 너는 네 가치를 어디에 두었는데?”

 

사람은 다 제 생각만큼 살아가니까요. 많은 생각이 정말 좋은 생각을 낳을 거니까요.

 

애들 어릴 때는 천 가지 만 가지 장난감 사주는 것보다 보듬어 안고 시간을 같이 보내주는 게 부모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육아법

 

자식을 위해 자기를 지우는 게 아니라, 자식을 위해 자기를 키우는 게 부모여야 한다.

 

행복할 때 불행을 대비하고, 풍년일 때 흉년을 대비하라.

 

아이들 눈에 제가 어떻게 비칠지는 모르겠는데요, 아마 이럴 것 같긴 해요. “우리 아버지 배짱 껏 살았잖아? 성질대로 살았잖아? 그랬으니까 우리 아버지 괜찮아.(웃음)” 전요, 아마 죽어서도 거기 가서 청소에 미쳐 살고 있을 거거든요. 게으름은 죄라니까요. 한번 만들어진 습관은 쉽게 안 바뀐다니까요. 좋은 습관은 우리를 위대하게 만들고, 이 반복은 결국 기적을 낳잖아요. 저에게는 이 하루하루가 기적이고 또 기적이다 싶을 뿐이에요.

 

교토삼굴이라고 총명한 토끼는 굴을 세 개 판다잖아요. 살다보니까요, 어쩔 수 없어요. 항상 대비하고 준비하고 계획할 수밖에요.

 

가보지 않고도 빨리 갈 수 있는, 세상에 그런 지름길은 없다.

내게 가장 빠른 길은 내가 알고 가는 길이다.

 

직장은 나를 지켜주지 못했지만 축구는 지금껏 나를 지켜주고 있다.

내가 좋아하고 내가 원하고 내가 사랑할 수 있는 일이 축구였기 때문이다.

, 내가, 내 자신이 축구를 원하고 선택했기에 나는 축구를 도둑맞을 염려가 없다.

아이에게 평생의 직업을 찾아줘야 한다. 그것만이 아이를 평생 지켜줄 것이다.

아이가 평생 행복할 수 있게 부모는 함께 꿈꾸고 탐험해야 한다.

 

할 수 있을 때 실컷 반복하자.

우리가 우리에게 매일매일 기회를 주자.

우리가 우리에게 매일매일 용기를 주자.

 

유대인의 두 가지 기둥은 가정과 배움(특히 독서!)이라고 했다.

비참할 정도로 생활이 어려웠던 카네기는 성공의 비결로 반드시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야 한다 말했고, 노벨상을 제정한 알프레드 노벨은 몹시 궁핍한 가정에서 병약한 몸으로 태어났지만 무수히 많은 책을 읽었다고 한다.

부모가 아이에게 선물해야 할 것은 결국 공부 습관이다. 그 처음은 독서다.

 

내게 필요한 것이 많지 않음을

내게 필요 없는 물건이 너무 많음을

버리면서 깨닫기를 반복하자.

 

진짜 리더는 어떤 결과의 원인을 조직이 아니라 자기 안에서 찾는 사람이다.

 

진짜 리더는 주는 것이 습관인 사람이다.

줄 수 있는 데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고 늘 더 주려고 고민하고 실천하는 사람이다.

 

무엇하러 피곤하게 경쟁하는가.

앞서나가면 개운할 것을!

이겨버리면 고요할 것을!

 

나 자신을 위해 고전을 탐독하고 우리 아카데미를 위해 역사를 배운다.

 

사십대 이후부터 평생 우리를 지배하게 될 것은 아마도 책일 것이다.

 

독서 노트는 내가 읽고 쓴 것을 내 몸이 이해하는 과정이다.

이것은 노트가 아니라 내 몸에 글씨를 쓰는 일이다.

 

혼자 무언가에 빠져서 좀처럼 헤어나오지 못하는 아이가 있다.

그것이 무엇이든 그것은 재능의 증거다.

그럴수록 아이에게 더더욱 철저히 혼자만의 시간과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나무를 크게 키우는 자는 나무의 근본인 땅부터 단단하게 다진다.

그래야 뿌리가 튼튼하게 뻗을 수 있다.

 

인정하라.

상대가 모자란 만큼 나도 모자란 것이다.

경청하라.

대화중에 내가 말하기를 최소화하고, 상대방이 끝없이 말하게 하라.

 

위기라는 말에 쫄지 말자.

위기는 위험한 고비나 기회를 말한다.

위기에는 위험과 기회가 함께 들어 있다.

 

칭찬이나 비방에 휘둘리지 말자.

그들의 칭찬이 날 더 좋은 사람이 되게 할 수 없고,

그들의 비방이 날 더 나쁜 사람이 되게 할 수 없다.

나는 나를 있는 그대로 볼 줄 알아야 한다.

장자가 말하기를 낙출허라 했다.

즐거움은 텅 빈 데서 나온다.

 

현명한 사람은 복잡한 문제를 단순화하고 지혜로운 사람은 필요 없는 일을 최소화한다.

 

초점이 모여야 태양이 종이를 태울 수 있는거잖아요. 초점이 안 모였는데 어떻게 햇볕이 종이를 태우겠냐고요. 그렇다면 이 몰입은 어디에서 오는가, 하면 단순함이거든요. 단순화시킬 수 없을 때까지 단순화시키라고, 이 단순함은 어디에서 오는가. 결국 버림이거든요. 이 버림은 어디에서 오는가.

 

그릇도 왜 비워져 있어야 무언가를 담을 수 있잖아요. 비워진 그릇이 많으면 담을 것도 늘어나잖아요. 그러니까 저 같은 경우는 애초에 그릇의 수 자체를 줄여버리는 거예요. 제가 신발의 개수를 제한해뒀듯이요. 그래서 저는 물건을 막 이렇게 모았다가 버리는 게 아니라 바로바로 갖다버려요. 아무리 값진 것이더라도 저거 나한테 필요 없을 거야, 하면 지체하지 않고 미루지 않고 바로 버려요. 찔끔찔끔이라도 제때제때. 그러니까 버리기 위해서는 내가 소유한 물건들을 매일같이 돌아봐야 해요. 내가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 알아야 그 무엇을 버릴 수 있어요. 안 보면 못 버리고, 못 보니까 안 버리게 되는 거예요.

 

어쨌든 삶이란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한 투쟁의 나날 아니겠어요? 피 터지게 싸워 봤자 사람 앞에 완전이라든지 완성이라든지 이런 수식어 붙일 수 있냐고요. 영원히 그건 못 붙이는 일이잖아요. 완전한 사람이 어디 있고, 완성된 사람이 어디 있어요. 그래서 계속 청소하자는 거고, 고민하자는 거고, 운동하자는 거고, 책 읽자는 거예요. 성공 말고 가치를 좇자는 거예요.

 

행복의 근원이 뭔가요. 몸이잖아요. 흥민이한테도 항상 얘기한다니까요. 죽은 사자보다 산 개가 낫다고요. 건강한 거지가 병든 왕보다 행복하다고요. 흥민이랑 처음 함부르크 갔을 때 그 힘든 상황 속에서도 버틸 수 있었던 게 그전부터 미리미리 내 관리 안 해놨으면, 내 체력을 키워놓지 않았으면, 가능했을 것 같아요? 아니, 못 했어요. 지금의 저는 없었어요.

 

우리가 돈을 벌어도 몸이 벌잖아요.

 

만약 오늘 오후에 짐을 푼다, 그리고 내일 새벽에 운동을 해야 한다, 그러면 일단 짐에 들러서 기구들 둘러본 뒤에 내일 할 운동 프로그램을 미리 다 처방해놓고 자요. 낯설고 하면 우왕좌왕할 수 있잖아요. 새벽에 내려와 허둥지둥하다 시간에 쫓겨 내 맘 편히 운동에 집중할 수 없을 수도 있잖아요. 전 그렇게 내 미흡한 준비로 내 시간을 깨 먹는 게 정말 싫어요.

 

근데 왜 그런 일로 저한테 시인님 생각의 지배권을 넘겨주시나요? 그런 건 한마디로 시간 낭비죠. 그게 혹여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그 생각만으로는 제 머리털 끝 하나 못 건드리는 거잖아요. 아 열받아, 하는 순간 그 독소를 내가 나한테 붓는 거잖아요. 생각해보세요. 그 독소가 걔한테 안 가. 나한테 와. 걔 머리카락 한 올도 상하게 할 수 없어. 그런데 잘못한 것도 없이 공연히 상대에게 왜 내 생각의 지배권을 넘겨주냐고요. 저는요, 한입 갖고 두말 안 해요. 제가 입이 닳도록 계속 반복하잖아요. 내가 나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이라니까요.

 

많이 움직이세요. 사람의 노화는 하체부터 옵니다. 그냥 걷기라도 하세요. 앉으면 죽고 서면 삽니다.

 

돈을 쓰는 데 있어서도 그렇고, 무게를 들어올리는 데서도 그렇고, 저는 언제나 제 분수껏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우선으로 해요. 인상 쓰지 않을 정도로 가볍게, 지체 모를 정도로 빠르게. 이게 분수란 거 아니겠어요?

 

말하자면 그건 제가 이 무게 저 무게 계속 들어올렸다 내려보는 과정 속에 제 몸을 알게 되고, 제 몸을 이해하게 되고, 어쩌면 제 몸의 그 한계까지도 받아들이게 된다는 말이잖아요. 운동은 사람을 겸허하게 해요. 내 능력 밖이다 하는 게 있으면 그걸 그 자리에서 바로 인정하게 만들어버리지요. 축구도 그렇고, 헬스도 그렇고, 공인 받은 지도사 자격증을 다 따서 갖고는 있지만요, 거기에 상응하는 공부를 계속 안 할 수가 없어요. 운동의 핵심은 디테일이니까요.

 

제가 늘 하는 말이 멀리 보고, 깊이 보고, 넓게 보고, 한발 물러나서 보고, 여러 각도에서 보고, 위를 보고, 또 뒤집어서도 보라는 건데.

 

뭐가 모자라는 건 아는데 그 뭐가 뭔지를 잘 모르겠다 싶은 그거요.

감독님은 결국 그래서 지금은 그 무언가를 알아내신 것 같으세요?

아뇨. 대신 한계에 부닥친 다양한 얼굴들을 많이 엿봤죠. 그래서 오늘도 책 읽고, 독서 노트 쓰고, 공부하고 왔잖아요. 다만 평생 찾아야 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일종의 느긋함은 생겼어요. 제가 왜 흥민이에게 축구로는 위를 보고, 생활로는 아래를 보라고 계속 얘기를 해왔겠어요.

 

제가 거울을 보고 운동을 하는 것도 그런 기울어진 데라든지, 비뚤어진 데라든지, 뒤틀어진 데라든지, 몸의 밸런스를 깨는 요인을 찾는 건데 이걸 못 찾고 그대로 두면 몸에 통증이 오는 거잖아요. 병은 지속된 문제의 결과잖아요. 균형을 생각해서라도 운동은 죽을 때까지 해야 해요.

 

저 워낙에 관심이 많아서 근육 관련 책들은 다 사서 공부했거든요. 근육을 알아야 근육을 이해하고, 근육을 이해해야 근육을 키울 수가 있잖아요.

 

작은 파도를 보지 말고 바다 밑에 흐르는 해류를 파악하라

 

남들과 다른 나만의 독창적인 방향

 

저는 무조건 이렇게 서점에 직접 와서 제 눈으로 골라야 해요. 저자 이름에 기대지 않아요. 저자의 명성이 뭐가 중요해요. 저한테 지금 간절하게 필요한 문장이 어디 적혀 있을까, 그 책을 누가 썼던지 간에 두 눈 시퍼렇게 뜨고 그걸 찾는 데 혈안이 될 뿐이지요. 아무리 유명세 있는 작가의 책이라 하더라도 저한테 타격감이 없으면 그만이잖아요. 전 옷도 메이커 안 따져요. 저한테 잘 어울려야 그게 제 옷인 거지, 우리가 옷 안 입고 명찰 입는 거 아니잖아요. 이렇게 서점에 와 책을 고르다보면요, 참 가차없어질 때가 많더라고요.

 

속도의 시대잖아요. 미래는 시간 싸움이라고 했어요. 저는 이렇게 서점에 한번 오면 한 열네 권에서 스무 권 정도 사거든요. 광고 매대 쓱쓱 지나쳐서 직진 일로고요. 책도 서머리가 잘 되어 있는 걸 주로 집어요. 짧은 시간 안에 집중할 수 있으니까 효율적이잖아요. 베스트셀러라고 해서 무조건 집어들지도 않아요. 이 책이 저한테도 베스트일지를 더 냉정하게 보는 편이에요. 여기 서서 목차부터 쫘르르 봤는데 하나 마나 한 소리만 늘어놨다, 그럼 또 가차없어지는 거죠. 그리고 왜 책 중간중간에 도표다, 그래프다, 통계다, 데이터베이스 같은 거 그려져 있는 책 있잖아요. 그것도 미련 없어요.

우리가 통계로 사는 거 아니잖아요.

사는 걸로 사는 거죠.

 

독서로 경쟁하자는 거 아니잖아요. 남을 이기고, 남보다 많이 소유하고, 남보다 높은 지위 갖고, 남 위에 군림하자는 거 아니잖아요. 사람들한테 책 읽어라 하면 하나같이 바쁘다, 시간 없다, 그런단 말이죠. 맛있는 거 먹고, 재미난 거 보고, 편안하게 잘 시간은 있으면서 책 볼 시간은 없다고 한단 말이죠. 사실 저도 운동하고 독서, 매일같이 이 둘에 집중하는 삶이 진짜 쉽지만은 않거든요. 그런데 이 힘든 걸 계속하다보니까요, 내 삶이 쉬워지는 거예요. 힘든 운동하고, 힘든 독서하고, 이 힘든 두 가지를 매일같이 하니까요, 내 삶이 진짜 쉬워지는 거예요.

 

시간 없다는 거 다 자기 합리화에서 빚어진 변명 아니겠어요. 모두가 아홉시에 출근해서 여섯시에 퇴근한다 쳐요. 그럼 출근 전에 두 시간 일찍 일어나서 책 읽고, 퇴근 후에 두 시간 책 읽고 늦게 자기를 한 삼 년 한다 쳐요. 삼 년 전과 삼 년 후, 사람이 얼마나 달라져 있을까요. 아니 책으로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다 하더라도요, 잠 안 자고 벌어들인 그 시간만 합해도 대체 얼마인가요.

 

제가 백 번 천 번 다 같은 소리를 하잖아요. 책이라니까요. 축구 잘하고 싶어도 책이고, 헬스 잘하고 싶어도 책이고, 요리 잘하고 싶어도 책이고, 하다못해 정리 잘하고 싶어도 책이라니까요. 저는 책을 읽기 전보다 책을 읽은 후에 조금은 나아진 사람이 된 것도 같다고 감히 말씀을 드릴 수 있을 것도 같거든요. 최소한 좋은 걸 보고 알게 되었을 때 이걸 되도록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픈 마음이 생긴 것만 봐도요. 앞서 시야에 대한 언급도 했지만 책을 몰랐다면 저는 아마 관점에 대한 이해가 없는 채로 세상을 여전히 편협한 시선으로만 바라보고 있었을 거예요. 어떤 상황에서든 답을 찾고 문제를 해결하려면 시야가 충분히 확보되어야 하잖아요. 어쨌든 제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부모나 어른이나 지도자의 정형을 제가 흉내라도 내보려고 애쓰게 된 데는 책의 도움이자 책의 혜택이 전부라 할 거예요.

 

누가 저한테 사색이 뭐냐고 물어온다면 그렇게도 답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하루를 살더라도 진짜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거. 물론 삶에 정답은 없는데 그래도 한 번 사는 거 모두와 똑같은 삶이 아니라, 생각 없는 삶이 아니라, 정말 제대로 된 사람답게 살 수 있는 방법은 없나,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게 되는 일. 말하자면 그런 숙고가 사색일 테니까요.

 

제가 청소를 하면서도 이 물건을 왜 왼쪽에다 놨을까, 애초에 오른쪽에 뒀으면 어땠을까, 계속 자문하면서 답은 꼭 못 빨아들여도 제 내면으로 끊임없이 청소기를 돌려보는 거요. 그런 생각의 탐험이 사색이라면 저는 하루종일 하는 사람이 맞을 거예요.

 

그때 비겁하게 굴었으면, 그때 아프고 추울 일은 없었겠죠. 대신 지금 아프고 추웠을지 모르잖아요. “나무는 꽃을 버려야 열매를 가질 수 있고, 강물은 강을 버려야 바다에 이를 수 있다”고 <역경>에도 보면 나오잖아요. 사람들은 그 어떤 과정에 대해선 생각을 안 해요. 꽃도 강도 생각을 안 한다니까요. 사실 그걸 간과해서는 절대로 안 되는 건데 말이죠.

 

난 흥민이 어려서 처음 독일 갔을 때도 우리 앞에 놓인 이거 지금 불이익이다 싶으면 판 다 뒤집었어요. 의도적으로 더 그렇게 했어요. 애 보라고. 막 다 뒤집어엎었어요. 애가 보고 있잖아요. 열일곱 열여덟이잖아요. 이제부터 애는 여기서 살아야 하는데, 잘못한 것도 없이 억울한 상황에 참기나 하면 애는 앞으로 어떻게 제 밥그릇 챙기겠어요. 네 밥그릇 네가 챙길 줄 알아야 해. 네가 안 챙기면 다 뺏겨. 전 행동으로 말했던 거예요.

 

생각의 지배권, 삶의 지배권, 그러니까 내 지배권을 남에게 넘겨주지 말라고 제가 앞서도 말씀드렸잖아요. 항상 우주 한복판, 그 중심에 나를 놓을 줄 알아야 해요.

 

문제를 푸는 데 있어 일단 나부터, 내가 건질 것부터 남기고 싹싹 다 쳐나가는 거죠. 그렇게 문제를 단순화시키는 거죠. 이게 내 목숨보다 소중해? 내 가족보다 중요해? 내 가치보다 커? 내 성장보다 의미 있어? 예컨대 이게 우리 아카데미 식구들 문제라고 해 봐요. 내가 이걸로 싸워야 해요. 그럼 우리 식구들의 손실 있어, 없어? 내 경제적인 손실 있어, 없어? 포기할 거 빨리 포기하고, 챙길 거 빨리 챙겨서 그 시간을 단축하면 내 상황의 어려움에서 더 빨리 해방이 되는 거라고요. 질질 끌려다니지 말라고요. 이건 이기적이 되라는 얘기가 절대로 아니에요. 나를 버리는 게 나만 버리는 것에서 끝나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예요.

 

세상이 바뀌어야 한다고들 하잖아요. 그건 다 동의를 하잖아요. 그런데 꼭 다른 사람부터 바꾸려고 한단 말이에요. 제가 보기에 그 순서가 틀렸다는 거예요. 내가 바뀌잖아요? 그럼 세상이 바뀌어요. 세상이 지저분하다고요? 내 집안부터 깨끗하면 청소하면 세상이 깨끗해질 수 있어요. 개인마다 이렇게 노력을 한다고 했을 적에요. 나를 우선 하는 게 나만 우선시하는 데서 끝나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 아니겠어요?

 

세상은 감사할 줄 아는 자의 것이라고, 인정하는 순간 행복이 막 열릴 건데 말이죠.

 

실수하기도 전에 실패하기에 앞서 두려움부터 생각한다는 거, 그건 조금이라도 손해를 보기 싫어하는 욕심 아닌가요. 어떻게 하나도 안 잃고 모든 다 얻을 생각만 해요, 욕심쟁이지, 그건.(웃음) 전 그렇게 생각해요. 시도를 해봤으니까 실수도 생기는 거고, 도전을 해봤으니까 실패도 일어나는 거라고요.

 

좋아하는 걸 자발적으로 하면요, 그 일에 속도가 엄청나게 붙는 건 너무나 당연한 결과죠.

 

호랑이는 스스로 호랑이임을 밝히지 않고 다만 덮칠 뿐이다.” 윌레 소잉카요. 아프리카 작가라고 외웠어요.

 

저는, 왕따가 무서웠던 게 아니라 제가 혹여나 게으름과 타성이 젖을까, 제 안의 긴장감이 느슨해질까 매순간 더 저에게 집중했던 것 같아요. 전 그렇게는 안 살고 싶었어요. 그래서 그렇게는 안 살려고 노력한 건 맞아요.

 

매사에 긴장감을 갖는 거, 그건 책이 해줄 거고요. 매사에 치열함을 갖게 하는 거, 그건 운동이 해줄 테고요.

 

세상 어디에도 없는 예쁜 꽃을 피워내는 내 오얏나무는 충분한 경쟁력이 있다는 거 아니겠어요. 그렇다면 내 오얏나무를 전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브랜드로 키워내면 되는 거 아니겠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내 오얏나무를 내가 가장 존중하고, 배려하고, 인정하고, 사랑하는 일이 우선인 거 아니겠어요? 그보다 앞서 이행이 되어야 하는 일은 품에 많이 안아주는 일일 거고요. 아이는 부모를 아주 정확히 느끼거든요.

 

아이는 곁에서 자기한테 집중하고 있는 부모를 귀신같이 알아버려요.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아이가 제 곁에서 부모를 느끼고 있으면요, 난관을 걸림돌로 안 보고 디딤돌로 여겨요. “괜찮아, 넘어져도 돼, 느려도 돼, 건너갈 수 있어.” 부모는 아이의 뒤를 따라 가는 사람이지, 아이를 앞에서 잡아끄는 사람이 아니에요. 같은 풍이라고 해도 촛불은 바람에 꺼지지만 모닥불은 바람에 더 잘 타잖아요. 그런 것처럼 연은 바람을 등지고 섰을 때 더 팽팽하게 날잖아요. 순풍보다 역풍에 더 잘 나는 게 맞잖아요.

 

저는 아이들 과잉보호 안 하고 약하게 좀 안 키웠으면 좋겠어요. “울지 마, 먹지 마, 실수하지 마, 넘어지지 마, 약해지지 마그 마 좀 하지 말고 대신 그 돼 좀 하면 좋겠어요. “울어도 돼, 먹어도 돼, 실수해도 돼, 넘어져도 돼, 약해져도 돼.” 자유를 주자는 얘기예요. 그 안에 반드시 지켜야 하는 질서를 스스로 만들고 지켜가도록 부모는 돕기만 하면 되잖아요.

 

전 살면서 그렇게 깊은 절망에 빠져본 적이 없거든요. 막노동일을 하러 다닐 때도 그렇고 학교에서 소사로 일할 때도 그렇고 전 언제나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아래 사람 없다, 그 당연한 생각만 계속하고 살았어요. 누가 뭐래도 나는 주어진 일 이상으로 해냈으니까 언제나 당당하고 누구 앞에서든 떳떳했어요. 그리고 이 다짐을 계속 되뇌었어요. “나는 여기에 잠시 멈춘 것이다. 나는 여기에서 오래 머무르지 않을 것이다.”

 

그럼요. 나의 장점은 매일같이 늘어날 거예요. ? 나의 노력이 매일같이 반복될 거니까요. 나의 강점은 매일같이 커질 거예요. ? 나의 꿈이 매일같이 자랄 거니까요. 성공은 내가 좋아하는 것을 얻는 일이고, 행복은 내가 얻은 것을 누리는 일이라 그랬어요. 행복을 멀리서 찾지 말고 제 발밑에서 키우라는 말도 있잖아요. 행복은 이렇게나 단순한 거예요. 아무 조건도 이유도 없이 내 곁에서 내가 가장 쉽게 찾을 수 있는 게 내 행복이라고요. 저란 놈을 한번 보세요. 발밑에는 축구공이 있고, 손끝에는 책이 있잖아요.

 

나는 무조건 행복할 것이다. 나는 무조건 성공할 것이다.” 내가 나한테 이 정도의 말은 어렵지 않게 해줄 수 있잖아요.

 

슬럼프? 말이 좋아 슬럼프지 그거 당신 하기 싫어서 하는 변명이야. 대체 슬럼프가 왜 와?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는데, 내가 잘하는 일을 하고 있는데, 여기서 열정이 안 나온다고? 그건 내가 아주 강력하게 말하고 싶은데 그거 당신 착각이야. 아니라면 지금 당신이 하는 일이 당신이 진짜 원했던 일인지 잘 한번 생각을 해보라고. 아니라면 당신이 원해서 한 일인데 당신 노력이 부족해서 그런 건지 잘 한번 생각을 해보라고. 그래도 잘 모르겠다 싶으면 책을 봐, 책을.”

 

축구장에서 뛰어다니는 거 보셔서 아시겠지만 거기 풀어놓으면 저 완전 미친놈이잖아요. 그런 저에게 가장 잘 찼다고 생각하는 볼이 뭐냐 물으면 바로 다음에 넣을 볼이라 저요, 자신 있게 답할 수 있거든요. 책도 그래요. 서점에서 걸어다니는 거 보셔서 아시겠지만 거기 데려다놓으면 저 완전 책이랑 꼬리잡기하잖아요. 그런 저에게 가장 타격감이 큰 책이 뭐냐 물으면 바로 다음에 읽을 책이라 저요, 신나게 말할 수 있거든요. 말마따나 슬럼프는 제자리잖아요. 슬럼프는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정체잖아요. 다음에 넣을 골이 있고, 다음에 읽을 책이 있으니, 제 행복도 다음이 계속 이어진다는 얘기인데, 사는 게 이렇게 매일같이 덤인데 겁날 게 뭐 있겠어요. 그런데 그거 아세요? 중요한 일이 탄생하는 건 꼭 혼자 있을 때라는 거?

 

춘천 육림랜드라고 애들 어릴 적에 거기 데리고 가서 호랑이도 보여주고, 곰도 보여주고, 원숭이도 보여주고, 온갖 동물들도 다 보게 해주고. 또 오백 원짜리 잔뜩 바꿔다가 열차를 태우고, 또 태우고. 학원은요, 무슨요. 애 둘 키우는 우리 큰애한테도 같은 얘기를 해요. 되도록 애들 데리고 많이 다니면서 많은 걸 보여주고 많은 걸 경험하게 하라고요. 너희가 귀찮다고 집에만 있을 생각 말고 애들이 어디든 가자고 하면 따라나서라고요. 아이들 나이대별로 경험시키면 좋을 것을 부모가 공부해야 한다고요.

 

주변이 어둡다고 투덜대지 말고 네가 먼저 촛불을 켜라.”

ㅡ간디

 

잃은 것에 태연하고 얻은 것에 무심하라.”

ㅡ백결 선생

 

적으면 얻은 것이요. 많으면 미혹된 것이다.”

ㅡ노자

 

새기기를 중간에 그만두지 않으면 쇠와 돌에도 무늬를 새길 수 있다.”

ㅡ순자

 

오늘의 나를 만든 것은 우리 마을 도서관이었다.. 나에게 소중한 것은 하버드대 졸업장보다 독서하는 습관이었다.”

ㅡ빌 게이츠

 

육지에서 멀어질 용기가 없다면 새로운 수평선을 향해서 나아갈 수 없다.”

ㅡ윌리엄 포크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