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 읽고 맹렬히 쓰다 보니 20년이 훌쩍 지나갔다.
지금 당장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쓰기 시작하면 된다. 그러면 그 순간 당신은 작가가 된다. 작가가 되기란 그토록 간단하다. 걷기가 간단한 이유와 비슷하다. 왼발을 옮기고 오른발을 옮기고, 다시 왼발을 옮기고 오른발을 옮기는 것처럼, 다리가 무거워도 옮기다 보면 저만치 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처럼. 당장 오늘부터 시작하여 아직은 글 쓸 여유가 없다는 머릿속의 속삭임을 꽉 누르고 묵묵히 쓰는 것이다.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직장을 그만둬선 안 됩니다.”
글쓰기 같은 예술 쪽 분야에 뜻이 있다면 절대 돈 나오는 구멍을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 간혹 생업을 그만두고 글쓰기에 전념하겠다는 사람이 있는데 도시락을 몇 개씩 싸들고 쫓아다녀서라도 말리고 싶다. 첫째는, 예술은 짧고 인생은 길기 때문이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직장에는 붙어 있어야 한다. 배가 고프면 글도 쓸 수 없다. 두 번째는, 지금은 아닌 것 같더라도 그 직장에서 일하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 역시 펜을 쥔 당신의 무기가 되기 때문이다.
나를 죽이지 않는 것은 반드시 나를 강하게 만든다, 나를 죽이지 못한 것은 분명히 언제나 글감이 된다.
20년 넘게 글을 쓰다 보니 별일이 다 생긴다. 오래 글 쓰다 보니 이런 식의 좀 희한한 전업작가가 되는 일도 있다. 글을 살찌우는 일들은 이렇게, 간혹 아주 의외의 장소에서 나타난다. 언니와 오빠는 내 책 <뜨겁게 안녕>(다산북스)을 읽고 내 손을 잡았다. 우연히도 나는 10년 전 그 책을 쓰며 10년 후 나를 도와 내 글을 살찌우는 일을 한 것이다. 그 책을 쓰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영원히 남남이었을 것이므로. 베스트셀러 작가만이 행복한 것이 아니다. 안 팔리는 책도 가끔은 작은 기적을 일으킨다.
나는 내가 걸작을 쓸 거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청탁이 없었던 5년이라는 기간이 나에게 남긴 그늘 같다. 그러나 도움이 되는 그늘이다. 나에 대한 기대가 높지 않으니 소설을 쓰다가 슬럼프에 빠질 정도로 좌절하는 일은 매우 드물다. 완성하면 그걸로 충분하다. 단, 쓸 땐 나의 모든 것을 쏟아붓는다. 이후의 일은 신의 뜻대로, 그것이 나의 기본자세다.
소설 쓰는 마음을 잘 보호하고 가꾸는 것
오늘날 직업인으로 살아가는 이들 중 전시 상황에 놓이지 않은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그 고난을 저마다의 자리에서 함께 돌파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게 된다면 그 분투는 덜 외롭거나 최소한 덜 억울할 것이다. 아니, 사실 그래도 억울하다. 하지만 달리 방도가 없으니까 정신 무장이라도 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당신도 퇴근하고 읽고 써라. 그 일이 가치 있는지 없는지 모른다고 하더라도, 설령 무가치하더라도 그러는 게 재미있다면, 그 재미를 위해 힘을 들여라. 재미야말로 당신이 인생에서 얻을 수 있는 최고의 가치이니까.
그는 아무것에도 의지하지 않고 홀로 있지만
모든 존재가 그를 토대로 서 있다.
그는 가까이 있으면서 동시에 멀리 있고
안에 있으면서 동시에 밖에 있으며
움직이면서 동시에 움직이지 않는다.
-<바가바드 기타> 중에서
소설을 한평생 써나가고 싶은데, 이십 대의 나이에 벌써 이렇게 몸에 무리가 오다니. 앞으로 계속해서 소설을 써 나가려면 우선은 몸이 건강해야 했다. 소설을 쓸 만한 체력이 있어야 함은 물론 소설을 쓰다가 몸이 망가지는 일 따위도 없어야 했다. 그러려면 요가를 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요가를 하느라 시간을 다소 뺏기기야 하겠지만 나의 생 전체를 놓고 본다면 그것이 소설을 더 오래 쓸 수 있는 비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본래의 나는 집중력이 없고 산만하고 조급한 사람이었다. 의지력 또한 부족해 한 가지 일을 오래 하지 못했다. 그러나 ‘본래’라는 건 없다는 사실을 요가를 하면서 깨우쳐 나갔다. 요가를 수련해오는 동안 이전에 없던 집중력과 의지력이 점점 자라나기 시작한 까닭이었다. 그것은 어쩌면 원래부터 없던 것이 아니라, 원래 있던 것인데 그동안 내가 사용하지 않아 묻혀 있던 건 아닐까 싶다. 요가는 그렇게, 내 안에 잠들어 있던 보물을 하나씩 꺼내어 보는 일과 닮았다.
요가 수련과 명상을 이어오며 되도록 한꺼번에 두 가지 일을 하지 않았다. 이것도 해야 하고, 저것도 해야 하는 숨 가쁜 현실의 삶은 어쩔 수 없는 것이지만, 그중 한 가지만이라도 온전히 바라보고 행하며 자신과 마주하는 일이 더욱 즐겁다는 사실을 이제는 알고 있다. 서서히 익어가는 쌀눈을 바라보며 지금 여기에 있기까지의 과정을 되새겨 보는 것. 그 과정을 나의 내면으로 온전히 흡수하고 순환시켜 좋은 에너지로 다시 사용하는 것. 모든 것이 자연의 흐름에 맞게 돌아가기를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지금 이 순간과, 이 순간 속의 행위에 대한 온전한 집중은 곧 명상이 됐다.
매일 만나는 하루의 삶을 요가로 시작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에는 엄청난 차이가 뒤따랐다. 자고 일어나 보면 머리와 어깨가 무겁게 결리고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 경우가 왕왕 있는데, 그럴 때 곧장 요가원에 가 몸을 움직이고 호흡을 하다 보면 어느새 가볍고 시원하게 존재하는 나 자신을 만날 수 있었다. 지금 이 순간 나의 삶을 바꾸고 싶다면, 행복해지고 싶다면, 먼저 하루의 시작을 바꾸는 노력부터 하는 것이 좋다.
매일 새벽 요가원에 가 요가를 하는 나에게 지인들은 ‘대단하다’고 이야기했다. 나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해주었다. 내가 대단해서 매일 요가를 하는 것이 아니라, 매일 요가를 하면서 내가 대단해지는 것이라고 말이다. 정말 그렇다. 힘겹고 고단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힘, 그것도 기쁘고 감사하게 살아갈 수 있는 커다란 힘은 모두 요가에서 나왔다. 요가를 하며 얻게 된 힘과 에너지를 통해 나는 나에게 일어나는 일에 좀 더 집중할 수 있고, 그로 인해 작가로서의 업인 글쓰기도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이어올 수 있었으니, 이 얼마나 행복한 부업을 얻었는가 싶다.
서서히 끓어 적당히 익은 현미죽을 그릇에 담아 상 위에 놓았다. 미리 썰어둔 동치미무와 국물도 그릇에 담아 상에 올렸다. 이 소박한 밥상이 지금 이 순간 내 앞에 자리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자연의 섭리를 지나쳐 왔을까. 날로 험악해지는 사회의 범죄가 줄어들고, 점점 파괴되어가는 환경과 지구를 구하고, 도무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분쟁과 전쟁이 없어지려면 우리 모두가 조금씩 변화하며 스스로를 바로 세우는 삶을 사는 게 우선일 것만 같다.
식사를 하기 위해 수저를 들기 전,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았다. 소중한 음식을 나에게 내어준 자연에 감사한 마음을 가지며 이것이 부디 내 안에 잘 스며들기를, 좋은 에너지를 주기를, 그리고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기를 기도했다.
이 세계에, 그 안의 당신께 평안과 축복이 있기를.
나마스떼.
누군가에게는 사랑받고 있으니 나는 대체로 만족한다.
삶의 모든 장면들, 살면서 마주치는 모든 사물과 생물들이 모두 이야기의 소재가 된다. 나는 현실에서 일어난 장면들의 핵심줄거리나 가장 강렬한 정서적 반응만 뽑아서 이야기를 만들고 그 이야기의 겉모습은 완전히 비현실적인 포장으로 덮으려 애쓴다. 그런 의미에서 내 이야기들은 어찌 됐든 현실적이다. 본질은 현실에 닿아 있다. 비현실적인 것은 단지 어떻게 꾸며서 내보이는가, 즉 프레젠테이션 관련된 부분뿐이다.
그들의 속도가 부럽지 않다. 어차피 가는 길이 다르니.
이 길을 건너면 나의 일과 모순과 아이러니를 발견한 찰나의 순간들도 모두 잊히겠지. 잊히기 전에 기억하고 메모해서 남기려 한다. 기록으로 남기는 그 행위가 곧 나의 실존이기에.
나는 그냥, 글을 썼다. 언제나 그렇듯 그냥 쓰고 또 썼다.
10년 후의 나는, 20년 후의 나는 어떨까. 그때의 나 역시 지금처럼 고민하고 있을까. 여전히 불안해하면서도 어떻게든 글을 쓰고 있을까.
아마도, 그럴 것 같다. 그렇게 살며, 쓰며, 어떻게든 버티고 있을 것 같다.
격리 기간 동안 고립감이나 단절감 같은 걸 느낄 여유가 없다. 그냥 그 상태를 즐기려고 했다.
어떤 오브제든 써보면 이 현실에서 벗어나는 미로를 발견하게 된다. 이 전염병의 시대쯤이야, 하는 담대함을 찾아야지.
돈도 친구도 없을 때 혼자서 시간을 때우는 데는 몽상과 창작만 한 게 없다.
대작가는 스스로의 결심으로 된다. 받는 원고료가 터무니없고 먹고살기 위해 투잡 쓰리잡을 뛰지만 돈이 되는 글을 써야 한다는 조바심 없이 자기 글을 쓰는 결심, 문단의 주목을 받지 못하고 어디 큰 문학 행사에 초청을 받지도 못하지만 스스로 주최한 작은 행사의 열 명도 안 되는 독자들 앞에서 서투른 포부를 밝히는 것에 부끄러워하지 않을 결심, 책이 팔리지 않고 세상 아무도 자신의 글을 모를 때에도 후대 사람들이 좋아할 것이라고 믿으며 신나게 글을 쓰는 결심 말이다. 경쟁하거나 줄 세우지 않고 동료를 신뢰하는 애정의 연대를 상상하는 마음과 끝없이 과거의 나와 경쟁하는 일일신 우일신의 마음, 그게 필요하다.
그와 함께 가장 필요한 것이 자기 확신이다.
대작가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에 지쳤다면 우리는 된 거나 다름없다고 마음먹으면 된다. 떼어 놓은 당상이다. 정삼품 당상관과도 바꾸지 않을 대작가가 된다. 그러니 주눅들 필요도 무리할 필요도 서두를 필요도 없다. 나의 속도에 맞게 천천히 한 발 한 발 나아가면 된다. 그런 기분이 우리를 거기까지 가게 할 테니까.
누가 뭐라든 감나무 밑에서 입 벌리고 감이 떨어질 거라 생각하고 또 생각하자.
무엇을 쓸 것인지 생각하면 신이 난다. 뭐든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어릴 적에 셜록 홈즈나 에르퀼 푸아로를 좋아했다면 추리소설을 쓰는 것도 괜찮다. <스타워즈>나 <파운데이션>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SF소설도 좋다. 장르적 특성을 이해하거나 이미 성취를 이룬 대작가 선배들의 발자취를 확인하기 위해서 명작으로 이름 높은 작품들을 읽어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그렇지만 읽어야 할 교양이 너무 많다고 겁먹거나 위축될 필요는 없다. 대작가들의 작품을 읽고 나는 다시 태어나도 절대 그렇게 쓸 수 없을 거라고 괴로워하고 포기한다면 그런 생각 말라고 자신 있게 이야기해 주고 싶다. “그렇게 쓸 수 없다면 다르게 쓰면 된다.” 스타워즈를 좋아하고 시 쓰기도 좋아하는 사람은 SF시를 쓰면 된다. 그런 장르가 없다고 타박을 듣는다면 그 장르의 창시자가 되면 되고 이미 그런 작품이 많다고 바람을 빼는 사람이 있다면 그 장르의 종결자가 되면 된다. 읽어야 할 책들이 너무 많다면 좀 덜 읽어도 좋다. 진짜 읽어야 할 것은 내 안의 마음이고 거기에 무엇이 있는지 밝혀야 한다. 선배들의 작품은 그 길로 가는 등불일 뿐 그 길 자체가 아니다. 다르게 썼다고 확신했는데 남들이 흔한 이야기 같다고 평가절하한다면 한 귀로 흘려들어라. 흔한 이야기가 됐다면 우리는 이미 장르의 문법을 잘 파악하고 업계에 안착한 것이다.
좋아하는 곡이 있다면 그 곡의 뮤지션에 대한 정보를 모아보자. 오래전 사람이라면 뮤지션의 일대기를 담은 영화를 보거나 전기를 읽어보는 것도 좋다. 그 사람의 음악을 차근차근 모두 섭렵하면서 전체적인 이해에 근접해 가는 것이다. 그럴수록 우리가 듣는 작업 음악은 입체적인 세계로 다가온다. 그 안에 서서 천천히 손을 내밀면 멋진 음악가 친구의 손을 잡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와 교류한다고 상상하면서 그의 음악과 함께하면 우리의 작업도 더욱 풍성해질 것이다. 세계와 세계가 충돌하면 파편들도 모두 별이 될 테니까.
하루에 한 문장씩만 적립해 두어도 훌륭한 종잣돈, 아니 종자문장이 될 것이다. 그 한 문장에서 모든 글이 시작된다. 뻔한 얘기 같지만, 가장 어려운 것은 매일 하는 것이다.
출근하듯 일어나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8시간 동안 성실히 글을 쓰고 책상을 물리며 퇴근하는 전업 작가도 있고 한두 시간씩 일찍 출근해서 회사 앞 카페에서 글을 쓰는 작가도 있다. 점심시간마다 짬을 내어 하루 한 장씩 원고를 채우는 작가도 있다. 자신에게 맞는 라이프스타일을 선택해서 일과 루틴을 거기에 맞춘다. 오래 쓰려면 체력도 좋아야 하고 오래 앉아 있어야 하나 튼튼한 허리도 갖추어야 한다. 틈틈이 시간을 내서 운동을 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매일 하는 운동을 정해 작업 루틴으로 만든다. 루틴은 단순할수록 좋다. 욕심껏 이것저것을 다양하게 넣으면 수행하기 힘들어 포기하기 쉽다. 종류도 하나, 개수도 간단하게 만든다. 윗몸일으키기(머리 뒤에 깍지를 끼고 하는 방식은 추천하지 않는다. 머리를 지나치게 당기게 되어 목 디스크를 유발할 수 있다. 양손을 가슴 위에 X자로 교차하여 올려놓고 하는 것이 좋다.)는 좋은 운동이다. 일으키는 운동이라서 지친 마음을 일으키기에도 좋다는 그럴듯한 슬로건을 덧붙이면 더 재미있다. 한 번에 열 개 밖에 못 한다면 딱 한 번 열 개만 하면 된다. 매일 열 개씩 하다가 여유가 생기면 열한 개를 한다. 개수를 한 개 늘리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한 개를 늘려서 한계를 넘는다.” 그렇게 스무 개가 되고 서른 개가 되다 보면 언젠가는 백 개, 이백 개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오래 작업을 해도 지치지 않는 단단한 코어를 가진 작가가 된다.
'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필사] 소소하게, 독서중독(김우태) (0) | 2025.01.29 |
---|---|
[필사] 싶싶한 하루 보내세요(권민정, 라일락, 박다흰, 서예빈, 안화용) (0) | 2025.01.28 |
[필사] 내 하루도 에세이가 될까요?(이하루) (0) | 2025.01.17 |
[필사] 행복은 능동적(노연경) (0) | 2025.01.13 |
[필사] 블로그 글쓰기는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로미, 신은영, 윤담, 주얼송) (0) | 2025.01.13 |