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디작은 내 삶을 글로 쓰기 시작한 건 3년 전부터다. 성공담보다 실패담이 압도적으로 많은 나였다. 가끔 평범하고, 대부분 평범에도 미치지 못했던 나였다. 이토록 시시한 사람에게 무슨 이야기가 있겠어. 시작부터 나는 나를 의심하고 하찮게 여겼다. 겨우 용기 내 ‘나의 비정규직 직장생활’에 관한 얘기를 썼다. 목표는 없었다. 그냥 썼다. 아이러니한 건 이렇게 쓴 글로 상을 받고 책을 출간하게 됐다는 사실이다.
‘쓸 만한 삶’이 어떤 삶인지 궁금했다. 어른이 된 지 16년이 지난 지금, 나는 답을 찾았다. 쓸 만한 삶이란 쓰는 삶이다.
세상 어디에도 그냥 시시한 삶은 없다. 그저 아직 쓰지 못한 삶이 있을 뿐이다.
“즐겁게 살지 않는 것은 죄다.”-무라카미 류, <69> 작가의 말 중
생각하고, 느끼고, 묻기
표현하지 않으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다. 스스로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사소하다고 무시해버렸던 일상을 글로 옮겨봤다. 막힘없이 잘 써졌다. 점점 쓸 얘기가 늘었다. 글을 쓰면서도 피식피식 입꼬리가 자주 올라갔다.
솔직하게 쓰면 쓸수록 마음이 편안해졌다.
이렇게 에세이를 쓰기 시작한 지도 3년이 넘었다. 내가 한 가지 취미를 오랜 시간 즐기게 될지, 매일 똑같은 일상을 계속 글로 쓰게 될지, 나를 괴롭히던 글쓰기에 즐거움을 느낄지, 이전에는 미처 몰랐다. 쓰는 시간은 내게 가르쳐줬다.
누구나 글을 쓸 수 있다는 걸.
또 시시한 일상도 꽤 괜찮은 글감이 된다는 걸.
저마다 다른 삶을 산다. 글쓰기 방식도 그렇다. 영감을 받아서 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치밀하게 고민하고 계획해서 쓰는 사람이 있다. 이런 것들이 ‘타고난 자’와 ‘타고나지 못한 자’를 구분하는 잣대라면 나는 ‘정말’ 타고나지 못한 사람이다. 안타깝게도 그런 사람에게는 꾸준함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글을 써본 적은 없지만 한 번쯤 내 기록을 남겨보고 싶은 사람, 글재주를 타고나진 않았지만 어쨌든 쓰고 싶은 사람인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작정 많이 읽고 쓰는 노력이 아니다. ‘내게 잘 맞는 글쓰기 방법’을 찾는 것이다.
-나만 갖고 있는 글감
-지치지 않고 꾸준히 쓰는 방법
-내가 잘 쓸 수 있는 장르
내가 편안하게 쓸 수 있는 환경과 방식이 분명히 있다.
이제 막 글을 쓰기 시작한 누군가가 나에게 “잘 쓰고 싶은데 너무 막막해. 어쩌면 좋지?”라고 묻는다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잘 쓰려고 하지 말고 편안하게 쓰려고 해봐.”
참고로 나의 글쓰기 루틴은 엉망이다. 쓰는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다. 새벽에 썼다가, 밤에 썼다가, 점심시간에 썼다가 하는 식이다. 쓰는 장소도 마찬가지다. 카페에서 쓴다. 집 거실에서 쓴다. 회사에서 쓴다. 잠들기 전 침대에서 쓴다. 출근하는 버스와 지하철에서도 쓴다. 글도 휴대전화 메모장, 카카오톡, 태블릿PC, 회사, 노트북, 남편 노트북 등 사방팔방으로 흩어져 있다. 덕분에 한 편의 글을 완성하려면 여기저기 흩어진 글을 찾는 수고가 필요하다. 게을러 보이고 체계적이지 못한 방식이지만 나와는 잘 맞는다.
모든 사람이 글을 쓸 필요는 없다. 그러나 쓰고 싶은 모두가 글을 쓸 수 있다. 게을러터지고 정리정돈은 포기한 나 같은 사람도 어떻게든 쓴다. 쓰고 싶을 때마다.
꾸준히 글을 쓰기 위해서는 피로감을 덜어줄 나만의 글쓰기 루틴을 찾아야 한다.
독서는 양보다 질이다. 많은 책을 섭렵할 수 없다면, 몇 권의 책이라도 여러 번 곱씹어보는 편이 낫다. <책은 도끼다>로 독서가 삶을 얼마나 풍요롭게 만드는지 보여준 박웅현 작가도 의외로 다독하는 스타일은 아니란다. 그는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이렇게 말했다.
“저는 다독하는 스타일은 아닌 거 같아요. 책을 깊이 읽는 거 같아요. (...) 요즘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말인데요. 책을 천천히 읽으려고 해요. 그러다 보니 ‘1년 몇 권을 읽어야겠다’ 이런 다짐을 안 하려고 노력해요. 왜 그런 말이 있잖아요. 친구가 되려면 시간이 걸린다고. 책과 친구가 되려면 시간이 걸려요.”
그렇다. 책은 친구다. 그러니 와닿지 않는 책을 붙들고 있는 것보다 내게 감동을 주는 책을 천천히 읽고, 다시 읽고, 또 읽는 게 낫다.
‘내가 좋아하는 글’이 가득한 책을 만나보면 안다. 그 즐거움이 여느 콘텐츠의 곱절은 된다는 걸. 나에게 맞는 책을 만나 읽고, 밑줄 긋고, 다시 읽고, 옮겨 적어보자. 하루종일 수다를 떨다가 헤어져도 또 할 말이 생기는 친한 친구 같을 테니까.
다독하지 못하는 집순이는 오늘도 다짐해본다.
다독과 완독의 부담감에서 벗어나자.
정독으로 이겨내자.
나는 다독하지 못하는 집순이지만 글은 다작하려 애쓴다. 글은 운동과 닮았다. 반복하면 할수록 근육이 발달하고, 장르마다 재미와 매력도 다르다.
내가 쓰는 글의 종류는 다양하다. 회사에서는 기획안과 구성안을 쓰고, 글쓰기 모임에서는 시놉시스와 대본을 쓰고, 개인적으로는 에세이를 쓴다. 언뜻 보면 한 가지에 집중하지 못하는 산만한 사람 같다. 그러나 나는 운동처럼 글을 즐길 뿐이다. 봄에는 마라톤, 여름에는 수상스키, 가을에는 등산, 겨울에는 보드를 타는 것과 같다. 회사에서 쓰는 글은 먹고 살기 위해 쓰고, 소설은 이야기를 만드는 즐거움이 좋아 쓰고, 에세이는 공감받고 싶어서 쓴다.
장르와 분량에 신경 쓰지 말 것
선배는 글쓰기 강좌를 들었던 적이 있다. 그래서인지 글을 쓸 때마다 ‘수필이니까 A4용지 한 장에서 한 장 반을 써야 해’라는 압박감이 있는 듯했다. 나는 그녀에게 형식과 장르에 얽매이지 말라고 당부했다. 선배는 30대인 나보다 SNS 계정을 잘 운영한다. 사진을 잘 찍고, 사진과 어울리는 짧은 글도 잘 쓴다. 그러니 발레 이야기 역시 발레 강사님의 사진과 함께, 인상적이었던 장면을 짧게 묘사해서 SNS에 올려도 좋을 것 같았다. 후에 그 장면을 모티브로 짧은 소설을 쓸 수도 있고, 다른 경험과 연관 지어 새로운 에세이를 써낼 수도 있다. 일상에서 만난 인상적인 장면이 모두 에세이가 될 필요는 없으니까.
막히면 일단 관두기
어쨌든 쓰는 시간을 자주 갖는 게 중요하다. 쓰다가 막히면 다른 이야기를 쓰면 된다. 그렇다고 쓰던 이야기를 완전히 버리라는 게 아니다. 글은 김치 같아서 묻어두고 보관하는 기간에 따라 다른 맛을 낸다. 나는 선배에게 발레 이야기가 써지지 않으면 잠시 쉬고, 카페 또는 카페 주인장 이야기를 대신 써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카페를 가는 게 일이자 취미인 그녀에게는 ‘많은 카페 이야기’가 있을 테니까.
티끌 모아 태산이라 했던가.
졸작도 모이면 귀한 글쓰기 재료가 된다.
미완성도 상관없으니 다작해보길 바란다.
거짓말을 많이 할수록 자존감이 낮아진다. 거짓말은 대부분 타인을 의식하는 마음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습관은 내상에 취약하다. ‘자아정체성 출혈’이라든가 ‘자존감 골절’이 생길 수 있다. 게다가 치료법도 없다. 그래서 나는 글을 쓰는 순간만큼은 솔직해져야 한다고 믿는다.
‘남’을 의식하지 말고 ‘나’에 대해 진솔하게 서보자. 별 볼 일 없게 느껴지는 시시한 일상도 일단 그대로 옮겨보자.
쓸 만한 이야기는 낯선 곳에 있는 게 아니다. 가깝고 익숙한 곳에서도 발견된다.
‘내 주변에는 글감이 없던데?’라는 생각이 든다면 대화 방식부터 바꿔보자. 일상적인 대화일지라도 더 묻고 잘 들어보자. 그러니까 질문과 경청에 신경 써보자는 얘기다.
이야기는 쥐어짜는 게 아니라 발견되는 것이다.
우린 모두 같은 세상을 사는 것 같지만, 저마다 각각 다른 세상을 품고 살아간다. 익숙한 사람에게도 질문을 던지다 보면 의외의 면을 엿보게 된다.
인생이 따분해서 쓸 이야기가 없다는 건 아직 누구에게도 진심으로 귀를 열고 질문해본 적이 없기 때문일 수도 있다.
가장 좋은 건 일단 내가 먼저 쓰고 다른 사람이 같은 주제로 쓴 글을 비교해보는 것이다. 요약한다는 건 생각을 정리하는 일이다. 쓰는 일을 미루고 남이 쓴 좋은 글만 부러워하면 백지상태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글감이 떠오르지 않는 초보자라면 내가 잘 아는 것, 내가 경험한 것, 내가 느껴본 것, 내가 관찰해온 것부터 써보자. 그러다 보면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발견할 수 있을 테니까.
살다 보면 내가 잘하고픈 분야의 천재를 만나게 된다. 솔직히 하늘에서 뚝 떨어진 재능을 독차지하고 사는 듯한 천재를 만나는 일이 즐겁지만은 않다. 천재가 가진 빛나는 재능 앞에 내가 해온 노력이 순식간에 잿빛이 되기도 한다. 이때 천재를 질투할 수는 있지만, 그 모습에 압도되어 나의 노력을 관두지는 말자.
분명 이곳저곳에 글을 공유하다 보면 수많은 천재를 만나게 될 것이다. 하필이면 그 천재가 나와 비슷한 주제로 글을 써서 내 글과 비교될 때도 있다. 그러나 천재는 천재일 뿐이고, 나는 나다. 오늘 내가 쓴 글이 초라해 보인다고 내일부턴 쓰지 않겠다고 하지 마시길.
완벽한 글이 아니어도, 하필 천재가 쓴 글 옆에 있어도, 씩씩하게 쓰고 공유하자. 재능을 예단하고 포기하는 사람은 모른다. 꾸준히 쓰는 사람에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쓸데없는 상상 마라. 괜한 생각 말고 공부나 해라 등...
어릴 적부터 상상은 낭비라 배웠다. 하지만 동시에 창의적인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또 남들이 하지 않는 생각을 통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어야 성공한다고도 배웠다. 정리해보면 쓸모 있는 상상과 생각만 하면서 창의적인 사람이 되란 것인데, 아무리 따져 봐도 어폐가 있다. 어떤 생각이 가치가 있고 어떤 생각이 가치가 없는 걸까. 그건 결과를 보기 전까지 섣불리 판단할 수 없지 않은가.
쓸데없는 상상은 낭비가 아니다. 때로는 상상으로 시작된 일이 사람들의 박수를 받기도 한다.
제임스 비치는 강연 끝에 이런 말을 덧붙였다.
“삶이 힘들 때 좌절과 싸우지 말고, 좌절을 삶을 재밌게 만드는 촉매제로 만들어버려요.”
아팠던 기억을 담담하게 쓰는 것.
기뻤던 일을 슬프게 쓰는 것.
아무것도 아닌 일을 의미 있게 쓰는 것.
글쓰기는 우리 삶을 새롭게 만드는 촉매제이다.
행동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글도 마찬가지다.
잘 쓰고 싶다면 일단 써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떻게든 써보는 일’이다.
요양원 사람들은 보기 드물게 예쁜 치매 환자라고 입을 모았다. 착하기만 해서 서러운 일이 많았던 인생이었건만, 이제는 아프다는 핑계로 화내고 원망할 수 있건만, 할머니는 조금도 삐뚤어지지 않았다. 그 모습이 답답했던 나는 ‘이제 싫은 사람은 싫어하셔도 된다’고 알려드렸다. 그러자,
“내가 마음을 곱게 써야 내 자식이랑 손주가 복 받지. 아가씨가 왜 그런 말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난 이만하면 잔 살았어.”
이런 대답이 돌아오는 게 아닌가. 사실 할머니는 아빠의 큰어머니였다. 어린 시절 부모를 잃은 아빠를 대신 키웠다. 그리고 그런 아빠의 자식인 나를 위해 좋아하던 구방구 일일드라마까지 기꺼이 포기했다.
언제부턴가 글을 쓸 때면 할머니와의 기억이 자꾸 떠오른다. 우리에게는 구방구 연속극을 보는 것 외에도 추억이 많았다. 초등학교 때는 한글을 가르쳐 드리기도 했다. 글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할머니는 칠십이 가까운 나이에 성경책을 필사하며 한글을 익혔다. 그래서인지 생각을 짧게 기록한 문장도 마치 기도문 같았다. 그중 아직도 잊히지 않는 문장이 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여 우리 가족에게 거룩한 축복을 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이런 어른 밑에서 자랐지만 내 인생이 쓸 만하다고 깨닫는 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를 뺀 모두가 멋지게 사는 것만 같아 자신이 작고 초라하게 느껴질 때, 과거 상처로부터 단단히 발목이 붙들려 있다고 생각될 때, 이렇게 살아서 뭐하나 싶을 때, 이럴 때조차 우리의 삶은 꽤 쓸 만하다. 아니, 이럴 때일수록 삶은 글로 볼 만한 가치가 있다. 벌어진 일은 되돌릴 수 없지만, 글을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며 내 삶의 의미를 변화시킬 수 있다.
고로 ‘쓸 만한 인생을 사는 사람’이란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애정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는 것처럼 자신의 삶을 정성껏 써내려가는 모든 사람을 뜻한다.
아직도 내 인생이 시시하고 평범한 듯하다. 하지만 이제는 그 사실이 내가 일상을 글로 옮기는 데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 오히려 놀라울 뿐이다. 이토록 심심한 삶에도 쓸 만한 크고 작은 이야기가 계속해서 생겨나고 있지 않은가.
에세이를 쓰며 알게 된 51가지
- 글쓰기는 누구나 할 수 있고
- 누구에게나 ‘글감’이 존재하고
- 쓰는 게 좋아지면 듣는 일도 즐거워지고
- 글쓰기도 운동처럼 반복하다 보면 늘게 되고
- 예사로운 일상에서 예사롭지 않은 글감도 찾아낼 수 있고
- 그러나 글은 글감이 아닌 버티는 궁둥이로 완성되고
- 멋진 문장보다 솔직한 문장이 힘이 세단 걸 알게 되고
- 맞춤법은 글쓰기의 장벽이 아니란 걸 알게 되고
- 취미로 쓰는 글은 업무용 글쓰기에도 도움이 되고
- 자기 이야기를 타인에게 보여줄 수 있는 용기가 생기고
- 인터넷에 글을 올리면 조회 수에 집착하게 되고
- 글을 올렸을 때 누군가는 내 글을 좋아하고
- 글을 올렸을 때 누군가는 내 글을 끝까지 읽어주지 않고
- 글을 올렸을 때 누군가는 내 글을 클릭조차 하지 않고
- 글을 올렸을 때 누군가는 내 글을 싫어하기도 하고
- 글에 대한 악플이 무플보다 낫지만
- 악플은 아플 수밖에 없고
- 그만 써야지 마음먹을 때쯤 누군가 내 글을 칭찬해주고
- 칭찬 한 번에 ‘내 글이 꽤 근사하다’는 착각에 빠지고
- 착각하다가도 돌연 자신감을 잃기도 하고
- 새벽에 쓰거나 술 먹고 쓴 글을 바로 올리면 다음날 밤 이불 킥을 하게 될 확률이 높다는 걸 알게 되고
- 글로 남기면 행복한 기억이 극대화되고
- 글로 남기면 슬픈 기억이 치유되고
- 글로 남기면 아팠던 기억이 별거 아닌 일이 되기도 하고
- 글로 남기면 시시한 일에도 의미가 생기고
- 글로 써보면 내 옆을 떠나간 사람이 더욱더 그립고
- 글로 써보면 내 옆에 있는 미운 사람이 덜 미워지고
- 글로 써보면 나를 아프게 했던 사람을 덜 원망하게 되고
- 글을 쓰다 보면 세상에 관심이 깊어 지고
- 글을 쓰다 보면 관심 있는 분야가 넓어지고
- 글을 쓰다 보면 저장하는 자료가 늘어나고
- 글을 쓰다 보면 타인을 부러워하는 마음이 줄어들고
- 글을 쓰다 보면 남이 아닌 나에게 관심이 생기고
- 글을 쓰다 보면 평범한 사람도 비범해 보이고
- 글을 쓰다 보면 세상을 읽는 나만의 눈이 생기고
- 글을 쓰다 보면 나의 단점이 보이고
- 글을 쓰다 보면 그 단점을 비로소 인정하게 되고
- 글을 쓰다 보면 타인의 단점보다 장점이 많이 보이고
- 써보면 전공과 글쓰기는 상관없단 걸 알게 되고
- 써보면 전공과 상관없이 잘 쓰는 사람이 널렸단 걸 깨닫고
- 내 글 말고 남이 쓴 글도 자꾸 읽게 되고
- 내 글 말고 남이 쓴 글에도 애정이 생기고
- 베스트셀러가 되지 못한 좋은 책도 찾게 되고
- 쓰고 읽은 것이 쌓이면 ‘그럴싸한 말’이 저절로 나오고
- 쓰고 읽는 것이 쌓이면 자신의 감정을 의심하는 일이 줄고
- 쓰고 읽는 것이 쌓이면 내 감정을 남에게 맡기지 않게 되고
- 감정이 단단해질수록 나만의 문체가 생기고
- 이렇게 쓰다 보면 누군가 나를 ‘작가님’이라 불러주고
- “누구든 ‘작가님’이 될 수 있구나!” 확신하게 되고
- 지금처럼 모든 일에 50가지 의미쯤은 찾아내게 된다.
- 그리고 이 책을 쓰면서 깨닫게 된 것도 있다. ‘사람’이 ‘쓰는 사람’을 만든다는 것이다.
내 삶이 꽤 쓸 만하단 사실을 가장 먼저 알려준 남편, 60살 어린 손녀에게 글쓰기 선생이 될 기회를 준 나의 구방구 할머니, 불행한 순간에도 전혀 불행하지 않다는 얼굴로 딸을 키워낸 나의 부모님, 맏며느리에게 추석에 내려오지 말고 원고나 쓰라고 해준 시부모님, 임신으로 힘들었을 텐데 초고를 읽고 조언해준 친구 혜영이, 힘들 때마다 달콤한 디저트를 사주며 응원해준 현경 선배까지. 나의 이야기는 나의 사람들 덕분에 완성될 수 있었다.
이제 누군가 내게 글쓰기에 꼭 필요한 게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나보다 나를 더 과대평가해주는 사람들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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