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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사] 세상에 무해한 사람이 되고 싶어(허유정)

아름다운 존재 2023. 7. 7. 07:12

자연에 가까운 선택을 할수록 내 몸은 건강해졌고, 쓰레기를 줄일수록 일상이 좀 더 나은 삶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걸 느꼈다. 비닐과 플라스틱에 포장되지 않은 음식을 고르며, 서서히 독소가 빠지듯 조금씩 몸은 건강해졌다. 플라스틱이 아닌 자연 소재가 많아지며, 집 안 분위기는 더 따뜻하고 편안해졌고, 쓸데없는 물건이 줄어들며 내 곁에는 내가 정말 좋아하는 걸 채울 수 있는 공간과 여유가 생겼다.
 
입에 닿는 플라스틱을 줄여나간 게 작은 시작이었다. 한번 아파 보니, 알게 되더라. 뭐든 자연스러운 것에서 건강함이 온다는 걸.
 
완벽하겠다는 부담을 버리니 쓰레기 줄이기는 점점 더 즐거워졌다. '오늘은 텀블러가 있어 커피잔 아꼈네?' '빨대는 잘 거절했어.' '휴지 한 장만 덜 써도 한 달이면 30장인걸?' 여전히 쓰레기통에 쓰레기는 쌓여 있지만, 작은 실천 하나하나에 집중하니 뿌듯할 일이 많아졌다.
 
이제는 처음보다 남들 시선을 그리 신경 쓰지 않는다. 예전에 <무한도전>에서 제주도에 정착한 이효리를 찾아간 적이 있었다. 과거와는 다른 소박한 모습으로 콩을 베던 그녀. 처음에는 '여기 오니 욕심이 없어졌다. 편안하다'며 제주도에 완전히 적응한 듯 말했지만, 노래방 기기를 켜자마자 흥이 올라 "오빠, 나 서울 가고 싶어! 콩 베기 싫어!"란 명언을 남겼다.
종종 미처 준비하지 못해 식당이나 공원에서 일회용 수저를 쓰는 나를 보고 지인들이 놀란다.
"오, 허유정. 제보한다 제보해. 지금 일회용품 쓴 거지?"
그럼 나는 대답한다.
"이효리도 가끔 서울 가서 놀고 싶은 거예요."
집들이 때 수저가 없으면 일회용품을 꺼내기도 한다. 텀블러를 못 챙긴 날, 너무 목이 마르면 생수를 사기도 하고, 정신없을 땐 나도 모르게 물티슈에 손이 가기도 한다. 이제는 그렇게 생각한다. '아쉽지만, 이런 날도 있는 거지.' 중요한 건 이제 조금 불편한 마음으로 쓰레기를 만든다는 거 아닐까? 좋은 일도 즐겁게 해야 오래 할 수 있다.
'할 수 있는 만큼, 즐겁게.'
제로웨이스트를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다.
 
명확한 가이드라인은 빠른 실행력을 만들어준다.
 
모든 일은 좋아해야 더 잘하는 법
 
지금까지 나는 휴지가 필요해서 쓴 게 아니라, 곁에 있으니 썼구나!
 
'쓰레기' 같은 해로운 연인은 당장 싱글이 될 내일이 두려워도 끊어내는 게 옳다. 해로운 인연을 만나 고생해본 경험은 친구들을 통한 간접 경험이라도 한 번쯤 있을 것이다. 주변 이야기를 생각해보면, 대부분 끝은 같았다. 처음에는 무섭지만, 막상 헤어진 후의 일상은 생각보다 평온하더라는 것. 이별 후 진심으로 자신을 아껴주는 친구와 가족들을 만날 시간이 많아졌고, 이런 시간은 전보다 건강한 몸과 마음을 만든다. '새로운 사람이 생기지 않을 것 같다' '다른 사람을 만나도 똑같을 것 같다'며 이별을 망설였던 친구들은 생각보다 더 빨리 좋은 사람을 만나 새로운 시작을 했다. 이별하지 않았다면 만날 수 없을 뻔한, 소중한 사람들이었다.
일회용 비닐과의 이별은 분명 어려운 일이다. 그렇지만 노력해봐야 한다. 새로운 일상에 적응하는 게 귀찮아서, 막연히 어려울 것 같아 망설여진다면, 우리를 스쳐 간 수많은 '쓰레기'를 떠올려보자. '우리 정말 헤어질 수 있을까?' 했었지만, 그들이 없어도 잘 살아왔고 오히려 더 나은 내가 되었다.
이제 용기 내어 이별을 말해보자.
"비닐 씨, 우리 이제 진짜 헤어져."
 
주스 병도 20년 이상 보관할 만큼, 우리 엄마는 물건 하나 쉽게 사고 버리는 법이 없다. 생각해보면 엄마들이야말로 진정한 제로웨이스트 고수. 살림을 살 때는 가격과 품질을 꼼꼼히 따져 오래 쓸 것을 고르고, 버리기 전까지 몇 번이나 고쳐 쓴다. 내가 어릴 때만 해도 엄마들은 천 기저귀를 썼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이렇게 사야 맛도 좋고 싸다'며 쟁반을 들고 우동 공장, 두부 공장을 찾던 엄마의 모습도 떠오른다. 한 푼이라도 아껴보려던 엄마의 살림 방식이 지금 와서 보니 '친환경 살림'인 거다.
 
제로웨이스트의 핵심은 쓰레기를 만들지 않고 만든 쓰레기는 재활용하는 것. 세계적인 에코 트렌드를 우리 엄마들은 아주 예전부터 실천하고 있었다. 아침마다 방을 돌며 콘센트 체크하기, 쓰레기 봉지는 꾹꾹 눌러 꽉 채우기. 엄마들의 쓰레기 줄이기 팁은 말하자면 끝이 없다.
 
"얄궂은 거 좀 사지 마라. 돈도 버리고 다 쓰레기다!"
예전부터 엄마는 말했다. 물건은 돈을 좀 주더라도 좋은 걸 사야 하고, 멀리 보면 이게 아끼는 방법이라고. 살림해보니 그 말은 진리였다. 싼 가격, 화려한 광고에 혹해 산 것들은 금방 망가지거나 불편했다. 특히 자잘한 살림이 많은 부엌에서 이런 실수가 잦았다.
 
저렴한 가격 때문에 샀지만 결국 시간도 돈도 낭비하는 꼴이 된 셈이다. 좋은 살림을 과감하게 사는 것도 살림력이라는 걸, 나는 꽤 많은 돈을 흩뿌린 후에야 알았다.
 
너무 싼 것만 찾았더니 그게 낭비였다.
 
"자주 쓸수록 좋은 거 써야 해."
 
쓰레기를 줄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애초에 쓰레기를 만들지 않는 것. 싸다고 예쁘다고 샀지만 결국 창고에 박혀버린 물건들이 너무 많다. 물건을 하나 들일 때도 꼼꼼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오래 쓸 수 있는 좋은 물건인지를.
 
촉감이 좋은 살림을 들이는 건 나를 아끼는 법 중 하나다.
 
분명 또 부딪히는 일 생기겠지만, 앞으로도 현명하게 답을 찾는 부부가 되자.
 
종종 쓰레기를 덜어내다 보면 깨닫는다. 생각보다 없어도 되는 게 참 많다는 걸.
 
전에는 남는 건 사진뿐이라 입버릇처럼 말했지만, 지금은 여행 후 남는 건 '새로운 일상'인 것 같다. 여행 중 우연히 먹은 심심한 독일식 빵, 홍콩에서 배운 상큼한 아침 홍차 같은 것들이 여행이 끝나고도 내 일상을 풍요롭게 해 준 것들. 새로운 경험으로 좋아하는 게 많아질수록 일상은 더 반질반질 윤이 났다. 익숙한 것에서 한 발짝만 더 나아가면, 지금까지 내가 몰랐던 '새로운 취향'이 있을지도 모른다.
 
쓰레기를 줄이며 나는 '일상'이 더 좋아졌다. 예전에는 특별한 장소, 특별한 때에만 느꼈던 감정을 요즘은 평범한 하루 속에서도 문득문득 느낄 수 있다. 항상 먼 곳만 바라보며 무언가를 기다리기만 했던 나. 지금은 언제 올지 모를 그 순간을 더 기다리지 않는다. 그 대신 눈앞에 있는 것부터 보고, 만지고, 온전히 누리며, 지금을 충실히 살고 있다. 그게 더 나은 일이란 걸 이제는 안다.
쓰레기가 있던 자리가 비워지니, 그 자리에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점점 채워졌다. 그전까지는 몰랐다. 내가 이토록 작은 것에 감동하는 사람인 줄은. 욕실에 들어서면 동글동글 놓인 비누가, 부엌에서는 나란히 줄 선 유리 잡곡 병이. 이 작은 것들이 그렇게 귀여울 수 없다. 쓰레기를 줄이며 취향은 더 분명해졌다. 내가 어떤 향을 좋아하는지 비누를 쓰며 알게 됐고, 비닐과 플라스틱이 치워진 단정한 부엌은 요리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했다. 취향이 또렷해진다는 건, 좋아하는 걸 잘 알고 있다는 것. 이렇게 일상은 풍성해져갔다.
"하면 할수록 더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긴 해."
쓰레기를 줄이려 노력하는 내게, 누군가 칭찬을 하면 내가 하는 말이다. 이게 정말 대단한 일인지 훌륭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한 건 하면 할수록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가격만 따졌던 세제도 이제는 바다에 들어가도 될 성분인지를 먼저 본다. 좋아하던 아보카도도 산림 파괴의 주범이란 말 듣고 되도록 사지 않는다. 그저 '나'만 보고 살던 내가 바다와 아마존을 생각할 줄이야. 밥솥이 있어도 햇반만 먹던 사람이 나였다.
스스로 자기를 소중히 대하며 품위를 지키려는 감정, 자존감. 이렇게 사전을 찾아봐도 여전히 잘 모르겠지만, 환경을 위해 무언가를 해본다는 건 나를 사랑하는 일에 도움이 됐다. 회사 생활 중 가장 힘들었을 때는 '내가 조직에 필요 없는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을 때였다. 사람은 그 누구의 인정보다, 자신의 인정이 필요하다는 걸 그때 알았다. 쓰레기를 줄이다 보면 종종 그런 생각을 한다.
'그래도 폐만 끼치는 건 아니라 다행이야.'
여전히 지구에 빚을 지고 살아가지만, 할 수 있는 만큼이라도 해보려는 작은 노력. 이 세상에 필요한 일을 하나라도 했다는 생각이 들면, 그날 하루는 기분 좋게 잠이 든다. 반찬통을 들고 가 장을 보고, 텀블러에 커피를 받는 작은 일들. 작지만 분명 선의에서 비롯된 일이다. 착한 마음으로 무언가를 한 날은 스스로 꽤 괜찮은 사람이 된 것 같다. 물론 지금도 내가 우선인 이기적인 사람이지만, 쓰레기를 줄이는 덕분에 종종 나 아닌 모두를 생각해본다. 편한 길, 나 좋은 길, 남보다 빨리 달리는 길만 찾던 내게 온 긍정적인 변화. 쓰레기가 줄어드니 타인이 들어올 '여백'도 생긴 것이다.
어떤 미래가 올지 아무도 알 수 없지만, 현재 우리가 마주한 지표는 긍정적이지 않다. 하지만 지금 포기하기에는 너무 이르다. 많은 과학자, 전문가들은 말한다. 기후 변화 위기에 더 많은 사람이 공감하고 힘을 합한다면, 분명 변화는 올 수 있다고.
할머니가 되면 손주들과 이런 대화를 나누고 싶다.
"그때 정말 위기였는데, 우리 그때 진짜 애썼어."
"정말 큰일 나는 줄 알았는데."
맑은 공기를 즐기며 테라스에 앉아, 도란도란 과거를 추억할 수 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